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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먼치킨이 되었다-45화 (4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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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4)

아서왕마저 삼장법사에게 맡기고 난 바우트가 이동한 외각 성벽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드디어 만난 크라운.

“크라운!”

“······?!”

드디어 내 외침이 크라운의 귀에 닿았는지 그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망가자!”

그래서 난 다시 한번 더 크게 크라운을 향해 외쳤다.

“궁극기 과도한 힘!”

그런데 크라운 앞을 막는 거구의 중년 남성.

세계 정부 총사령관 바우트다!

“거기까지다.”

아까보다 더 커진 바우트의 체구. 삼장법사보다도 더 큰 모습인데.

가까이서 그와 마주하니 그의 주먹이 내 체구보다 더 컸다.

“마지막 기회다. 그만 후퇴해라.”

바우트가 짧은 숨을 고른 후 나에게 말했다.

어투를 들어 보면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었다.

“당신 뒤에 마지막 남은 동료가 있어.”

“저분은 자네 동료가 아니라 아기루 황제이시다.”

바우트가 알 수 없는 말을 꺼냈다. 크라운이 아기루 황제라니.

“크라운, 무슨 소리야?”

난 직접 크라운에게 외치며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매몰찬 답변뿐이었다.

“그만. 이제 그만하고 꺼져.”

그의 대답에 진이 빠져 겨우 붙잡고 있던 정신을 놓칠 뻔했다.

“무슨 소리야? 널 구하러 왔다고. 내 손을 잡아 주었잖아. 내 안일한 태도에 아직도 화가 난 거야?”

“그땐 경황이 없어서 잡은 거지. 너와 함께한다는 소리는 아니었어. 난 여기에 남을 거니 제발 데리고 온 괴물들과 꺼져 줘.”

“크라운!”

난 그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

알 수 없는 그의 행동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저분의 존함은 크라운이 아니라 아레스시다. 제67대 아기루 황제가 되실 분이란 말이다!”

그러나 내 앞에 있던 크라운은 내가 알고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이름도 신분도 다른.

완전 다른 사람.

“마왕님!”

뒤편에서 제나의 비명이 들렸다.

제나는 크나큰 위기가 아니면 비명을 지르는 자가 아니었기에 더욱더 걱정되었다.

“크라운, 제발······.”

그래서 난 크라운을 최대한 설득시켰다. 같이 도망가자고.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

그를 구하기 위해 치명상을 당해도 버티는 동료들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제발 꺼지라고!”

계속 꺼지라고 매몰차게 얘기해도 내가 도망치지 않자 크라운이 나를 향해 검을 높게 들었다.

“궁극기 영혼 가르기!”

그리고 수만 개의 칼날을 소환해 나를 휘감았다. 중력으로 그의 궁극기 스킬을 무력화시킬 수 있었지만 난 그저 멍하니 그의 일격을 바라봤다.

어안이 벙벙했기 때문이다.

“궁극기 하스마 권!”

그때 나 대신 크라운을 날려 버린 한 사람. 아델라였다.

“황제님, 괜찮으십니까? 이놈들!”

크라운이 날아가자 바우트가 아델라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크라운이 먼저 아델라 앞으로 다가가 바우트를 막아 세웠다.

크라운은 아델라의 일격에 치명상을 입은 듯 피를 토했지만, 괜찮다는 미소를 띠며 바우트에게 괜찮다고 답했다.

“마왕님, 이제 그만합시다. 저자는 저희가 알고 있는 크라운이 아니라 순수 혈통 황제의 피를 이어받은 아레스로 살기 마음먹었습니다.”

아델라도 그를 설득하는 것을 포기한 듯 내게 지금이라도 도망치자 말했다.

그러나 난 크라운을 혼자 놔두고 갈 수 없었다. 그의 냉혈한 행동을 봤음에도 그럴 수 없었다.

지금 그는 진정으로 우릴 싫어해서 매몰차게 버린 것이 아니라 우릴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곳에 남으려고 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부터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지금 크라운은 우리와 함께 도망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네가 안 가면 나도 안 가.”

“아직도 이해 못 해? 제발 꺼지라고!”

“네 정체가 아레스든 아기루 황제의 자손이든 상관없어. 내게 넌 그냥 크라운이야. 내 믿음직한 동료라고! 그래서 난 네가 무조건 필요해. 같이 가자, 크라운.”

크라운은 내 고집에 헛웃음을 내뱉었다. 그리고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을 뱉었다.

“더는 동료가 다치는 모습을 보기 싫어. 제발 가 줘라. 진심이야.”

그 말을 끝으로 크라운은 힘없이 주저앉았다.

아마 아델라의 궁극기를 정통으로 맞아 체력을 다한 것 같았다.

그러나 난 힘없는 크라운의 대답이 반가웠다.

한편으로는 진짜 내 안일한 리더십에 학을 떼고 팀에서 나가 버리겠다고 선언한 거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동료를 지키기 위한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난 더더욱 크라운을 버릴 수 없었다.

“상대가 세계 정부든 4대 세력이든! 어차피 세상을 개혁하기 위해 맞서 싸워야 할 존재들이야. 그러기엔 네가 필요해. 동료를 지키기 위해 이곳에 남는 거면 그러지 말고 내 손을 잡아 줘.”

나는 크라운에게 손을 내밀었다.

바우트가 중간에서 방해하려 했지만 아델라가 그를 막았다.

“마지막으로 물을게. 같이 가자, 크라운.”

“···진짜 넌 나 없으면 안 되나 보네.”

크라운이 실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았다.

드디어 그에게 확답을 들었다.

“이제 어떡할 거야? 총사령관에 4대 세력 대군주들. 그리고 성벽 외곽엔 4대 세력 군주들까지 진을 치고 있어.”

“모두 무사히 만났으니 도망가야지.”

난 크라운의 물음에 답을 내리듯 기를 모았다.

그리고 두 손 한가운데 마력을 집중해 궁극기를 펼쳤다.

“궁극기(窮極技) 블랙홀.”

* * *

크라운, 아니, 아레스는 어렸을 적 아주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했다.

“콜록콜록.”

“엄마. 괜찮아요? 그러게 아프면 좀 쉬시라니까.”

“괜찮아.”

한적한 시골 통나무집.

홀어머니와 함께 농사했던 아레스.

병원에 갈 형편마저 안 됐던 아레스는 그때 다짐했다고 했다. 자신의 검술로 급제를 해서 꼭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고.

그러나 어머니는 지금이 좋다고 하시며 계급 시험을 치르지 않길 바랐다.

“네가 다치는 꼴을 보기 싫다.”

그 당시에 아레스는 어머니가 계급 시험에 반대한 이유가 그저 검술로 돈을 버는 일이 위험천만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 몰래 계급 시험장에 간 아레스는 깨닫게 되었다.

어머니가 계급 시험에 반대한 이유는 위험해서가 아니라 아레스의 마음이 혹여나 다칠까 싶어서였다.

“인적 사항에 사생아라고 적혀 있는데요?”

그때 아레스는 자신의 신분을 처음 알았다.

다른 아이들과 달리 아비가 없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신분이 천한 사생아라는 사실이 그때 당시엔 크게 다가섰다.

병장 타이틀이 최대인 신분.

그렇기에 아레스의 계획은 모두 흐트러져 버렸고, 자신의 천한 신분을 증오한 채 씩씩대며 집으로 돌아갔었다.

“불이야, 불!”

그러나 집에 도착했을 땐 아레스가 없던 사이 시골에 큰불이 났다는 소식을 뒤늦게야 들었다.

그는 황급히 집으로 향했지만, 이미 형태조차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다 타 버린 집.

그나마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어디 갔었어, 한참을 찾았잖아!”

뒤늦게 아레스를 발견한 어머니.

마을 사람들은 어머니가 불이 난 시점부터 맨발에 발이 다 까진지도 모를 만큼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아레스를 찾으셨다고 했다.

“미안, 엄마. 꼭 좋은 소식 갖고 오고 싶었는데······.”

그 모습에 차마 아레스는 화를 내지 못했었다. 자신의 신분이 천하다는 이유로 계급 시험조차 못 보는 것이 어머니의 잘못은 아니었으니깐.

그래서 아레스는 분노의 감정을 슬픔으로 승화시켜 그 자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오열했었다.

그렇게 큰불에 다 타 버린 마을처럼 크라운의 꿈도 미래도 다 타 버리고 사라진 듯했다.

자신의 신분의 비밀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콜록콜록. 나 너무 아파.”

자신이 황족의 자손이라는 비밀을 알게 된 시점은 아레스가 역병에 걸려 사경을 헤맸던 때부터였다.

마을이 불에 타 레드우드로 이주한 아레스와 어머니. 그러나 불행히도 그 당시 레드우드에서 유행한 역병에 아레스가 감염되었다.

그 역병이 늑대 소굴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소문에 근처 제국 병사들이 늑대들을 소탕해 확산 방지를 줄였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럼에도 아레스의 병은 점점 더 심해져 갔다.

더구나 의원들은 제국 사람들이 다 고용해 갔기 때문에 아레스를 치료할 의원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대륙의 의원이 아레스의 병을 치료하러 산골 마을까지 출장 왔었다.

어머니가 헌신하듯 마을 사람들에게 호의를 많이 베풀었던 탓일까?

마을 사람들 한 명씩 없는 돈을 긁어모아 다른 대륙의 의원을 초빙한 것이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에이, 엄씨가 해 준 게 얼마나 많은데. 이 정도는 받아도 돼.”

아레스의 어머니는 말없이 마을 사람들을 향해 깊이 고개를 숙였다.

아레스가 그 모습이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었다고 어렴풋이 얘기했던 기억이 났다.

헌신하기만 한 어머니의 삶을 보며 한심한 모습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모습을 보니 묵묵히 다른 사람들을 베풀면서 살아가면 언젠간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이마의 표시! 황족의 문양 아닌가!”

고용한 의원이 아레스의 이마에 새겨진 문양을 알아보긴 전까지는 말이다.

“바이러스가 온몸에 다 증식된 상태입니다.”

“···방도가 없을까요?”

“S급 힐러가 직접 치유한다면 모르겠지만, 저로서는······. 죄송합니다.”

고용한 의원도 아레스의 병을 고쳐 내지는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생각한 마지막 방법.

다시는 찾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곳.

그곳은 화이트우드 세계 정부였다.

“정신이 드십니까?”

고열로 정신을 잃었던 아레스가 처음 마주한 곳은 지상낙원이 한눈에 보이는 특실의 병원이었다.

황족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다는 VIP 병동이라던데.

계급 시험도 보지 못하던 천한 아레스가 이곳에 있다는 자체가 놀라운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어디 있습니까?”

완쾌한 아레스가 일어나자마자 찾은 사람은 어머니였다.

눈앞에 펼쳐진 지상낙원을 어머니에게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어머니에 대한 아무런 얘기를 해 주지 않았다.

“황제 폐하가 찾으십니다.”

오히려 살아생전 처음 듣는 사람이 그를 찾는다 하였다.

루기아 세계의 최고 권위자이자 황제 폐하인 아기루 황제. 즉 아레스의 아버지가 말이다.

“너와 어미의 존재는 우리에게 걸림돌이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듣는 아레스가 태어났을 때의 이야기.

아버지는 한때 사랑했던 어머니를 가문의 수치라며 내쫓았고, 어머니는 배 안에 있던 아레스를 살리기 위해 도망치듯 황실에서 떠났다고 한다.

“근데 이곳에 다시 돌아오다니 너의 어미는 제정신인 게냐? 다른 가문들이 우리 집안을 보면 뭐로 생각할 것 같냐!”

“닥치십시오.”

아레스는 그래도 한때 아버지를 그리워했었다는 걸 후회하고 후회했다.

지금 아레스 앞에 있는 남성은 자신의 아버지가 아닌 권력과 신분만을 중시하는 괴물이니 말이다.

“이곳에 남을 생각, 전혀 없습니다.”

“그래야지.”

아레스는 신분 제도에 환멸을 느꼈다.

이렇게나 지상낙원 같은 곳에서 사는데도 더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 죽을 듯이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 하는 모습이 역겨웠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어딨습니까?”

“···이곳에 온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나?”

아레스는 아버지 말에 급히 왕실을 나갔다.

그리고 어머니를 찾았다. 다행히 어머니는 가까이 있었다. 그러나 왕실이 아닌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 어머니.

“살아 있으면 됐다. 난 네가 어찌 되는 줄 알고······.”

지하 감옥에 있음에도 어머니는 아레스만을 생각했다.

“하아.”

그 모습에 아레스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뱉었다.

어머니 본인의 삶은 안중에도 없이 자신에게만 헌신하는 모습이 짜증 났기 때문이다.

그 뒤로 아레스는 크라운으로 이름을 바꾼 후 밤마다 화이트우드 가문들의 보물을 훔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었다.

아침엔 어머니에게 면회 갔고, 밤에는 도둑질을 일삼으며 살아갔다.

가난한 자들에게 뭘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었다.

의로운 뜻을 새기고자 한 행동도 아니었다.

그냥 화풀이할 곳이 필요했고, 그 대상이 기득권자였을 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크라운에게 말하길.

“친구는 좀 사귀었니?”

“친구가 다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혼자 사는 인생. 돈이나 많이 벌 거야.”

“돈을 벌어서 어디다 쓰게?”

“뭐, 어딘가엔 쓰겠지.”

“···사람들이 왜 권력을 좇고 돈을 벌고 싶어 하는지 알아?”

“욕심 때문이겠지.”

“기댈 사람이 없기 때문이야. 그런 친구가 없어서 돈과 권력에 기대는 거지. 난 아들이 돈과 권력보단 친구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길 원해.”

“또. 또. 이상적인 이야기만 하네. 현실은 달라, 엄마. 돈이나 권력이 없으면 친구도 사귀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크라운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한 귀로 흘리듯 들었다.

요즘 따라 매일같이 하는 얘기였기 때문이다.

“어딘가엔 다 있어. 돈이든 권력이든 힘이든 다 없어도 자신의 편이 되어 줄 친구가. 그런 친구를 꼭 찾길 바라.”

“···엄마면 충분해.”

“엄마가··· 수도 있어.”

말끝을 흐리는 크라운의 어머니.

크라운은 알지 못했다. 그때가 어머니의 마지막 밤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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