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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정부(2)
그때 마검사 플리처가 궁극기를 사용했다.
마력을 품은 최후의 일격.
그 모습에 난 재빠르게 가드를 했지만, 공격의 대상자는 내가 아닌 아델라였다.
“도망쳐!”
난 아델라를 향해 외쳤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엄청난 속도로 단칼에 베어 버린 플리처.
엄청난 속도로 단칼에 베어 버린 플리처.
그 파동이 백화점 뒤편 노점상들이 있던 마을까지 파괴했다.
그리고 플리처의 칼날엔 동료의 피가 잔뜩 묻어났다.
“자이언트 블럭!”
동료가 당했다.
난 눈이 뒤집힌 채 이제야 중력 에너지 파를 대장들에게 쏘아 댔다.
그러자 잠시 일보 후퇴하는 대장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왜 그랬어······.”
아델라의 음성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아델라 대신 플리처의 일격을 맞은 크라운이 많은 피를 흘린 채 쓰러졌다.
“그러게. 생각보다 매우 아프네······.”
“괜찮을 거야······. 내가 책임지고 치료할게. 말하지 말고 호흡만 가다듬어.”
아델라는 오열하며 그를 긴급히 치유했지만, 크라운의 숨소리가 점점 약해졌다.
“자이언트 블럭!”
그 때문에 난 대장들에게 화풀이하는 양 스킬을 무자비하게 쐈다.
발록의 장갑으로 메테오 스킬도 발동시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크라운이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크라운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모두 평등한 유토피아 세상을 꿈꾸고 움직이고 있지만,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선 누구보다 냉정해야 했다.
난 리더로서 실격이다.
“커억.”
하늘도 내 오만함에 분노했는지 아까 충격으로 금이 갔던 단잉의 반지가 부서졌다.
그 때문에 공황 증세가 심하게 왔다.
미리 제나에게 받은 여분의 단잉의 반지가 속 주머니에 있지만, 그것조차 꺼내기 힘들었다.
동료들이 내 오만함에 저 상태가 되었다.
그래서 난 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렇다.
난 마지막까지도 한심한 모습이었다.
“이곳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시면 안 됩니다.”
그러나 제나가 내 멱살을 잡고 백화점 내부로 들어갔다.
그리고 마법진을 발동시켜 지옥의 문을 열었다.
* * *
겨우 그들을 피해 지옥으로 도망쳤다.
더구나 제나가 단잉의 반지를 소환해 내 손에 끼워 줬다. 그제야 숨이 쉬어졌고, 정신도 돌아왔다.
그러나 플리처의 일격에 쓰러진 크라운과 그를 치유하고 있던 아델라가 미처 지옥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다시 포탈을 열어 줘!”
난 제나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지금 다시 돌아간들 죽으러 가는 꼴입니다. 일단 재정비를 한 뒤 악마 군단들과 함께 세계 정부 대장들을 멸하러 갑시다.”
“안 돼! 그럼 늦어!”
내 외침에도 제나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마법진을 발동시키려고 혼자 땅을 팠다.
그러나 지옥의 열쇠는 제나 한 명뿐.
손에 피가 날 정도로 땅을 파고 또 팠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무리 내가 먼치킨 마왕이라 한들. 지옥의 문 하나 열지도 못하고, 동료도 지키지 못하는 패배자였다.
* * *
며칠이 지났다.
화이트우드 세계 정부 본부 바로 밑엔 한 번도 탈옥에 성공한 사람이 없다고 소문이 자자한 지하 감옥이 있었다.
그곳은 대장급 장군들이 직접 잡아넣은 S급 범죄자 소굴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홀로 갇힌 한 사람.
아델라였다.
“하스마 출신 공주라고 합니다.”
철근으로 이루어진 수감실 문.
그 너머로 교도관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단단한 수감실 문이 열렸다.
“며칠째 밥도 안 먹고 저러고 계십니다.”
수감실 문 안쪽으로 구석에서 다리를 감싸고 앉아 있는 아델라가 보였다.
마력을 발동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KF 사슬로 묶여 있는 아델라.
머리가 다 헝클어진 그녀의 몰골은 피폐했다.
교도관들은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공주님. 총사령관님이 부르십니다.”
교도관들의 안내에 따라 KF 사슬에 묶인 채 아델라는 어디론가 이동했다.
화이트우드의 지하 감옥은 경비가 매우 삼엄한 구조였다.
방과 방 사이사이 그곳을 지키는 교도관들이 즐비했고, 모든 구조가 다 철근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통로를 지나 지하 감옥 밖으로 나오면 화이트우드의 광경이 보였다.
다 썩어 짓무른 아델라의 마음과 달리 오늘따라 하늘은 맑았다.
그리고 화이트우드에 가장 높이 세워진 건물.
세계 정부 본부 건물이었다.
* * *
“레드우드에 있던 하스마 제국의 공주라고 들었습니다.”
세계 정부 본부로 들어가서 가장 꼭대기 층에 올라가자 근육으로 다져진 몸매의 총사령관 바우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범죄 집단 헨드릭스 군주 라이칸에게 아비를 잃었다고 들었습니다.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유일한 하스마 제국 생존자라고 들었는데 어떻게 마왕하고 같이 있었던 것입니까? 그리고 그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 있습니까?”
“······.”
총사령관의 물음에도 아델라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우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후우. 하필이면 잡힌 사람이 왕족이니 난감하네요. 대답할 생각이 있을 때 언제든지 교도관에게 얘기해 주십시오. 공주님.”
“크라운은 살아 있습니까?”
“오. 대답할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다시 한번 묻습니다. 크라운은 살아 있습니까?”
총사령관의 질문을 무시한 채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하는 아델라.
할 수 없이 바우트는 서로 궁금한 점 한 가지씩 대답하기로 약속했다.
“크라운은 모르겠지만, 같이 있던 분이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바우트가 웃음을 지었다.
“그는 유일하게 남은 아기루 황제의 자손이자 황족이니까요.”
* * *
긴고아를 파우스트 머리에 씌웠다.
다행히 긴고아의 효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지옥의 우물에서 나온 파우스트는 다시 망령들을 소환시켜 신전을 공격하려 했다.
하지만 망령은커녕 자기 자신조차 사슬 분쇄기로 우리를 공격하지 못했다.
그렇게 골칫거리가 사라졌다.
그러나 그게 뭐가 중요하나.
“마왕님, 괜찮으십니까?”
단잉의 반지로 공황 증세를 막아 냈다.
그러나 우울감까지는 막아 내지 못했다.
동료에게서 신뢰를 잃고 그들을 지켜 내지도 못한 나 자신이 너무나 한심스러웠다.
우울감이 생기면 무기력증이 내 온몸에 증식했다.
그리고 감정 기복 또한 심해졌다.
그래서 날 걱정하는 제나를 쳐다보지 못했다.
게임 세계 속 먼치킨으로 다시 깨어나도 난 여전히 패배자였고, 지도력이나 통솔력 따위 없는 루저였다.
“파우스트와 얘기를 잘 마치고 왔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들도 제나가 대신 맡고 있는 중이다.
“그자가 말하길 마왕님 뜻에 따른다고 합니다. 메인 퀘스트? 를 깨지 못하는 몸이 되었다는 이상한 얘기를 꺼내면서 말이죠.”
파우스트가 아무리 우릴 공격하려 해도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마음을 고쳐먹었나 보다.
나를 죽일 수 없으니 그는 내가 예전에 말했던 세계 멸망이라는 퀘스트에 초점을 맞추기로 한 듯하다.
그러나 파우스트를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자신만만하게 설득했는데 지금 나는 그저 침실에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으니 말이다.
“푹 쉬세요. 악마들도 부활한 지 얼마 안 돼 마왕님처럼 힘을 온전하게 쓰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
“그래도 지옥은 악마들의 고향. 지옥의 정기를 받아 회복에만 집중하면 이른 시일 내로 온전한 힘을 되찾을 것입니다.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희한하게 제나는 넋을 잃은 채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나에게 잔소리하지 않았다.
옛날 같았으면 신전을 폭파하는 한이 있어도 날 위험에 빠뜨리고도 남을 인물인데.
그녀는 그냥 아무런 미동도 하지 않는 나를 믿고 기다려 줬다.
* * *
며칠이 지났다.
시간을 세어 보지 않아서 정확히 얼마나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미처 지옥에 오지 못한 동료들을 구하러 가야 하는데.
자유의 몸이 된 파우스트가 얼른 세계를 멸망시키자고 칭얼거리는 걸 보면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지나간 것을 알 수 있었다.
“데빌런입니다.”
그러던 중. 악마 지휘관 데빌런이 내 침실에 들어왔다.
“아직 블랙우드에 강력한 마력들이 느껴지고 있어 지금 마법진을 발동시키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됩니다.”
시간이 지나자 혼란스러웠던 머리가 조금 정리되었다.
그리고 생각난 두 사람.
크라운과 아델라.
동료들의 안위였다.
“동료들이 살아 있을까?”
“죄송한 말씀이지만,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되옵니다.”
난 코를 훌쩍거렸다. 그리고 혼자 있고 싶었다. 무책임하게 말이다.
“마왕님, 점심 드실 시간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날 가만히 두지 않았다.
“파우스트, 소란 좀 그만 피우세요.”
“씨X. 이봐, 언제까지 상황만 지켜볼 거야?”
파우스트가 소리를 지르자 제나가 더 큰 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아마 파우스트가 행패를 부린 이유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더구나 공격도 이제 마음대로 못하는 몸이 되었으니 파우스트의 입은 점점 날이 갈수록 거칠어졌다.
이젠 입밖엔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니 그럴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 대처는 욕을 충분히 먹고도 남을 행동이었다.
“그냥 죽여 버릴까요?”
제나가 젓가락을 탁자 위로 내던지고 내게 물었다.
그러나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확실히 지옥에서 회복하고 있다 보니 빠르게 힘을 되찾고 있습니다.”
식사가 끝난 뒤 회의실에서 간부들과 얘기를 나누었다.
악마 간부 중엔 지옥의 열쇠인 제나와 악마 지휘관 데빌런, 최정예 멤버 루시퍼가 참석했다.
나까지 단 네 명의 소수 정예 멤버로 우린 미래에 관해 얘기를 나누었다.
처음엔 방향성에 관한 얘기를 시작으로 사소한 문제들까지 토론하며 정했다.
그렇게 한 시간 두 시간 지나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주제.
원래 우리 것이었던 대륙 블랙우드를 언제 다시 차지하는지에 관한 얘기였다.
“이 정도 속도면 5년이면 충분합니다.”
“5년?”
“네. 5년만 버티면 이 세상에서 저희를 이길 세력 따위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5년이라······.
생각보다 너무 긴 시간에 난 목이 말랐다.
그래서 탁자 위에 있던 생수로 목을 축였다.
“마왕님 생각은 어떠합니까?”
안전을 위해서는 5년이란 시간 동안 지옥에서 온전하게 회복에만 집중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현재 크라운과 아델라의 생사 여부도 모르는 상황.
더구나 파우스트는 얼른 이 게임 세계에서 나가고 싶다고 소란을 부리는 중이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현재 블랙우드에서 진을 치고 있는 대장급 장군들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라 다른 방법들은 수도 없이 많지만 위험합니다.”
위험하다는 단어에 난 또다시 목을 축였다.
예전엔 죽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그것은 웬디고의 궁극기가 내 스킬과 상성 관계라 그랬던 거였다.
내가 아무리 먼치킨 인물이라도 몇십 명의 대장들을 상대하기엔 힘도 정신력도 부족하다.
그래서 머뭇거렸다.
“그럼 안전하게 5년 정도 이곳에서 힘을 비축시키는 것으로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