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4 나에 대해서 =========================
나는 자해를 했다. 중학생 때다. 자해를 하던 나를 막은 것이 서준영이다. 서준영은 성격 이상하고 비뚤어진 내 유일한 친구였다. 나는 서준영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고민과 아픔, 비뚤어진 마음에 대해서.
서준영은 나를 위로해줬다. 항상 나와 이야기했다. 서준영이 없었다면 아마 나는 진작에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중학생 때, 엄마와 아버지는 내 비정상적인 상냥함과 착한 모습이 이상하다는 걸 알아챘던 것 같다. 거기서 나온 결론이 뭐였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에게 항상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가지고 싶다고 말해라.’
‘양보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욕심은 그렇게 나쁜 게 아냐.’
‘이 정도는 나쁘지 않아.’
나는 그런 말을 들었다. 나는 굉장히 예민하고 민감하다. 내가 신경질적인 것은 다 그런 예민함 때문이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훈이는 이런 거 많아. 너도 좀 있어도 돼.’
‘이거 먹어.’
‘이거 사줄까?’
‘너 주려고 샀는데 멋있지?’
갑작스레 온 가족의 사랑과 관심이 내게로 향했다. 예민하다고 말했다. 나는 눈치챘다. 내가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안다는 걸, 부모님도 안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그걸 말해야 된다는 건 너무 슬프기 때문이다. 가족 사이에는 비밀이 많다. 자주 마주쳐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다. 내가 설훈과의 일을 묻어두려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냥 지나갈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나는 그 갑작스러운 관심의 변화에 놀랐다. 그리고 왠지 더 슬퍼졌다.
내가 비뚤어졌다고 욕해도 좋다.
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없어질 리 없다는 걸 부모님은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수록 내가 그 가족에게서 유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내가 손님처럼 느껴졌다. 잘 대해줘야 할 손님,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 손님이라는 느낌이다.
아버지는 나를 더 이상 혼내지 않았다. 엄마는 더 이상 화내지 않았다. 공부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럴수록 더욱 더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 노력하고, 설훈에게 더 잘해주려고 했다.
마치 경쟁을 하는 것 같았다. 엄마와 아버지는 그럴수록 나에게 잘해줬고, 나는 더 열심히 하려 했다. 그 싸움은 정말 치열해서, 나도차도 내 스스로를 견디기 힘들었다.
그 상황에서 나의 유일한 구원은 책을 읽는 것이었다. 책 속의 비극을 보며 나는 위안을 얻었다. 수많은 비극들은 내 상황을 별 것 아닌 하찮은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이지만 소설을 썼다. 내 내면을 투사해내는 말하자면 소설이 아닌, 일종의 수필이었다. 나는 글을 토해내듯 쓰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게 좋았다.
소설을 쓰는 것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나의 강박적 생각과 잔인성을 표출한 그것은 누구에게 보여줄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책을 읽었고, 소설을 썼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냥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단지 감정을 토해내는 작업에 불과했다.
그리고 나도, 엄마도, 아버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런 경쟁을 하는 사이에 설훈이 점점 비뚤어지고 있다는 것을.
내가 고등학교 삼학년 때, 설훈은 열네 살, 중학생이었다. 설훈은 그 때에도 이미 나와 키가 비슷했다.
야자가 끝나고 돌아오니 설훈은 집에 없었다. 집안은 풍비박산까지는 아니지만 난장판이 되어 있었고, 아버지는 거실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엄마는 울고 있었다. 나는 별 말 없이 설훈을 찾으러 나갔다. 다음 날 학교도 가지 않았다.
경찰에도 신고를 했지만 설훈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대전을 돌아다니다가 번화가 골목에서 삥을 뜯고 있는 설훈을 발견했다. 나는 설훈을 집에 데려가려 했지만 설훈은 내게 그 한 마디를 했다.
‘고아새끼가 무슨 상관이야.’
설훈이 어떻게 알았는지, 그렇게 말했다. 나는 침착하게 다시 설득했다.
‘이래봐야 좋을 거 없어. 가서 엄마랑 아버지한테 죄송하다고 하자.’
‘닥쳐 병신아 너네 엄마 아빠 아니거든? 병신새끼 가족인 척 해주니까 지가 진짜 가족인줄 아나.’
‘내가 너한테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 말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부모님 걱정하셔. 그러니까 돌아가자. 여기서 이래봐야 네 인생만 피곤해져.’
‘뭘 잘못하긴 뭘 잘못해. 너 씨발 고아라고 엄마랑 아빠가 너만 편애하니까 좋지? 좋아 죽겠지? 씨발 나도 고아로 태어났어야 하는데 존나…. 고아라서 행복하냐? 뭘 좋다고 집에만 오면 괜찮아요 아니에요 감사합니다 실실 처웃기나 하고 등신 배알도 없는 새끼.’
나는 결국 이성의 끈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설훈은 나를 모른다. 내가 참아야 했던 것이 무엇인지, 내가 겪어야 했던 괴로움이 무엇인지. 내가 가족의 한 사람으로 서 있기 위해 무엇을 참아내야 했는지 모른다.
나는 설훈을 진심으로 동생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싫었지만, 정말 잘 해주려 노력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아할까 고민하다 보니 진심으로 좋아하게 됐다. 부모님의 눈치를 본 건 사실이지만, 설훈을 아껴준 것만은 진심이었다.
그래서 더욱 더 배신감이 들었고, 더더욱 화가 났다.
설훈은 나보다 덩치가 컸다. 내가 나이가 다섯 살이나 많다고 해도 그 곰 같은 덩치로 덤비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나는 골목길에 떨어져 있는 쇠파이프를 집어들었다.
“내가 씨발…. 좋게 말할 때 갔어야지.”
“그거로 니가 때리기나 할 수 있을 것….. 억!”
나는 정말 죽일 것처럼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한 대 맞자 녀석의 몸이 거꾸러졌고, 두 대 맞자 놈은 자지러졌다. 설훈은 짐승처럼 울부짖었고, 나는 진짜로 죽일 것처럼 때렸다.
“뭘 알아 니가? 니가 뭘 안다고 지껄여? 어! 너는 내가 느낀 고민이 뭔지나 알아! 어! 동생한테 질투 좀 했다고 악마새끼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내 마음을 니가 알아!”
“억! 악! 그만! 그만! 미안해! 미안해!”
“죽어, 죽어 이 씹새끼야 너 죽이고 나도 죽을 테니까!”
설훈은 병원으로 실려갔다. 나는 경찰에 잡혀가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무의미했다. 내가 그토록 지키려 했던 모든 것을 내 손으로 부숴버렸다. 나는 죽으려 했다.
어떻게 죽으려 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겠다. 나는 병원에 입원했다. 설훈보다 더 오래 입원했다.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아버지에게, 엄마에게 사과했다. 부모님은 나를 나무라지 않았다.
“너는 내 자식이다.”
아버지는 단지 그렇게 말했다. 그래, 나는 그 뒤로 더 이상 집에서 연기하지 않았다. 그저 평범한 아들처럼 지냈다. 나는 소설이 쓰고 싶다 말했고, 부모님은 우려는 표했지만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힘들어….”
마음이 힘든 건 육체가 힘들면 잊혀진다. 마음의 고통은 오래 가지만, 육체의 고통은 즉발성인 대신 절박하다. 나는 스포츠백을 메고 헥헥거리며 자취방으로 가고 있다. 진짜 힘들다. 무거워, 엄청 무거워!
이선준을 불러서 들어달라고 할걸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가 사라졌다. 보호받기 싫다고 하더니 그러면 진짜 꼴불견이다. 애초에 그런 건 연인들끼리나 하는거다. 하니면 짜증나고 열 받는 어장녀거나. 제대로 된 여자도 못 되는데 어장관리녀라니, 그거도 나름대로 웃길 것 같다.
자취방에 가까스로 도착하자 겨울인데도 땀이 났다. 나는 입구에서 한숨을 푹 쉬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아니, 번호를 누르려다 말고 멈칫한다.
누구랑 같이 있으면 어쩌지, 내가 오면 일요일에 올 거라고 생각할거다. 혹시 여자라도 데려왔으면 민망한 꼴이 될 수도 있다. 말했듯 이선준은 인기가 많고, 바른 생활 사나이기는 하지만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잡는 주의다.
그래도 설마, 내 방에서 다른 여자랑 그런 짓을 했을리가. 조금 과민한 거다. 나는 문을 연다.
-덜컥
평소 개판에 가까운 상태였던 집은 진짜 살풍경할 정도로 정리되어 있다. 내가 없는 동안에도 이선준이 계속 방을 쓰고 있으니 당연한 거다. 이대로면 정말 같이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 진짜 괜찮은데. 전역하면 방 구하지 말고 같이 살자고 할까?
아, 내 처지를 잠깐 잊었다.
오늘은 토요일. 주말이다. 이선준은 침대에 정자세로 누워있다. 시각은 열 한 시다.
방 안에서 술냄새가 나는 걸 보니 어제 술이라도 먹은 모양이다. 누구랑 먹었을까 한 번 생각해본다. 사실, 누구랑 먹었든 별 상관 없잖아? 그걸 내가 왜 생각하지?
이선준은 잠이 깊다. 차렷 자세로 누워서 자고 있다. 내가 보면 벌 서는 자세처럼 보인다. 나는 저렇게는 못 잔다. 나는 모로 눕거나 새우잠을 잔다. 그런 습관은 여자가 되어도 변하지 않는다.
내가 들어와서 대충 짐을 정리하고, 옷을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는 동안에도 이선준은 깨지 않는다. 문득 울컥한다.
삼일만에 돌아온거다. 하지만 몇 달은 지난 것 같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스트레스 때문에 죽을 수도 있다면 나는 몇 번이나 죽었을거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서럽다. 친구에게 강간당할뻔하고, 맞고, 절교했다. 그리고 동생이 내 몸을 만졌다. 옷 속에 넣어서 만지고, 아래쪽까지 더듬어대려 했다. 생각하니까 정말로 죽고싶다.
이선준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내 방에서 같이 자면서 아무런 짓도, 그런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내가 술에 취해서 자는 도중에 무슨 짓을 했을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이선준이 그랬을리가 없다. 이 인간은 본인이 그런 짓을 했다면 죄책감과 열패감 때문에 자해라도 할 거다.
인간성을 안다. 그럴 사람이 아니니까 믿는다. 그 사실이 고맙다.
이런 사람이 내 곁에 있어서 다행이야. 울어도 될만한 상황인 것 같은데, 오히려 눈물이 안 난다. 요즘 너무 울어서 그런 탓이다. 나는 이선준의 잠든 얼굴을 보며 피식 웃는다.
“잘도 자네….”
이선준은 배신하지 않을거다. 그럴 거라고 믿는다. 이선준마저 그런다면 나는 정말 모든 걸 포기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선물을 주자.
이선준이 일어난 것은 열두시 정각이 되었을 무렵이었다. 나는 인덕션 앞에 서서 팔팔 끓고 있는 냄비를 바라본다.
“으음….”
나는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선준은 눈가를 비비며 나를 쳐다본다.
“허, 헛!”
-쾅!
이선준은 나를 쳐다보더니 비명을 지르며 침대 옆으로 굴러떨어졌다. 이불을 손에 쥐고 있는 폼이 뭔가 웃기다.
“누구? 아, 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네, 집 주인이지 누구야?”
익숙하지 않으니 놀라는 건 당연하다. 자고 일어났더니 웬 여자가 요리를 하고 있으면 놀라는게 당연하다. 우렁각시도 아닐테고.
뭐 흔한 소설이라면 여기서 나는 요리를 못하는 게 정석이겠지만, 안타깝게도 아니다. 나, 요리 꽤 해. 시켜먹거나 나가서 먹는 주의이기는 하지만, 진짜 나가기 싫을 때에는 집에서 해먹는다. 대학교 이후로 자취만 했으니까 자취 경력만 따지면 삼 년 정도다. 물론 삼 년 자취해도 못 하는 사람은 못 한다. 하지만 하려고 한 사람은 어느 정도 실력이 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뭐든 잘 하는 건 아니고. 그냥 평범한 수준이다. 요리라는 건 의외로 이것저것 넣고, 조미료만 제대로 넣으면 잘 된다.
여기서 하나 가르쳐 주자면, 간이 약한 음식이 맛있기가 엄청 힘들다는거다. 대개 맛집을 가면 조미료를 많이 쓴다. 요리에 있어서 정말 만들기 힘든 맛있는 음식은 담백하면서 맛있는거다.
맛이라는게 애초에 자극인데, 자극을 최대한 덜 주면서 맛있다는건 진짜 맛있는 음식이라는 얘기다.
뭐 잡설은 이 정도만 하고.
이선준은 멍한 표정으로 일어나서 비실비실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