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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설원입니다-53화 (53/224)

00053 고생길 탄탄대로 =========================

녀석은 참았다. 나도 안다. 나도 몸이 안 떨어졌다. 서로에 대한 감정이나 이런 것을 떠나서, 방금 전 상황은 나와 박헌영이 입맞춤을 하는 상황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심장이 뛴다. 방금 박헌영이 밀어붙였다면 나는 저항하지 못했을거다. 저항하지 않았을거다.

나는 내 마음이 그렇다는 걸 안다.

좋아하는게 아니다. 그냥 분위기가 그랬던거다. 나는 벌떡 일어난다. 청바지는 이미 갈아입은 상태다. 종이봉투에 청바지와 속옷을 넣고 나는 운동화를 신는다. 박헌영은 잠들었는지, 잠튼 척을 하는건지 미동도 없다. 나는 집을 나온다.

밖이 춥다. 너무 춥다. 밤바람이 매섭게 얼굴을 때린다.

나는 뭘까. 나는 뭘 원하는걸까. 뭘 하려는걸까.

나는 왜 물러나지 않았던 걸까. 나는 정말 여자가 되어버린건가. 분위기에 휩쓸려서 그 상황에 움직이지도 못할만큼?

모르겠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중요한 건 박헌영은 술에 취한 와중에도 참아냈다. 그리고 자신이 실수할까봐 나를 내보냈다. 나는 추운 와중에도 웃는다. 좋은 녀석이다. 그건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도 힘이 난다.

내 처지는 비관적이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 친구가 있다. 나를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다.

사람은 홀로 설 수 없다. 나는 내가 홀로 완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을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다. 나는 글을 쓰고, 그런 환경만 주어진다면 괜찮다고 여겼다.

이제는 아니다. 나는 사람에게 관계라는 것이 전부가 되어버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관계가 없이 사람은 살아갈 수 없다. 집구석에서 게임만 하는 방구석 폐인이라도 똑같다. 가상이기는 하지만 관계를 만들고, 사람을 만난다. 누구도 미움받는 걸 원하지 않는다.

여자들은 나를 생리적으로 혐오할거다. 남자들은 나는 생리적 욕구로 바라볼거다.

그러지 않는 사람의 존재가 내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있다. 그래서 너무 다행이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백만장자에게 백만원은 푼돈이고, 나 같은 가난한 대학생에게는 엄청나게 큰 돈이다.

행복도 같다. 평상시에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살았던 것들이 이제 보인다.

하루의 대부분을 우울한 기분으로 보내고,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자꾸만 겪고 있다. 그러고 보면 아주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되고, 조그마한 배려에도 마음이 떨린다. 그런 아주 작은 행복의 조각들을 만나다 보면 아주 조금이지만 행복하다는 기분도 든다.

산다는 건 결국 같은거다. 남자가 되었든 여자가 되었든 같다.

우리는 작은 행복의 조각들을 지나치지 않고 살아야 한다. 너무 큰 행복을, 너무 큰 완성을 따라가면 인생은 고달파진다. 맹목적인 만큼 사람은 불행해진다.

무결한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지금의 내게 그건 사치다. 힘들고 괴로운 것이 당연하다. 나는 특수한 환경에 처해 있으니까.

너무 큰 행복을 바라보며 내 발밑에 떨어져 있는 작은 행복의 파편들을 무시하면 나는 지금보다 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나는 큰 행복을 바라보지 않는다. 발 밑을, 가까운 곳을 바라본다.

이건 체념이고 절망이다. 내가 행복해질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다. 큰 행복에 도달한다는 가능성을 꿈꾸고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아주 작은 행복이라도 놓치지 않고 모아두고 싶은거다. 계속 기억하고 싶은거다.

부모님의 인정과 관심, 변하지 않는 애정을 기억한다. 내 이야기를 들어주겠다던 이선준의 마음을 기억한다. 내 편이 되어주겠다고 말했던 한정운의 말을 기억한다. 나에게 거짓말까지 하면서 배려해주던 박헌영의 행동을 기억한다.

그런 것들을 기억하다 보면 나는 매 순간 찾아오는 절망과 슬픔을 견뎌낼 수 있게 될거다. 편견에, 모함에, 비난에, 폭력에 시달려도 내 마음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거다.

남자로 살든, 여자로 살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단지 지금을 산다. 지금 나로서 살아간다. 지금의 나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듯, 나도 어제와는 조금 다르다.

조금씩 변해가다 보면 언젠가 익숙해질 거야.

나는 원룸 건물들 사이로 나 있는 검푸른 밤하늘을 본다. 달이 아주 밝다. 예전부터 나는 달을 보면 울적해진다. 달이 밝을수록 더욱 슬프다.

만월의 밤에는 별이 없다. 자신이 너무 밝은 탓에 별이 보이지 않는다.

만월은 혼자다.

그래서 외롭다.

월요일이다.

나는 수업을 듣고 있다. 앞에서는 한정운이 발표를 하고 있다. 발제문 작성도, 피피티도 완벽하다. 피피티는 화려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냥 필요한 부분을 필요한 만큼 써넣는 것이 중요하다. 깨알 같은 글씨로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담아서도 안 된다.

그런 면에서 한정운의 피피티는 정말 완벽하다. 발제문도 따로 출력해서 나눠줬다. 나는 발제문을 본다. 참고문헌이 왜 이렇게 많아?

“네흘류도프는 어째서 이런 행동을 했는가? 어째서 변화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명확하게 내릴 수 있습니다.”

한정운은 침착하게, 건조한 어조로 말한다. 흔들림이나 떨림 같은 건 없다. 누구나 발표 울렁증이 있기 마련인데 한정운을 보면 전혀 그런 긴장감이 없었다. 마치 입력된 정보를 그대로 재생하는 것처럼 기계적이고, 사무적이다.

그래서 불성실해 보이냐면 아니다.

발제문을 쓰기 싫은 사람은 대충 써서 내거나, 지나치게 내용을 많이 넣어서 부담스럽기 마련이다. 읽기 편하도록, 정보 전달이 쉽도록 간결하게 짜여져 있다.

한정운을 보면 정말 이게 사람인가 싶다. 너 왜 대학생인거야? 이미 어딘가에 취직하고 일처리를 할 능력이 충분히 되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깨닫는다. 아, 여긴 취직이 목적인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한정운이 하는 발제의 주제는 톨스토이의 부활이다. 한정운은 톨스토이의 행적에 따라, 전체 서사에 따라, 시대적 상황에 따라 글을 분석하고 파헤친다. 거기에서 총체적인 의미를 도출해낸다. 어려운 표현이 섞여 있다.

마지막으로 참고문헌과 논문, 비평 자료들을 보여준 뒤 한정운은 발제를 마쳤다. 수업을 보고 있는 사람들 모두 그 엄청난 참고문헌의 양에 놀란다.

“거, 거의 논문 수준으로 해왔네.”

교수조차 당황한다. 한정운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내 옆자리로 온다. 한정운은 거의 항상 내 옆자리에 앉는다. 나와 수업이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그런다.

내가 봐도 나는 좀 이상해.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박쥐같다. 박헌영이랑도 다니고, 한정운이랑도 다니고 이선준하고도 붙어있다.

그냥 친구일 뿐인데, 여자든 남자든 그렇게 안 봐주겠지.

신경쓰지 않으려 노력한다. 서혜인이 알아서 잘 해줄거다.

한정운이 발제를 하기 전에 나도 했다. 내 주제는 레마르크의 개선문이었다. 정말 재미 없었지만 어떻게 피피티랑 발제문을 만들어서 할 수 있었다. 한정운 정도의 퀄리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나름으로는 최선이었다. 이렇게 학교 열심히 다니는 거 처음이라고.

사학년이지만.

============================ 작품 후기 ============================

크으 설원에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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