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옐로우 우드
“옐로우우드로 간다고?!”
다음 날이 되었다.
아틀란티스 장로 핫스퍼는 길잡이 반 할을 통해 옐로우우드로 통하는 포털을 열어 주었다.
우리의 목적지가 바로 핫스퍼가 처음 카모라를 만난 히든 장소였기 때문이었다.
공략집까지 샀을 정도로 브라고 게임에 진심이었기에 난 아직도 곳곳에 숨겨진 히든 장소가 어디 있는지, 어떤 식으로 갈 수 있는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내가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히든 장소.
그건 바로 히든 보스 카모라가 있었던 곳이다!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메인 퀘스트가 서로 다르듯 서브 퀘스트 진행 방법도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보상은 같습니다. 제가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보상이 지금 기영수 님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어젯밤 갈 곳을 정하던 내게 장로 핫스퍼가 찾아와 조언을 해 주었다.
옐로우우드에 숨은 히든 장소에서 받을 수 있는 보상.
그건 바로 한 지역을 통치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드는 것이다.
핫스퍼는 그 보상으로 아틀란티스의 장로가 되었다고 말했다.
“뭐, 옐로우우드는 암살 집단 흑사협의 구역이니 그나마 안전하겠네.”
크라운이 5성으로 강화된 용검을 자랑하듯 휘두르며 내게 말했다.
“안전한 곳은 마왕님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한편. 제나는 옐로우우드가 다른 지역보다는 위험성이 낮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야기했다.
“다시 악마의 소굴을 부활시키기 위해 가는 거야.”
난 그녀가 알아듣도록 잘 얘기해 주며 설득하였다.
내가 한 말 그대로 한 지역을 통치할 수 있는 세력을 만드는 보상을 획득하면, 누구보다 강력했던 브라고의 군대를 다시 일으킬 생각이었다.
다행히 제나는 내 말을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아델라 공주님은 어떠십니까?”
그러나 마지막으로 남은 아델라가 문제였다.
일단 그녀는 내가 마왕이라는 사실도 모르는 상태고 공주라는 신분 때문인지 조금 조심스러운 감이 있었다.
“아델라도 괜찮댔어.”
그때 크라운이 내게 어깨동무하며 아델라의 마음을 대변해 주었다.
“좋습니다. 마왕님.”
더구나 크라운이 이미 말했는지 아델라는 내가 30년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던 마왕 브라고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녀가 태어나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 그런지 내가 마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크게 개의치 않는 듯 행동했다.
“그럼 포탈을 옐로우우드 마지지대로 지정해 놓겠습니다.”
“마지지대? 그 거미 소굴 있는 곳 아니야?”
옐로우우드는 다른 지역과 달리 사막으로 이뤄진 땅.
그중 마지지대는 과거 거미 여왕 엘라가 서식하던 곳이었다.
“거미 여왕 카모라를 피해서 거미 소굴로 가다니······. 좋지 않고만.”
크라운이 한숨 쉬며 다른 곳을 추천했지만 어쩔 수 없다. 거미 소굴에 히든 장소로 갈 수 있는 통로가 있으니 말이다.
“생각이 바뀌시면 언제든 아틀란티스로 오시지요.”
핫스퍼가 내게 악수를 청하며 인사했다.
곧이어 반 할이 포털을 열기 위해 주문을 외웠다. 하늘에서 광선이 발사되며 옐로우우드 마지지대로 단번에 갈 수 있는 포털이 열렸다.
난 핫스퍼와 악수한 후. 동료를 데리고 포털이 열린 곳으로 향하였다.
“후우. 가 보자고.”
난 단잉의 반지를 소중히 어루만지며 포털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현생으로 가기 위한 첫 발걸음이 시작되었다.
* * *
끼이익―
날카로운 쇠가 모랫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려왔다.
흙먼지 사이로 마스크와 방제복으로 중무장한 청년이 삽으로 조심스럽게 땅을 파내는 중이다.
모랫바닥을 팔수록 먼지가 가득 뿜어져 나와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
그때 삽 끝에 뭔가가 걸렸다.
“아마다 씨.”
“왜요.”
“저 밑에 뭐가 있어요.”
“잠깐만요. 내려갈게요.”
고고학자 아마다는 시종의 부름에 조심스럽게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흙먼지가 가득한 땅굴로 들어갔다.
“저쪽에서 뭔가 보였어요.”
“보였다고요?”
흙먼지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땅굴 속 상황.
그런데 자꾸 무언가 봤다는 시종의 외침 때문에 고고학자 아마다는 조심스럽게 흙먼지 사이를 뚫고 앞으로 이동했다.
그 순간 터억―
흙먼지 사이를 뚫고 나온 누군가의 손!
고고학자 아마다의 모가지를 가차 없이 꺾어 죽여 버린다.
살인 현장을 목격한 시종은 울부짖으며 사다리를 타고 땅굴 밖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그는 바깥을 구경하지도 못한 채 주인인 아마다와 같이 다시 땅굴 속으로 떨어졌다.
* * *
우린 아틀란티스 길잡이 반 할의 도움으로 옐로우우드에 위치한 마지지대로 순간 이동했다.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 한가운데.
한 번도 가 본 적 없었기에 사막은 매우 더울 것이라 예상했었지만, 그것은 편견이었다.
생각보다 쌀쌀한 날씨. 그리고 지평선 너머까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모래사막만 눈에 담기자 분위기가 사뭇 삭막해지는 느낌이다.
“악마들을 부활시킨다고?”
그때 크라운이 고요한 분위기를 깨며 내게 물었다.
“거미 소굴 근처에도 아틀란티스와 같은 히든 장소가 숨어 있어. 우린 그곳으로 가야 해.”
“그러니깐 거미 소굴로 들어가면 악마들을 다시 깨울 능력이 너에게 주어진다는 거지?”
핫스퍼가 말하길. 거미 소굴 근처 카모라가 처음 발견된 히든 장소에 가면 새로운 제국을 통치할 힘을 보상으로 받는다고 얘기했다.
그때 불현듯 생각난 제국.
마왕 브라고의 제국이자 한때 세계를 지배했던 지옥이라 부르는 악마 소굴이다.
“뭐, 지금 내 눈앞에도 부활한 마왕이 있으니 말이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러면 생각보다 스케일이 커지는데?”
물론 새로운 제국을 통치하는 힘이 서브 퀘스트의 보상이라는 얘기는 하지 못했지만, 그걸 제외하곤 모두 동료들에게 말한 상태.
그들은 지금까지도 날 믿고 따라와 준 동료였기에 나 또한 그들을 믿고 말해 준 것이다.
“이제 다시 마왕님의 시대가 오겠군요.”
내 말을 들은 제나는 머리에 난 뿔을 흔들며 춤을 췄다.
아주 신이 난 듯했다.
그러나 제나와 달리 어두운 표정을 짓는 아델라가 신경 쓰였다.
“지옥을 부활시키는 이유는 세계를 멸망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개혁하기 위해서야. 신분도, 무법도 없는 평등한 세상을 위해.”
그래서 난 아델라가 안심하도록 입바른 말을 하였다.
세계 멸망이 즉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겠나.
“악마가 평등한 사회를 위해 세상을 바꾼다고 하니 아이러니하네.”
크라운은 내 말에 헛웃음을 쳤지만, 다행히도 아델라의 표정은 조금 밝아졌다.
“거미 소굴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앞서갔던 제나가 거미 소굴을 먼저 발견하였다.
“그럼 이곳을 불굴의 나침반으로 지정해 놓고, 눈이 올 때까지 근처 마을에서 기다리자.”
거미 소굴 근처 히든 장소 포털은 사막에 눈이 내렸을 때만 열린다고 들었다.
그래서 난 제나가 소환시킨 불굴의 나침반으로 이곳을 지정해 놓았다.
[불굴의 나침반]
어디에 있든 지정한 장소로 가는 가장 빠른 방향을 안내한다.
장소 지정까지 끝낸 후. 우린 눈이 올 때까지 머물 도시로 이동했다.
* * *
거미 소굴에서 8km 떨어진 도시. 메주르가.
우린 제나가 소환한 낙타를 타고 20분이 걸려 이곳에 도착했다.
“더워 죽겠는데 굳이 낙타를 타고 가야 했어?”
사막의 날씨는 시시때때로 바뀌었다.
분명 이곳에 도착했을 당시에는 쌀쌀했는데 지금은 무척 덥다.
난 무더운 날씨 때문에 눈이 오지 않을까 봐 걱정되었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한쪽에선 제나와 크라운이 애들처럼 티격태격하는 중이다.
“내 도움으로 낙타라도 탄 것에 감사해라.”
“아이고, 소환사라 좋겠네! 좋겠어.”
제나는 사막에서 낙타를 타고 이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지금 아니면 언제 낙타를 타 보냐는 생각에 제나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그만 싸우시고 목 좀 축여요.”
그나마 아델라가 다투는 두 사람을 중재했다.
“내 물은?”
“네가 소환해서 마셔라.”
“얼씨구. 이렇게 치사하게 나온다 이거지?!”
그럼에도 또다시 유치한 이유로 다투는 두 사람.
난 그들을 못 본 척한 채 메주르가 도시를 둘러보았다.
옐로우우드 구역 80%가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이곳은 다른 땅보다 조금 환경이 좋지 않은 편.
그러나 난 옐로우우드보다 더 황폐한 땅 레드우드에서 살아남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환경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리고 메주르가는 옐로우우드에 있는 도시 중 그나마 살기 좋은 곳.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알던 메주르가 도시의 풍경이 아니었다.
메주르가 특유의 모래로 만든 건축물이 눈에 띄긴 했지만, 적막으로 휩싸인 도시.
그리고 이곳에 머무르는 주민들은 대부분 노인과 청년들뿐이었다.
“크라운. 메주르가 도시도 와 봤어?”
난 그나마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던 크라운에게 메주르가 도시에 관해서 물어봤다.
그런데 그때 탕―
총소리가 도시의 적막을 깨고 들려왔다.
‘전쟁인가?!’
또다시 전쟁이라도 난 건가 싶어 허리를 숙여 몸을 숨긴 순간.
길 한복판에서 울부짖으며 도망치는 어린 소년이 보였다.
“살려 주세요!”
그 소년은 오열하며 주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메주르가 도시 주민들은 그를 못 본 척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커튼까지 치며 몸을 숨기는 주민들.
그 뒤로 소년을 쫓는 괴한들이 보였다.
괴한들의 머리 위에 약탈자라는 칭호가 보인다.
오토바이를 타고 소년을 쫓는 그들은 하늘에 총을 쏘며 위협했다.
“어떡할 거야?”
크라운이 내게 묻자 난 바로 스킬을 썼다.
싸움하긴 싫었지만, 오열하는 어린 소년을 다른 주민들처럼 못 본 척하기에는 아직 내 마음이 물렁했기 때문이다.
“옥타비아누스.”
내 스킬로 오토바이가 바닥에 찌그러진 채 나뒹굴었다.
그리고 약탈자들 또한 넘어지며 아스팔트 바닥에 얼굴이 쓸려 고통을 호소한다.
그사이 난 동료들과 함께 소년의 손을 잡고 도망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