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4회
IF - 그래도 선준이래요폭죽을 샀다. 두근거리는 마음 같은 건 없었다. 박헌영은 눈에 불을 켠 채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자며 호들갑을 떨다가 설원에게 작작 좀 하란 소리를 듣곤 시무룩해졌다. 그런 박헌영의 표정변화들이 너무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내가 그런 박헌영의 모습에 웃었다는 사실에 하나도 놀라지 않은 내 자신이 놀랍다.
익숙해진건지, 체념한건지 모를 내 변화가 신기하다. 설원에게 미친 소릴 하며 나 자신을 놓아버렸기에 아무렇지 않은건지, 그저 박헌영의 저런 모습에 대한 편견이 사라져버린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둘 다일지도 모른다.
“좀 더 사자. 응? 응? 응?”
“내일까지 하고싶냐? 닥쳐.”
“내일까지 하면 되잖아!”
징징거리며 설원의 팔에 달라붙는 박헌영의 모습은 계산된걸까 아니면 본능적인걸까. 본능적이라 말하는 건 우습다. 변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박헌영에게 그런 본능이 심어질 수 있는 시간이 있기라도 했나?
애초에 박헌영은 저런 요망함을 흉내내는걸거다. 요망(妖妄), 요사스럽다는 뜻이다. 박헌영은 확실히 설원을 홀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이상한 짓거리를 의식해서 더 하는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나는 요망한 짓거리를 한다고 보기엔 거리가 멀다. 차라리 요악(妖惡)하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리겠지. 요사스러운 동시에 간악한 짓거릴 하고 있으니까. 적어도 박헌영은 정면승부를 하고 있다. 나처럼 설원의 못난 부분을 쥐어채고 흔들진 않는다.
편의점을 나오자 박헌영을 멀리 밀어놓은 설원이 나를 빤히 바라본다. 설원이 박헌영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작게 말한다.
“왜 그러는데 또.”
“뭐가?”
“표정 썩었어.”
나는 내 표정을 볼 수 없다. 하지만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지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나는 피식 웃으며 말한다.
“하루이틀이냐? 원래 이렇잖아?”
대부분의 상황에서 죽상이었으니까 새삼스럽게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설원은 한숨을 푹 쉰다.
“그래도, 기왕에 쉬러 온 거니까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 하자.”
내가 또 이상하게 꼬여버린 생각에 빠져있었다는 걸 읽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말한다. 그래, 서로에 대한 마음이 어쨌건 간에 우리는 마음이 꽤 잘 통했지. 그리고 안 통할 때도 많았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했지. 또 못된 생각이 들어서 설원을 보고 웃는다.
“너 이러는 거 안 좋을텐데?”
“안 좋긴 뭐가?”
설원의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내가 너 진심으로 좋아하면, 그거 존나 곤란할거아냐.”
날 걱정해서 하는 말인 건 알지만, 사람 마음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설원은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것처럼 흠칫해선 슬슬 물러난다. 박헌영은 우리가 서로 속삭이던 모습을 살짝 보곤, 못 본 것처럼 성큼성큼 앞서 걷는다. 애처롭네. 설원을 보고 나는 씨익 웃는다.
“그러니까 잘 해 임마.”
너무 잘 해주지 않도록 잘 하라고. 내 말이 우스워서 웃는다. 설원은 스트레스 때문에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이를 갈며 중얼거린다.
“잘 하라는거야 못 하라는거야?”
“알아서 잘 하란 뜻이지.”
나는 설원을 지나쳐 파도소리를 향해 걷는다. 박헌영의 뒤를 따라서.
맨 앞에 박헌영이 걷고 가운데에서 내가 걷고, 설원이 맨 뒤에서 걷는다. 우린 그 누구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있지 않은 채 그저 걷는다. 이 분절된 거리감이 낯설다. 우리는 타인과 지인의 그 어떤 경계에 선 애매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걷고 있다.
이 여행은 우릴 이상하게 만들었다. 아니, 원래 이상했지만 그 이상함을 표면화시켰다. 말해지지 않은 것들은 존재하지 않다가, 말해지는 그 순간부터 존재하게 된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치자. 박헌영이 설원을 좋아하건 아니건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박헌영이 입으로 꺼내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았고 관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박헌영이 그것을 어제 말해버린 순간부터 설원과 박헌영의 관계는 변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박헌영은 저렇듯 수줍음과 요망함의 경계에서 뒤죽박죽인 태도를 보이지 않던가.
그것이 집착이라고 치자. 내가 그런 감정을 느끼건 아니건 아무 상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설원에게 내 집착을 말하는 것으로 내 날것의 마음을 드러내는 것에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졌다. 만약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설원에게 집착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해도 그것을 내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이 짧은 여행에서 말해지지 않았어야 할 것들을 말해버렸다. 그렇기에 이 관계의 분절은 좋게는 절연에서 나쁘게는 파국으로 가버릴거란 사실을 잘 안다.
우리는 서로 조금쯤 떨어져 걷는다. 그래도 아무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 그저 이럴 때도 있는거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떨어져 걷는 것 따위에 왜 이렇게 의미부여를 하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이유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이 말이 참인지 아닌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이 말을 뒤집으면 어떨까.
마음이 멀어지면 몸도 멀어진다.
이 명제는 참일 수밖에 없다.
펜션에 돌아와서 설원은 피곤해 죽겠다면서 자러 들어갔다. 아마 저녁까지 잘 생각이겠지. 정말 졸려서 그런게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아마 우리 둘 사이에 껴서 부대끼는 게 싫겠지. 뭘 선택해야할지도 모르고 있을테고.
그렇기에 나는 박헌영과 거실에 나란히 앉아있었다. 뻔뻔해지기로 했기에 나는 불편하진 않다. 하지만 박헌영은 어쩔 줄 몰라하는 게 뻔히 보였다.
“조, 조금 이르긴 한데 점심 먹을래? 설원은 안 먹을 것 같고....”
안면근육이 씰룩거리는 모습이 어떤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는데 잘 안 되는 것 같다. 박헌영이 정말 착한 녀석이라는 걸 나는 요즘들어 절실하게 깨닫고 있다. 이렇게까지 착한 녀석이었을줄은 몰랐다.
명백하게 우리 둘이 뭔가를 놓고 경쟁하는 지금 상황에서, 내게 나쁘게 대하는 게 잘못이라고 생각하는거겠지. 그래서 더 잘하려고 노력하는거겠지. 되돌아 내 과거를 생각해보면, 나는 그런 사람이었을까?
아마 아니었을거라고, 새삼 깨닫는다. 나는 착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착하다는 건, 결국 호구같다는 말을 좋게 표현한 말일 뿐이다.
내가 과거에도 지금도, 착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내 본성은 이미 증명된 것과 마찬가지다. 점심을 차려주겠다는 박헌영에게 나는 고개를 젓는다.
“배는 아직 안 고프고, 얘기나 하자.”
“얘기?”
내 말에 박헌영이 겁먹은 사람처럼 흠칫 몸을 떤다. 그래, 넌 날 조금쯤 무서워했지. 내가 너와 설원 둘 사이에서 공정하지 않았다는 걸 넌 알고 있었고, 그래서 설원에게 더 많이 의지했다. 그래서 지금 네가 설원을 좋아하는거란 사실도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서로 여자가 된 지금에도, 너는 나를 두려워한다. 내 폭력을 두려워했던 너였고, 내 말을 두려워했던 너였지.
하지만 이젠 내 감정마저 두려워하는구나. 정확히 말하자면 설원에 대한 감정의 크기만큼 너는 나를 두려워할거다.
그렇기에, 나에 대한 두려움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 새삼 궁금해진다. 너는 설원을 얼마나 좋아하지? 그렇게 많이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그 마음 접어줬으면 좋겠는데.
나는 설원을 사랑하진 않아도, 설원이 없으면 죽어버릴 것 같아.
박헌영은 살짝 고갤 주억거리다가 힘겹게 입을 연다.
“나가서 하는 게.... 좋겠지?”
“그렇지.”
박헌영과 나는 펜션 바깥에 나갔다. 우린 펜션에서 조금 떨어진 벤치에 앉는다. 살짝 떨어져 앉은 우리의 거리감을 보고 나는 살며시 웃음짓는다. 이 거리는 이제 우리의 당연한 거리겠지. 이 거리가 반복되면 너와 나는 완전히 멀어질거다.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후회하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은 모든 걸 가지면서 살아갈 수는 없다. 설원을 갖기로 한 이상, 박헌영과는 더 이상 함께 갈 수 없다.
사람은 뭔가를 버려야만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대개 그 때는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버려야만 할 때 버리지 못하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일어난다.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썅년이 되거나.
설원을 가지면서도 박헌영과 잘 지내고 싶어 누구에게도 미움받지 않기 위해 박헌영의 앞에서 상냥하게 굴지 않겠다.
내게 양심이라는 게 아직 있다면, 이게 내 양심일거다. 박헌영은 가만히 앉은 채, 살짝 겁에 질린 것처럼 손끝을 떨고 있다.
“왜 쫄고 그래. 내가 잡아먹어?”
“자, 잡아먹을 것.... 같은데....”
박헌영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귀엽고 애처로워서 안아주고 싶어질 정도로 불쌍하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날카로운 것만 무기가 되는 게 아니다.
이런 약한 모습은 이제, 박헌영의 무기다. 세상 모든 건 무기가 된다. 그것을 무기로 쓰고픈 자각이 없어도 이따금 그런 것들은 무기가 된다. 박헌영의 이런 안쓰러움을 걱정하는 건, 타인의 무기의 예리함을 걱정하는 바보짓이다.
설원이 박헌영의 이 나약함과, 애처로움과, 안쓰러움과, 이 연약한 아름다움에 넘어가지 않기를.
바라면서.
“이런 얘기 알아? 원인은 없다는 말.”
입을 연다.
“아니.... 그게 무슨 말인데?”
“어려울 건 없어. 그냥, 사람들은 원인과 결과의 인과성을 아주 어렸을 적부터 학습한단 말이야. 우리는 답 있는 문제들을 배우면서 교육을 받잖아. 그래서 저도 모르게 생각하는 거야. 식이 원인이고 답이 결과라고. 수학에선 그게 가능하지. 그런데, 사람들이 여기에서 착각을 해.”
“무슨 착각?”
“모든 결과엔 원인이 있다는 착각. 정확히 말하자면 원인을 특정할 수 있다는 착각.”
“그게.... 왜?”
박헌영은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른다. 그래서 약간 경계하듯, 두려운 듯, 되물어온다.
“원인이란 건 기본적으로 다원적(多元的)이고 근본적인거야. 그 원인이란 건 너무 많아서 하나하나 주워섬길 수가 없어. 이 원인추론이 낳은 대표적인 예는 사라예보 사건이 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낳은거지. 대체 수많은 사건들의 단 한 지점을 어떻게 원인(原因)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애초에 어떤 사건의 원인이라고 말하려면 빅뱅을 말해야 원인이라는 말에 걸맞는거잖아? 진정한 근본, 진정한 원인같은 건 없어.”
“대체.... 무슨 얘길 하려는거야?”
감이 안 잡히겠지. 당연하다. 에둘러 말하다가 가운데를 찔러버리는 내 화법을, 너는 설원만큼은 모르니까.
“그냥, 우리가 원인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들이 그냥 교육의 산물이라는거야. 원인 같은 건 없고 말해질 수도 없어. 너무 많고, 너무 광범위하거든. 이해가 돼?”
“으응.... 대강, 무슨 뜻인진 알겠어.”
박헌영은 이해할 것 같다는 듯 고갤 끄덕인다.
서사학에서도 원인결과 추론에 대해서 그것이 그릇된 방식이라 말하고, 니체 또한 원인을 찾으려는 시도가 무의미하고 어리석다고 말했다. 진정한 원인이라는 건 본디 말해질 수 없는 것이다. 세상에 이유 없는 것은 없다. 원인이 없는 것도 없다. 다만, 그것은 말해질 수 없다.
말해지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유와 원인이 있다 해도 우린 그걸 알 수 없다. 그것이 우릴 어디로 데려갈지도 알 수 없다.
물론, 나는 철학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감정을 말하려고 한다.
사람들은 많은 것을 좋아하고, 많은 것을 싫어한다.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에 이유를 붙이고, 싫어하는 것에 이유를 붙인다. 때론 우습게도, 그것에 논리적인 이유를 붙이기까지한다. 나는 그것이 우습다.
과연, 감정을 이성으로 다룰 수 있는가? 논리적으로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하기 때문에 싫거나 좋다는 감정이 생길 수 있는가?
그렇다면 대체 왜 사람들은 수많은 사랑에 아파하고 절망하고 행복해하지?
이성으로 감정을 다룰 수 있다면, 아픈 사랑은 논리적으로 무너뜨리면 될텐데. 애초에 인간은 감정에 대한 통제권이 없다. 그렇기에 감정이 발동하는 원인 같은 건 없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가 인지하거나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에는 없다.
그렇기에 원인을 굳이 말한다면 단 하나뿐이다.
너는 감정적이라 싫다는 말이나, 너는 날 잘 이해해줘서 좋다는 말 따윈 그저 변명일 뿐이다.
사람은 좋아서 좋아하고, 싫어서 싫어한다. 이유는 나중에 따라붙는다.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싫다.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좋다고. 그딴 건 없다. 그런 말을 하는 이가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그러면 행복해지기 위해 자기 자신을 설득해봐라, 아니면 울기 위해 자기 자신을 설득해봐라.
감정은 이성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감정은 오직 감정만이 움직일 수 있다. 그렇기에 모든 감정의 문제는 이성으론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부분을 박헌영에겐 말해주지 않는다.
내가 무슨 말을 할지 몰라 어리둥절한 박헌영에게 웃으며 묻는다.
“설원이 왜 좋아?”
무슨 이유를 대건, 모두 가짜일거란 사실을 알면서.
그걸 헤집어버리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