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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설원입니다-21화 (21/224)

00021 가족 =========================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그건 변하지 않는다. 우리 엄마, 세상일에 둔감해서 TS병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거나, 보고도 까먹었을 거다. 나는 한참을 울었고, 딸꾹질을 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된 건지 설명했다. 나는 울면서 집으로 걸어갔다. 가방이 무거워서 질질 끌면서 갔다. 어깨가 빠질 것 같다.

집 앞에 도착해서 나는 벨을 눌렀다.

-덜컹

“어, 어…. 원이…. 야?”

“응 엄마, 나야….”

나는 대문을 열고 나온 엄마를 보며 말했다. 엄마는 당연히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당연한거다.

“어휴, 어휴 어쩜 좋아!”

엄마는 울음을 터뜨리며 나를 끌어안았다. 또 눈물난다. 나는 엄마를 부둥켜안고 울었다.

“어휴 타지에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을까 내 새끼!”

내 새끼라는 말에 나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 말이 너무 슬프다. 슬프고 아프다. 부모님이 의식적으로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나는 울컥하고, 눈물이 나려 한다. 내 부모님은 좋으신 분들이다. 마음이 따스하고, 정말 세상에서 이런 부모를 만나 너무 행복하고 기쁘다. 그래서 슬프다.

나는 친자식이 아니다.

나는 집에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엄마는 내 엉덩이를 찰싹 때렸다.

“아얏! 아파! 왜 때려?”

방금 울었기에 눈이 퉁퉁 부어 있었고,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엄마는 발갛게 부은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엄마는 나를 보며 소리쳤다.

“맨날 게임 하고 담배 피우고 술 처먹으니까 그렇게 된 거 아냐 이것아!”

“무, 무슨 소리야! 전혀 상관없는 얘기잖아!”

당황스럽다. 이게 대체 무슨 논리지?

“어? 자꾸 게임 하니까 이상한 생각만 들고, 담배 피우니까 몸 나빠지고, 술 처먹고 자꾸 엄한 데 싸돌아다니니까 이런 염병할 병 걸린거 아냐! 니가 운동도 좀 하고 건강하게 있어봐라, 다 면역력이 약해져서 그런거야!”

“무, 무슨! 아냐! 아, 아닌가?”

엄마는 예전부터 내가 뭐만 하면 게임 탓이었다. 대학에 간 뒤로는 담배와 술 때문에 모든 나쁜 일이 오는 거라고 말했다. 이 세상 모든 엄마가 다 그런지는 모르겠다. 생각해보니까 엄마 말이 맞다.

나 술 처먹다가 이렇게 된거다. 진짜로. 핀트는 어긋났지만 본질적으로는 술 때문이고, 담배 피우다가 한정운을 만났으니 담배 때문인것도 같다. 게임은 전혀 상관없지만.

뭐야, 엄마 무서워.

“내가 그렇게 그렇게 말했는데 말도 안 듣더니 아주 잘 됐다 인석아! 어디 아픈데는 없고?”

한껏 비난하다가 걱정을 같이 한다. 엄마라는건 정말 이상해. 하지만 그래서 좋다. 그래서 안심이 된다.

“응, 안 아퍼. 방금 엄마가 때린 데 빼고.”

나는 스포츠백을 내려놨다.

“밥은?”

“아, 먹었어. 괜찮아.”

먹은 우동이 아직 소화가 안 됐다. 엄마는 부엌으로 가더니 냉장고를 뒤적거렸다.

“딸기 먹을래?”

“아니.”

“그럼 음료수 마실래?”

“괜찮아.”

“그럼 이거라도 먹어.”

엄마가 가져온 것은 떡이었다. 밥->딸기->음료수 순서로 뭔가 부피가 줄어드는 것 같다가 갑자기 눈앞에 떡뭉치가 나타나자 당연히 당황할 수밖에 없다. 엄마들은 정말 이상하다. 배 안 고프다는데 자꾸 뭘 주려고 한다. 주니까 먹어야지. 나는 떡을 우물거리며 먹었다. 엄마는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너 인절미 좋아하잖아.”

“응.”

자신은 좋아하는 거 안 하면서 자식들 좋아하는 건 다 알고있다. 부모라는건 정말 이상하다. 나는 떡을 우물거리며 먹다가 인절미 가루가 목에 들어간 탓인지 갑자기 목이 메었다.

“이거 마셔.”

나는 엄마가 건네준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인절미를 몇 개 더 먹자 엄마는 다시 딸기도 꺼내왔다. 엄마는 항상 이런 식이다. 결국 다 먹으라고 한다.

“엄마 괜찮아….”

“너 타지에서 밥도 잘 못 빌어먹고 다니니까 그렇게 된거 아냐. 조금만 기다려.”

엄마는 결국 밥까지 차린다. 집에서 먹던 거긴 하지만 된장찌개와 밑반찬, 그 새 고등어까지 구웠다. 나는 잘 차려진 밥상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는 이런 식이다. 세상 엄마들은 전부 이런 식일거다.

“괜찮다니까 왜 자꾸 그래에….”

“어머, 얘가 이제 애교도 부리네. 너 설원 아니지? 옛다 밥 줄 테니까 가서 거짓말 하지 말구 살어~? 원이 여자친구야? 걔도 참 가진건 불알 두쪽밖에 없는놈이 언제 이런 예쁜 애를 만났대? 그런 모질이 만나다가 인생 종치는거 한순간이다?”

“장난치지 마…. 진짜 설원이라구….”

나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엄마는 이런 상황에 농담이 나오나. 엄마는 내가 진짜로 다시 눈물을 뚝뚝 흘리자 미안하다며 어깨를 쓰다듬어줬다. 뭐야, 병 주고 약 주고 밥 주고 뭐야.

“어휴, 울보인거 보니까 우리 원이 맞네.”

집에 오기 싫다 이래서. 괜히 눈물이 난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욱 그렇다. 다 자라면 자식은 부모 품을 떠나야 한다고 누가 그랬던가. 나이를 먹을수록 부성과 모성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접할 때마다 서럽고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 특히 나는 더욱 그렇다.

밥을 한 술 뜬다. 눈물이 난다.

밥을 한 술 더 뜬다. 눈물이 또 난다.

배부른데 맛있다. 맛있다기보다 먹을 때마다 뭔가 안에서 차오르는 느낌이다. 이 사람은 내 편이다. 내가 무슨 짓을 해도 내 편이다. 내 엄마다. 친엄마가 아니지만 엄마다. 나를 진짜 자식이라고 여긴다. 그래, 그게 고맙다.

당연한 거라고 누가 말할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그게 정말 서러울 정도로 고맙다.

“어휴, 그렇게 맛있어?”

엄마가 내가 밥 먹는 모습을 보며 말한다.

“마시써써 그넝 거 아이그등.”

“처먹고 말해 이것아. 입술도 뭐 이렇게 조막만해졌대?”

엄마는 나를 무슨 귀여운 인형 보듯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바보같이 울면서 밥을 한 그릇 다 먹었다.

나는 마음을 좀 진정시키고 소파에 앉았다.

“훈이는?”

“이층에 있어, 형제 아니랄까봐 걔도 니처럼 허구헌날 게임질이야. 롤러 브레이든지 스케이튼지 맨날 컴퓨터로 그거 하고 자빠졌다.”

엄마는 아마 롤을 말한 것 같다. 녀석의 티어는 다이아 1이다. 마스터 달았다가 떨어지는걸 반복하고 있다. 미친놈, 롤창인생이라는 건 걔를 보고 하는 말이다. 항상 나랑은 실력 차이가 나서 안 한다고 말한다.

엄마, 걔는 현실은 어떨지 모르지만 가상세계에서는 이미 하늘에서 천민들을 내려다보고 있어. 판검사는 되지 못했지만 달인이 되었다고! 물론 이걸 말해주면 엄마는 아마 컴퓨터를 부숴버리려고 하겠지.

내가 전시즌 다이아였다고 했지? 그래, 사실 대리받았다.

훈이는 이제 스물 한 살이다. 충남대 경영학과를 다닌다. 대전에 있는 대학교라서 집에서 통학하고 있다. 아직 군대에 안 가서 군대가 지상고민인 것으로 알고있다. 불쌍한 자식, 이 나라 모든 미필들이여, 내가 가여워하노라.

헤드셋 끼고 게임 하느라 집에 누가 온지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아빠는?”

“친구들이랑 술 마신단다. 너 왔다고 연락 했으니까 올거야.”

우리 집은 자동차 정비소를 한다. 수입은 그럭저럭, 단골들이 있고 아버지도 여기서는 꽤 실력 있는 사람인 모양이다. 누구나 그렇듯 나는 아버지가 하는 일에 대해서 잘 모른다. 하지만 항상 기름때 묻은 손을 보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남루하고 끈적한, 비린내나는 것인지는 일찍 깨달았다.

“말 했어?”

“뭐 그냥 대충 말했지.”

“엄마 무서워 뭐라고 말했을지…. 봐봐.”

나는 엄마의 핸드폰을 켜고 문자를 봤다.

[원이왓어여자라는대.]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엄마!”

“어휴 나는 문자 그거 아직도 잘 못 쓰겠다.”

아빠는 손에 기름때가 항상 묻어있어서 문자 답장을 잘 하지 않는다. 보면 차라리 전화를 한다. 엄마가 아빠에게 보낸 카톡은 정말 의미도 없고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래, 부모님 세대들 중에는 카톡에 익숙한 사람도 있지만, 우리 부모님처럼 문외한인 사람도 있다. 맞춤법도 자주 틀린다. 부모님 세대가 맞춤법 잘 맞추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띄어쓰기도 잘 안 한다.

이해하기에 따라 수많은 의미로 해석되는 문장이었다. 여자를 데려왔다는 건지, 여자 문제가 있다는 건지, 좀 극악하게 보면 내가 여자애를 데려왔는데 걔가 딸을 낳았다는 얘기로까지 볼 수 있었다.

-삐걱 삐걱

낡은 나무 계단에서 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일층으로 내려왔다. 말할것도 없이 설훈, 내 동생이었다. 녀석은 계단에서 내려오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어, 어헉!”

-쿵쿵쿵!

녀석은 내려오는 속도의 다섯배쯤 되는 속도로 뛰어올라갔다.나 같아도 집에서 드로우즈 팬티만 입고 묵직한 실루엣을 덜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갑자기 여자가 있다면 기겁할 것이 분명하다. 애초에 겨울인데 왜 저러고 있는거야?

그리고 그 여자애가 엄청나게 예쁘다면 더욱 놀랄 것이다.

“어, 엄마! 손님 있으면 있다고 말을 해야지!”

애꿎은 엄마한테 화풀이를 한다. 못난 놈, 아직도 그러고 사냐.

“얘 니 형이야.”

그런데 엄마는 참 신기하다. 의심할 수도 있는데 잘도 믿는다. 그렇다고 엄마가 사기당할 것 같은 성격이냐면 또 그것도 아니다. 아빠가 예전에 사기를 몇 번 당해서 그런 쪽에는 촉이 또 대단하다. 설훈하고 내가 개인정보를 웹상에 여기저기 뿌린 통에 엄마는 수많은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단 하나도 안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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