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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고(4)
“진짜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트럭에는 파라오의 신봉자 아마다와 메주르가 시장, 그리고 엘라가 타고 있었다.
그중 메주르가 시장은 두려운 존재였던 설인들이 자신들의 공격으로 후퇴했기에 신이 난 목소리로 아마다에게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아마다 옆에 서 있던 엘라 또한 자랑스럽다며 남편의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때 갑자기 아마다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고통을 호소했다.
“여보, 괜찮아요?!”
“크헑.”
괴성과 함께 피를 토하는 아마다.
메주르가 시장은 그를 부축하며 상태를 진찰했다.
그런데 그때 시장의 모가지를 잡아 뜯어 버리는 아마다.
그곳엔 인간의 형태는커녕 어둠의 에너지에 잡아먹힌 미라의 형태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여보!”
이상한 남편의 상태에 넋이 나간 엘라.
메주르가 시장을 잔인하게 죽인 남편에게 다가가는데.
인기척을 느낀 아마다가 엘라를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본 채 그녀를 덮쳤다.
“옥타비아누스!”
휴우. 다행히 엘라는 살렸다.
나는 이성을 잃고 엘라까지 덮치려 했던 아마다를 스킬로 묶었다.
“얼른 메주르가 시민들을 대피시키세요.”
그러나 아직 이곳은 웬디고 소굴 앞.
더구나 아마다가 스킬에서 벗어나 또다시 날뛸 수 있기에 난 넋이 나간 엘라에게 정신 차리라고 외친 후. 이곳에 있는 메주르가 시민들 모두 대피시키라 명령했다.
“남편이 창살 없는 감옥에서 구해 준다고 했어요.”
그러나 엘라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거미의 형태로 바뀐 채 나에게 반기를 들었다.
“이러다 아이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수 있어요.”
“어차피 지금 도망치면 설인들에게 모두 죽임당할 거예요. 그러니 남편을 놔주세요. 오늘 저희 메주르가 시민들은 모두 목숨을 걸고 전쟁을 일으킨 거예요.”
아무리 설득해도 엘라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말도 맞다. 지금 후퇴한들 주적 웬디고를 물리치지 않는 이상.
또다시 그의 무법적인 독재 정치에 휘둘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미 이성을 잃은 아마다를 풀어 주는 건 더욱더 위험한 행동.
난 또다시 두 갈림길 앞에 섰다.
메주르가 시민들을 대피시킬 것인가, 아니면 아마다를 풀어 주고 웬디고와의 전쟁을 이어 나갈 것인가.
“제발 저희 앞을 막지 말아 주세요.”
엘라가 거미줄을 내뿜으며 날 공격했다.
그러나 거미줄은 내 스킬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뿐.
그녀는 내게 아무런 영향 따위 줄 수 없는 존재였다.
그만큼 난 이 세계의 먼치킨 인물.
강한 힘을 가진 사람이다.
“거미줄을 보니 스파이더맨이 생각나네요.”
“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제가 웬디고를 물리칠게요. 그러니 절 믿고 메주르가 시민들을 지금 모두 대피시켜 주세요.”
* * *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말아라.”
올스턴 장군이 양날 도끼로 크라운을 가차 없이 내려찍고 있었다.
거구의 힘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설인이 내려찍은 도끼가 바닥에 꽂히자 시멘트 바닥에 구멍이 날 정도다.
그러나 다행히 올스턴 장군은 크라운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했다.
“아델라, 애들 거기 있어?”
한편. 납치된 아이들이 갇혀 있는 꼭대기의 대형 창고 문을 부순 아델라.
그곳엔 나이대가 다양한 다수의 여성이 공포에 떨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해치러 온 것이 아닌 당신들을 구하러 온 사람입니다.”
두려움에 고개도 들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나 아델라의 대답에 하나둘씩 고개를 들어 그녀를 마주한다.
“이곳에 있는 사람이 전부입니까?”
“네.”
꼭대기 창고에 갇힌 여성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한 명이 용기를 내어 아델라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곳에 아주 어린 아이들도 있어요. 그들만이라도 제발 살려 주세요.”
“모두 살릴 겁니다. 한 명도 낙오되지 않게 손을 잡고 따라와 주세요.”
그런데 그때.
쾅―
유성이 탑에 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빙 탑은 피사의 사탑처럼 기울었다.
“괜찮으세요?”
다행히 유성이 탑의 중심점에 떨어져 인명 피해는 없는 상황.
그러나 그 충격으로 벽과 바닥에 금이 새겨지고, 곧이어 무너질 듯 휘청거렸다.
“크라운, 괜찮아?”
유성이 또다시 탑을 향해 떨어졌다.
크라운은 올스턴 장군을 상대하기도 바쁜 듯 아델라를 돕지 못했다.
할 수 없이 아델라는 돌연변이화된 자신의 몸을 더 각성시켜 등뼈를 이용해 날개를 만들었다.
그리고 날아올라 탑에 떨어지는 유성을 하스마 건틀릿으로 격파시켰다.
“꺄악!”
유성의 잔해는 탑뿐만 아니라 웬디고의 소굴 곳곳에 떨어져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곳엔 비명만이 들렸고, 성대한 식장은 콘크리트 가루로 난장판이 되었다.
“도와주세요!”
그때 기어코 탑은 충격을 이기지 못한 채 무너졌다.
그 모습에 아델라는 빠르게 다시 날갯짓하여 꼭대기에 있는 여성들을 구하러 이동했다.
그러나 쩍 하고 탑과 분리되는 꼭대기 층.
그렇게 꼭대기 층은 추락했다.
“크흑.”
아델라가 돌연변이 힘과 하스마 건틀릿으로 추락하는 꼭대기 탑을 지탱했다.
그 때문에 천천히 떨어지는 꼭대기 층.
거의 만 톤에 달하는 무게를 아델라 홀로 지탱하고 있었다.
그녀로 인해 꼭대기 층에 갇혀 있던 여성들이 무사하게 구출되었지만, 아델라는 힘을 다 쓴 듯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 * *
한편. 무너지는 탑에서 아직도 호각을 다투는 중인 크라운과 올스턴 장군.
그 두 인물이 합을 겨룰 때마다 충격파로 인해 탑이 점점 더 빠르게 부서졌다.
“쥐새끼인 줄 알았는데 살쾡이 정도는 되나 보는군.”
그 때문에 올스턴 장군은 난감한 듯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유성으로 인한 충격으로 탑이 무너졌고, 더구나 크라운과의 호각 싸움 때문에 나머지 기둥도 부서지는 상황.
“우리가 왜 암살 집단 흑사협인지 보여 주지.”
그래서 올스턴 장군은 필살기를 꺼냈다.
거구의 설인이 왜 아무도 모르게 살인해야 하는 암살 집단 흑사협 소속으로 들어갔는지.
“······?!”
올스턴 장군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은신(隱身).
설인들의 패시브 중 하나다.
은신을 연마하는 크라운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올스턴의 은신 기술은 뛰어났다.
그래서 크라운도 올스턴 장군을 따라 은신으로 자신의 몸을 숨겼다.
이제 눈이 아닌 소리와 감각으로 싸워야 한다.
“쥐새끼라 그런지 너도 은신을 사용하는구나. 그러나 인간이란 하등한 종족과 달리 설인들의 코는 매우 발달하였지.”
그러나 같은 은신을 쓰더라도 올스턴은 설인.
크라운의 냄새를 맡고 공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호각이었던 싸움이 올스턴 쪽으로 기울었다.
챙!
챙!
퍽!
그나마 크라운은 감각적인 검술로 올스턴 장군의 도끼질을 막아 냈다.
그러나 그것이 한계였다.
도끼질 다음으로 이어진 발차기.
크라운은 그 일격에 나가떨어졌다.
그 충격으로 은신도 풀렸다.
“승기는 기운 것 같네.”
그리고 이곳은 설인들의 소굴.
설인들이 쓰러진 크라운 주변을 둘러쌌다.
올스턴이 수하들에게 물었다.
“어찌 된 일이냐.”
“지금 메주르가 시민들이 반기를 들고 있습니다.”
“그놈들이 이 정도의 피해를 가했다고?!”
“미라와 유성을 소환하는 악령 술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올스턴 장군님도 전장에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도움도 안 되는 놈들.”
올스턴 장군은 미간을 찌푸린 채 도끼를 들었다.
그리고 크라운을 향해 내려찍으며 물었다.
“전장이 어디냐.”
그는 수하들에게 길을 안내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올스턴의 도끼는 크라운을 내려찍지 못했다.
오히려 올스턴의 도끼가 산산조각이 났다.
“······?!”
크라운이 용검으로 올스턴의 일격을 막아 낸 것이다.
거대한 도끼가 용검의 내구성을 이기지 못하고 박살 났다.
“아직 승부가 안 끝났는데 어디 가려고.”
그때 크라운 앞머리 사이로 문양이 드러난다.
“황족의 혈육인가?!”
크라운 이마에 새겨진 문양을 보곤 올스턴 장군은 매우 놀란 듯 뒷걸음쳤다.
“···내 비밀까지 알았으니 살아 돌아갈 생각은 하지 마라.”
“뭐 해! 다들 저 쥐새끼 죽여!”
올스턴 장군의 명령에 설인 부대가 크라운을 덮쳤다.
그 뒤로 올스턴 장군 또한 나머지 도끼 한 자루를 이용해 그를 내려찍었다.
그 순간 수천, 아니, 수만 개의 칼날이 크라운 주위를 감싸며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베었다.
“너만 필살기가 있는 게 아니야.”
“크흑.”
설인 부대는 수만 개의 칼날에 휩쓸려 도륙되어 탑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홀로 크라운과 독대한 올스턴 장군.
“살려 줘.”
용맹했던 올스턴 또한 크라운의 기세에 눌린 듯 꼬랑지를 내리고 목숨을 구걸했다.
“궁극기(窮極技) 영혼 가르기.”
그러나 크라운은 가차 없이 수만 개의 칼날로 올스턴 장군의 육체를 갈기갈기 찢었다.
그 탓에 올스턴 장군의 피가 크라운의 얼굴에 튀었다.
피를 닦는 크라운.
그의 얼굴엔 장난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싸늘한 표정만이 남아 있었다.
* * *
한편. 식장은.
미라 군대의 뼈 화살과 메테오로 쑥대밭이 되었다.
그리고 그 중앙. 부르르 몸을 떨고 있는 한 사람.
웬디고.
“상대 기술이 너무 강력합니다!”
먼저 전장으로 뛰쳐나간 설인 부대마저 후퇴했다는 소식이 들리자 웬디고는 지고 돌아온 병사의 두개골을 단 두 손가락으로 터뜨렸다.
“전장에서 지고 돌아와 놓고 무사할 줄 알았냐!”
그리고 그는 괴성을 질렀다.
“드디어 6년 만에 진정 사랑할 수 있을 여인을 찾았는데 너희가 다 망쳤다.”
“죄송합니다. 군주님.”
웬디고 뒤로 모든 설인과 사람들이 무릎을 꿇었다.
“모두 은신으로 몸을 숨긴 뒤 나를 따르라.”
“넵, 알겠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웬디고는 직접 반기를 든 메주르가 시민들을 상대하려고 전장으로 향했다.
웬디고 뒤로 설인 부대들 또한 살기를 뿜은 채 복수를 하러 전장으로 이동했다.
* * *
“메주르가 시민들은 얼른 후퇴하세요.”
그 시각. 메주르가 시민들은.
엘라의 지시로 후퇴하였다.
“난 싸울 거라고!”
물론 전쟁에 동참한다는 용맹한 사람들도 있었지만, 현재 상황으론 시민들의 용감함은 그저 고집과 객기였다.
“전장엔 미라와 아마다 씨만 나갈 겁니다. 곧 웬디고도 이곳을 덮칠 수 있으니 얼른 대피하세요.”
“어차피 이곳에서 죽으나, 메주르가 도시에서 죽으나 똑같다고. 우리도 아마다 씨처럼 목숨을 걸고 이곳에 온 거야.”
그러나 시민들의 고집을 꺾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엘라는 통제되지 않는 시민들의 기세에 눌려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럼 아이들만이라도 돌려보내세요. 아이들은 오히려 짐만 될 뿐입니다.”
난 아이들이라도 돌려보내기 위해 엘라를 대신해서 악역을 자처하였다.
“어리다고 무시하지 마!”
하지만 아이들 또한 내 말에 토를 달았다.
아데이 역시도 내 말에 상처를 입은 듯 째려보았다.
그러나 아이들이라도 얼른 대피시켜야 했기 때문에 난 계속 세게 나갔다.
“이곳에 목숨을 걸고 오셨다면서요. 그럼 짐만 되는 아이들은 얼른 보내세요.”
아이들이 내 말에 상처를 입더라도 강하게 말해야 했다.
그들의 신념을 꺾어서라도 구해야 했으니깐 말이다.
“형 미워!”
그때 아데이가 나를 향해 돌진했다.
엘라가 말렸지만,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아데이.
아델이 겨우 동생 아데이를 달래서 돌아갔지만, 현실은 냉혹한 법.
“얼른 아데이와 함께 아이들은 보내세요. 전부.”
그제야 메주르가 시민들은 전장에 참여한 아이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냈다.
시민들까지 보내고 싶었지만, 뭐 아이들만으로도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했기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역시 시민들 또한 아이들과 함께 보냈어야 했다.
“저기 봐요!”
시민 한 명이 전장을 가리켰다.
고개를 돌리니 무언가 미라 군대를 뚫고 우리를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보였다.
육안으로 보이진 않지만, 내 눈엔 은신을 한 자라도 칭호가 보였기에 그들의 정체를 빨리 파악할 수 있었다.
“대피하세요!”
그리고 난 바로 시민들에게 외쳤다.
은신한 설인들 사이.
암살 집단 흑사협의 4군주 웬디고가 보였기 때문이다.
“꺄아악!”
그러나 웬디고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내가 그의 정체를 파악하자마자 미라 군대를 뚫고 홀로 시민들이 있는 지점까지 돌파한 웬디고.
그의 일격 한 방에 메주르가 시민들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다.
비명은 끊이지 않았다.
“옥타비아누스!”
스킬로 웬디고를 붙잡으려 했지만, 그의 힘은 무지막지했다.
시민들을 무차별하게 때려죽이는 웬디고.
“제기랄!”
난 일단 트럭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내 스킬에 묶인 채 의식을 잃은 아마다에게 다가가 통치자의 지팡이와 메테오를 소환할 수 있는 발록의 장갑을 뺏었다.
메테오는 9성 괴수인 스핑크스마저 정통으로 맞으면 강한 충격을 받을 만큼 최고의 기술이었기에, 웬디고를 상대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난 그때 한 가지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
내가 공황장애 환자라는 사실을.
“커억!”
장갑을 끼기 위해 잠시 단잉의 반지를 빼자 갑자기 심각한 공황 발작이 내 몸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그 충격으로 단잉의 반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지금 웬디고가 메주르가 시민들을 모두 죽이고 있는 위급한 시점인데.
‘안 돼, 여기서 쓰러지면!!’
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렀다.
엘라에게 웬디고를 물리친다고 호언장담했는데!
그러나 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수아비가 된 것처럼.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