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섬(4)
[집행자 소사이어티 6군주 해리]
빨간 머리칼과 자극적인 복장이 눈에 띄는 저격수 해리.
[집행자 소사이어티 11군주 플랜지]
냉혈하고 차가운 기운이 감도는 검객 플랜지.
[집행자 소사이어티 13군주 거구귀]
입이 나보다도 더 큰 거구의 요괴 거구귀까지.
4대 세력의 군주 한 명과 대적했을 때도 벅찼는데 세 명과 한꺼번에 마주치다니.
아무리 우리가 집행자 소사이어티와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도 아찔한 순간이다.
“하늘 섬 보좌관인 사오정입니다. 혹시 삼장법사 님 못 보셨습니까?”
“삼장법사? 우리도 군주 회의에 막 참석하러 가는 중이라 모르겠습니다.”
“그렇군요.”
그러나 사오정은 세 명의 군주가 두렵지 않은 듯 고개를 뻣뻣이 들고 그들에게 물었다.
삼장법사의 행방을.
그들의 대답엔 우리가 원하는 답이 들어 있지 않았지만, 오정과 함께 있으면 삼장법사를 빨리 찾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들이 하늘 섬 보좌관인 사오정을 아는 듯싶었으니 말이다.
“근데 사오정 님 뒤에 있는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러나 의심 많은 해리가 우리의 정체를 물었다.
“하늘 섬의 손님입니다만 이분들이 삼장법사 님에게 요청할 사항이 있어 같이 내려왔습니다.”
“흠······. 죄송하지만, 하늘 섬의 손님이라도 신분이 명확하지 않으면 소사이어티에 들여보낼 수 없습니다.”
회의장에서 삼장법사를 만나면 우리가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전해 준다는 해리.
그 말을 끝으로 군주들은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사오정을 포함한 우리는 그곳에 들어서지 못한 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삼장법사를.
* * *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해도 뉘엿뉘엿 저물 만큼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군주 회의가 끝날 기미가 도통 보이지 않았다.
“다른 곳에 출구가 있는 거 아냐?”
기다림에 지친 크라운이 방벽이 높게 세워진 소사이어티 회의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델라 또한 돌연변이화되어 반대편 쪽으로 다른 출구가 있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가 알기론 소사이어티 회의장의 입구와 출구는 같은 곳에 있다고 들었는데.”
그러나 사오정의 말에 의하면 소사이어티 회의장의 입구와 출구는 같은 곳이라고 한다.
이 게임 세계의 모든 장소를 외웠던 내 생각 또한 사오정과 같았다.
소사이어티 도시를 막고 있는 방벽엔 단 하나의 문만 자리 잡고 있었다.
“군주 회의가 생각보다 길어지나 보네요.”
“폭파시킬까요?”
“그런 건 생각도 하지 마.”
제나도 기다림에 지친 듯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이곳에 들어가려 하였다.
그러나 난 바로 저지했다.
이곳엔 아까 만난 세 명의 군주를 포함해서 열세 명의 군주가 있기 때문이다.
열세 명의 군주면 아무리 마왕인 나라도 질 싸움일 것이 뻔하다.
게다가 집행자 소사이어티 대군주 탄주는 청성의 정신을 가진 자.
그렇기 때문에 그저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소사이어티와 싸우러 온 것이 아니라 삼장법사에게 긴고아를 받으러 왔을 뿐이니 말이다.
* * *
또다시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러나 삼장법사는커녕 소사이어티 군주들의 머리카락 한 올도 보이지 않았다.
꿈쩍도 하지 않던 사오정 또한 한계점에 다다른 듯 눈썹을 비볐다.
“다른 문은 없는 것 같은데.”
이미 방벽 주위도 둘러봤기에 소사이어티 도시로 향하는 문은 이곳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였다.
“혹시 하늘로 솟은 거 아닐까요? 아니면 땅으로 꺼졌나?”
아델라가 방벽 위아래를 훑으며 물었다.
나 또한 그것이 아니면 이 정도로 긴 시간이 지났는데 아무도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군주가 열세 명이나 있었기에 회의가 길어지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탄주와 동맹 관계를 맺으러 간 삼장법사가 아직도 나오지 않은 것은 이해할 수 없었다.
“폭파할까요?”
제나가 또다시 내게 물었다.
순간 흔들릴 뻔했다.
너무나 기다렸기에.
“그건 쫌 그렇고. 사오정 님, 어떻게 할까요?”
난 그나마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오정에게 해답을 물어보았다.
“폭파하죠.”
그러나 사오정도 제정신이 아니었나 보다.
“아니······.”
자신의 군주인 삼장법사의 행방이 묘연했기 때문일까? 그렇게 신중한 사오정이 이런 결정을 내리다니.
제나는 사오정의 말을 듣자마자 방벽에 폭발물들을 소환했다.
내가 말릴 새도 없이 말이다.
펑!
곧이어 방벽 사이사이에서 폭발음이 들리며 구멍이 생겼다.
‘망했다······.’
난 좌절했다.
이곳이 어떤 곳인데.
그 강하고 두려운 존재인 군주들이 열세 명이나 있는 회의장이란 말이다.
그러나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오정은 뚫린 구멍을 통해 소사이어티 도시로 들어갔다.
뒤이어 크라운과 아델라, 제나까지 따라갔다.
“언제까지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할 수 없이 나도 뒤따라 들어갔다.
두근대는 심장을 단잉의 반지로 다독이며 말이다.
* * *
소사이어티 도시는 강변의 도시답게 강물 위로 가로등 빛이 아름답게 비치고 있었다.
그러나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다.
언제 집행자들이 우리를 잡으러 올지 모른다.
“일단 들어오긴 했는데. 계획은 뭔가요, 그래서.”
난 오정에게 물었다.
“삼장법사를 찾아야죠. 팔계도 찾고.”
“그건 당연한 거고요. 방벽을 부순 죄로 집행자들이 저희를 내몰 수 있는데 그것에 대한 방안 같은 거 없나요?”
범죄 집단 헨드릭스와 암살 집단 흑사협이 강한 육체를.
세계 정부와 제국 라노키아는 신분을 중요시 생각하는 것처럼.
소사이어티는 정해진 법률을 중요시하는 세력이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계획이 있어야 했다.
이곳에 오려고 방벽을 부수는 범법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소사이어티 세력이 가장 싫어하는 범법 행동을 말이다.
“그런 법률과 재판, 처분을 중요시하는 세력의 회의가 이 정도로 길어진다?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분명 6군주가 회의가 끝나는 대로 삼장법사를 보내 준다고 했었잖아요.”
사오정의 목소리에 떨림이 있었다.
아무리 무서울 것 없어 보이는 오정도 열세 명의 군주가 이곳에 있으니 긴장한 듯 보였다.
“와. 이곳 너무 이쁘네요.”
“기념사진 찍게 사진기 좀 소환시켜 줘, 제나.”
“제게 명령하지 마세요.”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는 건 내 동료들이었다.
흠······.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없는 것인가?
“근데 뭔가 조용합니다?”
그러던 중 오정이 조용한 어투로 얘기했다.
그녀의 말을 들어 보니 맞는 것 같았다.
아무리 새벽이라 해도 방벽을 폭파하고 들어왔는데 이런 소란에도 소사이어티 측에선 아무런 제스처를 취하지 않는다. 안도가 되면서도 불안한 마음이 내 심장을 다시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진짜 문제가 생긴 거 같은데요?”
더구나 소사이어티 도시에 사는 시민들 또한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요했다.
기분이 나쁠 만큼.
“일단 돌아봅시다.”
우린 사오정을 필두로 소사이어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삼장법사를 외치며 찾았다.
그러나 고요한 소사이어티 도시에 우리의 목소리만 메아리칠 뿐 다른 사람들의 음성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이거 생각보다 큰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이곳이 메주르가처럼 작은 도시면 모를까.
소사이어티 열세 명의 군주가 회의하는 공간인데.
그만한 자들까지도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하니 뭔가 큰일이 일어난 건 분명하다.
“쥐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데?”
날쌘 크라운은 이미 주변을 다 훑어본 후 내게 와 말했다.
아델라 또한 고개를 저으며 아무도 없다고 대답했다.
“어떡하죠?”
그래서 난 사오정에게 물었다.
“······.”
창백한 사오정의 표정.
이거 뭔가 생각보다 더 크게 잘못된 거 같다.
* * *
“사람을 단번에 찾을 수 있는 길잡이 서쳐에게 가 봐야겠어.”
소사이어티 도시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안 우린 허탕 치고 다시 하늘 섬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리고 집행자들이 모두 어디로 사라졌는지 골똘히 생각해 보았다.
그때 사오정이 침묵을 깨고 얘기했다.
길잡이 서쳐를 만나러 가야겠다고 말이다.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당황스럽지만 서쳐라면 삼장법사 님의 행방을 바로 찾을 수 있을 거야.”
아틀란티스의 길잡이 반 할이 장소를 단번에 찾는 길잡이라면, 서쳐는 대상자를 단번에 찾을 수 있는 길잡이였다.
“그런데 서쳐는 옐로우우드에 있지 않나?”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서쳐는 옐로우우드에 있는데.
옐로우우드는 알다시피 암살 집단 흑사협이 점령한 대륙.
흑사협의 군주 웬디고를 우리가 해치웠기에 그들은 우릴 표적으로 삼고 있을 것이다.
“철없는 마왕님들 덕분에 이게 뭔 고생이야.”
한편 사오정은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무거운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할 수 없지. 그래도 마왕님들이 하늘 섬 소속이니. 내가 뒤처리하는 수밖에.”
사오정은 자리를 툴툴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같이 갈 것이냐고.
“당연하죠.”
난 그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파우스트를 통제하려면 긴고아가 무조건 필요했기도 했고, 갑자기 도시 사람들이 증발한 듯 사라지는 사건은 나도 처음 본 상황이기에 어떻게 된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럼 더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움직이자.”
오정은 근두운(筋斗雲)을 불렀다.
원래 근두운은 손오공의 이동 수단이다.
그러나 오정이 부른 근두운은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구름이었다.
“하늘 섬이 근두운이었어?”
섬 하나가 통째로 움직이니 이만큼 장관인 것도 없었다.
하늘을 나는 섬.
그것이 하늘 섬이다.
* * *
“웬디고를 당신들이 해치웠다고요?!”
옐로우우드에 도착하기 전. 우린 사오정에게 과거 웬디고를 해치웠던 사건을 밝혔다.
우리가 웬디고를 해치운 수수께끼의 세력 파수꾼이라는 것을 말이다.
잠시겠지만, 하늘 섬 요괴들과 손을 잡았으니 수수께끼의 세력이 우리라는 사실을 비밀로 묻고 있는 것보다는 그들에게 밝힌 후 앞으로의 계획을 짜는 것이 더욱 현명한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정은 우리의 진실을 듣고 구름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그래도 4대 세력은 건드렸으면 안 될 존재였습니다.”
그녀가 말하길. 아무리 웬디고가 범죄를 저지르는 극악무도한 자였어도 건드렸으면 안 될 존재라고 했다.
현재 상황이 그렇다.
루기아 세계관의 평화를 가져다준 가이곤이 죽고 세계 정부와 제국 라노키아, 범죄 집단 헨드릭스와 암살 집단 흑사협이 대립해 세계대전이 일어났었다.
물론 두 세력의 힘은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았기에 휴전을 한 상태지만 말이다.
그리고 휴전할 수 있었던 것은 집행자 소사이어티 세력이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사상이 다른 두 집단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켜 주고 있던 세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웬디고가 죽었습니다. 그는 4대 세력 중 군주가 제일 적었던 흑사협의 군주. 그렇기 때문에 균형이 저절로 무너진 것입니다.”
“그럼 웬디고의 죽음과 갑자기 사라진 집행자들이 연관되었다는 겁니까?”
“모든 상황을 배제할 수 없지만, 그럴 확률이 가장 높아 보입니다.”
우리의 행동 하나 때문에 세상의 균형이 무너질 수 있다고 오정은 답했다.
이젠 행동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생각해야 하나 싶은데.
그러나 나와 달리 동료들은 그게 뭐 어쨌냐는 듯 물었다.
“나쁜 놈 해치운 게 잘못이야?”
“아무리 웬디고가 나쁜 놈이었더라도 4대 세력은 건드리면 안 될 존재입니다. 균형이 무너지면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할 수 있습니다. 그땐 평화는커녕 전쟁만이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