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88 나의 문제 =========================
옆트임도 좀 한 것 같다. 나는 성형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고 싶으면 하는거다. 하지만 성형 한 사람들은 대개 묘한 자의식이 있기 마련이다. 서영하는 표정이 살짝 굳는다.
“…너 그거 나 보고 하는 말이야?”
“어? 너 성형했어?”
나는 처음 듣는다는 듯 말한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듯 눈을 살짝 내리깔며 말한다.
“아, 미안…. 진짜 몰랐어. 어디 한거야? 별로 티 안 나는 거 같은데.”
좋아, 내가 이기고 있다. 얼마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한 듯 안 한 듯 성형을 했다고 비아냥거리는거다. 내가 이런 돌려치기 화법을 구사하게 되는 날이 오다니. 서영하는 한 방 먹은 표정이 되더니 커피를 마시며 침착하게 말한다.
“하긴, 남자들은 잘 못 알아보더라.”
음, 틀린 말도 아니고 맞는 말도 아닌 요상한 시비다. 그런데 뭐, 나를 어떤 젠더로 정의하냐에 따라서 상처받을 시기는 지났다. 남자라고 해도, 여자라고 해도 뭐 그게 그거다. 나는 머릿속에서 무슨 말을 할지 찬찬히 생각해본다.
“인류의 절반은 너 성형 하든 안하든 못 알아본다는 거구나?”
“……애초에 성형은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거 아니거든? 그냥 내 자기만족이지. 그런 말 진짜 개념없지 않아? 성형이 무슨 남자한테 잘 보이려고 하는 거라는 머저리들 있잖아.”
서영하가 조금 세게 나온다. 하지만 나는 그 대답까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나는 함정을 판거다.
“아아…. 하긴 뭐, 네 말이 맞지. 성형은 애초에 자기만족이니까. 그냥 너만 거울 보고 만족하면 되는 거잖아? 남들이 안 한 것 같다느니 잘 안 된 것 같다느니 해봐야 너만 좋으면 된거니까. 괜히 오지랖 부려서 미안해.”
초반 승기는 내가 잡았다. 나도 입 놀리는 건 어디 가서 안 꿀리는 사람이다. 내 주변 사람들이 너무 거기에 특화된 인간들이 많은 탓이다. 서영하는 자기가 한 말이니 반박도 못 하고 커피만 쪽쪽 마시고 있다.
“너 그런데 선준오빠랑 같이 산다며?”
“응, 뭐 그렇지.”
페이즈 전환이다. 서영하가 다른 방법으로 공격해오기 시작했다.
“막 사람들이 좀 그런 얘기들 하던데, 진짜야?”
“뭐가 진짜야?”
“그러니까…. 그런 소문 같은 거.”
뭘 말하는지 내가 모르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거에 호락호락하게 넘어줄 생각은 없다.
“아, 나 예전에 그 때 일 이후로 헛소문 같은거 신경 안써서 잘 몰라. 무슨 헛소문?”
“헛소문? 너 진짜…. 아직도 그 때 일 인정 안 하는거야?”
서영하가 내 말에 인상을 팍 쓴다. 지겹다는 듯한 표정이다. 오히려 내가 놀랍다. 이쯤이면 타임머신이 개발되어야 이 년의 정신병을 고칠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오히려 평행우주론을 주장하면서 이건 날조된 과거라고 하려나?
“뭘 인정해? 네가 네 스스로를 대상으로 자가최면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실험 했던 거? 그거 성공적이었잖아.”
“뭐, 뭐라고? 너 지금 나 정신병자 취급하는거야?”
“야, 왜 그렇게 심하게 말해?”
나는 흥분하는 서영하를 진정시킨 뒤 말을 계속한다. 복수의 쾌감은 아주 짜릿하다. 나는 지금 상당히 여유만만이다.
“네가 못된 게 아니라 너는 좀 아픈거야. 치료 받으면 고칠 수 있어. 네가 아픈 게 네 잘못은 아니잖아?”
완전히 정신병자 취급하는 태도에 서영하는 잔뜩 쥔 손을 부들부들 떤다. 네가 아무리 미친년이라지만 너도 네가 이상하다는 것 정도는 알겠지. 모르면 그게 사람이야?
“너, 너 진짜…. 오랜만에 만나서 좋게 얘기하려고 했는데. 너 미쳤어?”
“미쳤으면 어때, 얼굴에 칼질한 너랑은 비교도 안 되게 예쁜데.”
나는 승리자의 미소를 짓는다. 서영하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분노에 떨고 있다.
“아, 너 취직 했다며, 축하해. 그건 진짜지? 무슨 뭐 가상의 직장 이런 거 아니고?”
동정심이나 연민 같은 건 없다. 나는 비틀렸고 꼬인 인간이다. 당한 건 잊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 모욕하고, 어떤 식으로 찢어버릴지에 대해서 예전부터 생각해왔다. 다만 내가 남자라서 하지 못했다. 남자가 여자한테 그런 소리 하는 순간 매장된다. 하지만 나는 여자다. 여자라서 이 년한테 할 수 있는 말들이 있다.
서영하는 입술을 깨물더니 나를 노려보다가 눈물을 떨군다. 그리고는 곧 얼굴을 가린 채 운다.
“너…. 너 진짜 너무하는 거 아니야?”
“왜, 사실을 그만 말하라고?”
나는 계속 비아냥거린다.
“할 말 없을 때 쳐 우는 거 좀 고쳐, 그거 인간이 덜 됐다는 증거잖아. 감성대로 살고 싶으면 그냥 동물이 되는 게 어때?”
“맨날 안아달라고 징징대던 새끼가…. 너 그 때 존나 찌질해 보였거든?”
서영하가 나를 보며 독살스럽게 말한다. 좋게 말하는 걸 포기한 모양이다. 맞다. 나는 애정을 갈구한다. 연인에게 매달리고 집착한다. 나는 내가 얼마나 상대방에게 요구하는 게 많아지는지 알기에 더 이상 연애 같은 건 하지 않는다. 나 혼자 생각하고, 나 혼자 상처받는 시간들이 싫다.
하지만 서영하가 말한 건 내 약점이 아니다.
“응, 그 때는 그랬지. 근데 지금은 아냐, 안아줄 사람 같은 거 필요없어.”
나는 서영하를 보며 웃는다. 내 표정 내가 생각해도 괜찮은 것 같다.
“그런데 너는 옛날이랑 변한 게 없다. 얼굴보다 마음이 동안이야……. 부럽네. 아, 맞다, 혹시나 해서 말해주는데, 이거 칭찬이 아니라 비아냥거리는거야.”
“너 이 썅년이!”
-휙! 철퍽!
“아악! 뭐야 이거!
서영하가 내게 플라스틱 커피잔을 던졌다. 하지만 나는 잽싸게 옆으로 몸을 돌려 그걸 피했다. 내가 피하자 내 뒤에 있던 사람이 그걸 맞았다. 미친년, 뜨거운 거 시켰으면 어쩌려고 그걸 던져? 나는 그걸 보며 어이가 없어진다. 서영하는 내가 피할 줄은 몰랐는지 당황해서 말도 제대로 못 한다.
“어, 어? 어?”
“니가 한 거니까 니가 해결해. 혹시 사람들이 다 봤는데 내가 했다고 하지는 않겠지?”
“아 진짜! 야! 너 뭐야!”
나는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난다. 서영하는 자신이 던진 커피를 뒤집어쓴 사람을 보며 정신착란이라도 일으킬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다.
“만나서 더러웠고, 영원히 보지 말자.”
나는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카페를 나온다. 커피 맞은 사람의 일행들이 나와 서영하를 번갈아 쳐다본다. 어쩌라고? 내가 던진 거 아닌데. 나를 그렇게나 엿 먹였던 사람에게 폭언을 쏟아버리는 건 정말 통쾌한 일이다.
너무나 통쾌하다. 기분좋다.
[야 이 개년아!]
카페에서 나온 뒤, 한참 뒤에 어떻게 사태를 해결하긴 한건지 서영하에게서 전화가 왔다. 미친 것처럼 욕을 퍼붓는 서영하는 지금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나는 한참 듣다가 한 마디 한다.
“녹음했다. 고소할거야.”
[해! 하라고! 너 죽여버릴거야!]
“살해협박까지 추가되겠는데?”
[너….. 너! 너! 너!]
“야, 너 뭐 잘 모르나본데. TS바이러스 발병자들은 자살률이 높아서 국정원에서 생활 전반에 대해서 보조해주거든? 내가 너 명예훼손으로 찌르면 어떻게 될 것 같냐?”
[뭐, 뭐? 거짓말 하지 마!]
“그럼 더 해 봐, 녹음 파일 갖다주면 어떻게 될지 나도 궁금하니까. 아니면 사과하던가.”
[…….]
“사과 안 할 거면 끊는다. 경찰서에서 보자.”
[미, 미안!]
“제대로 사과해.”
[미안해…. 잘못했어.]
“응 앞으로 착하게 살고, 연락하지 마 알았지? 그리고 너가 허튼 짓 하는 순간 이거 들고 경찰서 찾아갈 거니까 실수 하지 말고.”
-뚝
나는 전화를 끊어버린 뒤 혼자서 침대를 구르며 웃는다.
“진짜 병신 아냐? 국정원이 내 명예훼손을 왜 신경써? 그걸 또 믿고 자빠졌네. 으흐흐흐. 진짜. 진짜 이렇게 사람이 멍청할 수 있냐? 응?”
“너 진짜 살해당하려고?”
“그럴 년이면 애초에 소문으로 날 조졌겠어?”
이선준이 걱정스럽다는 듯 날 쳐다본다. 나는 차단 목록에 서영하의 전화번호를 등록한다. 카톡도 당연히 차단해놨다.
“회사생활이 힘들긴 한가보네, 그래도 침착하게 질질 짜면서 뒷공작이나 하던 애가 심한 말도 하고.”
나는 완벽한 승리감에 도취돼서 중얼거린다.
“뭐, 들어보니까 졸업관련 서류 때문에 왔다더라. 뭐 학교 돌아오고 이런 건 아니래.”
이선준이 낄낄거리며 좋아하는 나를 보며 말한다. 그런 게 필요한 건 취직할 때 빼고는 없다. 뭐, 다른 경우도 있긴 할건데 대체적으로는 이력서에 포함된다. 나는 고개를 번쩍 들며 묻는다.
“누구한테 들었어?”
“담당교수한테.”
이선준은 교수들이랑 친분이 꽤 있다. 물론 학과장은 본인이 좀 싫어하지만 그래도 일단 소설을 잘 쓰니까 강사 및 교수들과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긴 하다.
“뭐야, 그럼 쟤 회사 그만둔거야?”
“음….. 너 이거 들으면 너무 좋아할 거 같아서 말해주기 싫은데.”
이선준은 나를 보더니 혀를 찬다.
“아 왜! 말해줘. 그렇게 말하니까 진짜 궁금하거든?”
“회사에서 좀 트러블이 있었나봐. 그래서 좀…. 떠밀리듯이 나왔대. 해고라고 하긴 좀 그렇고.”
그냥 찔러보듯 말한건데, 회사에 대해서 말했던 게 진짜였다니 나도 좀 충격받는다. 그냥 엿 먹으라고 한 말이 사실 죽창이었던 셈이다.
“어휴 등신 같은 년. 그러게 왜 똥오줌 못 가리고 다녀?”
좀 안쓰럽기는 하다. 하지만 뭐 트러블이 났다는 건 결국 서영하도 잘못이 있다는 소리다. 무슨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또 거지 같은 정치질이나 구라를 틀고 다니다가 그렇게 됐을거다.
뭐, 뿌린 대로 거둔다더니 그런 게 안 통하는 세상으로 가버린 모양이다. 이선준은 묘하게 심각해져있는 나를 보며 말한다.
“그러니까 도발 그만해. 잃을 게 없는 애가 너랑 같이 분신자살이라도 하겠다고 하면 어쩌려고?”
“음, 그래야겠네.”
불쌍하거나 동정하는 건 아니다. 그냥 병신을 병신 보듯 쳐다보는 정도의 마음이다. 이선준은 나를 비난하지 않는다. 내가 당한 걸 알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뒤로 서영하가 나타나 해코지를 하거나,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살 길이 바쁘니 뭔가 하러 가버린 모양이다. 결국에는 누굴 소개시켜 준다더니 하는 말들도 전부 거짓말인 모양이다. 걔를 믿고 있는 후배들은 그 사실을 모를거다. 뭐, 굳이 내가 말해주고픈 생각은 없다.
서영하를 만나니 그런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다. 과거의 연인을 만나는 건 결국 더러운 기분밖에 남기지 않는다. 폭언을 퍼붓고 쌓였던 마음의 응어리는 풀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여전히 내 문제들은 남아있다. 그런 것들은 단 하나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결국 나는 연애가 갖고 있는 부정적 속성들을 다시 한 번 확인했을 뿐이다.
서영하와 한 때는 서로 좋아했다. 서로 사랑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상처받은 기억들만 남아서 결국에는 다시 만나자마자 서로를 물어뜯기 바쁘다. 서영하와 연애를 안 했다면 그냥 평범하게 얘기하거나, 그냥 친한 여자인 친구로 남아있었을 수 있다. 서영하와 그냥 단순히 친한 친구로 남았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본다.
내가 이렇게 되었을 때, 나를 여러모로 도와주고, 알려주고, 상담할 수 있었을거다.
내 주변에 남은 여자가 단 한 명도 없어서, 나는 그런 것들을 혼자 알아내고 혼자 해 낼 수밖에 없었다. 결국 연애라는 건 평생 할 게 아니면 쓸모가 없다. 나는 비관주의자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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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생각해보면 그렇게 구르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내 착각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