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3 워너비는 TS하지 말라는 법 없잖아. =========================
나는 그 날 술을 많이 마셨다. 박헌영과 헤어지기 직전, 놈이 내게 묘한 말을 했다.
“야, 근데 내가 TS 왜 그렇게 빠는지 아냐?”
“뭐? 니가 그냥 변태새끼라서 그런거지 뭘….”
그 녀석도, 나도 술이 조금 된 상태였다. 아직 추운 삼월의 밤이었다. 드물게도 하늘에는 별이 많이 떠 있었다. 녀석과 나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혹시나 TS걸릴까봐 무서워서 빠는거야 등신아.”
“무슨 개소리야 그게?”
“너는 로또 되고 싶다고 존나 기원하는 사람이 되는거 봤냐?”
“무슨 개 같은 논리야 그게?”
내가 눈썹을 모으며 말하자 녀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래 기적은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는 찾아오지 않아. 오히려 별 관심 없는 엄한 놈한테 찾아가지, 이를테면 너 같은 놈.”
“뭐? TS는 무슨 갯지렁이 쌈싸먹는 소리하고 있네.”
“흐흐…. 너 TS되서 윤간당한 다음에 막 임신테크 타면 존나 웃기겠다.”
“이런 미친놈이….”
나는 진심으로 휘두를 물건을 찾자 녀석은 담배를 튕기더니 마구 뛰어서 사라졌다. 나는 그 자식의 뒷통수에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줬다. 더럽게 재수없는 소리였다.
TS바이러스는 비율적으로만 보면 몇천만분의 일 확률로 발병하는 것이다. 확률적으로 보면 로또에 당첨되는 것이 더욱 빠르다. 로또는 별 생각없이 산 놈들도 꽝이 나온다. 세상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선준이 형의 말에 의하면, 이 세상은 유물론의 지배를 받고 있다. TS바이러스도 곧 그런 맥락에서 설명이 가능한 때가 올 거라고 말했다. 한창 그것이 세상의 이슈였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사는 것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남자가 되든, 여자가 되든 사는 것은 팍팍하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녀석을 만났다.
“어?”
“안녕하세요.”
시각은 열두시, 나는 그 놈을 마주쳤다. 한정운, 오늘 내 멘탈을 산산조각내버린 그 놈이었다. 나는 11학번, 녀석은 13학번이었다. 명백하게 후배였다. 사실 합평때 만나지 않으면 녀석은 대개 예의바른 녀석이었다. 말수가 적고, 뭐든 열심히 하고 잘 하니까 교수들한테 인상도 좋다.
“어디 가냐?”
나는 담배를 빼물며 말한다. 내일은 토요일이라서 기숙사 학생들은 집에 가거나, 자취생들은 나처럼 술을 처먹는다. 녀석은 이 한밤중에 트레이닝복을 입은 채 어디론가 가고 있다.
“운동하고 와서요. 가서 글 좀 쓰려고요.”
“아…. 그래?”
녀석은 정말 열심히 산다. 얼굴은 잘 생겼지만 약간 어두운 표정은 녀석의 뭐랄까, 냉소적인 인상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실제로 과내는 물론, 타과생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이 자식은 대체 왜 소설을 쓰는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공부도 열심히 한다. 인문학적 지식도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로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우리 같은 이들에게는 전혀 상관없는 것으로 보이는 운동도 매일 하고, 매일 정해진 시간 글을 쓴다. 이 녀석의 일과는 이미 과내에서 유명하다.
타락과 방종의 소굴인 문창과에 들어와서, 혼자 바른생활을 하고 있었다. 녀석은 내 앞에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키도 나보다 컸다. 182정도, 진짜 짜증난다. 완벽한 사람을 보고 있으면 내 꼬인 성격은 주체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 괜히 심술을 부리고 싶었다.
“야, 술 마실래?”
“술요?”
“그래.”
녀석이 술 먹는걸 한 번도 본적이 없다. 개총이나 종총 뒤풀이 때 온 것도 못 봤다. 13년도 때 이 녀석이 새내기로 입학했을 무렵, 좆 같은 꼰대질이 남아있는 우리 학과 뒤풀이 참석 강요에 녀석은 이렇게 대답했다. 09학번 학회장의 말에 녀석은 심플하게 답했다.
‘소설 쓰려고요.’
‘너 뭐 어디 수업에 내기로 했어?’
‘아뇨.’
‘그런데 왜 그렇게 급해?’
‘소설 쓰러 와서 소설 쓰겠다는게 문제가 되나요?’
그 말에 학회장은 한 대 얻어맞은 표정이 되었고, 녀석은 유유히 소설을 쓰러 갔다. 그 말에 창피하고, 분개한 선배집단이 녀석이 써낸 소설을 돌려봤다. 대놓고 면전에다 말하지는 못하고 뒤에서 소설 존나 못 쓰더라 병신 ㅋㅋㅋㅋ 이런 말이나 하려는 셈이었다. 선배집단이 졸렬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지만 소설을 본 선배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 때 군대에 있었다. 이 녀석, 소설 잘 쓴다. 이 병신들 집합소인 문창과에서 적용되는 단 하나의 법칙은 그거였다. 소설 잘 쓰면 싸가지 없어도 된다.
글 쓰고 수업 듣고 운동 하고 책 읽고, 건강한 습작생이 지녀야 할 모든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솔직히 그냥 해본 말이었다. 술 마시자고 해봐야 이런 놈이 나처럼 학번만 높은데 글을 못 쓰는 놈하고 술을 마실리가 없었다.
“그러죠.”
“어?”
그래서 그런 대답이 돌아왔을 때.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얼떨떨한 채 다른 술집으로 향했다.
아까 말했듯 나는 술이 좀 된 상태였다. 그래서 그 녀석이랑 술집에 갔을 때 이후로 나는 기억이 없다.
정신을 차려보니 방 안이었다. 어떻게 돌아온걸까. 한정운과 만난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없었다. 속이 껄끄럽다. 일어나려고 했는데 뭔가 이상했다. 침대의 감촉도, 천장의 무늬도 뭔가 이상했다.
여긴 내 방이 아니다. 그리고 옆에는 누군가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으, 으악! 악!”
처음의 으악은 놀람이었고, 두 번째 악! 은 고통 때문이었다. 온몸을 누군가가 칼로 썰어놓은 것처럼 마구 쑤셨다. 나는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고 고통에 떨었다.
“일어나셨네요.”
“야…. 어…. 여기 어디? 뭐야?”
“병원이에요.”
술을 많이 마셔서 그런지 목소리가 조금 이상하게 나왔다. 눈앞에는 한정운이 나를 평소와 같은 침착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 녀석의 눈빛은 조금 무섭다. 감정표현이 거의 없는 무정물 같은 느낌이었다.
“뭐야…. 너 나 때렸냐?”
“아뇨.”
나는 뭔가 귀찮은 것은 얼굴에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뭔가 검은 것이, 머리카락 같았다. 몸도 뭔가 이상했다. 뭐라고 표현할 수는 없지만 뭔가 이상한 느낌이었다. 몸이 막 타는 것처럼 아팠다.
“아…. 아퍼…. ”
“의사 부를까요?”
“야…. 내가 왜 병원에…. 으윽….”
말을 할 기운도 없었다. 녀석은 나를 잠시 쳐다보더니 서랍장 위에 있는 손거울을 나에게 비춰줬다. 그 안에는 뭔가 다른, 나와 닮은 것 같지만 뭔가 다른 것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긴 검은 머리칼에, 흰 피부를 한 어떤 여자애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
“TS바이러스 발병이에요.”
“어?”
“말 그대로에요.”
“자, 잠깐, 잠깐만….”
뭐야, 뭐야. 무슨 미친 소리지? 술 먹고 필름 끊긴 다음 일어났더니 병원이고, 거울 속에서 이상한 것이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나는 재빨리 내 사타구니를 더듬었다. 없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웃으면서 좆빠지니 어쩌니 했는데, 진짜로 빠져버렸다. 아무것도 없었고, 대신 공허한 느낌의 뭔가가 만져졌다. 나는 온몸을 찌르는 고통조차 잊었다. 나는 상체를 살짝 더듬었다. 약간 봉긋하기는 했지만, 뭔가 엄청난 글래머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어…. 가슴은 없네.”
“…….”
한정운이 나를 병신 쳐다보듯 바라보고 있었다. TS 발병했다는 얘기 듣자마자 자기 몸을 마구 더듬는 모습이 추하게 보였겠지. 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그냥 없다고, 왜 그딴 표정으로 보냐?”
“그냥 보는 건데요.”
한정운은 나를 쳐다보더니 물었다.
“저 가도 돼죠?”
“어? 어….”
나는 그 쿨한 태도에 벙쪘다. 녀석은 일어나더니 병실 문을 나가려 했다. 이 자식, 몰랐는데 좀 이상하다. 길 가다 만난 사람도 이렇게 매몰차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선배가 뜬금없이 TS에 걸렸는데 일어났으니까 가도 되냐니, 정신나간 거 아닌가? 나는 갑자기 이 자식이 덜컥 두려워졌다.
남이 무슨 상황에 빠져있든 자기가 하고싶은 행동만 하고, 전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들을 칭하는 말이라면 물릴 정도로 듣고 있었다.
이 자식, 싸이코패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지금 곁에는 이 녀석밖에 없었다.
“야, 야야야야야!”
“네?”
“뭔지 설명을 해줘야지 이 미친놈아!”
“기억 안 나세요?”
“그래, 아무것도 기억 안 나! 설명해봐.”
“자랑처럼 말씀하시네요.”
갑자기 속을 긁는 발언에 나는 주먹이 불끈 쥐어졌지만 곧 손을 풀어버렸다. 손가락 마디 하나하나까지 전부 아팠다. 녀석은 내가 쳐다보자 의자에 앉았다.
녀석과 나는 술집에 가서 술을 마셨다. 무슨 돈이 있다고 나는 회를 처먹자고 한 모양이었다. 기껏 회가 나왔는데 소주를 한 잔 먹자마자 나는 갑자기 헛소리를 해댔고, 얼마 지나지 않아 뻗은 모양이었다. 나는 계속 ‘나 같은 쓰레기는 죽어야 돼!’ 라고 소리치며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리고 사방팔방 뛰어다녔고, 한정운은 그런 나를 억지로 제압할까 설득해서 돌려보낼까 고민하던 중이었다고 했다. 녀석은 평온하게 말하다가 갑자기 엄청난 소리를 했다.
“선배 앞에서 누가 죽었어요.”
“뭐?”
“누가 죽었어요.”
“아, 아니, 아니 그게 무슨…. 무슨 소리야? 제대로…. 제대로 설명해!”
아파서 그런지 목소리가 자꾸 갈라졌다. 나는 머리가 윙윙 울리는 것 같았다.
“투신자살이었어요.”
이게 무슨 소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