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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적진에 들어가는 기분입니다.”
또다시 총사령관실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모습을 보인 헨드릭스 대군주 카모라.
대군주 중에서 유일한 여성인 카모라는 탄주의 옆자리에 앉아 모두에게 인사했다.
“오늘은 그로테스크한 복장이 아니네요.”
검은 망토에 온몸을 숨긴 카모라.
원래 카모라는 거미 종족이기에 곤충의 피부와 골격이 섞인 그로테스크한 몸의 소유자였다.
그럼에도 카모라는 몸이 두드러지게 노출되는 복장을 좋아하는 여인이었다.
“모든 대군주들이 모이는 정상 회담이니 자제했습니다.”
“탁월한 생각이십니다.”
“그나저나 새로운 황제의 취임식이라던데 새로운 황제는 어디 계십니까?”
“아마 올라오고 있을 겁니다. 아! 저기 도착했군요.”
바우트가 가리킨 곳에 크라운의 모습이 보였다.
“65대 아기루 황제의 아들이자 66대 아기루 황제의 동생인 아레스 황제이십니다.”
크라운. 아니, 이제는 아레스의 이름으로 살아갈 황제.
대군주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새로운 황제 아레스에게 꾸벅 인사를 건넸다.
그러나 아서왕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무리 무서울 것 없었던 아레스라도 4대 세력의 대군주들이 눈앞에 있으니 심한 압박감에 긴장을 느꼈다.
이 괴물들에게 대우를 받으니 황제의 자리가 좋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무섭고 두렵기도 했다.
그만큼 황제의 자리는 책임이 막중한 자리이니 말이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그때 암살 집단 흑사협의 대군주 세이시로가 총사령관실로 들어섰다.
그가 들어서니 공기가 차갑게 느껴졌다.
아마 바우트가 풍기는 분노 때문인 것 같다.
아직 총사령관은 아기루 황제의 암살을 세이시로가 전담했다 생각하고 있으니 말이다.
“세이시로 님, 여기 앉으세요.”
한편 카모라가 손을 번쩍 들어 자신의 옆자리에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가장 강한 대군주라고 소문난 카모라였지만 두 눈으로 직접 보면 생각보다 친화력이 좋았다.
“거의 20년 만의 정상 회담인데 좀 차려입고 오시지요.”
옆자리에 앉는 세이시로의 행색을 보고 잔소리하는 카모라.
덥수룩한 수염에 떡 진 긴 머리. 그리고 낭인으로 보일 법한 후줄근한 천 옷.
“복장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뭐, 유니크해 보이기도 하네요. 그래도 인간적으로 머리는 감아 주세요. 거미 종족인 저도 하루에 두 번 감습니다.”
“······.”
아마 세이시로를 저렇게 대하는 자는 카모라뿐일 것이다.
“그럼 다 모인 것 같으니 정식으로 새로운 황제 아레스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잡담이 끝난 것 같자 바우트가 일어서서 아레스를 직접 소개하였다.
“저희의 정신적 지주였던 아기루 황제님이 암살당한 후 세계 정부는 무너질 뻔하였습니다. 그런데 65대 아기루 황제님에겐 또 하나의 아드님이 계셨더군요. 이분이 바로 그분입니다.”
총사령관 바우트가 너무 치켜세우자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는 아레스. 그저 바보처럼 웃기만 했다.
어차피 허수아비 황제. 다른 대군주들에게 잘 보이든 밉보이든 그냥 존재하고만 있으면 자신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아서왕 님은 아쉽겠네요. 새로운 자손이 나타나지 않았으면 아서왕 님이 무조건 황제의 자리에 앉았을 텐데 말이죠.”
“뭐?!”
카모라가 비아냥거리듯 아서왕의 마음을 떠봤다.
그녀의 단순한 도발에 넘어가는 걸 보면 아서왕이 아레스를 탐탁지 않게 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카모라, 그만하십시오.”
더 감정이 고조되지 않게 집행자 탄주가 중재를 했지만, 카모라는 이 상황이 그저 즐겁다는 듯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가 또다시 이 분위기의 판도를 바꿀 진실을 얘기했다.
“마왕 브라고가 부활했다는 소식은 알고 계십니까?”
“봤습니다. 엄청 놀랐습니다.”
“저는 그 뉴스를 생방송으로 봤었는데 마왕 브라고 옆에 지금 황제님이 계셨더라고요.”
카모라가 아레스를 향해 물었다.
그녀와 마주하니 거미줄에 휩싸여 바로 잡아먹히기 직전인 파리가 된 것 같았다.
“마왕 브라고와는 어떤 관계입니까? 아레스 님.”
“그··· 그게······.”
아레스는 카모라의 기세에 눌린 듯 식은땀을 흘렸다.
그것을 지켜본 총사령관 바우트.
민감한 사항을 짚어 주제를 뒤바꾼다.
“혹시 카모라 님은 아기루 황제 암살 사건의 용의자를 아십니까?”
“갑자기여?”
“소문에 의하면 그 사건과 연관된 사람 중 한 명이 카모라 님이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에 책임질 수 있으십니까?”
총사령관의 도발에 카모라가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총사령관님, 백성들이 하는 소리에 너무 귀를 기울이지 마세요. 허위 사실이 더 많습니다.”
집행자 탄주가 다시 한번 이 상황을 중재시켰다.
그러나 아레스는 알 수 있었다. 바우트가 한 폭탄 발언은 자신을 구하면서도 진짜로 카모라를 의심하고 있음을.
총사령관의 눈빛엔 장난기가 하나도 담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기루 황제님이 발견된 당시 그 장소의 기온은 40도에 육박했습니다.”
“그게 저랑 뭔 상관입니까?”
“그리고 그 무렵 집행자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요.”
“그러니깐 그게 뭔 상관이냐고요!”
카모라가 처음으로 앙칼진 목소리로 바우트를 향해 소리 질렀다.
“오늘 새로운 황제 취임식으로 정상 회담을 여신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그러나 짚고 넘어가야 할 건 짚고 넘어가야죠. 정황상이지만 저희 쪽 생각은 이러합니다.”
“그만두십시오!”
바우트가 선을 넘으려 하자 탄주가 책상을 탁! 내리쳤다.
“거기까지 합시다. 총사령관.”
탄주가 세게 나오자 총사령관이 말을 멈췄다.
아무리 화가 난들 집행자의 태도에 따라 세력 싸움이 좌지우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희 선언문을 모두 기억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누군가 먼저 반대파 세력을 공격하면 집행자는 공격당한 세력의 손을 들어 주기로.”
“세계 정부의 정신적 지주이신 황제님이 암살당했습니다.”
“저희도 암살 집단 흑사협의 군주 웬디고가 죽었습니다.”
묵묵히 듣고 있던 흑사협의 대군주 세이시로가 바우트의 말에 반박하듯 입을 열었다.
“저희 군주를 죽일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반대파 세력의 군주들을 제외하고. 오히려 아기루 황제의 암살은 저희가 아니라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아닙니까?”
“뭐라고?!”
세이시로의 말에 아레스는 눈치를 살폈다.
웬디고는 자신의 동료였던 마왕 브라고가 죽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을 하면 웬디고 사건의 실마리가 풀어짐과 동시에 마왕 브라고와 연관이 깊은 자라는 것을 밝히게 되는 상황.
할 수 없이 아레스는 말을 아꼈다.
“이러면 정상 회담 끝내겠습니다.”
정상 회담 분위기가 아슬아슬해지자 집행자 탄주는 회의를 끝내려 하였다.
“새로운 황제님의 취임식만 후딱 끝내지요.”
한편, 세이시로가 먼저 제안을 했다.
그만 언쟁을 멈추고 이곳에 모인 이유인 취임식을 얼른 치르자며 말이다.
“뭔가 놓친 게 하나 있던 거 같은데.”
그런데 카모라가 입술을 깨물며 아레스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리고 기억해 냈다.
“맞다. 그 말 아직 못 들었습니다. 마왕 브라고와는 무슨 관계입니까?”
카모라의 물음에 정상 회담에 참여한 대군주들은 모두 아레스를 쳐다봤다.
“아무 관계 아닙니다.”
아레스는 마른침을 삼키고 대답했다.
“그가 마왕 브라고인지도 몰랐습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저는 브라고가 있었던 30년 전엔 태어나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
“처음에 그를 만난 건 그린우드 수감실이었고, 돈이 될까 봐 그의 뒤를 따라간 것입니다. 그래도 저를 의심한다면 그린우드 교도장 플리처에게 물어보시지요. 그와의 인연은 그저 우연입니다.”
아레스가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대답하자 카모라가 턱을 괸 채 콧방귀를 뀌었다.
“마왕 브라고가 부활한 이상 더는 4대 세력의 메리트가 없습니다.”
“확실히 브라고가 한쪽 세력을 지지하면 그대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겠군요.”
카모라의 얘기에 탄주는 심히 고민하였다.
“그러니깐 빨리 싹을 잘라 내야 합니다.”
“어떻게요? 지옥에 들어갔다면서요. 저희가 그곳에 들어갈 방법은 없습니다.”
“들어갈 방법은 없지만, 그들이 직접 찾아오게 만들 방법은 하나 있더라고요.”
카모라가 께름칙하게 미소를 짓자 뭔가 불안해진 아레스.
갑자기 세이시로가 안개처럼 사라졌다.
“뭔 짓입니까?”
세이시로가 갑자기 사라지자 탄주가 일어서 항의했다.
지금은 정상 회담 도중이다.
예상치 못한 행동 하나로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탄주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싸우자는 게 아니라 서로 힘을 합하자는 겁니다.”
카모라의 말을 끝으로 안개가 다시 총사령관 본부실에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세이시로.
그런데 세이시로 뒤로 낯익은 여성이 잡혀 들어왔다.
“······?!”
순간 아레스는 소리 지를 뻔했다.
세이시로가 잡아 온 여성이! 바로 아델라였기 때문이다.
“아레스 님과 마찬가지로 이분도 마왕 브라고와 같이 있던 분이더라고요. 혹시 아시는 사이입니까?”
카모라가 다시 아레스에게 물었다.
그러나 아레스는 그녀의 물음이 들리지 않았다.
왜 공격을 당했는지 어깨선 쪽에 상처를 입은 아델라.
아레스는 아까와 달리 평정심을 잃은 눈빛이었다.
“아레스 님.”
한편. 그 모습을 본 바우트는 황제 아레스의 손을 잡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아레스.
카모라를 노려보았다.
“황제님. 그런 표정을 지으면 제가 의심하기 싫어도 의심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만두게나. 이분은 공주님일세.”
“압니다. 레드우드의 유일한 제국이었던 하스마 제국의 공주.”
제국이라는 단어에 정상 회담에 일절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서왕이 아델라를 바라봤다.
“하스마 제국 공주가 맞습니다.”
아델라의 손에 끼워져 있는 하스마 건틀릿을 보고 바로 알아보는 아서왕.
그리고 그녀가 자신의 제국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델라 앞에 서는데.
“아서왕 님. 이분은 저희가 잡은 용의자입니다.”
“용의자이기 전에 우리 제국 공주일세.”
갑자기 아델라를 두고 세이시로와 아서왕의 불꽃 튀는 신경전이 일어났다.
“아서왕 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만 묻고 공주님은 풀어 줄 것이니.”
그때 카모라가 일어나 아델라에게 물었다.
“공주님. 혹시 마왕 브라고와 아시는 사이입니까?”
카모라의 물음에 아레스는 움찔거리며 아델라에게 눈빛을 보냈다.
그녀에게 모르는 사이라고 둘러대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
다행히 아레스의 눈빛을 읽었는지 아델라는 대답을 피했다.
아레스는 안도의 한숨을 몰래 내쉬었다.
그러나 카모라의 언변은 동료애 강한 아델라를 자극하고 있었다.
“묵비권을 선언하겠다는 말이군요. 마왕 브라고도 별거 아니군요. 그는 당신들을 동료라고 생각했었을 텐데 당신들은 무서워서 꼬랑지 자르기나 하고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