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상회담(3)
한편 탄주도 일어서서 세이시로 옆에 나란히 서서 청성의 정신이 깃든 검을 다시 빼내었다.
그러자 청성의 주인 청룡 또한 소환됐다.
이번엔 폭설이 내리며 기온이 급격히 낮아졌다.
“감기에 걸릴 오락가락한 날씨구먼.”
세이시로와 탄주의 일격이 우리를 향했다.
그러나 삼장법사가 결계를 쳐서 그 일격을 막아 냈다.
결계 뒤로 X선 자국이 세계 정부 바닥에 크고 깊게 새겨진 걸 보면 삼장법사의 결계가 매우 단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근두운이 제 역할을 못 해 주는 건 계획에 벗어나는 일이네요.”
그러나 도망갈 골든 타임이 지나 버렸다.
우리 위로 세계 정부 총사령관 바우트를 비롯해.
범죄 집단 헨드릭스 대군주 카모라, 암살 집단 흑사협 대군주 세이시로, 집행자 소사이어티 대군주 탄주, 제국 라노키아 대군주 아서왕이 우릴 노려보고 있었다.
“호랑이 굴보다 더한 곳이었네요.”
난 단잉의 반지를 한번 어루만진 뒤 전쟁을 준비했다.
크라운도 용검을 빼 들었고, 아델라는 돌연변이화되어 자세를 갖췄다.
파우스트 또한 사슬을 꺼내 들었고, 제나는 뒤에서 폭탄을 곳곳에 소환시켰다.
“세계 정부 본부 바로 밑에 S급 범죄자들이 득실거리는 지하 감옥이 있다 들었습니다.”
제나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말했다.
“너 설마!”
설마가 맞았다. 음흉한 미소가 끝나기도 전에 지하에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폭음이 끊이지 않았다.
아마 지하 감옥을 폭파해 범죄자들을 풀어 버리려는 속셈이었던 것 같다.
“저희만큼 이곳에 잡힌 범죄자들도 저기 서 있는 놈들에게 원한이 깊지 않을까요?”
“그래도 범죄자인데 풀어 줘도 되는 거야?”
“쟤들한테는 우리도 범죄자입니다.”
폭음이 끝나자 지하 쪽에서 괴성이 들렸다.
“화이트우드가 지옥이 될 것 같네.”
“저희에겐 지상낙원이죠.”
이런 상황에도 제나는 해맑게 웃으며 즐겼다.
“이곳 주변 어딘가에 저들의 세력들이 득실거리고 있다는 건 잊지 않았겠지? 우리의 돌파구는 하늘밖에 없어!”
한편 삼장법사가 다가와서 지금 이 상황을 상기시켜 줬다.
우리의 돌파구는 하늘뿐.
저기 무너진 세계 정부 본부에 서 있는 총사령관 바우트와 4대 세력의 대군주들을 뚫고 지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자이언트 블럭!”
선빵은 필승법이라고 들었다. 난 그들이 서 있는 곳에 중력 에너지 파를 쐈다. 그러자 무너진 세계 정부 본부는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무사했다. 아니, 오히려 총사령관의 코털을 건드린 격이었다.
“감히 세계 정부와 척지고 살아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냐!”
바우트가 순간 스피드로 내 앞까지 돌파해 주먹을 뻗었다.
“궁극기 하스마 권!”
그때 아델라가 하스마 건틀릿을 낀 두 주먹을 뻗어 바우트의 일격을 받아쳤다.
그 파동으로 주변 건물들까지 쑥대밭이 되었다.
“연맹 관계인 바우트 님께서 저리 열심힌데 아서왕 님은 싸움에 관여하지 않을 겁니까?”
한편 무너진 세계 정부 본부에서 다른 건물 옥상에 올라온 카모라와 아서왕.
카모라는 아무런 제스처도 취하지 않는 아서왕이 의문이었다.
“그럼 당신은 뭐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겁니까?”
“전 단지 지금 이 상황을 즐기는 것뿐입니다. 언제 또 저희가 힘을 합쳐 싸우겠습니까?”
“훗. 저희가 힘을 합쳤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적의 적은 동지라고 하였습니다. 저들의 적들은 우리이니 잠시나마 같은 동지 아니겠습니까?”
“카모라 님은 다른 계획이 있으신 것 같은데요?”
“···뭐, 아서왕 님도 그래 보입니다.”
카모라와 아서왕은 말이라도 서로 지지 않으려고 신경전을 벌였다.
“아직 황제가 직접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네?”
“죽여야 할 명분이 아직 생기지 않았다는 거죠. 곧 그 상황이 생길 것 같지만요.”
아서왕의 바람대로 크라운은 세이시로를 상대로 고전하고 있던 파우스트에게 달려가 힘을 보탰다.
“이봐. 정신 차린 거야? 머리띠는 다행히 어울리네.”
“닥쳐! 머리띠 없어지면 너부터 죽일 거니깐.”
말은 험악하지만, 서로에게 기댄 채 세이시로를 공격하는 파우스트와 크라운.
크라운이 용검으로 세이시로를 향해 일격을 가하려고 하는 순간.
가만히 지켜보던 아서왕이 금성의 정신이 깃든 검을 빼내었다.
번개 같은 스피드였다.
“이봐, 조심해!”
빛보다 빠른 아서왕의 일격이 크라운을 덮쳤다.
청성의 주인 청룡 때문일까?
황성의 주인 라의 신 때문일까?
하늘 주머니가 바늘에 콕 찔린 듯 하늘에선 소나기가 거세게 쏟아졌다.
“아서왕 님, 지금 새로운 황제님을 죽이려고 드신 겁니까?”
금빛 섬광과도 같은 아서왕의 일격을 막은 이는 다름 아닌 세계 정부 총사령관 바우트였다.
“청룡의 추위와 라의 신의 뜨거움이 만나 하늘도 미쳤나 봅니다.”
“······.”
“그렇다고 아서왕 님까지 미치시면 안 됩니다.”
바우트는 아서왕의 금성의 정신을 내려친 후 크라운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크라운!”
난 바우트를 뒤따라 크라운을 구하러 향했지만, 금성의 주인 제천대성 손오공이 내 앞길을 막아섰다.
“제기랄.”
손오공의 여의봉이 창처럼 날 찔렀다.
상대는 10성 괴수. 자칫하다간 온몸이 찢겨 나갈 수 있기에 할 수 없이 난 전투에 최선을 다했다.
* * *
세계 정부 외곽 어느 성벽.
바우트가 크라운, 아니, 아레스를 데리고 이곳까지 순식간에 이동했다.
“용포를 집어 던진 건 무슨 뜻입니까?”
“······.”
“후. 지하 감옥마저 뚫린 이상 진심으로 맞서 싸워야겠습니다. 아레스 님은 이곳에 남아 옥체를 보존하세요.”
“나더러 이곳에 숨어 있으라고?”
“그래도 눈앞에서 동료들이 죽임을 당하면 황제님이 저를 원망하실 거 아니겠습니까.”
“···약속하지 않았나. 황제가 되면 주변인은 건드리지 않겠다고.”
“지금 이 상황까지 왔는데 그 약속을 어떻게 지킵니까.”
“······.”
아레스가 바우트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황제님께서 무슨!”
그 모습에 당황한 바우트는 아레스를 바로 일으켜 세웠다.
“정신 차리십시오. 상대는 30년 전 세계를 지배했던 마왕 브라고입니다.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판 것입니까?”
“총사령관 말대로 짧지만 동료였어. 제발 내 약속을 지켜 줘. 내 약속만 지켜 준다면 자네가 하라는 거 다 할게. 허수아비 황제도 할 수 있어.”
바우트는 아레스의 간청에 입술을 뜯었다.
그리고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약속, 꼭 지키셔야 할 겁니다.”
그 말을 끝으로 바우트는 다시 전장으로 돌아갔다.
거센 빗물이 아레스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늘에는 평생 몇이나 볼 수 있을까 하는 10성 괴수들이 날아다니고 있고, 저편에는 4대 세력의 대군주들이 전장을 누비는 중.
아무리 생각해도 동료를 지키면서 이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아레스의 희생뿐이었다.
그것을 아레스는 이미 알고 있는지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다시 동료들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 * *
다시 전장으로 돌아와서.
제나가 지하 감옥의 통로들을 파괴했던 탓에 S급 범죄자들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젠 누가 동지인지 적인지도 모르는 완전 난장판이 되었다.
“크라운 어딨어!”
한편. 난 크라운을 애타게 찾고 있었다.
거센 비가 눈을 가리며 시야를 흐릿하게 방해했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오늘 내 목표는 동료들을 모두 데리고 도망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봐. 아무리 마왕이라도 혼자 그렇게 다니다간 먹잇감밖에 될 수 없네.”
그때 세이시로가 황성의 정신이 깃든 일격을 내려쳤다. 그러자 주변에 노란 스파크가 튀면서 위협적인 공격이 내게로 다가왔다.
“얘는 내가 맡을게.”
그러나 그 일격을 무효화시키는 사슬 분쇄기가 내 앞을 막아섰다.
“고마워, 파우스트.”
그리고 세이시로 앞을 가로막는 파우스트. 난 파우스트 덕분에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얼어붙어라. 서리 밭.”
그러나 얼마 못 가 또다시 내 발목을 잡는 스킬.
바닥과 다리에 서리가 끼었다.
“옥타비아누스!”
난 상대의 스킬을 무력화시키는 중력 에너지로 서리 밭을 간신히 나갈 수 있었지만, 곧이어 청성의 정신이 깃든 일격이 내게 위협적으로 날아왔다.
황성의 정신이 가니 청성의 정신이 오다니.
역시 상대는 4대 세력의 대군주. 전 세계에 아홉 자루밖에 없는 검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탄주의 청성의 정신이 지나가는 자리는 바로 얼어붙었고, 그자의 검이 나를 향하고 있었기에. 탄주를 넘어서지 못하면 이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십시오. 여긴 저희가 맡겠습니다.”
그러나 나 대신 탄주를 상대하러 온 사오정과 저팔계.
사오정의 삼지창과 저팔계의 대검이 같이 발휘되니 집행자 소사이어티 대군주 탄주라도 내게 집중하긴 힘들어 보였다.
“금방 올게! 조금만 버텨 줘.”
그 틈에 난 그 자리를 벗어나 힘껏 발걸음을 떼었다.
빨리 더 빨리 크라운을 찾아서 돌아와야 한다.
아무리 먼치킨 망령 술사와 하늘 섬 정예 요괴라도 상대는 4대 세력의 대군주.
더구나 대군주들뿐만 아니라 지하 감옥에서 탈출한 범죄자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주변을 폭파시켜 전장을 더 엉망으로 만들었다.
“옥타비아누스!”
그래서 난 방해 요소로 보이는 범죄자들을 모두 중력으로 묶은 뒤 크라운의 이름을 외쳤다. 그러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전장은 폭음과 절규만 가득할 뿐.
단잉의 반지가 없었다면 이미 난 패닉에 빠졌을 것이다.
“금빛 섬광!”
그때 내 뒤로 금성의 정신이 담긴 아서왕의 일격이 날아왔다.
다행히 타이밍 좋게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탓에 아서왕의 일격에 빨리 대처할 수 있었지만, 생각보다 그의 공격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왔다.
“커억.”
조금만 위쪽으로 베였으면 심장이 두 동강 날 뻔했다.
난 왼쪽 배를 붙잡고 아서왕을 노려보았다.
“그거 아나? 자네를 죽인 가이곤의 스승이라는 작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그의 말처럼 내 캐릭터였던 가이곤은 황족 신분이었기에 아서왕 같은 순수 혈통의 황족들과 친분이 많았다.
“그만큼 난 가이곤에게 자네 얘기를 많이 들었네. 심지어 약점까지도.”
그러나 그가 간과한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당신은 아나? 나 또한 자네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아나? 나 또한 자네를 잘 알고 있다는 것을.”
내 몸은 마왕 브라고지만, 나의 인 게임 캐릭터는 가이곤이었다.
그러니 잠시나마였지만, 스승인 아서왕의 치부도 알고 있었다.
그가 거느리는 명예와 권력은 으뜸이지만, 생각보다 질투심 많고 약아 빠진 캐릭터라는 것을.
“자이언트 블럭!”
그리고 무엇보다 아서왕은 내 스승이 아니다.
내 하나뿐인 사부는 하늘 섬 쿵후 판다 끼린.
인 게임 내에선 스승이라 할 수 있었지만, 지금 아서왕은 내 사부를 죽인 원수일 뿐이다.
“당신은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어.”
그래서 난 아서왕을 겨냥하며 중력 에너지 파를 무자비하게 쐈다.
그러나 아서왕은 얄밉게 제천대성 손오공이란 자를 앞세운 뒤 미꾸라지처럼 도망쳤다.
“커억.”
그때 내 옆으로 저팔계가 순식간에 날아가 벽에 박혔다.
고개를 돌려보니 엄청 치명상을 입은 듯 피를 많이 흘리고 있는 팔계.
더는 시간을 지체할 수 없기에 난 자꾸 도망가는 아서왕을 내버려 두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바우트가 크라운을 데려간 방향으로 말이다.
그러나 제천대성 손오공이 여의봉을 기다랗게 만든 후 내 몸을 명중시켰다.
여의봉이 명치에 맞은 듯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쓰러진 내 모습을 보곤 아서왕 또한 나를 향해 일격을 날렸다.
“결계 파이넌코스.”
그러나 나 대신 아서왕의 일격을 막은 결계.
고개를 들어 보니 거구의 삼장법사가 결계를 친 후 내게 윙크하며 말했다.
이곳은 자신이 맡을 테니 어서 동료를 지키러 가라고.
“다녀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