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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섬(2)
브라고 게임 공략집에선 저팔계를 비롯한 하늘 섬의 NPC들은 모두 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인 게임상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관여하지 않는 캐릭터들인데.
저팔계가 이렇게 수다쟁이인 것도 처음 알았다.
“어디서 왔다고? 이곳은 어딘지 알고 왔어? 아무튼, 반갑네.”
그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크라운보다 더 시끄러운데요?”
“이봐. 내가 저 정도야?”
매일 크라운이 시끄럽다고 혀를 내둘렀던 제나조차 두 손을 들며 포기를 할 정도이니.
저팔계의 입은 우리가 하늘 섬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쉬질 않았다.
다행히도 하늘 섬의 문지기인 저팔계는 우리를 경계하지 않고 오히려 삼장법사가 있는 곳을 안내해 주었다.
얼굴은 흉악하지만 성격은 낙천적이고 단순해 보이는 저팔계.
그가 커다란 문을 있는 힘껏 열어젖히자 하늘 섬의 놀라운 광경이 눈에 담겼다.
“진짜 천국이네.”
하늘 섬 내부를 처음 마주한 우린 하얗다는 느낌을 처음 받았다.
뒤이어 각양각색의 전설적인 동물들이 이곳저곳 뛰어놀고 있는 모습에 자유로움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엔 신화 속에나 나오는 유니콘들과 페어리(요정), 엘프까지 보였다.
하늘 섬의 풍경은 지옥과 상반된 모습을 자아내고 있었다.
“손님이야?”
그러던 중. 백발의 미녀가 저팔계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녀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강렬했다.
미인 선발 대회에서 우승한 아델라와 쌍두마차를 이을 정도로 굉장한 미녀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가 우리를 천천히 스캔하며 물었다.
“이곳엔 어쩐 일로 오셨죠?”
“긴고아가 필요해서 왔습니다.”
“긴고아면······.”
“네, 삼장법사를 만나러 왔습니다.”
내 말을 들은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우리를 안내한 저팔계를 노려보았다.
저팔계 또한 그녀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진 듯 고개를 피한다.
그녀는 현재 하늘 섬의 상황이 좋지 않다며 우리를 돌려보내려고 했다.
“삼장법사 님이라도 한번 뵙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곳까지 온 이상. 우리도 포기할 수는 없기에 물러서지 않았다.
“오정아, 무슨 일이냐.”
그러던 그때. 삼장법사의 음성이 들려왔다.
분명 게임상에서 들었던 삼장법사의 목소리였기에 난 그 음성이 들리는 사옥으로 이동했다.
무례한 행동이라 생각할지라도 파우스트를 통제할 방법은 긴고아를 가져가는 것뿐이니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난 최대한 예의를 갖춘 후 삼장법사의 음성이 들린 사옥 앞에서 공손하게 인사를 드렸다.
“면목 없지만, 삼장법사 님께 부탁을 드리러 왔습니다.”
내 말이 삼장법사의 귀까지 닿길 빌었다.
다행히 사옥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삼장법사.
일반적인 서유기에서 나오는 것과 달리 삼장법사 특유의 지성적인 면모가 아닌 늠름한 자태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키가 2m도 더 되어 보이는 저팔계보다 덩치가 더 커 보이는 삼장법사의 모습.
서유기와 달리 브라고 게임 세계관 삼장법사의 모습은 이러했다.
“긴고아를 얻으러 왔다고?”
인자한 삼장법사를 기대했다면 유감이다.
물론 이 게임 고인 물이었던 나는 하늘 섬에도 와 봤던 유저였기에 삼장법사가 괴팍하고 엉뚱한 모습의 덩치 큰 스님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더구나 백발 미녀 또한 삼장법사의 보좌관인 사오정이라는 것 또한 나는 알고 있었다.
“엄청 큰데? 거의 웬디고 수준 아냐?”
그러나 동료들은 삼장법사의 거대한 모습을 예상 못 했는지 그를 경계했다.
“흠······.”
한편. 삼장법사는 자신의 턱수염을 만지며 고민하는 표정으로 외부인인 우리를 쳐다봤다.
그리고 뭔가 결정한 듯한 표정을 짓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점점 가까이 다가오니 그의 덩치가 얼마나 큰지 더 실감 났다.
“현재 제자들이 말썽을 부리고 있어 정신이 없긴 한데. 이곳까지 고생해서 왔을 생각을 하니 빈손으로 보내기는 그렇긴 하네. 그렇다고 공짜로 긴고아를 주기도 뭐한데. 혹시 자네, 나와 게임 하나 하지 않을 텐가.”
다행히 삼장법사는 우리에게 기회를 한 번 정도 주기로 결심한 듯 보였다.
사오정은 고개를 갸우뚱거렸지만, 저팔계는 재밌겠다며 우리에게 파이팅을 외쳤다.
“우리도 현재 손봐 줄 사람이 있어서 바쁘니 단 반나절 주겠네. 반나절 안에 게임에 성공하지 못하면 그땐 자네들도 결과에 승복하고 하늘 섬에서 나가 주게나.”
난 삼장법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우린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게임 규칙은 내가 정해 볼 테니 잠깐 이곳에서 대기하고 있으라.”
이 말을 끝으로 삼장법사는 서둘러 어딘가로 자취를 감추었다.
한편. 옆에서 제나는 수동적인 내 행동이 답답했는지 귓속말로 삼장법사와 하늘 섬을 함께 날려 버리고 강제로 긴고아를 뺏자는 의견을 제시했지만, 난 무시했다.
너무 힘으로만 일을 처리하면, 나중에 후폭풍이 일어날 수도 있고, 그렇게 처리하는 것은 내 성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안.”
그렇다고 제나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도 좋지 않기에 난 귓속말로 그 의견은 아닌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제나가 화들짝 놀라며 내게 말했다.
“감히 마왕님께서 죄송하다뇨. 제가 죄송합니다.”
제나는 황급히 내게 90도로 인사하며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그 모습에 난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그녀를 일으키려고 노력했지만 제나는 고집을 부리며 똑바로 사죄했다.
괜히 파우스트 사건 때처럼 제나의 의견을 묵살한 채 내 식대로만 가면 동료들과 사이가 틀어질까 그런 것인데.
너무 사죄하는 제나의 행동에 더 난감했다.
그러나 제나는 웃고 있었다.
다행히 의견을 무시하는 것보단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거절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었던 건 맞았다.
저렇게 미소 짓고 있는 제나를 보면 느낄 수 있었다.
팀의 지도자가 된 이상. 동료들 한 명 한 명 모두의 니즈를 채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아직 부족함이 많은 리더라 해도 시행착오를 겪고 겪다 보면 나 또한 성장할 것이라 믿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현생에선 없었던 책임감이 지금 리더가 되니 생겼고, 그것은 공황을 극복하는 데 아주 좋은 역할을 했다.
책임감이 생기니 매일 도망갔던 나조차도 공황 증세에 피하지 않고 맞서 싸우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외부인들은 이리 오십시오.”
그러던 사이. 사오정이 나타나 우리에게 게임의 규칙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녀는 긴고아를 획득할 수 있는 게임이 이뤄지는 훈련장으로 안내했다.
* * *
게임의 규칙은 간단했다.
훈련장 안에 있는 귀여운 판다를 반나절 안에 잡으면 되는 것이었다.
아마 아틀란티스 장로 핫스퍼가 말한 술래잡기가 판다를 잡는 게임이었나 보다.
“제한 시간 내에 판다를 잡으면 외부인들의 승리이고, 잡지 못하면 저희의 승리입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사오정은 게임의 간단한 규칙을 다시금 설명한 후 바쁜 듯 어디론가 황급히 나가 버렸다.
“저 귀여운 판다를 잡으면 끝이란 말이지?”
난 무조건 이 게임의 승자는 우리라고 생각했다.
일단 판다는 한 마리이고 그를 잡는 사람은 나를 비롯해 네 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력으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스킬이 있으므로 난 자신만만하였다.
때마침 서브 퀘스트 알람이 들려왔다.
[서브 퀘스트]
판다를 시간 안에 잡아 주세요.
*서브 퀘스트 보상 : 긴고아를 얻게 됩니다.
“가자!”
보상까지 확인한 후. 우리는 판다를 잡으러 두 손을 활짝 폈다.
귀여운 새끼 판다.
반나절은커녕 1분도 걸리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그의 몸놀림을 보기 전까지 말이다.
[쿵후 마스터 판다 끼린]
칭호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보자마자 알았지만, 너무나 귀여운 외형에 나까지 속았었다.
“주술도 못 쓰게 되었나 봐.”
산 넘어 산. 게임이 이뤄진 훈련장에선 스킬이 사용되지 않았다.
“옥타비아누스!”
그저 스킬 이름만 바보처럼 힘차게 부르는 것이 전부지. 스킬은 사용되지 않았다.
그럼 무력만으로 저 쿵후 판다를 잡아야 한다는 것인데.
쉽지 않았다.
무력만으로도 대장급에 준하는 실력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그를 잡기엔 힘이 들었다.
크라운과 아델라 또한 판다를 잡으러 동분서주 날아다녔지만, 재빠른 몸놀림에 농락당하는 것이 전부였다.
“소환술도 안 되지?”
“···네.”
제나의 소환술마저 안 되니 눈앞이 깜깜한데.
그 또한 우리가 무력하다는 것을 알아봤는지 자신의 엉덩이를 찰싹찰싹 때리며 약 올렸다.
‘귀여운 아기 판다는 무슨······.’
그런 판다의 행동에 우린 열이 머리끝까지 뜨겁게 올라왔다.
* * *
그 시각. 삼장법사의 사옥에선 그의 보좌관인 저팔계와 사오정이 진지한 표정으로 회의에 임했다.
“평천대성 우마왕과 혼세마왕이 제천대성 손오공이 깃든 금성의 정신을 찾으러 대륙에 내려간 지도 사흘이 되었습니다.”
“현재 금성의 정신을 갖고 있는 자는 제국 라노키아의 대군주 아서왕. 황족이자 황제인 인물입니다.”
“흠······.”
삼장법사는 고민하였다.
평천대성 우마왕과 혼세마왕은 어디까지나 하늘 섬 소속 요괴이자 삼장법사의 제자들.
그들이 제국 라노키아 대군주와 대립하면 하늘 섬 또한 표적이 될 수 있는 상태였다.
“탄주에게서 답신은 왔는가?”
“아직 답이 없습니다. 저희가 블루우드로 직접 내려가 탄주를 만나는 것은 어떠합니까?”
“하늘은 대륙의 일에 관여하면 안 되는 게 이곳의 규칙이다.”
“삼장법사 님. 아직도 천 년 전 규칙을 논합니까.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삼장법사의 말에 반박하는 사오정.
그는 충신이지만 비관주의였기에 모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삼장법사를 설득하였다.
“우마왕과 혼세마왕이 제국 라노키아와 대립하는 것은 우리의 뜻이 아니지만,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보험이라도 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오정. 너의 말은 탄주와 손을 잡자는 말이지?”
“네. 탄주는 집행자 소사이어티의 대군주이자 청성의 정신을 갖고 있는 인물. 그런 자와 손을 잡으면 무조건 힘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사오정은 확신하였다.
탄주 또한 4대 세력 중 소사이어티의 대군주이니 말이다.
그러나 확신하는 오정과 달리 삼장법사는 아직도 고민하고 있었다.
“흠······. 그러다가 자칫하면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일단 팔계는 계속해서 우마왕과 혼세마왕의 발자취를 찾아라.”
“넵! 알겠습니다.”
“법사님! 무조건 탄주와 손을 잡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하늘 섬을 지킬 수 있어요.”
“귀청 따갑다. 알겠으니 그만 말해라. 난 탄주를 만나러 오랜만에 대륙에 내려갈 것이니 오정. 너는 하늘 섬을 지키고 있어라.”
“넵! 알겠습니다!”
삼장법사가 드디어 의견을 수용하자 오정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퍼졌다.
그러나 삼장법사는 근심 어린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점점 일이 커지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