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먼치킨이 되었다-3화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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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입니다(2)

퀴퀴한 냄새가 가득한 수감실.

보사노바 찻집 사건으로 그린우드 교도소에 갇혔다.

“마왕님, 괜찮으세요?”

하루아침에 게임 속 마왕이 되었고, 그 몸으로 내 평생 가 본 적 없던 감옥에 갇혔다.

더구나 살인까지 했다.

아무리 게임 캐릭터라 생각해도 머리통이 날아간 채 내 앞에서 쓰러진 론 대령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미치지 않고서야 버틸 수가 없을 정도로 말이 안 되는 상황이다.

더구나 평화로운 풍차 마을이 내가 발사시킨 중력 에너지로 쑥대밭이 되었기에 죄책감도 생겼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히도 소환사인 제나가 교도관들 몰래 복개차를 소환해 준 탓에 겨우 정신을 붙잡고 있는데.

“마왕님, 날이 추워요. 제가 이불 소환했어요. 들어와요.”

난 소환사 악마인 제나의 도움으로 수감실 한쪽 구석에서 복개차를 마시며 공황 증세를 다스리고 있었다.

또한, 제나가 추위를 막아 줄 이불까지 소환해 주었지만, 차가운 쇠창살을 붙잡고 있는 게 마음이 편했다.

나의 수하라고 하지만 제나 또한 악마.

악마의 손길보다는 쇠창살이 낫지 않는가.

“괜찮아요.”

그나저나 그린우드 교도소에 들어온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자유도 높은 게임이라지만 튜토리얼의 땅인 그린우드에서 범죄자로 찍혀 교도소에 갇히게 되는 스토리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암살 집단 흑사협의 그림자를 일격에 쓰러뜨린 건 정말 멋졌습니다.”

제나가 아무렇지도 않게 미소 지으며 날 칭찬했다.

보스가 죽을 뻔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있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뭐. 마왕 브라고가 일개 대령 따위에겐 죽지 않는다는 걸 알았던 걸까?

그러나 제나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아무리 마왕이 이 세계 먼치킨이더라도 나는 공황장애 환자. 언제 공황 발작이 일어나 싸움도 못 해 보고 머리가 댕강 잘려 나갈지 모른다.

그 생각에 또 공황이 올 것 같아 나는 복개차를 한 모금 더 마셨다.

그러니 점점 복개차의 효능이 나타나는 듯 심란했던 마음이 진정되었다.

그리고 이성적인 생각이 들었다.

현생으로 다시 돌아가려면 그 방법을 알기 전까지 죽으면 안 된다.

내가 브라고 게임을 완벽 공략했던 시점에서 30년이 흘렀다.

이 세계에서 살아남으려면 30년간 바뀐 루기아의 세계관 정보가 필요하다.

나는 궁금했던 것 중 하나를 제나에게 물었다.

“암살 집단 흑사협은 또 뭡니까?”

“4대 세력 중 가장 악랄한 집단이라고 들었습니다.”

제나는 내가 바뀐 세계에 관심을 보이자 토끼 눈이 되어 내 곁으로 껑충 뛰어왔다.

“왜요? 마왕님, 4대 세력 모두 몰살시키고 또다시 세계를 정복하시려 합니까?”

“네?!”

제나는 브라고가 죽은 뒤 30년의 역사를 알기 쉽게 풀어 설명해 주었다.

“마왕님이 죽고, 10년 동안 루기아에는 지루한 일상만 반복되었습니다.”

“평화로웠다는 소리군요.”

“그런데. 다행히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는 법. 세계 정부에 속한 대장급 영웅들이 마왕님의 자리를 탐냈고, 그들이 따로 나와서 세력을 만들었습니다. 암살 집단 흑사협은 그 세력 중 하나고요.”

“마왕이 죽었어도 빌런은 계속 나왔군요.”

“그나마 좋은 소식이죠.”

“······.”

악마와 대화하니 말이 뚝뚝 끊어졌다. 나와 확연히 다른 사고방식.

난 그러려니 하고 새롭게 창단된 세력의 정보를 제나에게 물어봤다.

내가 브라고 게임을 플레이했을 당시만 해도 대장 직급 시험에 통과하면 세계 정부 소속으로 강제 입성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세계 정부 말고도 대장급 영웅이 거느리고 있는 세력이 새롭게 창단되었다니.

세계 정부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큰 세력은 네 개였다.

[범죄 집단 헨드릭스]

[암살 집단 흑사협]

[제국 라노키아]

[집행자 소사이어티]

라노키아와 소사이어티는 내가 브라고 게임을 플레이했을 당시에도 존재했던 유명한 길드였다.

물론 그 길드가 현재 세계 정부와 견줄 만한 세력으로 커졌다는 소식에 놀라긴 했다.

그래도 라노키아와 소사이어티에 있는 대장급 영웅들은 누구인지 추측하기 쉬웠다.

그러나 그 두 개의 세력과 다르게 헨드릭스와 흑사협은 이름조차 생소한 길드.

제나는 이 두 길드의 구심점이 바로 나라고 답했다.

“헨드릭스와 흑사협은 마왕님을 추종했던 영웅끼리 만든 세력이에요. 그들의 뜻은 마왕님의 뜻과 같죠.”

마왕을 추종하는 세력이라. 나는 그 세력의 공통점을 듣고 헛웃음을 지었다.

“나를 추종하고 있다면 그들은 저를 반겨 준다는 겁니까?”

“아뇨. 아마 발견하는 즉시 사지를 찢어발길 겁니다.”

“······?!”

“제가 말했잖아요. 마왕님의 자리를 탐내고 있는 세력이라고. 추종한다는 건 세계 정부에서 나오려고 내세운 명분일 겁니다.”

“제 편은 한 명도 없네요.”

“여기 있지 않습니까? 저.”

제나는 해맑은 미소와 함께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 제나 님 말고 다른 동료, 아니, 수하들은 어딨습니까?”

의문이 들었다. 30년 전. 브라고가 아무리 목숨을 잃었다고 해도 세계관 최강 자리에 있던 사람인데. 곁에 제나만 있다는 건 이상했다.

내 기억으론 브라고 또한 대규모의 군대를 거느리는 대군주였다.

“다 죽었습니다. 가이곤에게.”

그러나 제나는 한 인물에게 몰살당했다고 전했다.

가이곤. 낯익은 이름이다.

내가 플레이했던 캐릭터의 이름이기 때문이다.

3일 전. 브라고를 공략하기 위해 마왕의 소굴에 들어가 나를 저지하던 악마들을 모두 해치웠던 기억이 있긴 했다.

물론 그때는 마왕의 군대가 2D 게임 캐릭터였기에 그들을 죄책감 따위 없이 해치웠는데. 제나의 침울한 표정을 보자니 왠지 눈을 똑바로 마주 보지 못하겠다.

“그 가이곤이라는 자는 어딨습니까?”

“죽었습니다. 쌤통이죠.”

“왜죠?”

“네?”

“아니, 무슨 이유로 죽었나 해서요.”

확실하지 않지만, 소문에 의하면 세계적인 영웅 가이곤은 불치병으로 목숨을 부지하지 못했다고 한다.

왠지 내가 10년간 공들여 키웠던 캐릭터가 병으로 죽었다니 씁쓸해졌다.

“불치병으로 죽은 것이 아니라 배신 때문입니다.”

그때 옆 수감실에서 낯선 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배신이요?”

난 조심스럽게 음성이 들리는 벽에 다가가 다시금 물었다.

“당신이 론 대령을 해치웠다는 자요?”

그러나 낯선 이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 물었다.

“소문에 의하면 일격에 해치웠다는데 사실입니까?”

“그건 왜······.”

나는 이자가 론 대령과 친분이 있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 경계했다.

친분이 없는 사내라 할지라도 이곳은 범죄자들이 득실득실한 교도소.

그들과 말을 섞기 시작하면 괜히 또 위험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수 있기에 말끝을 흐렸다.

“가이곤의 죽음에 대해 궁금하신 건가요?”

그러자 그자가 또다시 내게 질문했다.

“알 수 있을까요?”

가이곤은 내 캐릭터다. 혹시 그 죽음의 비밀이 내가 이 게임 속으로 들어온 이유와 상관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었다.

0.0001%라도 내가 현생에 갈 방법을 알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아서 얼른 지옥 같은 게임 세계에서 나가고 싶었다. 아, 맞다. 내가 악마지······.

“절 도와주시면 알고 있는 모든 정보를 다 드리겠습니다.”

역시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것도 있는 법.

낯선 자는 사실 내일 처형식을 치르는 중범죄자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자신을 도와 달라는 요구를 했고, 그 요구에 응한다면 가이곤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전부 얘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중범죄자를 도우라니. 아무리 중요 정보를 준다고 해도 너무나 위험한 일.

“그저 저의 처형식이 일어나는 시각에 소란만 피워 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당신들도 제가 이 교도소에서 빼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나 또한 그린우드 수감실에서 주야장천 계속 있을 수는 없기에 낯선 자의 제안이 매력적으로 들려왔다.

“당신을 어떻게 믿죠?”

“뭘 믿습니까? 구리게. 그저 원하는 게 있다면 서로 돕자는 거죠.”

“흠······.”

뱀의 혀 같은 그자의 매력적인 제안에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덜컥 돕자니 그가 중범죄자이고, 그렇다고 안 하기엔 너무나 매력적인 제안이다.

제나에게도 조언을 구했지만, 재밌을 것 같다며 그저 해맑은 미소로 답하니 도움이 되지 않았다.

어찌 됐든 나도 수감실에서 탈출해야 하는 인물.

“처형식이 몇 시입니까?”

나는 그자의 손을 잡기로 했다.

* * *

다음 날이 되었다.

더럽고 냄새나는 수감실에서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어 나는 밤을 지새웠다.

옆에서 코까지 골며 자는 제나가 대단해 보이는 한편 미안했다.

수감실이 폐쇄적인 탓에 새벽부터 지금까지 공황 증세만 여덟 번 정도 나타났다.

다행히 복개차 때문에 진정됐지만. 나 때문에 제나는 계속 잠에서 깨어나 복개차를 소환시켜 줬다.

그래서인지 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지금까지 코 골며 자는 제나.

그녀의 잠투정 때문에 밀려난 이불을 난 다시 잘 덮어 주었다.

그러던 중 교도관들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1082번 수감자. 나와!”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옆 수감실의 문이 열렸다.

‘처형식이 일어나는 시각엔 수감실을 지키는 이들을 포함한 모든 교도관은 처형장 앞에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그때 난동을 부려 주시면 됩니다.’

어젯밤 그가 부탁한 일.

난 다시 손을 모아 중력 에너지를 느꼈다.

그러자 또다시 뜬 스킬 창.

[블럭]

중력 에너지를 이용한 에너지파.

“저기, 이제 일어나야 합니다.”

“음냐······.”

밤새도록 내가 깨워서 잠이 부족한 듯 일어나기 힘들어 보이는 제나.

그러나 조만간 이곳에서 난동을 부려야 했기에 난 그녀를 계속 깨워 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때 또다시 수감실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교도관들이 자리를 비운다고 했는데.’

혹시나 어젯밤 낯선 자와 나눴던 대화를 교도관이 엿들은 것이 아닐까 싶어 경계 태세를 취하는데.

쾅쾅!

그때 갑자기 폭발음이 그린우드 교도소 안에 울려 퍼졌다.

그것도 여러 번!

“일어나 봐요!”

계획에 없던 폭발 소리에 난 제나를 억지로 일으켰다.

그때 폭발의 여파 때문인지 쿠쿵! 소리와 함께 수감실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다행히 천장이 완전히 무너지기 전에 스킬을 사용해 철창 문을 부수고 나왔다.

스킬의 위력은 여전했다. 그저 굳게 닫힌 철창만 부수려 했지만, 또다시 중력 에너지 파동이 날아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쿠아앙!

그러나 내 스킬 위력에 감탄할 시간은 없었다. 폭발음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수감실뿐만 아니라 그린우드 교도소 전역에서 폭발이 일어난 듯했다.

‘무슨 테러라도 일어난 건가?’

긴장으로 심장이 매우 뛰었다. 그러자 공황 증세가 심해졌다.

나는 쿵쿵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는 일단 어둡고 퀴퀴한 수감실 밖으로 나가야겠다 생각하며 뛰쳐나갔다.

삐삐삐―

위급 상황 때만 울리는 사이렌 소리가 수감실 전체를 집어삼켰다.

붉은 조명이 수감실 내부를 비췄고, 무너진 천장에 깔려 죽은 죄수들과 나처럼 도망치는 죄수들도 보였다.

죄수들은 하나같이 내가 뚫은 곳으로 뛰쳐나갔다.

‘씨X.’

최전방에 있던 죄수의 목이 눈앞에서 일직선을 그리며 댕강 잘려 나갔다.

뒤에는 폭발로 무너지는 수감실.

물러설 곳이 없었기에 죄수들은 굉음을 내며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일격으로 출구에 선 죄수들의 몸뚱어리가 종이처럼 쉽게 잘려 나갔다.

타탓―

그리고 잘려 나간 죄수의 몸뚱어리에서 튄 핏물이 내 얼굴에 묻었다.

난 그 자리에서 엉덩방아를 찧었고, 출구로 향했던 죄수들이 한 남성의 일격에 고깃덩어리가 되는 모습을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출구를 지키는 중년 남성 머리 위.

그를 지칭하는 칭호를 보고 말이다.

[그린우드 교도장 플리처 대장(大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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