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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인 선발대회(2)
그 시각. 난 거미 소굴에 도착했다.
“저기 보십시오!”
도착하자마자 제나가 손을 뻗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녀가 가리킨 곳엔 이전엔 보이지 않았던 문이 눈에 싸여 있었다.
아마 히든 장소로 통하는 문인 것 같았다.
“문이 투명해서 눈이 와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었나?”
생각보다 허무한 이유로 찾지 못한 히든 장소.
공략집에도 이곳의 힌트는 적혀 있지 않았기에 게임했을 당시에 찾으려고 시도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이곳이 바로 범죄 집단 헨드릭스 대군주 카모라의 고향이자.
새로운 제국을 통치할 수 있는 힘이 주어지는 공간이다.
“들어갈까?”
난 단잉의 반지가 손에 잘 끼워져 있는지 확인한 후 제나에게 물었다.
역시나 제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뒤를 따른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두 명.
크라운과 아델라.
* * *
“아델라!”
웬디고가 지목한 것은 아델라였다.
사실은 이러했다.
오늘 이른 아침에 나를 따로 불렀던 아델라.
그녀는 이 집안을 도와주고 싶다며 자신이 미인 선발 대회에 직접 참가해도 되냐고 내게 물어봤다.
그녀가 정의로운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나를 따로 부를 때부터 어떤 부탁을 할지 예상이 갔었다.
그러나 히든 장소에서 어떤 위기가 있을지 모르니 난 치유 능력과 하스마 건틀릿을 착용한 아델라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녀의 결의에 찬 눈빛을 보고 있자니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는 것 같았다.
“후우.”
어쩔 수 없이 난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아델라가 고맙다며 나를 끌어안았다.
자신이 위기 속에 놓일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기뻐하다니.
“그 대신 궁지에 몰리면 꼭 도망쳐. 상대는 암살 집단 흑사협의 군주야.”
난 아델라에게 신신당부하며 말했다.
궁지에 몰릴 땐 자기만 생각하고 도망치라고.
그리고 그녀에게 크라운 또한 붙여 주었다.
아델라가 걱정되기도 했지만 어젯밤 엘라가 말한 흑성의 정신.
그것이 사실인지 궁금하기도 해 붙여 준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편. 엘라는 우리가 도와준다고 말하자 자리에 풀썩 주저앉은 채 고맙다며 오열했다.
아델라는 그런 엘라를 껴안으며 자신이 따님을 꼭 지킬 것이라 약속하였다.
그녀는 나와 다른 선(善)적인 존재.
위선을 떨던 나와 달리 그녀는 정의로웠다.
난 그저 흑성의 정신의 행방을 알아보기 위해서 도움을 주는 것인데.
아델라는 그게 아니니 말이다.
“전부 브라고 님이 허락해 준 탓입니다.”
그런데 아델라는 공을 전부 내게 돌렸다.
아델라의 말을 들은 아데이와 아델이 내게 다가와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그러자 알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흘러 들어왔다.
* * *
“무슨 생각 하십니까?”
제나가 히든 장소로 통하는 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내게 물었다.
“크라운과 아델라를 놓고 온 것이 후회되는 것입니까?”
내가 계속 머뭇거리자 제나가 다시 물었다.
“후회라······.”
제나의 말대로 크라운과 아델라가 옆에 있으면 더 든든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머뭇거리는 것은 그들이 곁에 없어서가 아니라 이곳에 정이 들 것 같기 때문이었다.
현생과 달리 이곳에서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
공황을 겪은 후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감사의 인사를 받았다.
처음엔 위선적인 행동으로 감사 인사를 받으니 창피했지만 진심을 담아 고마움을 표하는 그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흔들렸다.
아틀란티스에서 나온 시점부터 동료들을 제외한 이곳의 생명체를 그저 게임 캐릭터라고 여기며 현생으로 돌아가기 위한 발판으로만 생각하려 했었는데.
그들이 내게 정을 주니 나 또한 그들을 위해 뭔가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후회하진 않아.”
그래서 진심으로 이 혼란스러운 세상을 바꿀까 생각했다.
아니, 다짐했다.
이 세계의 질서를 바꾼 후. 현생으로 돌아가기로······.
* * *
미인 선발 대회 축제 현장 위.
크라운은 은신한 채 축제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아델이 아닌 아델라가 웬디고의 신붓감으로 뽑힌 것에 매우 놀랐다.
더구나 웬디고의 하수인들이 삼엄하게 경비를 서고 있어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이게 무슨.”
원래 아델이 신붓감으로 뽑히면 그곳에 잠입한 아델라가 난동을 부려 시선을 돌리기로 했었다.
아델라가 뽑히는 것은 계획에 없었던 내용이기에 크라운은 난감한 표정을 지은 채 웬디고의 마차를 쫓았다.
* * *
나와 제나는 카모라의 고향인 히든 장소에 들어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틀란티스 장로 핫스퍼가 비밀리에 얘기했던 유적이 발견되었다.
파라오의 무덤이자 고대 유적지인 피라미드가!
“이곳이 카모라가 있었던 히든 장소라고 하더라.”
핫스퍼가 이곳에서 서브 퀘스트를 달성할 당시.
퀘스트 내용은 그저 피라미드 안에 숨어 있는 고대 유적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피라미드는 내 생각보다 더 거대했고, 끝이 안 보였다.
만약 핫스퍼와 같은 퀘스트 내용이면 오늘 밤을 새워도 시간이 모자랄 듯했다.
입구를 찾는 데만 10분이 걸릴 정도로 면적이 거대한 피라미드 유적.
10분을 헤매다 겨우겨우 입구를 찾아 조심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갔다.
파라오의 무덤이라 하길래. 피라미드 내부에서는 생각보다 더럽고 퀴퀴한 냄새가 날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
모래 먼지 가득한 외부와 달리 피라미드 내부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기에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곳엔 고대 유적들과 보물들이 깨끗이 보관되어 있었다.
“오랜만의 손님이구먼.”
그러던 중. 피라미드 내부 안쪽에서 낯선 음성이 울렸다.
음성은 거대한 무언가의 목소리처럼 무거웠다.
음성이 들리는 곳으로 걸음을 조심스럽게 옮기자 깜짝 놀랄 만한 괴수가 우릴 반겼다.
“스핑크스?!”
그 괴수의 얼굴을 확인하니 다름 아닌 스핑크스였다.
게임했을 당시 스핑크스는 9성짜리 초고레벨 괴수였다.
그 정도 레벨이면 대장급 네 명 정도가 힘을 합쳐야 잡을 수 있다.
스핑크스가 이곳에 있다는 얘기는 아틀란티스 장로 핫스퍼에게 듣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크라운과 아델라가 있으면 어떻게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전투형 캐릭터는 나밖에 없기에 부담감이 많이 드는 상황이다.
“마왕님, 품위를 지키십시오.”
그러나 제나의 한마디가 내 자존심을 긁어 냈다.
그래, 아무리 스핑크스가 대장급 네 명 정도의 무력을 지니고 있다 한들.
마왕 브라고는 한때 66명의 대장급 영웅들도 모두 몰살했던 먼치킨의 인물.
그런 강한 캐릭터로 빙의했는데. 스핑크스 따위에게 두려움을 느끼다니.
난 심호흡으로 마음을 진정시킨 뒤 스핑크스 앞으로 다가갔다.
“심심하던 참에 손님이 오니 반갑구나.”
스핑크스는 게임상으로 봤을 때와 달리 너무나 거대한 존재였다.
그의 발톱 하나가 나보다 더 크다.
이런 괴수를 상대하라니.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
스핑크스와의 전투를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심심한데 내 수수께끼를 한번 맞혀 보지 않으려나?”
스핑크스의 제안이 끝나자 아틀란티스 때와 같이 퀘스트 창이 열렸다.
[서브 퀘스트]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맞히십시오.
보상으로 제국을 통치할 신비의 힘 통치자의 지팡이를 얻게 됩니다.
‘수수께끼?!’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9성 괴수 스핑크스와 싸우는 것이 아닌.
그자가 낸 수수께끼 문제를 단지 맞히는 것이 퀘스트였기 때문이었다.
“제나, 수수께끼 좀 알아?”
어렸을 적 무슨 책에서 스핑크스를 대표하는 열 가지 수수께끼 내용을 얼핏 본 것 같았다.
그러나 지금 기억나는 건 가장 유명한 수수께끼 한 가지뿐이다.
아침에는 네 개의 다리로 걷고, 점심에는 두 개의 다리로 걷고, 저녁에는 세 개의 다리로 걷는 생물은 무엇이냐는 수수께끼.
스핑크스 수수께끼 중에서도 가장 유명했기에 답을 알 거라 생각했는데.
제나에게 물어보니 그녀는 이 유명한 수수께끼의 답도 모르는 듯 머리를 갸우뚱하고 있었다.
“후우.”
제나의 반응을 보니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맞힐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수수께끼를 맞히게 되면 이곳에서 안전하게 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보상도 주어질 것이네. 허나! 만약에 맞히지 못하게 된다면 나의 소원을 들어줘야 할 거야.”
패널티는 또 소원이었다.
이제 소원이라는 단어만 들으면 PTSD가 올 지경이다.
그러나 뭐 별수 있나.
나는 스핑크스와 무력으로 싸우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 그의 수수께끼를 맞히려고 최대한 두뇌를 풀가동했다.
“그럼 수수께끼 문제 내겠네. 이것은 새와 짐승, 나무, 꽃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쇠를 갉아 먹고 강철을 씹어 먹으며, 단단한 돌을 가루로 갈아 내며, 왕을 죽이고, 마을을 파괴하며, 높은 산을 깎는다. 과연 이것은 무엇일까?”
으······. 어디선가 들어 본 수수께끼다.
그러나 긴장해서 그런지 머릿속은 백지장처럼 하얘지고 몸은 경직된다.
기억이 날랑 말랑 하니 답답해 미치겠다.
“제한 시간 1분 주겠네.”
아휴. 스핑크스가 재촉하자 더욱더 수수께끼를 제시간 안에 맞혀야 한다는 압박감에 머릿속이 혼잡해졌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것이면 괴물 아닐까요?”
“그렇게 일차원적이지 않을 거야.”
제나의 말대로 답이 괴물이면 너무나 허무한 해답이기에 난 그것을 배제한 채 다시 집중했다.
‘쇠를 갉아 먹고, 강철을 씹어 먹는 것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괴물인데.’
그러나 제나가 한번 괴물이라 확정 짓자 머릿속엔 온통 괴물이란 단어만 두둥실 떠다녔다.
“참고로 내 소원은 이곳에서 같이 100년 정도 사는 거야.”
한편. 스핑크스가 말도 안 되는 소원을 말하자 마음만 조급해졌다.
“그런 소원이 어딨는가!”
스핑크스의 소원을 들은 제나는 그것은 이뤄 줄 수 없다며 강력히 항의했지만, 그가 강한 콧바람을 일으키자 저 멀리 날아갔다.
콧바람만으로도 강풍을 만들다니.
“시간 없네. 20초. 19초. 18초.”
그 순간에도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은 채 흘러가는 중.
이젠 뭐라도 대답해야 했다.
그러나 아직도 내 머릿속에 둥둥 떠다니는 단어는 괴물뿐.
아무것도 연상되지 않는데.
“이거 완전 도둑놈 심보구먼! 마왕님께서 이곳에 100년이나 썩으면 세계 멸망은 누가 시키고, 이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다시 만드나!”
그런데 그때 제나의 한마디에 번뜩 해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새와 짐승, 나무, 꽃 그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쇠를 갉아 먹고 강철을 씹어 먹으며, 단단한 돌을 가루로 갈아 내며, 왕을 죽이고, 마을을 파괴하며, 높은 산을 깎는 이것은!
지금 나를 조급하게 만들고 있고 제나를 항의시키게도 만들고 있었다.
이것은 바로!
“시간! 답은 시간이다!”
내가 답을 말하자. 스핑크스는 머리를 긁적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내 답이 맞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쁨에 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쾌재를 불렀다.
제나의 항의만 아니었어도 맞히지 못했을 뻔했기에 난 그녀와 함께 기쁨을 나누었다.
“쳇! 모처럼 재미 좀 보려 했건만.”
스핑크스는 아쉬운 듯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다행히 그는 치졸한 괴수가 아닌 듯 수수께끼 보상을 선물로 건네려고 이동했다.
“뭐야!”
그런데 스핑크스가 난처한 표정으로 고대 유물이 담긴 곳간을 헤집었다.
“무슨 일입니까?”
“제기랄.”
안 좋은 예상은 언제나 들어맞았다.
난처한 표정을 지은 스핑크스의 모습을 보아하니 보상으로 받을 통치자의 힘이 담긴 유물이 사라진 것 같다.
“난 한 입 갖고 두말하지는 않네.”
그러나 스핑크스는 찝찝한 상황을 절대로 만들지 않는다는 신념이 있는지 몇십 년 만에 히든 장소인 피라미드에서 밖으로 나갔다.
고대 유물을 훔쳐 간 쥐새끼를 찾아내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