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먼치킨이 되었다-1화 (1/65)

프롤로그

“해치웠나?”

난 복합적인 감정이 섞인 한숨을 내뱉었다.

드디어 진보스인 브라고를 완벽 공략하는 데 성공한 것인데.

메인 빌런인 브라고를 해치운 후. 진엔딩이 나오자 자연스럽게 키보드와 마우스에 있던 손이 올라갔다.

브라고(멸망의 세계)는 출시된 지 10년도 훨씬 넘은 한물간 게임이지만, 초반엔 장대한 스토리와 자유도 높은 플레이로 많은 유저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다.

아마 극악인 진보스의 공략 난이도만 조금 낮췄더라면 인기는 오래갔을 것으로 생각이 드는데.

게임이 출시된 후. 몇 달 뒤. 진보스인 브라고를 완벽 공략하기 위해 최고 레벨인 대장급 유저 66명이 한날한시에 모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66명의 랭커가 붙었음에도 브라고를 완벽 공략하지 못했고, 유저들은 극악 난이도인 보스 레이드에 현타를 느꼈다.

그 이후 보스 난이도 좀 내려 달라는 유저들의 요청이 빗발쳤음에도 운영진은 묵인했고, 그 결과 많은 유저들이 등을 돌렸었다.

그러나 난 할 수 있는 게 한정적인 다른 RPG 게임과 달리 자유도 높은 브라고 게임에 흠뻑 빠졌었다.

그 때문에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플레이하여 드디어 66명의 랭커도 공략하지 못한 진보스 브라고를 홀로 해치우는 데 성공했다.

‘후.’

진엔딩과 함께 기획 운영진들의 이름이 새겨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그 한숨엔 뿌듯함보단 공허함이 가득했다.

[보상 : 용사의 간절한 소원이 이뤄질 겁니다.^^]

보상이라도 좋았으면 공허함이 크게 자리 잡지 않았을 것이다. 장장 여섯 시간이란 긴 시간 동안 브라고를 겨우 공략한 나에게 포춘 쿠키에 나올 법한 한 문장이 전부인 보스 보상.

“씨X, 망 게임인 데는 이유가 있구나.”

튜토리얼 때보다도 못한 보스 보상을 보고 가슴을 부여잡았다. 화가 나서 공황 발작이 나타날 뻔했기 때문이다.

* * *

마우스를 다닥다닥 클릭했다.

이제 진보스도 잡았겠다. 이 게임에서 더는 색다른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중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브라고 게임을 한 지도 어언 10년.

아무리 자유도 높은 게임이더라도 10년의 세월을 갈아 넣으면 안 가 본 곳, 안 해 본 임무가 하나도 없는데.

이미 운영진들도 손을 놓은 듯 마지막 업데이트 날짜도 3년이 지났다.

새로운 임무가 없으니 공허해졌다.

공허해지니 우울감도 찾아왔다.

사실 난 공황장애 환자다.

공황장애란 갑자기 엄습하는 강렬한 불안, 즉 공황 발작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장애인데.

과거엔 연예인들만이 종종 겪는 병이었다가 현대 사회에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일반인에게도 불시에 찾아오는 병이 되었다.

나 또한 중학교 시절, 어느 한 사건을 기점으로 공황 발작이 심해졌다.

하지만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공황장애로 고생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래서 브라고 게임에 인생을 갈아 넣은 것도 있다.

현생에선 밖에 나가는 것조차 힘들었던 나에게 브라고 게임은 안식처와도 같았다.

게임 속 세계에선 난 현생에서와 다르게 정점을 찍은 유저였고, 서버에 아홉 자루밖에 없는 무기 중 하나인 ‘흑성의 정신’ 또한 운 좋게 획득한 탓에 아무리 극악 난이도로 등 돌린 유저가 많아도 끝까지 이곳에 남았었다.

그리고 임무를 깰 때마다 얻는 성취감은 사회생활이 전무후무한 나에게 있어 삶의 원동력과도 같았기에 게임을 할 때만큼은 공황 발작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했다.

그러나 이젠 그 게임도 끝났다. 현재 나이 스물다섯 살. 반오십. 이제는 게임이 아닌 세상 밖으로 나갈 때가 되었다.

* * *

3일이 지났다.

오늘 난 컴퓨터 앞이 아닌 버스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이곳에 앉아 있는 이유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내준 숙제 때문이다.

공황장애는 완치되는 병이 아니다.

공황은 자신이 극복해야만 하는 병이다.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말하길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선 다양한 경험과 많은 사람들과의 의사소통이 필수라고 했다. 공황 발작이 와도 불안에 떨지 않고, 신체 감각에 대한 민감성을 떨어뜨리는 훈련을 해야 한다던데.

그렇게 외부 노출을 가지면 가질수록 공황이 와도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이지 않고 마음을 홀로 다스릴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말이야 쉽지. 버스 정류장 앞에 앉은 지 고작 2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내겐 두 시간이 흐른 것처럼 느껴졌다.

홀로 버스에 타면 공황 발작이 일어나 심장 마비로 죽을 것 같은 기분.

정신과 의사 선생님이 공황장애는 죽지 않는 병이라고 신신당부했지만, 그래도 공황 발작은 불안하고 두려웠다.

그리고 내 한심한 모습에 기분이 더러워졌다.

그 와중에 내 마음도 모르는 듯 정류장 앞에 버스가 한 대 도착했다.

유유히 승객을 싣고 정류장을 떠나는 버스.

버스가 지나가자 반대편 건물에 쓸쓸한 정류장이 비쳤다.

승객이 모두 탄 듯. 아무도 없는 버스 정류장.

그러나 난 버스에 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만약 그 버스에 탄다면 공황 발작이 올 것만 같은 기분에 정류장을 지나쳐 집으로 돌아갔다.

“하.”

집으로 돌아가던 중 헛웃음이 났다.

게임 속에선 매우 어렵다는 고난도 임무도 잘만 깼는데, 이런 쉬운 숙제조차도 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너무 비참하고, 절망스러웠기 때문이다.

집으로 가는 도중 마치 외롭고 추운 깊은 심해 속에 홀로 던져진 느낌이 들었다.

비참함에 차라리 게임 세계로 떨어졌으면 하는 비현실적인 소망을 꿈꿨다.

털썩―

그런데 그때.

비참함과 절망감 때문이었을까. 시야가 흐릿해지며 어둠 속으로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공황인가 싶었지만, 느낌이 다르다.

나는 겨우 의식을 붙잡으려 노력했지만, 정신이 아득해지며 끝내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들리는 한마디.

“마왕(魔王)님, 일어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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