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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고(2)
“더럽게 넓네.”
아델라의 부탁으로 미인 선발 대회에 뽑힌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웬디고의 소굴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크라운.
그러나 웬디고의 소굴은. 얼음으로 이루어진 탑처럼 높고 거대했다.
아무리 재빠른 크라운이라 한들 이곳에서 납치된 아이들을 찾는 건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기와도 같은데.
그리고 무엇보다 빙(氷) 탑에 돌아다니는 거구의 설인들의 시선을 피해 돌아다니는 것이 위험천만하고 어려웠다.
“오늘 또 결혼식이 치러지는 날인가?”
“매주 하는 행사라고 생각하자고.”
그러던 중. 설인들 사이에서 웬디고의 결혼식이 거론되었다.
왠지 불평불만이 있는 듯한 어투로 뒷담화하는 설인들.
크라운은 쥐새끼같이 천장 쪽에 몸을 숨겨 설인들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웠다.
“어차피 오늘 결혼하는 여자도 나머지 애들처럼 창고에 갇히겠지.”
창고? 중요한 단서다.
그러나 이곳은 거구의 설인들의 주거지라 그런지 천장부터 높고 크기도 컸기에 창고라는 단서만을 가지고 납치된 아이들을 찾기란 어려웠다.
그래서 크라운은 그들의 이야기를 계속 엿들었다.
그런데 그때 간부로 보이는 설인이 나타났다.
“결혼식 때문에 바쁜데 이곳에서 노닥거리고 있었나?”
“죄송합니다. 올스턴 장군님. 지금 막 일어나려고 했습니다.”
“얼른 식장에 가서 준비되지 않은 것이 있는지 확인해라.”
“넵, 알겠습니다.”
크라운의 몸보다 더 거대한 양날 도끼를 들고 있는 설인의 이름은 올스턴.
올스턴 장군의 명령 한마디에 거구의 설인들이 황급히 식장으로 이동했다.
쿵쿵―
거구의 설인들이 같이 뛰어나가니 큰 진동이 천장까지 울렸다.
그 때문에 크라운은 시끄러운 진동 소리가 끝날 때까지 귀를 막았다.
“흐음.”
그런데 올스턴 장군은 크라운이 은신한 방에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올렸다.
마치 크라운이 이곳에 몰래 잠입한 것을 알고 있는 듯 말이다.
크라운은 올스턴 장군의 행동에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몰래 잠입한 크라운이 들키기라도 한다면 아델라에게까지 영향이 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인데.
“뻐근하군.”
다행히 올스턴이 고개를 올린 이유는 식장 준비로 뻐근해진 목 근육을 풀기 위한 스트레칭 때문이었다.
잠시 후 올스턴마저 밖으로 나가자 크라운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아무리 검술과 은신이 뛰어난 크라운이라도 암살 집단 흑사협의 4군주 웬디고에게 끌려가면 뼈도 추리지 못한다.
“창고라······.”
그러나 이곳에 온 이유는 웬디고와 싸우기 위해서가 아니다. 납치된 여자들을 구하러 온 것이기 때문에 굳이 웬디고와 그의 수하들을 직접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크라운의 은신은 암살 집단 흑사협에 소속된 설인들도 찾지 못할 만큼 뛰어났기에 그는 다시 힘을 내고 일어섰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 * *
그 시각. 신부 대기실.
아델라는 웨딩 플래너의 도움으로 신부 화장을 받고 준비한 드레스를 입으러 탈의실에 들어갔다.
“도울 것이 있을까요?”
“괜찮아요.”
군주 웬디고의 새로운 신부이기에 아델라를 공주처럼 모시는 웨딩 플래너들.
그녀가 매혹적인 초록빛 에메랄드 드레스를 입고 나오자 그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델라의 미모는 자타공인 누구나 인정할 만큼 뛰어난데 거기에 에메랄드빛 드레스까지 더해지니 눈부실 정도였기 때문이다.
웨딩 플래너들은 탈의실에서 드레스를 입고 나온 아델라에게 다가가 손뼉까지 치며 예쁘다고 칭찬을 건넸다.
“군주님께서 좋아하실 겁니다.”
“······.”
그러나 환호하는 웨딩 플래너들과 달리 어두운 표정을 짓는 아델라.
그녀의 머릿속엔 온통 크라운과 납치된 아이들뿐이다.
그때 웬디고의 수하가 조심스럽게 신부 대기실 문을 두들겼다.
“군주님이 잠시 들르신다 합니다. 모두 나가 주세요.”
웬디고가 아닌 다른 설인들은 신부를 볼 수 없는지 눈을 질끈 감은 채 신부 대기실에 있는 웨딩 플래너에게 말을 전하는 하수인.
그의 말을 들은 웨딩 플래너들은 끝까지 아델라에게 예쁘다고 칭찬한 채 황급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웬디고가 허리를 숙인 채 신부 대기실에 들어왔다.
“역시 내 눈은 틀림없구나.”
신부 화장을 한 채 드레스를 입은 아델라를 본 웬디고는 사랑에 빠진 듯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다시 한번 5m에 육박하는 웬디고의 몸집과 마주하니 압박감이 상상 그 이상이었다.
웬디고의 그림자에 아델라가 가려졌다.
그러자 한 걸음 물러서는 웬디고.
그리고 그녀에게 진심을 건넸다.
“304번째 결혼이지만 오늘로써 진정 사랑에 빠진 것 같구나.”
웬디고는 아델라의 몸집보다 더 큰 손으로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럼에도 아델라는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금처럼 웬디고에게 환심을 사길 원했다.
그래야 그에게 직접 납치된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들을 수 있을 테니까.
“304번째 결혼이시면 그 전에 결혼하셨던 부인들은 어딨습니까?”
“질투하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
“질투하는 것도 귀엽구나.”
그러나 웬디고는 이미 착각의 늪에 빠진 듯 엉뚱한 얘기만 했다.
그는 4대 세력의 군주이자 설인들의 왕.
이미 정점에 선 인물이었기에 자존감이 하늘을 찔렀다.
그래서 아델라는 그의 비위를 맞추기로 작정했다.
“전 부인들이 이곳에 있으면 질투가 날 것 같기도 합니다.”
“흐음. 그러면 안 되지. 그러면 그들을 이곳에서 추방시킬까?”
웬디고의 대답을 들은 아델라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아직 이곳에 납치된 아이들이 살아 있다.
그리고 그들은 이곳 어딘가에 있다.
“추방하여라 답하면 추방할 것입니까?”
“음······. 그래도 정이 든 아이들이니 고민이 되긴 하겠지.”
“전 부인들 모두 한곳에 있는 겁니까?”
“···그것이 왜 궁금하냐?”
계속되는 아델라의 질문에 웬디고는 살짝 심기가 불편해졌다.
“저 또한 언제든 웬디고 님의 사랑이 식으면 그곳으로 가지 않을까 싶어 노심초사하여 물어본 것입니다.”
다행히 아델라는 잘 둘러대었다.
그리고 오히려 슬픈 연기까지 하며 웬디고의 마음을 물렁거리게 했다.
“전 부인들은 이 탑 꼭대기에 있다. 그러나 그대는 그런 걱정하지 말아라. 아까 그대에게 사랑에 빠졌다는 얘기는 진짜 나의 진심이니.”
“네, 알겠습니다.”
웬디고는 여자에 미친놈. 아무리 괴물처럼 강한 모습이어도 아델라의 앞에선 순한 양이 되었다.
“그럼 이따가 결혼식 때 보자.”
그는 신부 대기실에서 나갈 때까지 아름다운 아델라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아델라는 그런 그의 미소가 부담스러웠지만 억지로 장단을 맞추며 마주 웃어 주었다.
드디어 웬디고까지 신부 대기실 밖으로 나가자 아델라는 아까 주시하며 본 커다란 창문으로 황급히 이동했다.
설인들이 사는 곳이라 그런지 방이나 문들이 상당히 컸기에, 창문으로 도망가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납치된 아이들 모두가 이 탑의 꼭대기에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목적지는 정해졌다.
웨딩 플래너가 없는 지금이 기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