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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섬(5)
“말에 모순이 있네요. 그들이 존재하면 세계 평화는커녕 죄 없는 시민들만이 불행해집니다.”
크라운과 아델라는 오정의 논리에 반박하듯 말했다.
그러자 오정은 잠시 침묵하였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모순이라고 해도 그것이 현실입니다.”
오정의 논리를 100%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논리도 어찌 보면 맞는 얘기였다.
두 집단의 힘의 균형이 무너진 후.
그들의 브레이크 역할인 집행자 또한 사라졌다면, 피로 물든 전쟁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니깐.
“웬디고를 해치웠던 그날. 시민들이 우릴 파수꾼이라고 부르더군요. 그 이름에 맞게 행동하고 싶습니다.”
파수꾼이란 경계하여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다.
메주르가 시민들은 자신들을 지켜 줘서 감사하다며 우리에게 파수꾼이란 타이틀을 주었고, 우린 그 타이틀을 받았던 당시 그 명칭에 맞게 행동할 것이라 다짐하였다.
“말이 안 통하는군요.”
우리가 내린 정의가 비관주의인 사오정에겐 무의미하다고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가 내린 방향성.
“저는 마왕님 뜻에 따르겠습니다.”
그리고 나를 믿고 따라 주는 동료들이 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그것이 허세가 아니라면 그에 따른 힘을 길러야 하지 않겠나.”
그러던 중. 쿵후 판다 끼린이 나타나 우리를 찾아왔다.
* * *
“요즘 젊은이들은 아주 당차구먼!”
귀여운 외모와 달리 노인의 목소리로 말하는 아직 적응하기 힘든 끼린의 모습.
가장 어려 보이는 판다가 우릴 애송이 취급하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러나 끼린의 경력을 보면 절대 만만히 볼 상대는 아닌데.
오정이 그의 정체를 말해 주었다.
“끼린 사부님은 하늘 섬 요괴들의 사부님. 저 또한 끼린 사부님의 제자입니다.”
삼장법사는 그저 심심해서 우리에게 끼린과 술래잡기를 시킨 것이 아니었다.
그 누구든 통제시킬 수 있는 아이템인 긴고아를 누군지도 모르는 낯선 이들에게 넘기지 않게 절대 이뤄 낼 수 없는 임무를 준 것이다.
“당신들이 사부님을 잡은 것은 예상하지 못한 일이지만 말이죠.”
“뭐. 들어 보니 나쁜 놈들은 아닌 것 같네.”
사오정은 아직 우리에 대한 불신이 있지만 다행히 끼린은 아까 나와 동료들의 대답을 호의적으로 생각한 듯 우리를 단기적으로 훈련시켜 주려고 하였다.
“마왕님이시다. 어찌 마왕님을 가르치려 드는··· 우웁.”
잠시 제나가 훼방을 놓으려 했지만, 재빠르게 입을 막아서 불상사는 막은 상황.
쿵후 마스터인 끼린에게 기술을 배우는 것은 다시없을 기회였기에 난 진지하게 훈련에 임했다.
“오정아. 옐로우우드까지 얼마나 걸리냐.”
“앞으로 열네 시간 걸립니다.”
“충분하군.”
끼린은 시간이 충분하다고 말한 뒤 스트레칭하며 몸을 풀었다.
잠시 후 몸이 다 풀린 듯 자세를 다잡은 뒤 우리에게 물었다.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끼린의 물음에 우린 각자의 생각들을 얘기했다.
“복수심?”
“누군가를 지키는 마음이요.”
“마왕님을 이길 수 있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30년 전 그 사건도! 우웁.”
자꾸 진지한 분위기를 깨뜨리는 제나를 잠시 훈련장 밖으로 내보낸 후.
나도 끼린의 질문을 다시 되새기며 고민했다.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
“간절함이요.”
내 대답에 끼린은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복수심. 누군가를 지키는 마음. 간절함. 다 맞는 얘기지. 그러나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이길 힘이야.”
“뭐야, 그건 저희도 압니다.”
끼린이 당연한 대답을 하니 크라운이 비꼬는 어투로 대답했다.
그러나 끼린이 말한 힘은 단순한 힘이 아니었다.
각성!
지금보다 각성해서 자신만의 고유의 궁극기를 갖는 것이 이번 훈련의 주제였다.
“아, 그리고 마왕이라고 봐주지 않을 거야. 내 제자 중에도 마왕이 한두 명이 아니거든. 우마왕 혼세마왕도 내 제자였어.”
* * *
기나긴 훈련이 끝났다.
어느새 하늘 섬은 옐로우우드 위에 정착하고 있는 상태.
“훈련 끝났습니까?”
“네······. 죽겠네요.”
잠시 옐로우우드의 상황을 지켜보던 오정이 고된 훈련으로 지쳐 훈련장 기둥에 기댄 채 쉬고 있던 내게 다가와 물었다.
“사부님이 평소엔 나태하긴 하지만, 가르칠 땐 또 제대로 가르치거든요.”
“그러게요. 죽을 뻔했네요. 제나와 크라운은 어딨습니까?”
“어디선가 자고 있겠죠.”
각성하기 위해선 자신의 힘을 깨닫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 깨달음을 갖기까지가 힘들기에 나를 포함해서 아델라가 고생을 많이 했다.
싸움을 좋아하던 크라운이 훈련에서 자체적으로 빠진 게 조금 의문이었는데, 뭐 훈련을 강제하기엔 그는 강하고 또 든든한 동료 중 한 명이었기에 의사를 존중했다.
“옐로우우드 상황은 어떱니까?”
난 천리안을 지닌 오정에게 옐로우우드의 상태를 물었다.
“군주가 죽었으니 혼란스러운 상태죠. 경계도 한층 더 강화된 것 같고요.”
그러자 오정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뭐. 조금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암담한 대답이긴 했다.
“그럼 오늘 밤까지 쉬고 해가 뜨면 서쳐에게 가는 겁니까?”
“흠······. 그러려고 했는데. 훈련하는 동안 서쳐의 행방을 찾다가 그가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을 발견해서 고민이네요.”
“같이 있는 자가 누구인데요?”
“암살 집단 흑사협의 대군주 세이시로. 상황을 지켜보니 서쳐가 세이시로의 전용 길잡이가 된 것 같더라고요.”
더 암담한 대답이 오정의 입에서 나왔다.
옐로우우드에 있으니 흑사협 소속일 것이라고는 지레짐작하고 있었는데. 흑사협의 대군주 세이시로의 전용 길잡이가 되었다니.
저절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다.
“그럼 서쳐에게 도움을 받는 것은 어렵겠네요.”
“그러나 방법이 없습니다. 사람을 찾는 데엔 서쳐 기술만 한 게 없거든요.”
오정의 말대로 갑자기 증발한 것처럼 사라진 삼장법사를 이른 시일 내에 찾는 방법은 서쳐의 기술을 이용하는 것뿐이다.
“하아.”
고된 훈련으로 몸도 지치고 암담한 상황까지 알아 버리니 정신까지 지친 상황.
난 그대로 훈련장 문턱에 누운 채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엔 수많은 별이 고생한 오늘 하루를 위로하듯 밝게 빛나고 있었다.
“파수꾼이라 했던가요?”
“네, 맞아요.”
“아까 제나 님이 당신을 마왕이라 부르던데.”
“아! 그건 그냥··· 애칭이에요.”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나 보네요. 뭐, 하늘 섬에도 마왕님들이 많아서 상관없습니다. 사고만 치는 인물들이긴 하지만요.”
“···그런가요.”
“······.”
막상 사오정과 단둘이 있으니 괜스레 어색했다.
그러던 중. 사오정이 다시 침묵을 깨고 내게 질문하였다.
“그나저나 긴고아는 왜 필요하신 겁니까?”
“그게··· 통제해야 할 동료가 있기 때문이에요.”
“통제해야 할 동료라. 그게 동료인가요?”
“아직 뭐, 동료라고 하기에도 모호한 친구이긴 해요.”
“뭐. 저희도 통제할 수 있으면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으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네요. 증발은 삼장법사 님이 아니라 사고만 치는 우마왕과 혼세마왕이 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
또다시 찾아온 침묵.
난 이런 어색함이 싫어 자리를 피할 타이밍만 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내 머릿속을 지나가는 기억의 조각.
“맞다. 그 증발!”
사오정이 증발이란 단어를 꺼내니깐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바로 백성의 주인인 메시아 캐릭터의 고대 스킬.
난 오정에게 아홉 개의 정신 중 흰색을 뜻하는 백성의 정신을 누가 갖고 있냐고 물어봤다.
“메시아라면 범죄 집단 헨드릭스의 1군주 아이젠이 가진 백성의 정신에 담긴 영혼인데.”
그러자 오정은 범죄 집단 헨드릭스 1군주 아이젠이 갖고 있다고 답했다.
“그 칼자루가 집행자들이 증발한 사건과 연관이 있나요?”
“네. 오래전에 이런 적이 한 번 있었거든요.”
게임을 진행했을 당시. 챕터 4를 밟던 중. 그 챕터의 최고 빌런인 백성의 주인 메시아가 시민들을 증발시킨 듯 사라지게 했던 에피소드가 기억난다.
“그런데 헨드릭스는 흑사협과 동맹 관계인데 왜 집행자들을 사라지게 했을까요? 균형을 지키는 집행자가 없으면 군주를 한 명 잃은 헨드릭스와 흑사협이 불리한 조건일 텐데요.”
“그건··· 모르겠네요.”
그러나 오정의 말대로 모순이 있었다.
세계 정부나 제국 라노키아의 누군가가 백성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면 이해가 가겠지만, 헨드릭스 1군주라니.
그때 수평선 위로 태양이 떴다.
저절로 눈부신 햇살 때문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일단 날이 밝았으니 움직이시죠.”
* * *
서쳐가 있는 곳은 옐로우우드의 중심지 가이라였다.
그곳은 사막으로 이루어진 옐로우우드에서 가장 시원한 지역으로 익히 소문이 난 곳이었다.
그러나 소문과 달리 그곳에 내려가자 ‘뜨겁다’라는 생각이 먼저 들 만큼 무더운 뙤약볕이 우리를 맞이했다.
“어우, 습해.”
“소문으로는 웬디고가 죽은 뒤 옐로우우드는 더욱 황폐해졌다고 합니다.”
습하고 더운 도시가 된 가이라.
사막으로 이루어진 옐로우우드에서는 흑사협 군주 웬디고 덕분에 무더위를 조금이나마 식힐 수 있었다고 오정은 설명했다.
그리고 어찌 보면 웬디고는 옐로우우드에서 가장 필요한 존재였다고 덧붙였다.
그런 얘기를 듣다 보니 웬디고를 해치우고 무고한 시민을 구한 우리가 죄지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게 또 맞는 말 같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말이다.
“이곳에선 당신들이 영웅이 아니라 빌런이라 생각하는 종족들도 많다는 얘기입니다.”
나는 사오정의 얘기에 반박할 수 없었다.
누군가를 구하려고 한 행동이 누군가에겐 악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목마름과 더위에 고통받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니 그 체감은 더욱더 크게 느껴졌다.
“그는 무자비한 악당이었다니깐? 옐로우우드의 여자들을 강제로 끌고 가서 신부로 삼았다고.”
크라운이 사오정의 논리에 반박했지만, 그럼에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가이라 도시 외벽에는 웬디고가 다시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고, 그를 죽인 의문의 세력 파수꾼을 원망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뭐. 지나간 일은 잊고, 그보다 오래전 메시아가 생명체들을 증발시킨 뒤가 궁금합니다. 사라진 생명체들은 살아 있는 겁니까?”
“······.”
오정이 메시아 사건을 물어 난 기억을 더듬었다.
게임상에서 메시아 에피소드는 그저 만 개의 에피소드 중 하나였다. 메인 퀘스트가 아닌 서브 퀘스트에서 나온 에피소드였기 때문이다.
“그··· 너무 오래전 일이라 발견된 곳이 어디인지 기억은 희미합니다. 그러나 살아 있는 것은 맞을 겁니다.”
“···확실해야 합니다.”
“맞습니다.”
희미한 기억이지만, 증발한 캐릭터가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사오정은 내 대답을 듣고 안심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떻게 저기 저 삼엄한 경계를 뚫고 도시 안으로 들어갈지에 대해 고민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