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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반 할의 도움으로 우린 블랙우드로 한 번에 순간 이동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다른 대륙으로 잘못 온 건가 싶었다.
어둠과 시체들로 즐비했던 황폐한 블랙우드가 핫스퍼 말대로 관광지로 바뀐 것이다.
“우와, 사람 많다.”
높은 고층 빌딩들과 많은 인파.
단잉의 반지가 아니었으면 광장 공포증으로 공황 증세가 올 만큼 블랙우드는 너무나 발달한 관광지가 되어 있었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자니 아무리 지옥이 히든 장소로 숨겨져 있다 한들 이곳에 세력을 창설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신성한 지옥에 웃음이라니!”
제나 또한 날 부활시키기 위해 그린우드에만 30년간 있어서 탈바꿈된 블랙우드에 적응하지 못하는 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여기서 노점 하지 말랬지! 이따가 대장님들 오시는데··· 어휴.”
한편. 급히 발달시킨 대륙이라 그런지 빈부 격차가 심하게 느껴지는 광경이 눈에 담겼다.
“그럼 저희는 어디서 장사합니까.”
발달하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도태된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블랙우드가 세계 정부 소속이라 그런지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들이었다.
“저흰 마왕이 있을 때부터 장사했던 사람들입니다.”
“어휴, 세상이 바뀐 지 얼마나 됐는데 어쩌라고. 이봐들, 여기 불법으로 장사하는 노점상들 싹 쫓아내!”
“네, 소령님. 알겠습니다.”
소령의 명령으로 노점을 박살 내는 인부들.
그때 한 아이가 달려와 인부들을 막아 세웠다.
노점 주인의 아들인 모양인데.
그런데도 인부들은 아들 앞에서 노점상 주인을 폭행했다.
“아빠!”
아이의 절규가 안쓰럽게 들려왔다.
아빠에게 달려가려는 아이를 잡아 세우는 소령.
“넌 아빠처럼 쓸모없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
그의 패륜적인 행동에 욱하고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내가 나서려고 했는데, 이미 소령을 제압하고 아이를 구한 아델라.
“우리도 가자.”
인부들은 아델라를 향해 총을 꺼냈다. 우리도 아델라가 먼저 나선 이상.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대장님들 오십니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쩌렁쩌렁한 확성기 소리가 들렸다.
대장급 장군들이 이곳에 왔다는 소식.
아무리 마왕이라 하더라도 대장급 장군들과 마찰이 생기면 괜히 죄 없는 사람들까지 휘말릴 수 있다.
난 스킬을 써서 인부들을 묶고, 동료들과 노점상 주인, 그리고 그의 아들을 둘러업은 채 도망갔다.
* * *
“감사합니다.”
번화가 끄트머리에 있는 움막.
노점상 주인의 집이었다.
“차린 건 없지만 밥 먹고 가세요.”
“괜찮습니다. 보답을 원하고 한 행동도 아니고 저희가 급히 가 볼 곳이 있어서요.”
“에이, 그래도 같이 먹어요.”
하루빨리 지옥으로 가야 했지만 그들의 성화에 못 이겨 우린 식탁에 앉았다.
반찬이라고는 생선과 밥. 그리고 간장이 전부인 초라한 밥상.
노점상 주인은 우리에게 생선을 먹으라고 밀어 주곤 아들과 함께 마치 자린고비처럼 생선을 보며 간장에 밥을 비벼 먹었다.
“고기나 생선 좀 소환시켜 줄래?”
그래서 난 제나에게 부탁해 상다리가 휠 만큼 풍족한 반찬을 소환시켰다.
“이제 먹을 거 많으니 같이 먹어요.”
맛있는 냄새가 나니 이웃들 또한 우리가 있던 움막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그래서 난 제나에게 또 부탁했다.
움막에 사는 이들에게 맛있는 고기와 생선을 내어 달라고.
“마왕님 명이니까 들어주는 겁니다.”
물론 제나를 설득하는 데 힘이 들었지만, 맛있게 먹는 주민들의 모습에 보람을 느꼈다.
* * *
“이거 감사해서 어쩌죠.”
성대한 식사를 끝낸 후. 노점상 주인이 우릴 찾아와 감사의 인사를 또 한 번 건넸다.
“아닙니다. 저희도 잘 먹고 갑니다.”
“성함이라도 알 수 있을까요?”
“음······.”
그가 나중에라도 감사함을 표하기 위해 성함이라도 알고 싶다고 부탁하기에 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고양이 부족.
고양이 부족은 마왕 브라고가 있던 시절에도 블랙우드에서 길고양이처럼 살아가던 종족이었기에 이름을 말하면 정체가 들통날 것이다.
그래서 난 잘 둘러댔다.
“파수꾼입니다.”
“파수꾼이요?”
“네. 전에 만났던 사람들이 저희를 그렇게 부르더군요.”
“파수꾼님, 감사합니다.”
한편. 제나는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움막 옆에 있던 그네에 앉았다.
그때 제나에게 다가오는 낯선 이의 손길.
“파우스트가 이 세상을 멸망시킬 것이다!”
갑작스러운 소란에 고개를 돌려보니 고양이 부족의 장로. 카르마가 제나를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할머니, 손님에게 뭐 하시는 거예요. 죄송합니다.”
“파우스트의 망령이여, 썩 물러가라!”
파우스트?
파우스트는 분명 망령 술사로 유명했던 랭커의 닉네임이었는데.
왜 고양이 부족 장로의 입에서 그 이름이 나오는지 의문이 들었다.
“파우스트를 아시나요?”
한창 1위를 목표로 게임을 하던 시절, 1위의 닉네임이 파우스트라서 기억이 선명하게 난다.
물론 게임 인지도가 떨어져서인지 활동을 안 한 탓에 내가 부동의 1위 자리를 빼앗았지만, 어쨌든 파우스트는 브라고 게임의 고인 물 유저 닉네임.
혹시 핫스퍼와 같이 그자 또한 이 게임 세계로 떨어진 건가 싶어 난 카르마에게 다가가 파우스트에 관해 물었다.
“파우스트는 이 세계를 멸망시킬 마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카르마는 노쇠한 탓인지 자꾸 했던 말만 반복하고 제나만을 가리키며 썩 물러가라고 외쳤다.
* * *
“역시 선의를 베풀면 안 됐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다시 번화가에 왔다.
그러나 아까 전 카르마의 외침 때문인지 뾰로통한 제나의 모습.
“괜찮아? 그래도 할머니니깐 네가 이해해.”
“전 3천 살이 넘었습니다.”
“아······.”
위로해도 그녀의 기분은 쉽사리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난 한참 동안 제나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뭐야, 지옥으로 가는 길 이 근처라며.”
그러던 중 크라운이 어딘가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가 가리킨 곳은 바로 히든 장소인 지옥으로 갈 수 있는 마법진이 있는 곳.
그런데 그 자리에 초대형 백화점이 들어섰다.
“어쩌지······.”
너무 난감한 상황이다.
히든 장소인 지옥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쉬웠다.
우리에겐 소환사이자 지옥의 길잡이인 제나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옥으로 가는 단 한 가지 방법은 제나가 마법진을 통해 포탈을 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대형 복합 백화점이 들어서다니.
만약 제나가 포탈을 소환시켜 지옥의 문을 열면 우리뿐만 아니라 백화점, 그리고 그곳을 이용하는 시민들 또한 지옥으로 떨어질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나요?”
“응. 제나가 지옥으로 가는 유일한 열쇠라고 치면, 이곳은 지옥으로 가는 유일한 통로야.”
더구나 제나는 이미 삐진 상태.
또다시 시민들을 위해 지옥으로 가는 날짜를 미룬다면, 무자비한 짓을 할지 모른다.
그래서 난 크라운, 그리고 아델라와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백화점을 이용하는 시민들을 대피시킨 뒤 지옥으로 떨어질지 생각했다.
“그냥 위협해서 시민들을 대피시키는 거 어때? 내가 악역 자처할게.”
크라운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는 자신이 악당이 되어 백화점에서 난동을 부리면 어떠냐고 물었다.
아까도 봤지만, 이곳은 대장급 장군이 득실득실한 세계 정부 소속 대륙.
소란을 일으키면 대장급 장군들이 몰려올 것이다.
“그럼 백화점 사람들을 설득시켜 밖으로 안전하게 내보내는 건 어때요?”
“그게 말이 되냐? 지금 저기에 몇 명이 있을지 알고. 규모로 보면 몇천 명은 있을 것인데. 그 많은 사람을 전부 설득시킨다고?”
“왜 말이 안 돼요?”
“어휴. 너 진짜 어렸을 때 영재 소리 들었던 거 맞아? 영재가 아니라 둔재라고 들은 거 아냐?”
“뭐라고요?!”
괜찮은 계획을 세워 보라니까 말다툼을 하는 크라운과 아델라.
후······. 이곳에 정상은 아무도 없다.
“할 수 없이 백화점 문 닫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될 것 같은데?”
그래서 난 영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자고 말했다.
그때 펑! 소리와 함께 백화점 꼭대기에서 폭발음이 들려왔다.
백화점에서 대피하라는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사람들은 혼비백산하여 입구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한 사람.
제나.
“네 짓이지.”
“마냥 기다릴 수 없어요.”
“후······. 들어가자.”
폭발로 백화점을 이용하던 고객들이 다 밖으로 대피한 뒤 우린 그 틈을 타 몰래 안으로 진입했다.
“효과는 확실하네.”
폭발로 경비원들 빼고 모두 대피한 듯 텅 빈 백화점.
경비원들은 크라운의 빠른 스피드로 찾아내 그들을 기절시킨 후.
백화점 밖에 곱게 눕혔다.
아델라와 난 크라운이 경비를 제압하는 동안 남아 있는 시민들이 있나 백화점 구석구석 돌아다녔다.
“얼른 군대가 오기 전에 가자.”
그리고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제나가 주문을 외우며 지옥으로 통하는 포탈을 소환했다.
쿠웅!
큰 소리와 함께 땅 아래로 떨어지는 백화점.
그렇게 백주 대낮에 가장 큰 백화점은 흔적조차 남지 않고 지옥으로 떨어졌다.
* * *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엄청난 굉음으로 귀를 막던 중. 갑자기 고요해진 백화점 안.
백화점엔 창문이 없어 출구로 내려와 바깥을 확인했다.
관광지로 탈바꿈한 블랙우드와 달리 어둠과 싸늘함이 흐르는 지옥의 광경이 눈에 담겼다.
“마왕님,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지옥에.”
지옥은 생각보다 더 어두웠고, 갈라진 바닥엔 용암이 흘러넘쳐 검붉게 빛나고 있었다.
모든 대륙이 바뀌었지만, 지옥은 그대로인 모습.
“진짜 엄청나게 무시무시하네.”
생각보다 더 어둡고 음침한 풍경에 크라운이 혀를 내둘렀다.
“제단으로 가시죠.”
지옥의 길잡이인 제나의 뒤를 따라 우린 이동했다.
히든 장소이긴 하나 대륙이랑 비슷할 정도의 어마어마한 크기.
그러나 이곳엔 생명체가 하나도 없는지 우리의 목소리만이 메아리쳤다.
“언제까지 가야 해. 마차라도 소환해서 가자.”
“거의 다 왔어.”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점점 걸으면 걸을수록. 바닥에 뒹구는 유골들이 눈앞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모형이야?”
“장난 그만 치고 따라와요.”
어두운 분위기를 크라운이 가볍게 풀려 했지만, 눈앞에 펼쳐진 웅장한 광경에 장난기 가득한 그마저 입을 다물었다.
“무너진 제단입니다.”
“완전 엉망진창이네.”
“가이곤이란 자가 악마 군단을 모조리 학살하고 제단까지 이리 만들었지요.”
“······.”
제단은 형태를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무너져 있었고, 주변엔 유골이 가득 보였다.
이것은 아마 내가 게임 내에서 브라고를 처치하기 위해 벌였던 행동일 것이다.
막상 무너진 제단의 참혹함을 실물로 보니 제나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꼭 이곳에 다시 세워야 해?”
“이곳에 악마 군단을 깨울 마법진이 있습니다.”
“그럼 이건 어떻게 치워야 하나.”
“마왕님의 주술로 쉽게 치울 수 있을 겁니다.”
제단을 다시 설립하려면 무너진 잔해를 치워야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무너진 제단의 크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제나의 대답을 반신반의한 채 난 무너진 제단을 향해 스킬을 쐈다.
“자이언트 블럭.”
아차. 마왕의 힘을 과소평가했었다.
스킬 한 방에 무너진 제단이 형태도 남지 않고 재로 변했다.
“역시 우리 팀 리더.”
엄청난 마력을 본 크라운은 날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그리고 제나가 그곳에 새로운 제단을 소환했다.
S급 소환사인 걸 알고 있음에도 제나의 소환술은 언제 봐도 놀라울 따름이었다.
제나가 소환한 새로운 제단은 넓은 돔 형태의 신전이었다.
“이제야 고향에 돌아온 것 같군요.”
신전은 하스마 제국의 왕성보다, 아틀란티스보다 더 컸고 거대했다.
“와, 엄청 크네요.”
그렇게 큰 신전에 들어가니 뭔가에 압도당하는 듯 주눅이 들었다.
그리고 저절로 침이 꿀꺽 삼켜졌다.
동료들 또한 내부로 들어오면서 비장한 표정을 지었는데.
우리가 안으로 발을 내딛자마자 벽면을 빼곡히 채웠던 횃불들에 불꽃이 치솟았다.
횃불로 인해 어둡고 음산했던 신전 내부가 밝아졌다.
깊숙이 들어가 보니 바닥이나 벽면엔 악마 문양의 마법진이 새겨져 있었다.
“저기가 마왕님의 자리입니다.”
“브라고 님, 원래 거인이었습니까?”
“···아니.”
그리고 제나의 안내에 따라 더 깊숙이 들어가 보니 거대한 의자가 우리를 반겼다.
거인이 앉아도 남을 만한 크기의 의자.
그리고 그 주변엔 악마의 동상들이 신전을 지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