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2 가족 =========================
그 말을 들은 설훈은 당연한 반응을 보였다.
“그게 뭔 소리야?”
“티에슨지 티브인지 걸렸대.”
“뭐!”
설훈은 소리를 꽥 질렀다. 아…. 진짜 피곤하다. 여러모로, 만나는 사람마다 앞으로 이런 반응과, 설득을 해야 하는걸까? 죄인이라도 된 기분이다. 설훈은 내려오지 않는다. 어떻게 믿냐며, 제대로 확인은 해봤냐며 계속 물어봤다.
나는 친자식이 아니다. 하지만 설훈은 부모님의 진짜 아들이다. 물론 그런 것 때문에 가정에서 못 받을 대접을 받고 자란 건 아니다. 하지만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괴로웠다.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때 나는 그것을 알아버렸다.
설훈은 바지까지 주섬주섬 입고 나서야 밑으로 내려왔다. 나는 녀석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저, 저기…. 진짜로 형이야…요?”
“항상 반말하고 욕하던 버릇없는 쌍놈한테 존댓말 들으니까 이거도 해볼만하다는 생각은 드는데?”
“어?”
내가 노려보며 말하자 설훈은 흠칫 놀랐다. 믿게 해주는 데에는 그냥 둘만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해주면 된다.
“뭐 말해줄까? 너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똥 지려가지고 내가 속옷 빨아줬던 거? 아니면 저번시즌때 티모로 마스터 찍겠다고 하다가 골드 1까지 떨어져서 피똥싸면서 시즌 끝나기 직전에 다이아 5만들었던 거? 아니면 너 중학생 때 가출했다가 나한테 막말….”
“아, 알았어 형! 형이구나!”
거기까지 말하자 녀석은 입을 다물었다. 나에게도 큰 상처가 된 일이었던 만큼, 녀석도 그 사건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런 것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고 다니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 녀석도 안다. 증명하는 것은 함께한 추억이 많다면 생각보다는 쉬운 일이다.
“지, 진짜로 TS바이러스 걸린거야? 혀, 형이 왜? 뭐야…. 뭐야 이게!”
설훈은 덜덜 떨며 말했다.
“네가 그렇게 안 해도 충분히 힘들어, 앉아서 얘기해, 올려다보기 싫으니까.”
나는 고개를 떨궜다. 설훈은 덩치가 크다. 꼭 운동선수처럼 생겼다. 다 아빠를 닮아서 그렇다. 나는 아빠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그렇다고 왜소한 편은 아니었지만 얘 정도는 아니다.
설훈은 내 남동생이다. 하지만 뭐라고 해야할까. 그다지 친밀한 관계는 아니다. 얘와 나 사이에는 벽이 있다. 누가 먼저 친 것이 아니지만, 어느 새 정신을 차려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가지고 있는 벽이었다.
나는 나보다 키도 크고 우람한 동생이 부담스러웠다. 얘는 얘대로 고민이 있을 것이다. 그게 뭔지는 모른다. 우린 적당히 친하지만 서로 연락해서 자주 만나는 그런 사이는 아니다.
세상 어느 형 동생이나 그런건지, 아니면 우리가 특수한 상황에 있어서 그런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가족이다. 설훈도 나도, 결국 서로를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단지 어렵다. 너무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다.
녀석은 내 앞에 앉아서 내 얼굴을 천천히 뜯어봤다. 소파에 앉아서 멍하니 TV를 쳐다봤다. 눈을 마주치는게 부담스럽다. 이렇게 되고 나서 나를 아는 남자들을 마주하는 건 부담스럽다. 그건 동생이라도 마찬가지다.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나는 박헌영을 만난 이후로 모든 게 혼란스럽다. 나를 정말 잘 알고, 이해해주던 친구가 아주 잠깐이지만 나를 성욕의 대상으로 바라봤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너무 두려웠다.
아무리 형제라 해도, 설사 친형제라 해도 이렇게까지 변해버린다면 겉모습은 그냥 남이다. 말했던 것처럼 내 입으로 말하는 건 이상하지만 내 모습은 매력적이다. 그래서 무섭다. 설훈이 나를 그런 시선으로 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들었다.
“형, 일어나 봐.”
“뭐, 왜?”
“키 몇이야?”
“몰라, 안 재봤어.”
“한 번 일어나 보라니까?”
어린애처럼 채근하는 통에 나는 일어섰다. 설훈은 키가 정말 크다. 190이 넘는다. 나는 거인을 보듯 올려다봤다. 원래도 올려다봐야 했는데 작아지니까 목까지 아프다. 설훈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키 왜 이렇게 작아?”
“시비거냐?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내 지랄 같은 성격도 가족들 앞에서는 조금 죽는다. 오히려 집에서 느낀 스트레스 때문에 바깥에서 더 그렇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당연히 집에서는 안 그래야지. 나에게 집이란 항상 부담스러운 곳이었다. 내 집이지만 항상 남의 집에서 사는 기분으로 살았다. 눈치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그렇게 살았다.
내가 눈을 부라리자 설훈은 흠칫했다. 덩치도 산만하고, 성깔도 있는 녀석이지만 내가 화를 내면 고분고분해졌다. 사람을 죽도록 팬 적 없다고 했었지, 그거 대학 들어간 이후의 얘기다.
설훈은 딱 한 번, 가출했을 때 나에게 심하게 얻어맞은 적이 있다. 내가 고등학교 삼학년 때였다. 그 때도 설훈은 덩치가 컸지만 나는 녀석을 정말 죽일 듯 때렸다. 내게 맞은 설훈은 꽤 오랫동안 입원했다. 부모님은 내게 아무런 비난의 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원한 설훈을 더 심하게 나무랐다.
그리고 그때,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그리고 나는 설훈보다 더 오래 입원했다. 설훈은 그 이후로 내가 화나면 고분고분해졌다. 맞았던 것 때문인지, 내가 죽으려고 했던 것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인형같네.”
설훈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내 볼을 만졌다.
“오, 말랑말랑해!”
“하지 마 미친놈아!”
내가 거부하자 설훈은 더 달라붙었다. 한참을 실랑이하고 나서야 나는 설훈에게서 빠져나왔다. 엄마는 나와 설훈의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너 어렸을 때 누나 생겼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그렇~게나 부르더니 누나 생겼네?”
“엄마, 그런 얘기 할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엄마…. 요즘 좀 이상해. ”
엄마는 왠지 나사 하나 풀린 것처럼 웃고 있었다. 아들이 이런 비극에 빠졌는데 그렇게 웃어도 되는거야?
설훈과 내가 동시에 핀잔을 줬다. 그래, 차라리 이런 식이면 나쁘지 않다. 설훈이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쳐다보기만 했다면 더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내가 설훈을 때릴 수 있었던 것은 나도 어느 정도 완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지금 이 녀석의 새끼손가락 하나도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차라리 이렇게 대놓고 치근거리는 것이 다행일수도 있다. 스스럼없이, 그냥 순수한 호기심으로 다가오기만 한다면 괜찮다. 그리고 옆에는 엄마가 있으니까.
둘만 있는 상황에서 이랬다면 나는 정말 큰 위협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설훈은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가슴 만져봐도 돼?”
“이, 이 미친놈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뭐 어때. 별로 신경 안 쓰는거 아냐?”
“꺼져! 기분 나빠!”
이건 심하다. 아무리 장난이라도 도를 넘어서면 싫다. 내가 남자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걸 허락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야 너! 그럼 안 되지 이 자식아!”
가만히 있던 엄마도 버럭하며 설훈을 나무랐다. 설훈은 머리를 긁적이며 내게 미안하다고 했다. 한 순간이나마 괜찮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보같았다. 설훈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당연한 호기심이고, 당연한 흥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논리가 소름끼쳤다.
별로 신경 안 쓰는거 아니냐는, 그 말이 충격적이다.
내가 시무룩해져 있자 녀석은 몇 번이나 미안하다고 말했다.
“괜찮아. 앞으로 그딴 개소리 더 안 하면 돼.”
“알았어…. 저기, 롤할래?”
“컴퓨터 한대잖아.”
“나 노트북 샀어, 그걸로 하면 돼.”
솔직히 흥미가 동했다. 말했듯 다이아 1티어다. 몇 걸음만 더 가면 신의 경지다. 이 녀석이 나랑 롤 하는 거 싫어하면서 같이 하자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미안하다는 뜻이었다.
“그래. 하자.”
나와 설훈은 이층의 방으로 올라가서 롤을 켰다. 이 층에는 방이 두 개다. 나와 설훈의 방. 내 방은 이제 쓰지 않으니 창고로 써도 괜찮지만 엄마는 한상 그 방을 청소했다.
엄마는 그 방이 없어져버리면 내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설훈은 큐를 돌리면서 시답잖은 소리를 했다.
“형 아프리카 방송 해봐. 떼돈 벌 것 같은데.”
“풍선주떼여 뿌잉뿌잉 이런거 하라고?”
“오, 오, 지금 느낌 엄청 괜찮았는데?”
“닥쳐, 그딴 걸 왜 해?”
“연봉이 억대는 가볍게 넘을걸? 봐봐,”
녀석이 보여준 것은 유명한 여자 비제이였다. 나는 모르지만, 얼굴 꽤 반반한 걸로 게임이나 하면서 별풍선을 받는다는 것 같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내가 이 사람보다 열 배는 더 예쁘다. 억대라는 말에 잠시 현혹되었지만 고개를 털었다. 돈 같은건 몰라.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걸 할거다.
정말…. 정말 힘들어지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저런 건 싫다. 나를 팔고 싶지는 않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 사람들을 비하하는 건 아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
내가 판다고 말한 건 내 이상이었다. 그게 돈이 안 된다고 돈을 찾아 떠나면, 나라는 실체는 없어져 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든다. 큐가 잡히고 챔피언을 고르고 로딩시간이 됐다. 녀석은 침대에 누워서 마우스 패드를 깔고 노트북으로 했고, 나는 데스크탑으로 했다. 녀석이 더 실력이 좋으니 더 열악한 장비를 택하는 것이었다. 훈이 문득 말했다.
“형, 힘들어?”
“아직은 몰라, 하지만 힘들어지겠지.”
“얼마나?”
나는 로딩 중인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많이.”
“….”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 둘은 게임 로딩 화면을 보며 힘든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뭔가 어이가 없고 웃기다. 장소가 이상하다. 술이라도 마시면서 얘기해야 할 것 같은데. 우리 둘은 지금 시선을 마주하고 있지도 않다.
녀석의 걱정은 진짜다. 방금 내 반응을 보고 놀랐을 것이다. 나는 집에서는 무던한 편이다. 감정은 눌러두고, 안으로 쌓아왔다. 내가 신경질적이고, 지나치게 예민하다는 걸 가족들은 잘 모른다. 설훈은 조금 알지도 모르겠다.
게임은 이겼다. 이 자식, 진짜 엄청 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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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음란마귀자식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