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웬디고(5)
나는 열여덟 살 이른 나이에 독립해 홀로 살았다.
독립이라기보다는 가평에서 펜션 사업을 하는 삼촌에게 빌붙어 나만의 보금자리를 만든 것이다.
공황으로 모든 것이 힘들었던 내게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름대로 공황을 이겨 내기 위해 노력했다.
“후우.”
그때 당시 나는 일어나자마자 하는 것이 있었다.
명상.
정신과 상담 선생님께서 주신 명상 음악을 들으며 매일 아침 몸을 다스렸다.
독립을 하니 새로운 취미도 생겼다.
“참 쉽쥬~?”
그때 당시 유명했던 TV 프로그램 ‘집밥 X 선생’을 보며 거기에 나온 레시피에 따라 만든 요리를 찍어 SNS에 올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저절로 백종X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아침 겸 점심 식사가 끝이 나면 밖으로 나갔다.
가야 할 곳이 없어도 일단 나갔다.
숲과 나무의 피톤치드 향기가 내 코를 자극했다. 난 카메라에 도토리를 가지고 도망치는 다람쥐와 맑은 하늘, 그리고 풍경을 찍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도 들었다.
음악을 들으면서 자유를 느꼈다.
맑은 하늘, 형형색색의 단풍나무, 좋은 공기까지······.
모든 것이 좋은 날,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이날.
눈물이 났다.
나는 좋아서, 너무 힐링이 되어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해야 했다.
난 지금 너무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고 있으므로 지금보다 더 자괴감에 빠지면 계속 눈물이 날 것 같았기에. 난 지금이 너무 좋고 잠시 여기에서 쉬어 가는 중이라고 계속 속으로 나에게 말하고 말했다.
석양은 매우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에 비해 유지되는 시간은 아주 짧다.
석양이 지면 하늘은 순식간에 어둠으로 덮였다.
그 모습은 나와 닮았다.
내 찬란하던 시절이 짧은 순간으로 느껴지고 현재 어두운 현실이 나를 덮쳐 왔기에 말이다.
그리고 그 어둠은 너무나 길게 느껴진다.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길.
나의 하루는 이렇게 끝이 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말이다.
아니, 사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지금 내 상황이 이렇다.
내 하루가 이렇다.
내 삶이 이렇다.
나는 펜션에 돌아와 핸드폰을 열어서 SNS를 보았다.
그 안에는 친구의 의미 있는 추억들이 보인다.
여행 간 친구,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 돈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하는 친구······.
나와는 달리 의미 있게 사는 친구들을 보니 내 모습이 더 초라해 보인다.
난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걸까?
제자리걸음만 할 뿐 나아가질 못하는 날 보니 한심스러웠다.
그리고 나아가는 친구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하아.”
난 또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이 습관이 되어 버렸다.
계속 보면 괜히 몸만 더 좋지 않아질 것 같아서 핸드폰을 끄고 노래를 듣는다.
안정이 되는 노래. 잔잔한 노래.
눈을 감았다.
하지만 왠지 더 숨이 막히는 느낌이다.
홀로 시간을 가지면 나아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제자리걸음이었다.
사람들은 다들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
학생, 군인, 회사원, 가족······.
그러나 난 가족에게마저 버림받은 외로운 사람.
날 반겨 주는 곳은 오직 나만의 쓸쓸한 단칸방뿐.
우물 안 개구리가 밖으로 나가지 않는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세상 밖은 넓고 깊은데, 그리고 난 그곳에 있었는데 지금의 나는 익숙한 동선에서 멀어지면 두려움에 휩싸인다.
나는 그 두려움을 깨기 위해 도전하지도 않는다.
해 봤자 결과는 시궁창이니깐······.
이젠 내 곁엔 아무도 없다.
* * *
“마왕님!”
그러나 이곳엔 날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었다.
“정신 차리세요!”
제나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내 귀를 따갑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정신을 차렸다.
공황 발작이 멈춘 건 아마 제나가 단잉의 반지를 내 손에 끼워 줬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웬디고와 대적하는 나의 수호자.
스핑크스.
“스핑크스가 왜?!”
“마왕님이 정신을 잃고 쓰러질 때 스핑크스가 소환되어 웬디고를 잠시 막아 주고 있었습니다.”
이곳엔 내 곁을 든든하게 지키는 동료들이 있다.
그러므로 난 다시 일어섰다.
그들을 지키기 위해.
“메주르가 시민들은?”
“방공호를 소환해 잠시 대피시켰습니다. 그러나 인명 피해가 상당합니다.”
내가 쓰러지지만 않았어도, 피해는 커지지 않았을 텐데.
그러나 지금은 자책하는 것보단 일단 웬디고를 저지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기에.
난 그가 있는 곳으로 힘껏 달려갔다.
“옥타비아누스!”
웬디고가 자신보다 열 배는 큰 스핑크스의 발가락을 잡고 엎어치기 해 제압시켰다.
아무리 9성 괴수 스핑크스라도 웬디고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만이라도 벌어 준 것이 어디냐.
난 스킬로 웬디고의 몸을 묶었다.
“자이언트 블럭!”
그리고 초대형 중력 에너지파를 웬디고를 향해 쐈다.
“쿨럭!”
아무리 흑사협의 군주라도 마왕의 스킬엔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내 스킬에 휩쓸린 설인 부대들 또한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웬디고는 내 막강한 힘에 놀란 듯 토끼 눈이 되어 은신했다.
그러나 내 눈엔 그의 칭호가 보였기에, 은신해서 몸을 숨기더라도 내 공격을 피하지 못한다.
“누구냐, 넌!”
또다시 중력 에너지를 맞은 웬디고가 괴성을 지르며 내게 물었다.
용맹했던 그의 눈엔 당황한 기색만이 담겼다. 웬디고는 나를 향한 두려움 때문인지 사시나무처럼 온몸을 떨었다.
“어이, 브라고!”
그때 웬디고의 소굴에 있던 메주르가 여성들을 구한 아델라와 크라운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너희들, 정체가 뭐냐고!”
꼭대기의 대형 창고에서 탈출한 메주르가 여성들의 모습까지 보이자 웬디고는 또다시 분노에 찬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마왕(魔王)입니다.”
그래서 난 답했다.
라이칸 때와는 다르다.
제나, 크라운, 아델라, 스핑크스까지.
든든한 동료들을 믿기에 이런 상황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도망치는 아이들 모두 잡아!”
설인 부대가 웬디고의 명령으로 도망친 메주르가 여성들을 잡으려 달려들지만, 아델라와 크라운이 막아섰다.
아델라의 격투 실력과 크라운의 검술이 설인 부대를 제압했다.
설인들이 수세에 몰리자 웬디고는 그쪽에 합류하려 했다.
그러나 내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도 더는 봐주지 않는다.”
갑자기 은신을 순순히 풀며 모습을 나타내는 웬디고.
그의 음성에 침착함이 다시 느껴졌다.
“궁극기(窮極技) 절대 영도!”
그리고 그가 기를 모으듯 자세를 갖춘 후 궁극기를 쓰자 갑자기 서늘한 강추위와 폭설이 우릴 덮쳤다.
[절대 영도]
웬디고의 궁극기. 열역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최저 온도까지 순식간에 내려 버리는 주술.
“모두 도망쳐!”
제기랄! 내가 소리치기도 전에 면역력 없는 메주르가 여성들은 얼음 동상이 된 듯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동료들 또한 웬디고의 궁극기로 움직이기 힘든 상황.
갑자기 체온이 낮아지자 심장 기능마저 멈출 것 같다.
다만 모든 디버프를 면역시켜 주는 장신구 단잉의 반지 덕분인지 나만이 강추위를 극복한 채 그의 일격을 막아 냈다.
“단잉의 반지인가?”
그러나 궁극기 절대 영도에서도 움직이는 나를 보곤 웬디고가 눈치챘다.
내 약점이 단잉의 반지라는 것을.
웬디고는 빠른 스피드로 나를 향해 달려왔다.
무력으로 단잉의 반지를 부수기 위해서.
‘무력으로 싸우면 절대 이길 수 없어.’
무력이 좋지 않아 근접 전투를 피한 것은 아니었다.
범죄 집단 헨드릭스 라이칸과와도 무력에서 밀려나지 않을 정도로 강했기에.
물러설 이유는 없었다.
그러나 마왕 몸속에 있는 사람은 바로 나.
공황장애를 아직 극복하지 못한 환자였기에 또다시 무력 싸움을 하다 단잉의 반지가 부서지기라도 한다면 그때는 목숨을 보전할 수 없는 위기까지 올 것이다.
그래서 난 그와의 거리를 벌리며 원거리 공격을 주고받았다.
뒷걸음질 치며 싸우자니 명중률이 현저히 낮아졌다.
더구나 동료들은 메주르가 시민들처럼 점점 얼음 동상으로 변해 가는 시점.
시간이 없다.
“옥타비아누스!”
다시 중력으로 웬디고를 묶었다.
그리고 중력 에너지파를 쐈다.
그러나 내 군중 제어기를 깨고 주술을 피하는 웬디고.
또다시 빠른 스피드로 날 향해 달려와 주먹을 날렸다.
“······?!”
그때 웬디고의 주먹을 막는 아델라.
어느샌가 웬디고의 궁극기 절대 영도가 풀린 듯 얼음 동상으로 변한 메주르가 시민들이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옥타비아누스 스킬 때문인가?”
중력으로 상대를 짓누르는 것과 함께 주술까지도 무력화시키는 먼치킨 스킬.
웬디고의 궁극기는 나와 상성이 좋지 않았다.
“제기랄!”
궁극기마저 통하지 않자 웬디고는 다시 침착함을 잃고 뒷걸음질 쳤다.
절대 영도가 풀리니 내 곁에 하나둘씩 다가오는 동료들.
아델라가 먼저 웬디고에게 일격을 가하자 제나가 마력이 깃든 밧줄을 소환해 그의 몸을 휘감았다. 뒤이어 크라운이 그에게 칼을 휘둘렀다.
“으아악!!”
웬디고는 동료들의 일격에 고통스러운 듯 소리를 질렀다.
“내가 죽는다고 한들 내 뒤엔 암살 집단 흑사협이 있다!”
웬디고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메주르가 시민들을 협박했다.
그의 말에 동요된 시민들이 눈치를 봤다.
우리가 계속 메주르가 시민들을 보호하긴 어렵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들을 보호하는 다른 방법이 한 가지 있었다.
“지금 이 시간부로 우린 암살 집단 흑사협과 대적할 것이다.”
그 말을 끝으로 중력 에너지를 쏴 웬디고를 처치했다.
그러자 냉기 가득한 추위와 폭설이 멈췄다.
그리고 메주르가 시민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드디어 해방이다!”
시민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승리를 만끽하였다.
물론 희생당한 시민들도 많아 눈물을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전쟁의 끝은 기쁨이 아닌 허탈함이다.
그래서 난 전쟁을 멈추기 위해 제나를 통해 웬디고 소굴 한가운데 글자를 새겼다.
魔
사막 모랫바닥에 새겨지는 한 글자.
그것을 새긴 이유는 웬디고를 죽인 사람이 우리라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래야 흑사협의 화살이 메주르가 시민이 아닌 우리에게 향할 것이니 말이다.
“도망친 파라오의 신봉자를 잡았으니 난 다시 피라미드를 지키러 간다. 내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든 불러라.”
한편 스핑크스는 고대 유물을 갖고 도망친 파라오의 신봉자 영혼을 아마다 씨 몸속에서 찾은 뒤 피라미드로 돌아갔다.
그리고 홀로 남은 아마다 씨의 시체.
엘라는 죽은 남편을 껴안았다.
“죄송합니다.”
슬픔에 젖은 엘라에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위로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뿐이었다.
나는 메주르가 시민들에게 외쳤다.
“여러분은 다른 지역에 소문내세요. 웬디고를 죽인 장본인이 바로 우리라고.”
“···저희 때문에 흑사협에게 표적이 될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 사는 방법입니다.”
메주르가 시민들은 우리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그 뒤로 감정을 추스른 엘라와 그의 자식들이 내게 90도로 인사하며 말했다.
“당신들은 저희의 파수꾼입니다.”
“파수꾼이요?”
“네.”
엘라가 우리를 파수꾼이라 불렀다.
그때 알림이 들려왔다.
[새로운 칭호를 얻었습니다]
[파수꾼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세력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