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6 시궁창이라도 나만은 내 삶을 사랑해줘야지 =========================
아무도 내 기분을 이해할 수 없다. 누군가 안다는 것처럼 어깨를 두드리면서 힘내라고 얘기하면 대가리를 소주병으로 깨부숴버릴지도 몰랐다. 그래 나는 꼬였다. 꼬인 놈이다.
그런 나라는 놈의 인생이 더 이상 꼬일 수 없을 정도로 꼬여버렸다.
이선준은 혼자 담배를 피웠다.
“가족들한테는 연락 안 했다. 해도 네가 하는게 맞는 일이겠다 싶어서.”
“…고마워.”
실려온지 나흘이나 지났는데 가족들이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것이었다. 내가 기절해 있는 사이에 모든 것이 지나가버리는 것보다, 내 스스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주는 것이 낫겠다 싶었던 모양이었다. 고맙긴 한데, 이 사람은 가끔 생긴 것 답지 않게 지나치게 섬세하다.
”여기 계셨군요.”
“…누구세요.”
싸가지 없는 의사가 사라졌나 싶었더니, 이번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의 등장이었다. 그는 옥상문을 열고 나타났다.
“국정원에서 왔습니다.”
“네?”
나는 화들짝 놀랐다. 나보다 더 놀란 것은 이선준이었다. 한때 운동권으로 활동하면서 여기저기 켕기는 곳과 친분이 있던지라 국정원이니 국가기관이니 하면 몸이 뻣뻣해지는건 여전했다. 아직 군인인 주제에. 뭐 그래봐야 대단한 반국가주의자는 아니었기에 그냥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국정원이 여긴 왜 오지? 설마 그동안 생각만 하고 설마했던 TS발병자 감금 생체실험 같은게 진짜로 있는건가? 나는 그럼 두꺼비처럼 플라스크에 담겨서 박제된 채 인생을 마감하는건가? 어쩌지? 여기서 뛰어내려야 하나? 아니, 국정원이라면 이미 이 주변은 포위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이선준은 진짜로 그것보다 심각한 생각을 하는지 주변을 빠르게 훑고 있었다.
‘내가 너 데리고 뛰어내릴 테니까 너 먼저 도망가, 내가 막고 있을 테니까. 이 층 창틀에 착지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려.’
아주 낮은 목소리로 이선준이 속삭였다. 나는 그 말에 실려있는 비장한 느낌에 압도되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국정원이라니, 내 인생 평범한 날백수 지망생에서 인체실험 대상자라니, 격상되어도 너무 격상되었다. 나는 탐크루즈도 아니고, 국정원을 피해 도망다니는 미션 임파서블을 할 자신은 추호도 없었다. 울고싶다. 진짜로 울고싶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그 남자는 천천히 걸어오더니 품에서 명함을 꺼냈다.
“발병자 보호 프로그램에 대해서 안내를 받으셔야 할 게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설원 씨 맞으시죠?”
“아? 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단어가 나오자 나와 이선준은 동시에 벙쪘다.
나와 이선준은 뜬금없는 오해를 풀고 병실로 내려와 그 국정원 직원이라는 아저씨의 설명을 들었다.
TS발병자들은 여자에서 남자로 바뀌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회생활이 불가능해질 정도로 타격을 받는 것이 대부분인 모양이었다. 대한민국의 발병자들 수는 첫 발생 후 오 년 동안 총 열일곱 명이었다. 발병자 보호 프로그램이라는 것은 재작년에 신설되었다. 골자는 간단했다. 발병자들에게 새로운 신원을 발급해주고, 새로운 직장, 새로운 장소에서 다른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국가적 차원에서 도와주는 것이었다.
“왜 그래야 해요?”
내 질문에 국정원 직원은 입술을 꾹 다물더니 침중한 어조로 말했다.
“발병 사실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지냈던 사람들 대부분이 자살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천천히 설명했다. 대한민국 첫 번째 발병자는 남고생이었다. 남고에서 갑작스럽게 여자로 TS된 그 발병자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학교 소위 일진들에게 성폭행을 당한 모양이었다. 원래 남자였으니 죄책감도 덜했을 테고, 너도 남자였으니 우리 마음을 알지 않느냐. 너도 좋지 않느냐는 태도인 모양이었다.
TS발병자들에 대한 성범죄 관련법 제정이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 발병자는 수차례 윤간당하고, 심지어는 친했던 친구들에게마저 성폭행을 당한 모양이었다. 결국에는 임신하게 되었고, 그 아이는 자살했다. 자신의 몸을 수 차례 난도질하고 과다출혈로 사망했다. 자신의 얼굴을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상처입혔다.
여자가 남자가 된 경우가 있었다. 그 여자는 가정이 있던 주부였다. 더 이상 듣지 않아도 결과는 뻔했다. 남편은 남자로 변한 아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남편은 겉으로는 괜찮은 척 했지만 매일 술로 밤을 지샜고 외도를 했다. 아내는 그것을 비난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아빠가 둘인 가정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심플하지만 그래서 더 비극적이었다. 그 여자는 목을 매달고 죽었다.
여고생이 남자가 된 경우가 있었다. 그 아이는 자신의 성대로 살아가려 했지만 남자들의 사회에 녹아들지 못했다. 여성스러운 태도를 바꾸지 못해서 왕따를 당했다. 맞고, 놀림당했다. TS발병자였기에 남자들은 그 발병자에게 일부러 묘한 스킨십을 계속했고, 수치심을 이길 수 없었다. 그 발병자는 노량진역 지하철에 몸을 던졌다.
남자가 여자가 된 경우의 자살 원인은 가장 주된 것이 성폭력이었다. 원래 남자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쉽게 성폭행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사회의 시선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남자가 여자가 되든, 여자가 남자가 되든 똑같았다. TS발병자는 게이나 레즈비언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또 다른 것이었다. TS발병자는 이제 새로운 또 하나의 성처럼 취급되었다. 그들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채 그 어느 그룹에도 들어갈 수 없는 이질적인 존재가 되었다. 발병자들은 사회의 그 괴물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을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외모 자체는 나쁘지 않다. 오히려 미남이거나 미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변화된 성 쪽의 사람들에게 배척당한다. 남자였던 사람은 여자에게 배척당하고, 여자였던 사람은 남자에게 배척당한다. 그렇다고 해서 원래의 젠더 사회로 돌아갈수도 없었다.
그래서 발병자들은 자살했고, 발병자 보호 프로그램이 생겨난 것이었다.
“발병자임을 숨기지 않고 사는 사람들 중에 마지막으로 남은 게 지금 김연주 씨입니다. 현재 발병자 보호 프로그램의 관리 하에 있는 사람은 총 세 명입니다. 설원 씨의 앞에서 죽은 사람은 프로그램을 거절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말에 나는 정신이 멍해지는 것 같았다. 솔직히 대한민국 욕했던 거, 사과해야겠다. 겨우 몇 명의 발병자들을 위해서 신분을 발급해주고, 생활까지 보조해 주겠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나라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신경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민선동이나 하면서 욕을 더럽게 처먹는 기관이었지만, 어쨌든 나라의 정보기관을 국민의 행복을 위해 사용해준다는 것이었다. 고맙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이선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나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는 뜻이었다. 끼어들지 않고 있다. 왠지 서글펐다. 그게 결국 너의 인생은 온전히 너의 몫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결국 남이라는 말처럼 생각됐다.
보호 프로그램이니, TS바이러스니 뭐니 하는 것들을 깨어난지 세 시간도 안 되어서 들으려니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나는 이런 것들을 단박에 처리하고 훌훌 털고 일어설 만큼 심지가 굳은 인간이 아니었다. 여자가 되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벅찬데, 지금까지 이뤄놓은 모든 것들을 버리고, 새 삶을 살아간다는 건 정말 부담스러운 결정이었다.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자 결국 이선준이 입을 열었다.
“조금 시간을 두고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지.”
그 말이 내게는 구원처럼 느껴졌다.
“네, 어려우시다면 시간을 두고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하나 물어봐도 돼요?”
“네.”
“대학생으로 시작해도 되는거에요?”
“학비 지원 같은 부분이나 생활비, 기초 정착금 같은건 예산이 편성되어 있습니다. 음…. 이 느낌이라면 고등학생도, 잘하면 중학생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여, 여고랑 여중도? 히익!”
“아, 뭐…. 그럴 수도 있겠죠.”
내가 갑자기 헛소리를 하자 이선준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자, 장난, 장난이야! 뭘 그런 눈으로 쳐다보고 그래?”
“야, 너는 이 상황에 농담이….”
이선준은 그렇게 말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농담이라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 같은 내 표정을 본 탓이었다. 이렇게 개소리라도 지껄이지 않으면 머리가 부서질 것 같았다. 나는 씨익 웃으며 중년 남성에게 질문했다.
“저 4학년인데 학점이 2.13인데요. 4학년 2학기에 평점 4.5로 편입할 수 있을까요? 토익 990점이랑 행시랑 외무고시 합격증도 만들어주시면 안돼요?”
“될 리가 없지 않나요 설원 씨…. 신입생 편입은 가능합니다. 이름이나 주민등록번호 신규발급,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직장 추천 등은 가능합니다. 애초에 취직이 된다는데 학점이 뭐가 필요해요?”
“초봉 오천 이상에 사대보험 되고, 월차에 연차 보장되는 곳이에요? 그리고 국민연금 면제해주시면 안돼요? 요즘 빵꾸나서 돈 못 받는다면서요.”
“….사는게 그리 쉽지 않다는걸 아실 나이 아니에요? 그리고 저는 월급에서 그런거 전부 제하고 나와서 그런 직장 있어도 추천해드리고 싶지 않은데요.”
점점 국정원 직원이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자 나는 웃었다. 그 중년 남성은 내 시선을 피했다. 이선준은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아직 잘 모르고 있었다. 내가 웃는 것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