소설리스트

게임 속 먼치킨이 되었다-52화 (5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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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에서 살아남는 법(3)

“구천구백구십팔. 구천구백구십구. 만······.”

한 달이 지났다.

모두가 자고 있는 새벽 세 시. 오늘도 난 하민을 수련시켰다.

“수고했어.”

성장기라 그런지 한 달 새에 배꼽 정도밖에 오지 않았던 하민의 키가 어느새 가슴까지 올라올 정도로 훌쩍 컸다.

더구나 혹독한 수련 덕분에 피지컬도 많이 좋아졌다.

수고했다는 내 말과 함께 들고 있던 쇠뭉치를 놓는 하민.

쇠뭉치가 바닥에 떨어지자 둔탁한 소리와 함께 땅이 파였다.

그만큼 저 쇠뭉치는 무거웠다. 그것을 만 번이나 들었으니 피지컬이 좋아질 수밖에 없다.

“뭐 하는 거야?”

그때 집 방향 쪽에서 이에로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게······.”

아직 새벽 세 시인데 기상했다니. 몰래 하민을 수련시켰다는 사실을 이에로가 알면 괜히 꾸중을 들을까 겁이 났다.

“둘이 싸웠어?”

그러나 불행 중 다행으로 이에로는 하민의 더럽혀진 복장과 지쳐 바닥에 쓰러진 모습을 보곤 우리 둘이 싸웠냐고 오해를 했다.

“그럴 리가. 그나저나 오늘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오늘 물건 떼는 날이라서. 일찍 시내로 나가 봐야 해.”

“고생하네.”

“할머니 아직 주무시니깐 너희 그만 싸우고 얼른 들어가서 더 자.”

이에로는 단순히 형제끼리 다퉜다고 생각한 듯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도시로 내려가고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괜찮냐?”

그제야 하민의 상태도 확인했다.

“죽을 것 같아.”

“말하는 것 보니 괜찮네.”

첫날에만 해도 열정 넘쳤던 하민은 내 수련의 강도를 겪어 보곤 도망갔었다. 물론 녀석의 자존심을 긁어 다시 돌아오게 했지만, 초반에는 젓가락을 들지 못할 정도로 고된 수련에 힘들어했다.

“누나는 어디 간대?”

“못 들었어? 새벽부터 오징어 떼러 도시로 내려가나 봐. 고생 많지.”

“후······. 얼른 다음 파트로 넘어가자. 꼭 용병으로 성공해서 누나 그만 고생시킬 거야.”

아주 믿음직스러운 동생의 모습에 난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민을 가르치면서 그의 재능 없는 모습에 한숨을 푹푹 쉬어 댔는데. 그래도 하민의 강점으로 모든 것이 다 커버되었다.

바로 열정. 그리고 포기하지 않는 끈기다.

더구나 하민은 피곤할 텐데도 새벽마다 빠지지 않고 수련에 성실히 임했다.

그만큼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이 큰 것 같았다.

“이제야 좀 용병답네.”

그래서 가르칠 맛이 났다. 하민이 열심히 따라와 주니 나도 피곤하고 귀찮아도 그를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이곳 집안사람들은 나를 거둬 준 은인이기도 했기에 떠나기 전에 이들에게 선물을 남기고 싶었다.

5년이란 세월을 기다리고 기다렸다. 이제 복수의 칼날을 다 간 상태다.

하민의 방학이 끝나고 아카데미 수료를 한 시점에 난 떠날 생각을 했다.

그러니 떠나기 전 1분 1초가 소중했다.

떠나기 전 하민에게 줄 선물은 바로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그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검술로 넘어가자.”

* * *

아침이 밝아 왔다.

“내일이 개학이지?”

“응.”

“그럼 오늘로써 수련은 마치는 거로 할게.”

“엥? 나 아카데미 다니면서도 새벽에 수련받을 수 있다고!”

갑작스러운 통보에 하민은 화를 냈다.

“이리로 와 봐.”

하민이 화를 내자 난 그에게 다가오라 손짓하며 불렀다.

내 손짓에 하민이 다가왔다. 난 두 손가락으로 그의 이마를 밀쳤다.

그러자 힘없이 쓰러지는 하민. 이미 고된 수련으로 모든 체력을 다 쓴 상태였기에 두 손가락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진 것이다.

“아침까지 수련하면 이 상태가 되는데 아카데미에 갈 수 있다고?”

“내겐 수련이 더 중요해. 아카데미에 안 가면 되잖아. 어차피 아카데미 수료하고 학교 갈 생각도 없고, 내 꿈은 최강 용병이 되는 거라니까?”

하민의 대답에 가불기가 걸렸다.

그의 말대로 아카데미 수료를 포기하고 수련을 이어 나가면 이에로가 난리를 칠 테고, 반대로 수련을 끝내고 학교에 다니라고 조언하면 하민이 난리 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간에서 합의를 봤다.

“아카데미 수료가 얼마 남지 않았잖아. 그때까지는 아카데미 생활에 열중하고, 그다음엔 내가 너희 누나를 어떻게든 설득할 테니 아카데미 수료 이후부터 다시 수련을 시작하자.”

타협점을 내자 다행히 하민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다.”

얼마 전까진 고집불통의 제어 안 되는 사춘기 동생이었는데. 그래도 고된 수련으로 조금 어른스러워진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예뻐 난 하민의 머리를 괜히 헝클었다.

“그럼 좀 쉬어라. 난 이만 할머니 일 도우러 가야 해서.”

하민을 수련시킨 이후부터 오히려 내가 거의 나폴레옹 수면법을 하며 고되게 하루를 보내는 중이다.

새벽부터 아침까진 하민을 수련시키고 낮엔 할머니를 도와 농사를 짓고, 오후엔 막냇동생 바루나와 놀아 주며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사이 단잠을 자며 한 달을 견뎠다.

‘공황엔 휴식도 중요한데 말이야.’

겨우 극복한 공황인데 괜히 피곤함이 쌓여 다시 폭발할까 두려웠다. 그럼에도 하민의 수련을 봐준 이유는 고마움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여기 산 지도 벌써 5년이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어?”

“그러니깐. 너 처음 봤을 때 나이가 바루나하고 같지 않았나? 엄청 어렸는데. 물론 바루나와 달리 넌 그때도 말썽꾸러기였지만.”

“뭐?!”

내 장난에 하민이 짜증 내며 문을 퍽 닫았다.

그러나 내 눈엔 짜증 내는 모습도 귀여웠다. 하민은 내가 처음 공황 발작으로 사람 구실도 못 했던 시절에 돌봐 준 사람 중 한 명이니까.

“진짜 시간 빨리 가네.”

괜스레 난 코끝을 만지며 일어섰다.

하민이 아카데미를 수료한 뒤 다시 수련을 시작하기로 약속했지만, 아마도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때쯤 이곳을 떠나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그날이 다가오니 섭섭한 마음이 컸다.

“할머니. 건강하셔야 해요.”

밭에 나가 할머니의 일손을 도왔다. 그저 내 말에 고개만 끄덕이는 할머니. 이곳에 온 뒤로 만난 가장 고마운 존재라 그런지 할머니에겐 가장 값진 선물을 주고 싶었다.

‘게임을 했을 당시에 벙어리 해제시키는 캐시 아이템이 있었는데. 그게 통할까?’

브라고 게임엔 유저가 욕설이나 음란한 내용을 대화 창에 적으면 더 이상 채팅할 수 없도록 만드는 시스템이 있었다. 그 시스템으로 악성 유저들을 잘 잡았는데, 채팅 금지를 해제시키는 캐시 아이템이 나온 뒤로 논란이 생겨 지금까지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악용하는 유저가 많았었음에도 그 캐시 아이템은 사라지지 않아서 유저들의 항의가 빗발쳤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S급 소환사 제나만 있으면 그 캐시 아이템을 바로 구해다가 할머니에게 적용했을 텐데.’

5년간 동료였던 제나를 못 보기도 했고, 사실 살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가 살아 있다고 해도 찾아가진 않을 생각이다.

만약 그 당시 제나가 나를 구하고 죽었으면 죄책감 때문에 감정적으로 바뀌어 공황이 다시 심해질 것 같았고, 제나가 무사하다 한들 5년간 아무 소식도 전하지 않았기에 면목이 없어서 그냥 혼자 범죄 집단 헨드릭스 대군주 카모라를 죽이러 떠날 것이다.

그러나 그 전에 다시 말할 수 있는 아이템을 구할 수 있는지 한번 알아봐야겠다 생각했다.

“오빠, 오늘은 어디 가?”

농사일까지 마친 후 할머니를 안방에 모셨을 때 나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던 바루나가 반기며 물었다.

“음······. 오늘은 동쪽에 있는 흔들바위 구경하러 가 볼까?”

바루나와의 산책은 내가 공황을 극복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됐던 루틴이었다.

동료를 잃은 슬픔으로 2년 가까이 집구석에서 울기만 하던 나를 바깥으로 안내해 준 사람이 지금 내 손을 잡고 해맑게 웃어 주는 바루나였다.

그땐 말도 어물거리며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나보다 더 말을 잘한다.

“얼른 가자!”

바루나가 내 옷소매를 당기며 얼른 흔들바위를 구경하러 가자고 재촉했다.

“나도 갈래!”

한편 잠에서 깨어난 하민도 같이 가고 싶다 손 들며 뒤를 따랐다.

흔들바위는 집에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어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이곳에 온 목적은 바로 명상을 하기 위함이었다.

“여기서 두 시간 정도 명상하자.”

현생에서 그토록 극복하지 못했던 공황을 명상이란 정신 수련법으로 많이 극복했다.

나는 바위에 앉아 눈을 감고 자연을 느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했다. 앞으로의 계획, 과거 내가 잘못했던 것들. 그리고 현재 내가 해야 할 것들을 세 분류로 나눠서 스트레스받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소화할 수 있게 계획했다.

빨리 가는 것도 좋지만 천천히 내실을 다지는 게 지금 내겐 더 중요했다.

“형. 질문 하나 해도 돼?”

그러나 오늘은 명상을 즐기기 어려워 보였다. 바루나는 어른스럽게 홀로 명상에 몰두하는데 하민은 가만히 있는 것이 적성에 맞지 않는 듯 몸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뭔데?”

소중한 명상 시간을 방해하니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근데 뭐 이제 곧 헤어지게 될 가족 같은 존재니 녀석의 질문에 짜증 내지 않았다.

“형은 강하면서 왜 용병 길드에 들어가지 않는 거야?”

“···내가 뭐가 강해.”

“에이, 수련하면서 느꼈어. 형이 가진 힘과 기술을 나는 한 달째 노력해도 가지지 못했으니 강한 건 사실이지.”

“네가 약한 건 아닐까?”

“뭐?!”

하민이 또다시 내 장난에 화를 냈다. 뭐, 마왕의 몸이니 일반 캐릭터의 피지컬과는 차원이 다른 건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왕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 지금같이 가족처럼 지내기는 어렵기에 이제 곧 이별할 사이여도 난 비밀을 지켰다.

“내 힘이 강한 건 명상 덕분이야.”

“명상? 진짜?”

“응. 그리고 용병 길드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난 싸움보단 자연을 느끼는 시간이 더 좋아서 그런 거고.”

“누나는 아침부터 죽도록 일하는데?”

“크흡······.”

이번엔 하민이 내 심기를 건드렸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명상이 힘이랑 관계가 있다고? 난 전혀 못 느끼겠는데······.”

“열 번도 안 해 봤으니 모르지. 뭐, 한 달 동안 새벽 수련만 버틴 것도 박수 칠 일인데. 빠르게 힘을 기르는 것에 초점을 맞추다 보면 쉽게 지칠 수가 있어. 그럴 땐 지금처럼 명상하면서 좋은 기운도 얻고, 이렇게 가만히 있다 보면 바쁘게 생활했을 때 쉽게 지나쳤던 자연의 아름다움도 볼 수 있어.”

해가 점점 저물어 갔다. 오늘은 운 좋게도 날씨가 맑은 탓에 노을이 예쁘게 잘 보였다.

더구나 보라색 물감을 쏟은 듯 하늘이 보랏빛 은하수처럼 바뀌었다.

마치 오로라를 보는 듯했다.

“오늘은 운이 좋은 편이네. 날이 맑아서 그런지 석양의 빛 덕분에 하늘이 보랏빛 물결로 아름답게 바뀌는 풍경도 보고.”

명상과 거리가 멀어 보였던 하민조차 아름다운 자연의 광경에 입을 벌린 채 감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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