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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대전(3)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러나 메시아의 기운이 라이칸 주변을 휘감았다.
“중요한 연구 자료네. 다시 제자리에 갖다 놓거라.”
“같은 군주끼리 명령질은, X발.”
라이칸은 아이젠의 명령에 불복종하였다.
그리고 날카로운 발톱을 휘둘러 주변에 있는 메시아 기운을 떨쳐 냈다.
“하스마 제국 공주와 연이 깊다고 듣긴 했는데, 연모인가?”
“···열등감이야.”
“훗. 연모든 열등감이든. 배신자는 배신자. 각오해야 할 거다.”
아이젠이 백성의 정신이 깃든 검을 둥글게 돌린 후 바닥에 꽂았다.
“궁극기(窮極技) 둠스데이.”
그러자 갑자기 하늘에서 광선이 쏟아져 내렸다.
라이칸이 빠른 속도로 아델라를 업은 채 도망쳤지만, 모두 피하기엔 너무나 많은 양의 광선이었다.
그때 라이칸 앞으로 한 사람이 보였다.
“비켜!”
도망치다가 다시 전장까지 온 라이칸.
크라운과 대치하던 검성 아르곤의 옆구리를 가격한 채 쓰러뜨렸다.
그리고 크라운에게 정신을 잃은 아델라를 맡겼다.
“목숨을 걸고 데리고 온 사람이야. 너도 목숨을 걸고 지켜.”
라이칸은 자신의 목걸이를 다시 원래 주인인 아델라에게 넘겨주었다.
그러곤 홀로 전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그의 뒷모습은 한없이 쓸쓸해 보였다.
“꼭 공주님을 지켜 줘. 그녀는 그만한 가치 있는 여자야.”
라이칸은 그 말을 끝으로 헨드릭스 군주들을 막아 세우다 광선에 휩쓸려 형체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렇게 지상낙원 같았던 아틀란티스가 블랙홀과 둠스데이로 어둠만이 자리 잡은 전쟁의 잔혹한 장소로 탈바꿈되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선 남자.
아델라를 넘겨받은 크라운이다.
* * *
“마왕님, 괜찮으십니까?”
한편. 외곽에서 제나가 새로운 단잉의 반지를 계속 소환해 갈아 끼워 주고 있었다.
그러나 내 마음속 어둠 때문일까? 백옥 같은 진주는 내 손에 닿자마자 까매졌고, 공황 증세를 막아 주는 단잉의 반지 능력이 무효화되었다.
“X발.”
욕이 저절로 나오는 상황이다.
지금 동료가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는데 고통에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하다니.
한심하고 한심한 인간.
여전히 난 한심하고 나약한 인간이다.
“전혀 쓸모없는 인간이야. 나는······.”
그래서 분에 못 이겨 머리를 쥐어뜯었다.
공황 증세 때문에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니 더욱더 난 강한 강도로 자해를 시전했다.
그때 내 팔을 잡아 막는 제나.
“누구보다 쓸모 있어요.”
제나가 고통에 못 이겨 숨도 고르게 쉬지 못하는 나를 잡아당겨 박치기했다.
무슨 바위에 박치기한 듯 머리가 울렸다.
그러나 효과가 있었다. 그 충격으로 잃었던 이성이 잠깐 돌아왔기 때문이다.
제나가 다시금 내게 말했다.
“지금 그 누구보다 필요한 존재예요. 마왕님은. 그러니 일어서세요. 아직 전쟁 끝나지 않았습니다.”
* * *
“미치광이 마왕 때문에 쉽사리 들어가질 못하겠네요.”
블랙홀은 아틀란티스 대륙을 집어삼키면 삼킬수록 거대해졌다.
그리고 거대해지면 거대해질수록 빨아 삼키는 힘도 거세졌다.
카모라는 세계의 종말자라고 불리는 헨드릭스 6군주 사탄에게 마왕 브라고의 대한 정보를 들었다.
“블랙홀은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마왕님의 스킬이에요. 시간만이 답입니다.”
붉은 날개를 펼쳐 하늘을 날아다니는 악마계 전투형 투검사 사탄은 답했다.
“시간이라. 제국 라노키아 1군주에게 부탁 좀 하고 싶을 정도네요.”
“그래도 점점 거대해질수록 자기 중력에 못 이겨 사라지는 스킬입니다. 곧 기다리시면 사라질 겁니다.”
사탄의 말을 들은 카모라는 일단 사태를 두고 보기로 했다.
* * *
한편. 1군주 아이젠과 4군주 아르곤 또한 바로 앞에 크라운과 아델라가 있음에도 점점 커지는 블랙홀 때문에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빨아들이는 힘이 점점 강해져서 괜히 먼저 공격했다간 우리가 휩쓸려 당하겠어.”
아르곤이 대치하는 모습으로 자세를 바꿨다.
한가운데 뜬 블랙홀은 아틀란티스의 대륙을 모두 집어삼키려는 듯 강한 중력 작용을 멈추지 않았다.
블랙홀 때문에 고난을 겪는 건 크라운도 마찬가지였다.
땅이 계속 갈라지며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니 바로 앞에 헨드릭스 군주가 있는데도 아델라를 둘러업은 채 요리조리 피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아차!”
그런데 그때 크라운이 밟고 있던 넓은 면적의 땅이 그대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다.
빠른 속도로 아직 멀쩡한 땅으로 이동하려 했지만, 블랙홀의 강한 중력이 그의 몸 또한 빨아들였다.
아델라를 업고 있는 채로 그 강한 중력을 모면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어이!”
그런데 저 멀리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처럼 사슬이 하나 날아왔다. 파우스트의 사슬이었다.
크라운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기 직전 다행히 파우스트의 사슬을 잡아 위기를 모면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파우스트 뒤로 든든한 하늘 섬 요괴, 삼장법사, 사오정, 저팔계가 앞에 있는 군주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우리도 바빴어. 성전에 있는 시민들을 안전한 곳까지 옮기느라 지금까지 이리저리 쉬지 못한 채 움직였다.”
사오정은 크라운이 업고 있는 아델라의 상태를 확인했다.
“다행히 기절한 것뿐이야. 목숨엔 지장 없어.”
사오정에게 아델라의 상태를 확인하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 크라운.
“그나저나 브라고는?”
“곁에 제나가 있으니 무사할 거야.”
“정확히 무사한 거 맞아?”
“그렇게 생각해야지.”
크라운은 용검을 다시 뽑아 들고 군주들 앞으로 다가섰다.
“저기 위의 블랙홀 형태가 심상치 않아. 아마 마지막 전투가 곧 시작될 것 같아.”
크라운이 블랙홀을 용검으로 가리켜 말했다.
그의 말에 따라 시선을 위로 옮기는 동료들.
크라운의 말대로 완전한 원형 형태를 유지했던 블랙홀이 강한 중력의 힘을 못 이겨 일그러지고 있었다.
“저것이 현재 우리에겐 안전장치와도 같은데 상태를 보면 얼마 못 갈 것 같아.”
“군주들 분위기를 봐도 저것만 사라지면 바로 공격할 자세이군.”
삼장법사는 크라운의 말에 일리가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 전투는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치지직―
스파크가 튀기는 소리가 블랙홀 방향 쪽에서 들려왔다.
그 소리에 고개를 올려 블랙홀을 쳐다보자 강한 중력으로 자신의 형태까지 흡수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곤 갑자기 고요해졌다.
“사라졌다!”
파우스트의 외침과 함께 대치하고 있던 헨드릭스 군주들이 이쪽으로 달려 들어왔다.
그렇게 누구 하나 물러설 수 없는 잔혹한 마지막 전투가 시작됐다.
* * *
“허억, 허억.”
한편. 외곽에 누워 있던 난 그나마 단잉의 반지를 계속 갈아 끼우자 공황 증세가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괜찮으십니까?”
공황이 멈추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타감이 찾아온다.
그러나 우울감과 상실감에 빠져 허우적거릴 시간이 없었다.
제나 또한 괜찮아진 내 상태를 보곤 손목을 잡아당겼다.
“마왕님이 필요합니다.”
“두려워.”
“네?”
“나 때문에 또 동료들이 죽을까 봐.”
“······.”
제나가 다시 한번 내 앞에 서서 박치기를 해댔다.
“아프잖아!”
“정신 좀 차리십시오. 부활할 때 나이를 거꾸로 드셨습니까? 다른 이들이 마왕님을 두렵게 생각하긴 했어도 마왕님 입에서 두렵다는 말이 나오면 어쩌자는 겁니까?”
“동료들이 나 때문에 하나둘씩 죽어 가는데 어떡해!”
“제가 만약 마왕님이었으면 남은 동료들만이라도 건드리지 못하도록 잔혹하게 복수할 겁니다.”
제나가 처음으로 나에게 윽박질렀다.
“정신 차리십시오. 지금은 도망칠 때가 아니라 지킬 때입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동료들이 또 죽을까 봐 걱정하고 있으면서 동료들은 전장에 그대로 두고 난 그들의 뒤에 자리 잡고 있다니.
말과 행동이 다른 겁쟁이의 핑계였다.
“핫스퍼가 죽었어.”
“아직 다른 동료들은 살아 있습니다.”
내 겁쟁이 같은 모습에 단잉의 반지가 점점 까매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나는 반지가 완전히 까매지기 전에 바로 새로운 반지로 바꿔 내 마음을 다스렸다.
“그리고 그들은 마왕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제나가 또 한 번 내게 외쳤다.
그녀의 외침 이후로 단잉의 반지가 더는 까매지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반지를 어루만지며 다시 일어섰다.
“후우.”
길게 심호흡을 내뱉었다. 그리고 현실을 자각했다.
게임 세계에 들어온 것부터가 현실이다. 핫스퍼는 죽었지만, 남은 동료들이 있고, 나 때문에 현생에 가지 못하는 파우스트도 아직 남아 있다.
“헨드릭스 대군주 카모라는 태초에 파라오의 신봉자였어.”
난 목에 걸려 있는 피라미드 펜던트를 만져 스핑크스를 불러들였다.
그가 도망친 신봉자의 사냥개이기 때문이었다.
“지켜보고 있었다. 카모라 때문이지?”
스핑크스도 상황을 알고 있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갑시다. 지키러.”
나는 제나의 손목을 잡고 그녀와 함께 스핑크스 위로 올라탔다.
스핑크스는 빠른 속도로 전장까지 달려나갔다.
지금 이 순간부터. 파수꾼과 헨드릭스 세력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전투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오버 소울!”
파우스트가 아틀란티스에 망령을 불러들였다.
핫스퍼의 망령, 그리고 헨드릭스 8군주 라이칸의 망령이 다시 깨어나 헨드릭스 군주들을 상대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저 망령 술사와 하늘 섬 주인 삼장법사는 우리만큼 강하다.”
아이젠이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그런데 그 앞으로 카모라와 나머지 헨드릭스 군주들이 나타났다.
“아무리 망령 술사라도 저희 군주의 망령을 함부로 쓰는 건 상도에 어긋나는 행동이죠.”
카모라가 망령술을 카피해 라이칸을 자신의 망령으로 빼앗았다.
“라이칸 님이 끝내 배신한 겁니까?”
카모라가 아이젠을 향해 물었다. 아이젠은 그녀의 질문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주 때문에 돈과 권력을 포기하다니, 저로선 상상할 수 없는 태도네요.”
카모라는 라이칸의 망령으로 파우스트 뒤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진 아델라를 공격했다.
그러나 그 앞을 막고 있던 크라운이 라이칸의 일격을 저지했다.
“잔인한 새끼.”
전투가 길어질수록 브라고의 동료들은 하나둘씩 지쳐만 갔다.
그러나 헨드릭스 군주들은 싸우는 사람만 싸우고 있을 뿐 나머지 네 명 정도는 지켜만 보고 있었다.
힘의 차이가 월등하게 헨드릭스 세력으로 치우친 것이다.
“그만 끝냅시다.”
카모라가 지겹다는 표정을 지은 채 뒤에 있던 나머지 군주들도 불러들였다.
이미 피투성이인 크라운과 파우스트, 그리고 하늘 섬 요괴들.
젖 먹던 힘까지 쓰며 막아 세우지만, 나머지 군주들의 힘까지 더해지니 이젠 한계점에 다다른 듯 보였다.
그러나 그때!
“카모라!”
저 멀리서 브라고가 스핑크스를 타고 카모라에게 달려들었다.
피라미드 수호자 스핑크스를 보자마자 카모라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며 한 걸음 물러섰다.
“자이언트 블럭!”
한편. 난 중력 에너지를 헨드릭스 군주들을 향해 쐈다.
“폭탄 받아라!”
제나 또한 군주들 주변으로 폭탄을 소환해 충격을 주었다.
“궁극기 블랙홀.”
그리고 쉴 틈 없이 난 또다시 블랙홀을 소환시켜 헨드릭스 군주들 앞으로 보냈다.
쉴 틈 없는 공격이 먹힌 듯 군주들은 당황한 듯 보였다.
그 뒤로 동료들의 공격 또한 군주들을 향해 날아갔다.
“드디어 잡는구나, 이 파라오의 신봉자 녀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