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먼치킨이 되었다-23화 (2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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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피아

어둡고 무거운 공간.

단 하나의 빛마저 새어 나올 틈 없는 이 공간은 암살 집단 흑사협의 회의장이다.

중앙엔 대형 원탁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그곳에 앉은 어둠의 그림자.

암살 집단 흑사협의 군주들이다.

“메주르가 시민들의 증언을 조합해 보면 파수꾼이라고 불리는 세력들의 짓이라던데.”

“라노키아나 세계 정부의 짓이겠지. 일개 이름도 낯선 세력 따위가 웬디고를 죽일 수 있다고 보나?”

“그럼 그들의 짓이다?”

“그러니깐 내가 범죄 집단 헨드릭스와 손을 잡고 제국 라노키아부터 없애자 했잖아.”

갑작스러운 웬디고의 죽음에 떠들썩한 회의장.

“대군주님이 결정해야 할 사항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흑사협의 군주들을 대표해 1군주가 대군주에게 결정권을 넘겼다.

“4대 세력 중 군주가 제일 적은 저희가 당했습니다. 아마 웬디고의 죽음으로 저희 세력의 판도가 많이 달라질 테지요. 지금이라도 헨드릭스와 손을 잡으십시오.”

“······.”

그러나 대군주는 자존심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의 이유 때문인지 군주들의 요청을 묵인했다.

* * *

“긴급 속보입니다!”

웬디고가 이름 모를 세력에게 당했다는 소식은 빠르게 널리 퍼졌다.

흑사협은 세계 정부와 대적할 만큼 강한 세력.

그런 세력의 군주가 죽었으니 세상은 발칵 뒤집혔다.

그리고 그 뉴스는 재정비하기 위해 아틀란티스로 온 우리에게도 들려왔다.

“몸 좀 어때?”

“괜찮아.”

가장 예쁜 풍경이 보이는 침실.

웬디고와의 혈투로 지친 우리는 아틀란티스로 다시 돌아왔다.

저번 아틀란티스 장로 핫스퍼와의 게임에서 이긴 보상으로 언제 어디서든 아틀란티스로 순간 이동할 수 있는 명예 장로 칭호를 얻어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역시나 이곳은 평화롭고 아름다운 왕국이기 때문에 몸 상태를 완전히 회복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나저나 웬디고를 죽였다니······. 놀라운걸?”

“말했잖아. 메인 퀘스트를 깨고 현생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단순한 허세는 아니었구먼. 통치자의 지팡이를 비롯한 고대 유물을 세 개나 얻었으니.”

핫스퍼는 내가 피라미드에서 얻은 고대 유물을 구경했다.

새로운 제국을 건국할 수 있는 통치자의 지팡이와 메테오 스킬을 발동시킬 수 있는 발록의 장갑. 그리고 피라미드 수호자 스핑크스를 소환할 수 있는 파라오의 목걸이까지.

내가 생각해도 이건 엄청난 수확이다.

먼치킨 캐릭터에 먼치킨 장신구라니······.

그러나 그런 내게도 풀지 못할 고민이 남아 있었다.

“단잉의 반지가 공황 증세를 느끼지 못하게 할 뿐 낫게 하는 건 아니더라.”

핫스퍼는 유일하게 나와 같이 이 게임 세계로 떨어진 사람이었기에 동료들에게도 말 못 할 고민을 토로했다.

“그래서 평화로운 곳에선 반지에 의지하지 않고, 돌아다녀 보게.”

“···웬디고를 물리쳐서 그런가, 뭔가 눈빛이 바뀌었네.”

“목표가 그때랑 조금 바뀌었거든.”

“어떤?”

“그때는 그저 현생으로 갈 생각뿐이었는데. 지금은 혼란스러운 세상을 바꾸고 싶어.”

“···중2 병이 걸려 왔네.”

핫스퍼는 내 대답에 헛웃음을 지었다.

그저 이 세상은 게임 그래픽 쪼가리인데. 그런 세상을 바꾸고 싶다니.

내가 생각해 봐도 우스운 대답이었다.

그러나 핫스퍼는 이내 다시 날 쳐다보고 말했다.

“그래도 나보다 멋있네. 공황장애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나처럼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울 생각을 하니. 멋있다.”

핫스퍼는 엄지를 치켜들며 날 칭찬했다.

남에게 칭찬을 들어 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희미하다.

그래서 난 그의 낯간지러운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랐다.

* * *

또다시 하루가 지났다.

아틀란티스에 온 지도 벌써 나흘.

이제 다시 모험을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후우.”

그러나 아직 공황 증세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단잉의 반지를 빼고 생활한 지도 이틀.

거의 한 시간에 한 번씩 증세가 찾아올 만큼 힘들었다.

그러나 공황은 그런 증세를 극복해야 낫는 병.

난 힘들게 다시 발을 떼며 아틀란티스 정원을 뛰었다.

뛸수록 심장 박동 수는 높아졌고, 심장이 쿵쾅거릴수록 공황 증세가 날 괴롭혔다.

“오늘도 열심히네.”

그러던 중 핫스퍼가 내 상태를 확인했다.

“내일 떠나려면 오늘 열심히 운동해야지.”

“그래도 첫날보단 낫네. 반지 빼자마자 힘들어했던 걸 생각하면.”

“그치. 떠나더라도 위험한 순간이 아니면 반지를 빼고 운동은 계속하게. 점점 좋아지는 게 느껴져.”

언제까지고 단잉의 반지에 의지하며 모험할 수는 없기에 난 운동을 열심히 했다.

꾸준히 하지 않으면 공황 증세는 다시 원상 복귀될 것이고, 그러면 반지를 빼자마자 공황 발작으로 쓰러졌던 당시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허수아비가 될 테니 말이다.

“그건 그렇고 내일 떠난다니 섭섭한걸.”

“다음에 또 좋은 소식 있으면 찾아올게.”

“당연하지. 심심하니까 언제든 와 줘. 아! 맞다. 그리고 가기 전에 게임 한판 어때? 마지막 날이니 내가 너희 동료들 다 불러 모았는데.”

“전부?”

* * *

아틀란티스 제국 뒤 숲속에 있는 별장 하나.

핫스퍼의 안내에 따라 그 별장에 들어서자 제나와 크라운 그리고 아델라가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왜 이렇게 늦게 왔어.”

“얼른 오세요. 마왕님.”

“여기 앉으세요.”

날 반겨 주는 동료들.

이젠 그들의 얼굴만 봐도 냉기 가득했던 마음이 따뜻해지는 느낌이다.

“오늘도 단잉의 반지 빼셨네요.”

“응. 열심히 극복하려고.”

“무슨 이유인진 모르겠지만, 반지가 필요하면 언제든 얘기해 주세요.”

S급 소환사인 제나가 이렇게 얘기해 주니 더할 나위 없이 든든했다.

“자, 그럼 모두 모였으니 게임을 하나 해 볼까요?”

그러던 중. 핫스퍼가 우리를 불러 모아 게임을 하나 제안했다.

“혹시 마피아 게임 아세요?”

“마피아? 그게 뭡니까.”

핫스퍼가 제안한 게임은 마피아 게임이었다.

우리에겐 익숙한 게임이지만, 이들에겐 생소한 게임.

“쉽게 설명하자면, 여기 네 명 중에 마피아가 한 명 있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무고한 시민이 되는 거죠. 마피아는 시민에게 잡히지 않게 연기를 해요. 그리고 시민들은 마피아가 누구인지 찾아내면 되는 거죠.”

그래서 핫스퍼는 최대한 쉽게 게임의 규칙을 설명했다.

“그래서 마피아가 누구입니까?”

“······.”

“그러니깐 마피아가 배신자 같은 느낌이라는 거죠?”

“응. 마피아를 배신자라고 생각하면 되고, 시민들은 우리 중에 숨어 있는 배신자를 찾으면 되는 거야.”

겨우 마피아 게임의 규칙을 숙지한 동료들.

이제야 게임이 시작되나 싶었는데.

“그럼 제가 사회자 할게요. 시민들이 배신자를 찾으면 이기는 거고 못 찾으면 배신자의 승리로 할게요. 그럼 시작합니다. 제가 밤이 되었습니다 하고 배신자를 뽑을 거예요. 그리고 아침이 밝았습니다 하면 그때부터 여러분들은 누가 배신자인지 찾으시면 돼요.”

“어! 저 밤에 아이들 동화책 읽어 주기로 해서 배신자를 지금 뽑아 주시면 안 될까요?”

“······.”

아델라가 손을 번쩍 들고 순진한 얼굴로 얘기하니 사회자를 자처한 핫스퍼가 쓴웃음을 삼켰다.

* * *

“자, 밤이 되었습니다. 모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주세요. 이제부터 제가 배신자 한 명을 뽑겠습니다. 자, 아침이 되었습니다. 이제 배신자가 누구인지 찾아 주시면 됩니다.”

게임 규칙을 설명한 지 30분 만에 드디어 첫 게임이 시작되었다.

서로 눈치만 보는 동료들.

나 또한 수영 내기 사건 이후로 친구들을 보지 않았기에 마피아 게임같이 사람들과 같이 하는 게임은 생소했다.

그래서 누가 마피아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나 아니야!”

그때 크라운이 뭔가 찔리는 듯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배신자가 아니라고 외쳤다.

“당신이 제일 배신자 관상이긴 합니다.”

그러자 제나가 크라운을 비꼬듯 답했다.

“자자. 이렇게 인신공격하지 말고 자기가 왜 배신자가 아닌지 얘기하는 시간 갖자.”

제나와 크라운이 또 앙숙처럼 티격태격하기에 내가 중재하며 게임을 이어 나갔다.

“제나는 시민이야?”

“아뇨.”

“···아니, 시민이 아니어도 시민이라고 해야지.”

“아, 그래요? 거짓말을 해도 되는 겁니까? 그럼 전 시민입니다.”

“···아델라는?”

“음······. 이게 배신자라고 해야 하는 게 좋은 겁니까? 그럼 전 배신자입니다.”

“······.”

그들의 트롤 섞인 플레이에 한숨만이 나왔다.

“아델라, 넌 순수 혈통 왕족이라는 사람이 그렇게 머리가 나빠서 어디다 쓰겠냐.”

“헐. 저 그래도 어렸을 때 영재 소리 들었던 사람이에요. 그럼 크라운 님은 뭔데요.”

“나? 나야 시민이지.”

“좀 당황하는 거 같은데.”

“딱 봐도 배신자 관상인데 죽이시죠?”

크라운을 배신자로 몰고 가는 아델라와 제나.

그러나 제나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해서 난 그녀를 지목했다.

“제나 얼굴이 좀 빨개진 것 같은데 혹시 배신자야?”

“저요?”

그런데 갑자기 아델라가 찬물을 끼얹었다.

“얼굴은 브라고 님이 더 빨개요.”

“난 홍조가 있어서 그런 거고.”

“홍조가 뭐예요?”

“오, 브라고 당황하는 거 보니 배신자 맞는 것 같은데?”

아델라의 트롤링에 선동되어 갑자기 날 몰아가는 크라운.

“나 아니야.”

“배신자가 뭐 자기가 배신자라고 하나.”

“나 진짜 아니야. 제나야, 내가 배신자 같아?”

“마왕님은 배신자 아니시죠.”

“그걸 어떻게 알아?”

“제가 배신자입니다.”

“···같은 악마 계열이라고 편드는 거 같은데 핫스퍼가 너 어깨 쳤어, 안 쳤어?”

“안 쳤어.”

“후. 그럼 답 나왔네. 배신자는 브라고 당신 맞지?”

내가 했던 마피아 게임 중 가장 답답한 조합이다.

자기가 추리를 잘하는 줄 아는 크라운. 자기가 마피아라고 말하는 제나. 계속 트롤링하는 아델라까지.

“저도 무조건 브라고 님이 배신자인 거 같아요. 투표하죠.”

“어엇! 나 진짜 배신자 아니라니까. 제나야, 좀 말 좀 해 봐.”

“마왕님이 배신자일 리 없습니다.”

“그치!”

과열된 마피아 게임.

할 수 없이 사회자 핫스퍼가 중재했다.

“그럼 투표를 시작하겠습니다. 브라고 님께서 배신자라고 생각하시면 엄지손가락을 번쩍 들어 주세요!”

핫스퍼의 진행에 따라 엄지를 치켜드는 크라운과 아델라.

뭐, 어차피 제나가 반대할 것이니 투표는 2 대 2로 동률일 것이다.

그런데 스리슬쩍 엄지를 치켜드는 제나.

믿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히면 이런 기분일까.

제나를 향한 원망 때문에 공황 증세까지 올 것 같아 스리슬쩍 단잉의 반지를 손가락에 꼈다.

“투표는 3 대 1로 브라고 님이 지목당하셨습니다. 그럼 자! 결과는··· 두구두구두구두구. 무고한 시민 브라고 님이 죽었습니다!”

“거봐, 나 아니라니까. 아휴.”

“그리고 사실 배신자는! 바로 제나였습니다!”

“······.”

태연하게 물을 마시는 제나.

후우. 역시 악마는 악마다.

* * *

“오늘 떠나시는 겁니까?”

핫스퍼가 서운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자주 놀러 올게요.”

“지옥으로 가시는 거죠?”

“네. 악마의 소굴. 지옥이라 하니 무섭네요.”

“하하. 뭐, 그래도 마왕의 고향이기도 하고 히든 장소이기도 하니 서브 퀘스트도 수행할 수 있겠네요.”

서브 퀘스트. 뭐, 마왕 브라고가 있던 곳이 히든 장소였으니 서브 퀘스트 또한 있을 것이다.

즉. 일석이조(一石二鳥)다.

“히든 장소 여러 군데 가 봤다고 하셨죠. 지옥도 가 보셨어요?”

“아쉽지만 가 보지 못했어요. 그래도 진보스가 있었던 장소이니 보상이 좋지 않을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짐을 모두 정리한 뒤.

아틀란티스 왕국 밖으로 나가 동료들과 합류했다.

“아! 참고로 그곳이 많이 발달하였다고 하더군요.”

“블랙우드요?”

“마왕이 죽고 블랙우드는 세계 정부 소속의 대륙이 되었는데 소문에 의하면 그곳이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하더라고요.”

관광지라. 마왕이 있는 지옥의 장소인데 관광지로 탈바꿈되었다니.

매칭이 잘 안 된다.

“그럼 재밌는 모험 이야기 많이 들고 또 한 번 찾아 주세요.”

핫스퍼의 끝인사와 함께 아틀란티스 길잡이 반 할이 블랙우드로 향하는 포털을 열었다.

드디어 통치자의 지팡이로 새로운 세력을 창설하는 첫걸음.

동료들이 있어 두렵지 않다.

“그럼 아디오스(Adi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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