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49 고생길 탄탄대로 =========================
나는 살면서 이렇게 아파본 기억이 없어. 배탈이 나도 이렇게 아프지는 않아. 무언가가 내 뱃속에서, 내 배 안의 무언가를 아주 세게 밀어 누르는 것 같은 압박감이다.
밑이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야. 나는 안색이 하얗게 질린다.
“야, 야…. 나 어떡해…. 어떡해….”
내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자 박헌영은 당황한다. 나는 배를 부여잡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다. 꼭 똥이라도 마려운 것 같은 자세다. 박헌영은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는지 내게 다가온다.
“야…. 야아….”
“왜, 왜? 아파? 많이 아파?”
“나 생리 하나봐….”
“뭐? 지금?”
“아파. 너무 아파….”
혼란스럽다. 학교에 갈 때에는 가방에 꼭 생리대를 챙겨놓고 다녔다. 언제 시작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항상 문제없다는 태도로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챙기지 않았다. 그냥 잠깐 게임만 하고 들어올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생리대를 가지고 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집 밖에 간단하게 외출하는건데 가방을 가져왔을리도 없잖아.
여자가 항상 핸드백을 가지고 다니는 걸 보며 그냥 아무 생각도 안 했다. 굳이 가방을 들고 다녀야 한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 것도 사실이다. 들어가 봐야 화장품 정도나 가지고 다니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아니다. 이제 알겠다. 여자들은 생리대를 가지고 다녀야 해서 가방을 들고 다니는거다. 언제 어디서 터져도 당황하지 않도록. 아프다. 진짜 너무 아프다. 아픈 것도 있지만 두렵다. 뭔가 나오는 것 같아서 엄청 수치스럽다. 뭐야 이게, 뭐야 이게, 진짜로 이게 뭐야.
생각했던 것보다 더 아프고, 각오했던 것보다 더 무섭다. 내 몸에서 뭔가 나온다. 피가 나온다. 억울하고 슬프다.
박헌영은 갑자기 친구가 생리한다고 주저앉는 상황을 전혀 겪어보지 않았을거다. 늦었다. 이미 나왔어. 뭔가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집과의 거리는 좀 멀다. 이 상태로 집까지 갈 수는 없다. 편의점에 들러서 그걸 산다 해도 이미 늦는다. 어딘가 갈 곳이 필요하다.
“우리 집에 가자.”
“어, 어….”
어쩔 수 없다. 박헌영의 집은 코앞이다. 정말 이게 이상한 상황이라는 건 알지만 방법이 없다. 박헌영은 외투를 벗어서 내게 입혀준다. 정신착란이라도 올 것 같다. 새면 어떡하지? 바지에 피 묻은거 사람들이 보면, 아는 사람들이 보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나는 황급하게 외투 지퍼를 끝까지 올린다. 옷이 큰 탓에 허벅지 아래까지 충분히 가려진다. 이상한 꼴이기는 하지만 가려질거다. 몸이 덜덜 떨린다. 너무 아파. 아프다기보다 이상해. 어떻게 이런 일이? 어째서 지금이야? 항상 준비하고 있었는데, 왜 그 때가 아니라 하필 지금인거야?
마치 내가 준비가 안 되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던 것처럼 갑작스럽다. 여자들은 생리하기 전에 어느 정도 안다고 들었다. 내일이나 모레쯤 시작할 것 같은 몸 상태? 그런 걸 안다고 들었다. 그렇지만 여자였던 적이 없는 내가 알 수 있을리가 없잖아.
스트레스와 아픔 때문에 몸이 잘 안 가눠진다. 박헌영이 나를 부축한다.
“괘, 괜찮아. 혼자 갈 수 있어.”
“괜찮기는 뭐가 괜찮아. 자빠질 것 같은데.”
팔이 닿으니까 온몸이 경직된다. 하지만 일단 이 자리를 떠나는 게 급선무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남자가 두렵다. 하지만 달리 의지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나는 박헌영의 팔에 기대서 걸음을 옮긴다.
몸이 아픈 것보다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온몸에 기운이 없이 축 늘어진다.
박헌영의 집까지 걸어가는 짧은 새에, 나는 몇 명의 사람들과 마주쳤다. 그들은 박헌영과 나를 보더니 다들 깍듯하게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안녕…. 하세요.”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순간에 제일 마주치고 싶지 않은 상대를 만나버렸다. 정현수를 비롯한 새내기들이다. 엠티를 갔다가 이제 막 돌아온 모양이다. 정현수는 나를 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뜬다. 박헌영이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어, 그래.”
나는 지금 박헌영의 팔에 기대고 있다. 안색도 나쁘다. 아이들은 인사를 하고 지나친다. 정현수는 지나치며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무슨 오해를 할지, 무슨 생각을 할지 상상조차 하고싶지 않다.
여자가 좋다고 말했는데, 그 말을 하자마자 남자의 팔에 매달려 있는걸 보여버렸다. 아파서 그런거든 어떻든 똑같다. 정현수는 오해할거다. 오해할 수밖에 없다. 나 같아도 오해한다.
지독하게 타이밍이 나쁘다. 정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박헌영은 말없이 나를 부축하며 방으로 이끌었다.
이럴 수가 있을까. 정말 이럴 수가 있는걸까. 정현수가 나를 욕해도 할 말이 없다. 설명하면 되는 거지만 그걸 설명하는 것도 웃기다. 내가 왜 변명을 해. 오히려 그 쪽이 더 수상할거다. 오해는 커질거다. 자신을 거절하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거든. 여자가 좋다고 거짓말을 한 다음에 박헌영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얘기든. 여러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다.
정말 죽고싶다. 길거리에서 생리 터진 것도 서러운데. 이런 상황까지 생기다니.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무너지듯 쓰러진다.
“야! 왜 그래!”
“아냐, 그냥 기운이 없어서….”
“너 진짜 괜찮아? 병원 가봐야 하는거 아냐?”
나는 고개를 젓는다. 그냥 기운이 없을 뿐이다. 다리에 힘이 풀렸을 뿐이다. 나는 걱정 가득한 박헌영의 얼굴을 보며 말한다.
“나 씻어도 되지?”
“어, 어….”
“미안한데…. 나 그거좀 사다줘. 진짜 미안해.”
“그, 그거?”
박헌영은 당황한다. 내 입으로 말하기 진짜로 민망하지만, 나는 너무 피곤해서 그런 수치심에 신경 쓸 기력도 없다.
“생리대…. 사다줘. 정말 미안.”
나는 엉거주춤하게 앉은 채 박헌영에게 고개를 숙인다. 박헌영은 고개를 끄덕인다.
“아, 알았어. 빨리 갔다올게.”
“천천히 다녀와…. 샤워 할거니까….”
박헌영이 방을 나가고, 나는 느릿하게 외투를 벗고 화장실로 기어들어간다. 서럽고 억울해서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뭘 그리 잘못했기에 항상 이렇게 타이밍 나쁘고, 운 나쁜 일들만 벌어지는걸까. 나는 억지로 청바지를 벗는다. 사타구니 부분이 검붉게 번져있다. 기분 나쁘다. 질척하고 뭔가 젖은 것 같은 느낌이 괴롭다.
진짜 싫어. 진짜 싫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거지? 나는 속옷을 벗는다. 살색빛 속옷이 붉다. 나는 내 하반신을 억지로 보지 않는다. 토 할 것 같다. 직접 보면 비위 상할 것 같다. 여자가 된 것도 서러운데 왜 아파야 하는거야? 왜 피까지 나야 하는거야?
“흑….”
다시 눈물이 난다. 무너져 버릴 것 같다. 전부 집어치우고 싶다. 몸도 변하고, 마음도 변하고, 관계도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게 없다. 하나에서 열까지 변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나는 피 묻은 바지와 속옷을 분잡고 운다. 너무 서럽다. 짜증난다.
“뭐가 더 남았어?”
혼자 중얼거린다. 목소리가 떨리고 팔다리도 부들부들 떨린다.
“뭐가 더 남았는데!”
죽어버리고 싶다. 차라리 죽어서 먼지가 되어버리고 싶다. 할 줄은 알고 있었어. 생리도 하고 임신도 할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었어. 하지만 왜 항상, 예상치도 못한 순간에 이러는걸까.
꼭 나를 일부러 괴롭히기 위해 각본이라도 준비된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일이 이렇게 계속해서 일어날리가 없잖아.
몸을 씻는다. 붉은 피가 섞인 물이 하수구로 흘러간다. 배는 아프고 머리는 어지럽다. 제대로 된 생각이 안 든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온다. 또 무슨 일이 일어나는걸까.
박헌영이 나를 강간하려고 할까?
그런 생각도 든다. 하지만 아닐거야. 그럴리가 없지. 진짜로 그런 일이 생길리가 없잖아.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박헌영은 그 새 돌아온 모양이다.
아, 그러고 보니 속옷이 없다. 속옷에 받쳐 입어야 하는데.
“문 앞에 둘 테니까 하고 나와, 바지도 너 입을 거 놔뒀으니까 입고.”
“야, 나 속옷….”
“사왔어.”
뭐지? 이 자식 어떻게 알고 사온거야?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밖을 본다. 생리대와 속옷, 그리고 반바지가 놓여있다. 나는 욕실 안에서 몸을 닦고 생리대를 팬티에 붙인 후 속옷을 입었다. 반바지도 입는다. 솔직히 너무 놀랐지만, 생리대 하는 법이나 종류, 이런 것에 대해서는 이미 알아뒀다. 몰라서 고생하기는 싫으니까 나도 이것저것 준비할 건 당연히 했다고.
타이밍이 너무 나빴던거야. 그리고 입고 나서 보니까 더 신기하다. 생리대는 대, 중, 소형으로 나뉘는데 이건 대형이다. 양이 많은 날에 입는 그거다. 박헌영은 그런 것까지 대체 어떻게 알고 있는거지? 진짜로 변탠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박헌영이 생리대 사이즈를 알 수 있을 턱이 없다. 그런 걸 연구하면서까지 너의 도착증을 충족시키고 싶었던거냐….
원래 양 많은 날은 시작 다음날, 이틀째와 삼일째로 알고 있는데, 왜 시작하자마자 이렇게 터져버린 걸까. 하긴 뭐든지 개인차가 있으니까 나는 첫 날에 터지는 그런 건가?
나는 욕실을 나온다. 머리는 감지 않아서 나는 후드티를 입고 나왔다. 큰 기모 후드티지만 반바지가 워낙 커서 하의실종이나 이런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대신 허리 사이즈가 다른 탓에 자꾸 흘러내린다. 나는 한 손으로 바지춤을 잡고있다.
“좀 괜찮아?”
“어? 아 좀…. 아퍼.”
나는 기운이 없어서 박헌영의 침대에 엎어진다.
============================ 작품 후기 ============================
불쌍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