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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티스(3)
내 손에 들린 카드는······.
에이스와 10!
“······?! 고작 세 판 만에 에이스가 두 번 이상 나온 겁니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던 장로 핫스퍼가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내가 가졌었던 카드를 확인하였다.
2와 5, 4와 3. 자신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카드였다.
그리고 지금 블랙 잭이 나온 것이다.
“이거 가지고 계속 올인을 외쳤던 겁니까?”
“장로님 정체가 궁금해서요.”
“네?”
“옥타비아누스.”
스킬을 사용하자 고층 돔 구장은 물론이고 미모의 딜러 또한 사라졌다.
남은 건 작고 어두운 방 안과 테이블에 덩그러니 남은 포커 카드뿐.
“······?! KF 사슬에 묶여 있는데 어떻게······.”
핫스퍼는 사슬에 묶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킬을 쓴 나를 보고 놀라워했다.
“단잉의 반지 덕분에 모든 것들이 환각이라는 것을 알았거든요.”
[단잉의 반지]
모든 디버프를 면역시켜 주는 장신구.
단잉의 반지 때문에 사슬의 효과는 발휘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도박장인 돔 구장과 게임 역시 실제가 아닌 핫스퍼의 환술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이 환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그의 말대로 따른 이유는 단지 궁금함 때문이었다.
인간의 형태로 바뀐 핫스퍼의 존재가.
“당신, 진짜 정체가 뭡니까?”
“···기영수 님과 같죠. 제 진짜 이름은 윤찬영입니다.”
난 그의 대답을 듣고 토끼 눈을 떴다.
이곳에 빙의된 인간은 나뿐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 또한 나처럼 이 세계로 빙의된 인간이라니.
“당신은 제 정체를 알았습니까?”
“당연하죠. 마왕 브라고는 이 세계의 진보스였는데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리고 핫스퍼 또한 날 보자마자 내가 이 세계로 빙의된 인간이라는 것을 알아챈 모양이다.
내 칭호가 ‘마왕 브라고’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에게 환술을 걸어 게임을 제안했다고 답했다.
자신과 같이 이 세계로 떨어진 인간을 300년 만에 처음 봤기에 말이다.
“300년이요?”
“네. 이 세계로 빙의된 지 300년이 되었습니다.”
300년이라니. 브라고 게임이 출시된 지 10년도 채 안 됐을 터인데.
아마 현생과 이 세계의 시간 흐름은 다른 듯싶었다.
“당신도 브라고를 해치운 겁니까?”
나와 같이 이 세계로 빙의된 인간을 만나니 궁금한 점들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 궁금했다.
난 브라고를 해치운 후 보상 때문에 이곳에 온 것 같은데.
그도 브라고를 해치운 후 나와 같은 보상으로 이곳에 떨어졌는지 너무나 궁금했다.
“아뇨. 저는 히든 보스 카모라를 해치운 후 받은 보상으로 여기 떨어졌습니다.”
카모라.
그는 진보스 브라고가 아닌 히든 보스이자 現 범죄 집단 헨드릭스 대군주 카모라를 해치운 보상으로 이 세계 아틀란티스 장로로 빙의되었다고 답했다.
그의 말을 들으니 혼란스러웠다.
브라고 게임이 출시된 이후 모든 히든 장소나 히든 보스들을 만나 봤다고 자부했었는데, 내가 모르는 몹이 있었다니.
그것도 현재 우릴 맹렬히 쫓고 있는 괴인.
“히든 보스였던 카모라는 강했습니까?”
“아뇨. 소위 승급을 위해 거미 여왕 엘라를 토벌하러 가던 길, 옐로우우드의 처음 보던 히든 장소에서 만났습니다. 그때 저랑 같이 파티를 맺은 친구와 카모라를 해치웠는데······. 그때 당시 저의 캐릭터 계급이 상사였으니 그렇게 강한 몹은 아니었죠.”
대장급 중의 대장급이라 불릴 헨드릭스 대군주 카모라가 고작 상사 계급 유저에게 죽다니.
“그를 죽인 후 보상이 소원을 들어준다는 것이었습니까?”
의문점투성이였지만, 우선 내가 이 세계로 빙의된 계기가 마왕 브라고를 해치운 후 받은 보상 때문이 맞는지 확인했다.
핫스퍼의 표정을 보니 맞는 듯했다.
“브라고 얘기를 하는 걸 보니 기영수 님은 마왕을 해치운 후 이 세계로 들어온 거군요.”
“맞아요. 그것도 마왕으로 말이죠.”
이곳에 온 지 일주일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같은 처지인 핫스퍼가 너무 반가웠다.
질문할 것이 많아 쉽게 정리되지 않는 내 머릿속.
핫스퍼는 어버버거리는 내 모습을 보고 먼저 궁금해할 만한 이야기들을 풀어 주었다.
“현생에서 저는 그저 수능을 준비했던 고등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선 늙지도 않더군요.”
아틀란티스 장로 핫스퍼는 고등학생 때 모습 그대로 늙지도 않은 채 영생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어쩐지 300년 동안 이곳에서 살았음에도 나랑 비슷한 연령대의 얼굴.
“핫스퍼 님도 메인 퀘스트가 있습니까?”
난 현생으로 다시 돌아갈 방법 같은 메인 퀘스트가 핫스퍼에게도 존재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퀘스트가 나처럼 세계 멸망이라는 얼토당토않은 것인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
“기영수 님 메인 퀘스트가 세계 멸망입니까? 하하. 저보다 더한 퀘스트네요. 저의 메인 퀘스트는 그것보다는 쉽습니다. 그러나 제 것도 말이 안 되는 퀘스트지요. 범죄 집단 헨드릭스 대군주 카모라를 죽이는 것이니까요.”
카모라를 죽이라는 퀘스트.
나의 퀘스트보다는 더 명확했기에 한편으로는 부러웠지만, 그의 말과 같이 현재 카모라의 무력은 이 세계 으뜸이기에 그가 메인 퀘스트를 깨고 현생으로 다시 돌아가기엔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먼치킨인 마왕 브라고로 깨어났지만, 핫스퍼는 전투형 캐릭터가 아닌 환술 소환사의 몸으로 깨어났으니, 퀘스트를 깨기는 오히려 나보다 더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저는 여기가 좋아요. 현생보다도요.”
하지만 핫스퍼는 현생보다 아틀란티스가 더 살기 좋다고 대답했다.
그의 말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었다.
아틀란티스에만 있으면 현생에서 느꼈던 근심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깐.
“조금 외로운 거 빼고는 다 괜찮아요. 그래서 제안한 거예요. 세계 멸망이라는 얼토당토않은 퀘스트는 뒤로하고 이곳에서 같이 행복하게 지내자고요.”
난 그의 제안에 마음이 흔들렸다.
사실 그의 말에 따르는 것이 낫다.
세계 멸망이라는 메인 퀘스트를 깨기 전에 내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고, 천운으로 세계 멸망을 시켜 현생에 돌아간들 그곳엔 내 공황 증세를 면역시켜 주는 단잉의 반지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러면 또다시 공황장애 환자로 돌아가는 것이다.
“게임엔 졌지만 제 정체를 알았으니 다시 물어볼게요. 어때요? 저와 이곳에서 같이 영생하며 살아가는 거.”
“······.”
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너무나 고민되는 제안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내 마음을 굳히는 핫스퍼의 한마디가 들려왔다.
“히든 보스였던 카모라를 해치울 때 같이 파티를 맺었던 친구도 이 세계로 빙의되었었습니다. 덕분에 그때 당시엔 외롭지 않았죠. 그 친구가 메인 퀘스트를 깨기 위해 카모라에게 덤비기 전까지는 말이죠.”
“······.”
미소만 짓던 핫스퍼가 매우 슬픈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상황 자체를 떠올리는 것조차 힘들었는지 몸을 부르르 떤다.
그의 슬픔의 농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없었지만, 안타까운 표정을 보자니 마음이 아려 왔다.
고등학생이었으면 그래도 나보다 한참 어린아이.
300년이 지났다고 해도 이곳으로 왔을 당시 그는 불과 고등학생이었다.
“핫스퍼 님은 현생으로 가기 싫은 겁니까? 카모라가 두려워서요?”
난 그의 진심이 궁금했다.
뭐든 소환할 수 있는 아틀란티스가 좋은 것인지, 아니면 카모라를 대적하기 두려워 이곳에 남아 있는지를.
“저는 이곳이 좋습니다.”
핫스퍼가 담백하게 답했다.
그리고 내게 역으로 질문하였다.
“기영수 님에게도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현생으로 다시 돌아갈 만큼 그곳에 메리트가 있습니까?”
난 그처럼 담백하게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흐음.”
나는 복잡한 머릿속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져 짧은 한숨과 함께 이마를 감쌌다.
이마가 불덩이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저와 함께 이곳에 남으시지요.”
* * *
밤이 깊었다.
오늘도 역시 아틀란티스의 밤은 성대한 파티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나 또한 이곳에 남으면 저들처럼 매일같이 하루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저기······.”
들판에 앉아 밤하늘의 무수히 많은 별을 보고 있는 동료들.
난 그들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 어떤지.
“이곳도 좋지만 저는 개혁을 위해 싸울 생각입니다.”
“나도 어렸을 때부터 싸우며 자랐던 인간이라 그런지 이곳이 마음에 들지만 심심하긴 해. 복수하고 싶은 대상도 있고.”
“이곳에 더 머물면 절대 안 됩니다. 마왕님! 마왕님의 목표는 세계 멸망뿐입니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동료들은 이곳에 남길 거부했다.
“만약 죽는다고 해도?”
그러나 오늘 낮에 꿨던 생생한 꿈.
카모라로 연상되는 거미 괴수에게 동료들이 몰살당하는 꿈이 자꾸 눈에 밟혔다.
그래서 난 그들에게 다시 한번 물었다.
죽어도 괜찮냐고.
그리고 그들은 내가 좀 전에 장로 핫스퍼에게 했던 말과 같은 답을 내놓았다.
* * *
“저보고 같이 다른 지역에 가서 현생으로 갈 수 있는 퀘스트를 깨자고 한 겁니까?”
난 핫스퍼에게 같이 모험을 함께할 동료가 되어 달라고 제안했다.
“위험하지만, 이곳에서 영원히 사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하하. 응원만 할게요. 전 이곳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좋아요.”
“좋지만 외롭겠지요.”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현생으로 갈 수도 있죠. 술과 파티만 있는 곳에서 산다고 행복하지만은 않을 텐데요.”
“당신. 생각보다 모험적인 사람이었네요?”
“좀 미친 것 같죠? 그러나 매일 똑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나요? 저와 함께 가시죠. 메인 퀘스트 깨러.”
난 마음을 굳혔다.
밖엔 나와 함께할 동료가 있을뿐더러.
아무리 현생이 시궁창 같다 한들 그곳엔 내 가족이 있다.
그것을 포기하면 아무리 술과 파티를 매일 즐길 수 있다 한들 나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미안하지만 그럴 일 없어요. 사람 잘못 본 것 같네요. 난 이곳의 삶이 행복해요.”
“아무리 이곳이 풍족하다 한들 현생에 있는 가족이랑 친구들이 그립지 않습니까?”
“···아틀란티스를 벗어나면 위험천만한 일들이 가득할 겁니다.”
“혹은 술과 파티보다 더 다양한 경험들을 겪을 수도 있겠죠.”
핫스퍼는 나와 같은 먼치킨 캐릭터로 빙의된 인간.
더구나 나와 같은 처지여서 의지도 할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나 동료가 되는 건 엄연히 그의 선택.
“하. 원래부터 기영수 님은 이곳에 남을 생각이 없었나 봅니다.”
그는 나에게 헛웃음을 지으며 다가왔다. 그리고 게임에서 진 것을 인정하였다.
“당신의 용기 있는 모습에 제 친구가 언뜻 겹쳐 보였네요.”
장로의 말과 함께 서브 퀘스트 창이 열렸다. 그리고 받은 보상.
[‘아틀란티스 명예 장로’ 호칭을 얻었습니다.]
[이제 어디서든 아틀란티스로 순간 이동할 수 있습니다.]
“서브 퀘스트 보상을 받으셨나 봅니다?”
“서브 퀘스트의 존재를 아셨나요?”
“훗. 현생에선 제가 기영수 님보다 어렸다 한들 이곳에서 산 지도 300년입니다. 꿀팁 하나 드리지요. 히든 장소 곳곳에 서브 퀘스트들이 있습니다. 서브 퀘스트가 메인 퀘스트랑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서브 퀘스트를 깨다 보면 언젠간 저희가 이곳 세계에 빙의한 이유를 밝힐 수 있지 않을까요?”
그는 아틀란티스처럼 숨겨진 히든 장소에 서브 퀘스트들이 존재한다 말했다.
“게임을 오래 했다고 하니 히든 장소가 어디에 숨겨져 있는지는 알고 계실 거로 생각하겠습니다. 혹시나 기억 안 나는 히든 장소가 있다면 제게 물어보시지요. 그러나 영수 님의 제안은 못 들은 거로 하겠습니다.”
그는 내게 좋은 정보들을 나눠 주었다. 그러나 그는 이곳에 남을 것이라 답했다.
뭐, 그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되기는 했다.
나 또한 친구의 죽음으로 공황장애까지 겪었으니. 그 또한 두려울 것이다.
그러나 난 단잉의 반지 때문인지 공황장애 이전의 모험을 좋아했던 본래 내 모습으로 돌아왔다.
물론 죽을 것 같은 공황 발작이 아직 두려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난 극복할 것이다.
난 꼭 이곳에서 벗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