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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칸(3)
“어이, 괜찮아?”
“괜찮습니다.”
왕성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다행히 나의 스킬로 무너진 천장을 산산조각 내서 피해를 막을 수 있었지만, 그 진동으로 이성을 잃은 돌연변이 병사들과 늑대 인간들이 우릴 쉽게 찾아냈다.
“어이, 검 같은 건 소환 안 돼?”
크라운이 아끼던 검은 그린우드에서 교도장 플리처와 겨루다 칼날이 부러졌다. 주변에 몰려드는 수백 명의 돌연변이 군사와 늑대 인간을 물리치려면 새로운 무기가 필요했다.
“강화된 무기는 소환할 수 없어.”
대신 제나는 크라운의 부탁에 드래곤의 이빨로 만들어진 1성 용검을 소환해 쥐여 줬다.
“최소 5성은 돼야 버틸 수 있을 것 같은데······.”
할 수 없이 크라운은 제나가 소환해 준 용검을 받아 들고 우릴 공격해 오는 병사와 늑대 인간들을 도륙했다.
“생각보다 괜찮네.”
1성인데도 불구하고 용검의 위력은 상당했다.
하긴, 아무리 1성이라도 용검은 드래곤을 죽여야 나오는 보상 무기.
하급 드래곤이더라도 7성 괴수인 것을 감안하면, 용검은 루기아 세계 속 으뜸인 검이다.
“옥타비아누스!”
샥―
내가 스킬로 병사와 늑대 인간의 몸을 중력으로 묶으면 크라운이 목을 벤다.
그러나 아무리 괴물 형태의 모습이라 해도 사람의 모가지가 땅에 굴러다니면 패닉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더구나 무슨 좀비물 웹 소설 주인공이 된 것도 아닌데, 흉측하게 돌연변이화된 병사들이 무너진 왕성 사이사이 잠복하다가 우릴 공격한다.
‘내가 했던 게임은 이런 장르가 아니었다고!’
아니, 내가 즐겨 했던 게임 속 세계로 들어왔으면 그 게임 세계관을 분석해서 살아남으려 노력이라도 하겠지. 30년이 지난 지금, 이곳의 환경은 내가 알던 것과 너무나 다르다.
처음 들어 보는 4대 세력과 그들 간의 파벌 싸움.
지금 내게 일어나는 현상이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헷갈리지만, 코앞에서 좀비 같은 병사와 마주하면 그런 생각이 씻은 듯 사라진다.
일단 살아야 한다.
브라고를 죽였을 당시 보상으로 나온 문장.
간절한 소원을 이뤄 준다는 말.
난 그 보상으로 인해 이 세계로 들어왔다고 생각했다.
공황장애로 지옥 같은 현생에서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에 차라리 게임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뭐, 말도 안 되는 추측이지만, 게임 속으로 들어온 것 자체가 말이 안 됐기에 난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잡고 간절한 소원을 이뤄 준다는 보상만을 바라보고 살아남아야 한다.
난 이 세계를 멸망시켜 현생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다.
“블럭!”
중력 에너지파를 사용해 무리 짓던 늑대 인간 수십 명을 형태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날려 버렸다.
아니, 중력 에너지로 인해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는 것일까?
털썩―
내 스킬로 발만 남긴 채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늑대 인간 부대. 바닥에 나뒹구는 잘린 발에서 흐르는 피와 드러난 뼈가 내 눈에 담겼다.
“우엑.”
현생에선 벌레 한 마리 죽여 본 적도 없었다. 시체를 본 적은 더더욱 없고. 그래서 더더욱 견디기 벅찬 것 같다.
나는 그 자리에서 가슴을 부여잡은 채 주저앉았고, 요동치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안간힘을 썼다.
“쟤 또 저런다.”
“마왕님!”
흥분하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직 이명이 내 귀를 감돌 뿐.
숨도 잘 쉬어지지 않는 이 기분.
“허억. 허억.”
그렇게 또다시 전의를 상실한 순간 눈앞이 번쩍하며 천지가 진동했다.
범죄 집단 헨드릭스 8군주 라이칸에게 깊은 분노를 느낀 듯 주먹질을 한 하스마 제국 황제 아수라.
라이칸이 그 일격을 자신의 무력으로 맞받아치자 그 에너지에 천지가 진동한 것 같다.
“마왕님, 복개차 좀 마시고 진정하세요.”
내 곁으로 다가온 제나가 복개차를 소환해 주었다.
라이칸과 아수라가 본격적으로 힘을 겨루니 주변에 있던 병사와 늑대 인간이 그 에너지를 느낀 듯 그곳으로 이동한다.
다행히 우리 주변에 있던 늑대 인간과 병사들 또한 우릴 무시한 채 두 군주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마왕님, 얼른 정신을 차리고 저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러나 제나는 나약해진 내 멘탈을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며 자꾸 라이칸과의 혈투를 부추겼다.
하지만 이미 라이칸 앞엔 아수라가 황금빛 건틀릿을 자랑하며 서 있었다.
* * *
아수라는 라이칸을 향해 주먹을 난타하며 그를 힘으로 밀었다.
그리고 그가 밟고 있던 왕자의 건틀릿을 주웠다.
“병사들의 꼴을 보아하니 당신들의 신념은 부서진 것 같은데. 왕가의 무기는 부서지지도 않습니다. 무기보다 못한 인간이라니, 웃기지 않습니까?”
라이칸은 아들의 건틀릿을 든 아수라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 웃음은 신념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왕가 사람들에게 보내는 비웃음이었다.
“왕자는 죽인 건가?”
“주인 없는 왕가의 무기를 보면 모르겠습니까?”
“공주는?”
“······.”
라이칸이 대답을 못 하자 아수라는 울부짖으며 또다시 난타전을 시작했다.
그러나 상대는 범죄 집단 헨드릭스의 군주.
덩치가 거의 라이칸의 세 배인데도 불구하고 아수라는 무력에서 밀렸다.
“엄청나네.”
나는 그런 라이칸의 무력에 나도 모르게 감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수라도 전력을 다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하스마 제국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브라고 게임에 인생을 갈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아수라가 낀 건틀릿도 한몫했다.
하스마 건틀릿!
난 구멍난 수송선에서 떨어진 직후 아수라 2세가 착용한 건틀릿의 강화 등급을 보곤 의아했었다.
그리고 지금 하스마 황제 아수라의 건틀릿 또한 강화 등급이 8성.
‘그런데 어째서 지금은 8성인 거지?’
그러나 내가 게임했을 당시 하스마 제국에 방문했을 때 하스마 건틀릿은 8성이 아닌 9성짜리 초고레벨 등급이었다.
10성 무기가 전 서버에 아홉 자루 검이 전부라는 것을 고려하면 9성은 최고 등급이나 마찬가지다.
“하스마 제국은 오늘로 멸했다. 그러나 라이칸, 자네를 죽이고 간다면 원한이 조금 풀릴 것 같네.”
아수라가 아들의 건틀릿을 흡수하듯 빨아들였다.
그리고 내 눈에 담긴 건틀릿의 등급.
[하스마 건틀릿(9성)]
황금빛 건틀릿이 빗속에서도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아수라는 두 주먹을 한데 모아 라이칸의 복부에 일격을 날렸다.
그러자 꿈쩍없던 라이칸도 충격을 입은 듯 피를 토한다.
그는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내며 아수라를 향해 돌진한다.
“그 잔혹한 라이칸과 비등비등하게 싸우다니, 하스마 제국 황제가 저리 강한지는 처음 알았네.”
“대장급도 견줄 만큼 강했다고 하니 당연한 결과지.”
브라고 게임이 한창 유행했던 시절. 수학 문제집 산다고 아빠에게 거짓말한 채 게임 공략집을 구매했었다.
그 공략집이 필요했던 이유는 보상 무기를 준다는 쿠폰도 한몫했지만, 광활한 게임 세계관을 세세하게 설명해 주어 한층 더 몰입감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공략집에 하스마 제국 황제가 대장급에 견줄 만큼 강하다고 적혀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승패는 결정 났군.”
그러나 범죄 집단 헨드릭스 군주의 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발톱을 드러내니 각성한 아수라 또한 기를 펴지 못하고 자빠졌다.
라이칸의 발톱이 아수라의 심장마저 관통했다.
생각보다 싸움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라이칸의 무력은 대장급 위의 대장급.
크라운에게 익히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직접 확인하니 그를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도망치긴 힘들 것 같은데. 마왕이면 좀 일어나 보지.”
크라운이 날 일으키려고 손을 내밀었다.
“이길 수 있을까?”
“극한의 상황을 겪으면 겪을수록 마왕님의 마력이 돌아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상황을 즐기십시오.”
목에 칼이 들어온 긴박한 상황인데 제나는 그런 극한의 상황이 내게 도움 된다며 태평하게 이 감정을 기억하라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오늘따라 더더욱 제나에게 밝히고 싶었다.
난 당신이 기억하는 마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블럭!”
그러나 도망칠 곳은 없다.
하스마 제국 황제까지 죽자 이곳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우리가 전부인 것 같다.
이성을 잃은 채 다수의 늑대 인간과 싸우던 돌연변이 병사들 또한 라이칸에게 찢기고,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옥타비아누스!”
난 스킬 창에 있는 기술을 모두 사용하며 우릴 향해 달려오는 늑대 인간을 해치웠다.
하스마 제국 땅에 피가 묻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많은 늑대 인간이 죽었지만,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 병력.
더구나 늑대 인간의 왕 라이칸 또한 우리를 발견했다.
“그때 본 주술사군요.”
라이칸이 날 알아보자 온몸에 닭살이 돋으며 소름이 끼쳤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
그 순간 극한의 상황을 겪으면 겪을수록 마력을 마력을 되찾는다는 제나의 말처럼 스킬 창에 새로운 스킬이 하나 떴다.
[자이언트 블럭]
자이언트급으로 강화된 블럭 주술.
“자이언트 블럭!”
난 라이칸을 향해 새로운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어마어마한 위력인 블럭이 한층, 아니, 몇 단계 강화된 듯 엄청난 중력 에너지가 라이칸을 향해 발포됐다.
자이언트 블럭은 라이칸을 포함한 늑대 인간들을 집어삼켰고, 더불어 저 멀리 보이는 동산에도 영향을 끼쳤다.
“우와.”
동산이 감쪽같이 재가 된 듯 사라졌다.
늑대 인간 병력 또한 내 스킬에 반쯤 재가 된 채 사라졌는데.
그러나 라이칸만은 가드를 올린 모습으로 자신의 몸을 방어한 채 서 있었다.
“쿨럭.”
상당한 내상을 입은 듯 피를 토하고 있었지만, 그만큼 살기 또한 뼛속까지 느껴졌다.
“자이언트 블럭!”
그가 회복하기 전에 또다시 스킬을 날렸지만 재빠른 순발력으로 중력 에너지 파동을 피하는 라이칸.
그리고 그는 발톱을 내세운 채 바로 내 앞까지 다가왔다.
챙!
내게 달려오는 라이칸의 일격을 크라운이 맞받아쳤다.
그는 그린우드에서 대장 플리처와 합을 겨룰 정도로 검술이 뛰어난 자.
그러나 크라운의 무기는 용검이지만, 1성.
또다시 라이칸의 일격을 막아 내자 칼날이 부러졌다.
“미치겠네.”
검이 힘없이 부러지자 크라운은 난감한 표정으로 입술을 뜯었다.
내가··· 이제 내가 나서야 하는데.
“허억. 허억.”
미치겠다. 중요한 순간에 또다시 공황 발작이 찾아왔다.
이미 한계치에 다다랐는데도 겨우겨우 참으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성이 끊어질 만큼 정신을 다잡기가 힘들다.
“옥타비아누스!”
일단 스킬로 주변에 있는 늑대 인간과 라이칸의 발을 중력으로 묶었다.
다행히 라이칸은 자이언트 블럭으로 상당한 대미지를 입었는지 중력에 못 이겨 잠시 무릎을 꿇었다.
내가 공황을 극복하고 라이칸을 공격하냐 아니면 라이칸이 그보다 빠르게 몸을 회복하느냐의 싸움이다.
내 상태를 보면 후자가 더 가능성이 컸다.
“브라고!”
크라운이 날 바라보며 소리쳤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이명만이 내 귀를 감돌 뿐.
“으아악!”
몸과 영혼이 분리되는 이 느낌.
바깥에 있음에도 가슴이 답답하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기분.
죽을 것 같다.
“마왕님, 괜찮습니까?”
머리카락을 잡아 뜯으며 발작을 참아 보려고 노력하던 중.
제나가 내게 다가와 청록색의 영롱한 진주 알이 박힌 반지를 끼워 줬다.
그제야 차가운 냉기만 가득했던 속이 따뜻함으로 채워지며 발작이 멈췄다.
“허억······.”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고통이다.
이만큼 공황 발작이 심하게 온 적은 처음 겪었을 때 말고는 없는데.
발작이 잦아들면 후에 찾아오는 공허함이 더 내 마음을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때는 혼자였고, 지금은 동료 제나와 크라운이 있기에 정신을 다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제나가 내 손에 끼워 준 반지.
[단잉의 반지]
모든 디버프를 면역시켜 주는 장신구.
복개차가 디버프를 잠시 면역시켜 주는 물약이라면, 단잉의 반지는 패시브 효과가 담긴 장신구다.
“여기서 무너지시면 안 됩니다.”
제나의 부축을 받고 난 다시 일어섰다.
단잉의 반지를 끼니 마음의 평화가 오는 듯 가슴이 따뜻해졌다.
라이칸도 빠른 회복력으로 다시 완전 무장을 갖춘 모습이다.
그의 힘이 너무나 무섭지만, 난 혼자가 아니기에 그와 맞섰다.
“늑대 인간들이여, 총공격하여라!”
“자이언트 블럭!”
비바람을 뚫고 우리를 향해 뛰어오는 늑대 인간 부대들.
아직도 지평선 너머까지 보일 만큼 많은 병력에 오금이 저리지만, 내 옆엔 제나와 크라운이 함께하기에 두렵지 않았다.
번쩍!
그때 우리 앞으로 번개가 쳤다.
아니, 번개인 줄 알았지만, 누군가 파동을 일으킨 에너지였다.
그리고 그 에너지 속에서 나오는 한 사람.
피부색은 돌연변이 병사처럼 붉은색을 띠었지만, 그들과 다르게 영롱한 붉은빛을 내는 여인.
[돌연변이 하스마 공주 아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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