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4회
IF - 그래도 선준이래요
“허, 여기 뭐야?”
창밖에 곧장 바다가 펼쳐진 펜션에 도착했다. 설원은 기가 질린 듯 펜션 안에서 펼쳐진 바깥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설원의 그 모습이 기가 찬지 박헌영은 실실 웃는다.
“흐흐, 이 언니의 재력을 우습게 보지 말라구.”
그냥 펜션도 아니고 풀빌라다. 이 독채 하나가 전부 우리가 쓰게 되어 있다. 나는 펜션도 펜션이지만 어쩐지 이래도 되는건지 의문이 든다.
“세 명이서 쓰기엔 너무 넓지 않아?”
“그만큼 편하게 놀 수 있다는거지!”
배시시 웃는 박헌영을 보며 뭐라 말하기 힘든 기분이 든다. 내가 이래서 녀석한테 부담을 줘버린 것 같아서. 내 기분을 느꼈는지 박헌영이 내게 다가와서 귓가에 속삭인다.
“공짜 아니거든?”
“어? 어.... 당연하지.”
“나중에 갚아. 꼭.”
박헌영은 나를 바라보며, 애틋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아주 나중에. 꼭 갚는거야.”
당장 내일이나 모레가 아니라 아주 먼 나중에 갚으란 이야기다. 내가 베푸는 게 아니라 이건 빚이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각자의 몫을 낸 것과 다름없다. 부담갖지 말고, 미래의 빚으로 기억해두면 되니까 오늘은 그냥 놀자는, 그런 의미다.
“그래.”
그러니까, 박헌영은 고맙다는 말을 바라진 않을거라서. 고개를 끄덕이는 게 내 최선이었다.
짐을 대강 풀고, 각자 혼자서 자도 될만큼 방도 많았다. 박헌영에게 감사하긴 하지만, 난 설원과는 다르게 풀빌라 펜션 자체에 딱히 어떤 감흥 같은 건 없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유복한 집 자식으로 살았다.
유복이란 말도 조금 민망할 정도로, 집에 돈이 많았다. 그 돈이 내 돈이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좌파 부르주아지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탓도 있었고 실제로 의절도 해버렸으니 본가와 나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중요한 건, 어린 시절 나는 전국 각지에 있는 별장에서 휴가철을 보냈다. 물론 가족 없이 혼자 간 경우가 대부분이긴 했지만.
새삼스럽게 이런 풀빌라 펜션에 과분함을 느끼진 않는단 뜻이다. 하지만 이건 이제 내 팔자에 없는 것이니 감회가 새롭긴 했다.
언덕 아래로는 해변으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아래 해변에는 사람이 없었다. 비수기인 탓에 해변에 걸어다니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
“장 볼 필요 없다던데. 여기서 다 준비해줄건가봐.”
“잘됐네.”
설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확실히 여러모로 귀찮은 과정들을 생략하고 놀 수만 있다는 것도 좋긴 하지. 박헌영은 여기서도 원고작업을 조금은 해야 한다며 노트북을 꺼내들었다.
“아니, 여기서도 글쓰게?”
설원이 기가 질린 것처럼 말하자 박헌영은 고갤 끄덕인다.
“잠깐만 하는거야 잠깐, 오래 안 걸리니까 둘이서 산책이나 하고 와.”
“음....”
설원이 나를 빤히 쳐다본다. 갈래? 라는 표정이었다. 박헌영은 이미 노트북 속으로 빨려들어가버린 것 같은 눈빛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언제 어디서나 저렇게 집중할 수 있는 건 정말 부럽기까지하다. 그런데 기껏 여기까지 와서 일 하는 거 조금 불쌍해보이기도 하는데.
작업하는데 방해하는 것도 못 할 짓이겠지.
“그럼 잠깐 다녀오자.”
나와 설원은 펜션 바깥으로 나왔다. 날씨는 따스하고, 해풍도 적당히 불지만 짠내는 나지 않는다. 조금 크게 마음먹으면 수영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날씨다.
물론, 수영할 생각 같은 건 없다.
계단을 내려가 모래사장을 밟는다. 설원도 나를 따라 모래사장을 밟는다. 고운 모래를 밟는 느낌을 좋아한다.
“사람 진짜 아무도 없네.”
“그러게.”
사람들이 모이는 해변과 살짝 떨어진 곳에 있기에 정말, 시야가 닿는 모든 곳에 단 한 명도 눈에 띄지 않았다.
이렇게나 드넓은 공간에, 사람이 없다. 여기에는 설원과 나밖에 없다. 설원을 본다. 작아진 키 때문에 나는 설원을 올려다봐야 한다. 내가 올려다보자, 설원은 나를 내려다본다.
평행하던 시선은 이제 각도가 생겨버렸다. 올려다봄과 내려다봄. 이 단순한 차이는 심리의 차이를 만들어낸다. 히틀러가 그렇게 각도를 사용한 것처럼. 단순한 올려다봄은 심리의 효과를 발생시키고 마음을 조종한다.
결국, 마음도 설원을 올려다보게 되어버리는가.
내가 계속 쳐다보자 설원이 미소짓는다.
“왜 그렇게 봐?”
“모르겠어.”
나도 내가 왜 설원을 가만히 올려다보는지 모르겠다.
“그냥, 그냥 보는거야.”
“바다 보러 왔으면 바다를 봐야지.”
“그러네.”
-쏴아아아....
파도가 밀려와 부서지고, 밀려와 부서진다.
태고 이후로 한 번도 멈춘 적 없었을 그 영원의 밀려옴과 부서짐이, 문득 생각해보니 기이하고 낯설다.
우린 걷는다. 해변으로 다가간다. 사람 없는 봄의 해변을 걷는다. 아마 곧 여름이 올테고, 여름이 오면 이 해변은 미어터질 것 같은 사람들로 북적일거다.
“신기하지 않아?”
“뭐가?”
“사람이 이렇게나 없다는 게, 또 조금 지나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아질거라는 게.”
신기하다. 사람은 몰려들고 사라진다. 해변은 그대로 이 자리에 있다. 해변인 채로, 영원한 밀려옴과 부서짐을 안은 채로. 설원은 광막한 해변을 바라본다.
“그러네, 조금 있으면 엄청 많아지겠네.”
“그 때 왔으면 아무 소용 없었겠어.”
조용한 곳을 원했는데, 일찍 와버렸다면 사람들이 북적여서 그것도 부담스러웠을거다.
“웃기지 않아?”
“뭐가?”
“우리가 생각하는 바다는 대개 소란스러운거잖아. 사람 반 물 반에, 시끄러운 소리에, 지천에 널린 쓰레기에, 술 먹고 주정하는 사람들 같은 거.”
그건 직접 경험한 바다일수도 있지만, 매체가 보여주는 바다는 언제나 그러하다. 휴가철에 바다에 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어 있으니까. 그런 바다만을 보게 되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바다에 대한 선입견이 생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해변은 고요하다. 밀려오는 파도소리만 잔잔하게 깔릴 뿐, 우리의 대화만이 유의미한 소리로 존재한다.
“사실, 소란스러운 해변은 여름의 바다 하나뿐이잖아.”
“그렇지.”
“봄, 가을, 겨울의 해변은 다 이렇겠지.”
“응, 그렇겠지.”
해변은 소란보다 고요할 적이 더 많다. 사람들은 여름에 바다로 몰리고, 다른 세 계절의 해변은 대개 고요하다. 해변의 보편은 소란이 아니라 고요일 것이다.
보편적인 해변을, 설원과 함께 걷는다. 특별한 여름의 해변이 아니라 보편적인 해변을 보편적인 시간에 찾아와 함께 걷는다. 수영을 하지도 않고, 물장난을 치지도 않는다.
폭신한 모래를 밟는 기분이 좋다.
“잠깐 앉을까?”
“응.”
설원의 제안에 우리는 나란히 앉는다. 설원은 신발에 모래가 들어갔다고 투덜대며 신발을 벗고 양말까지 벗어버린다.
나도 설원을 따라 신발을 벗고 양말을 벗는다. 부드러운 모래가 맨발에 닿는 기분이 좋다. 서로 맨발인 채 나란히 앉아있다. 비단 지금뿐만 아니라, 설원과 나는 항상 같이 다닌다. 이곳에서와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도.
그렇기에 교수가 연인 사이로 오해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는 설원을 바라본다.
“멀리서 보면, 우리 어떨까.”
앉은 채로는 시선을 나란히 할 수 있다. 물론 앉은키도 설원이 더 크긴 하지만. 설원은 내 시선을 마주하며, 쓴웃음을 짓는다.
“그건 왜 물어보는데?”
“그냥, 궁금해서.”
“뭐, 사귀는 사이로 보겠지.”
항상 같이 다니고, 밥을 같이 먹고, 술을 같이 마시고, 여행도 같이 왔으니까.
“역시 그렇겠지.”
“그게 싫어?”
“싫지도, 좋지도 않아.”
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그냥 어쩔 수 없는거라고,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보여지는 건 어쩔 수 없다. 남들이 날 어떻게 보건 그 시선을 바꾸는 건 내겐 불가능하다. 남들의 시선을 바꾸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다른 건.
내 시선을 바꿀 수는 있나? 내 마음을 바꿀 수는 있나?
마찬가지로 그런 것도 불가능해. 설원을 바라보지 않은 채 묻는다.
“그럼 너는 어떤데?”
사귀는 사이로 보여질거다. 그거에 대해 너는 어떻게 생각하지?
“아무래도 상관없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중요한거니까.”
그러니까, 어떻게 생각하는데.
그 말을 나도 모르게 하려다가 가까스로 말하지 않을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올 것 같았던 그 말은 해선 안 되는 말이다.
나는 뭘 알고싶은거지.
왜 그런 질문이 발생한거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지만 나는 그 쳐다보고 싶은 욕망을 외면한다. 설원과 나는 나란히 앉아있지만, 꼭 붙어있는 건 아니다. 약간의 거리감이 있다.
삼십 센티미터조자 되지 않는 거리가 떨어져 있다.
살짝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그 거리는 제로가 된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냥 호흡 한 번 하는 것도 안 될 정도의 짧은 시간만에 그 거리는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게 어려워서가 아니다.
너무 쉬워서.
여기서 더 가까워지는 게 너무 쉬워서.
그렇게 할 수 없어.
이 거리감을 좁혀버리면, 떨어지는 건 불가능하니까. 거리감을 좁히는 건 호흡 한 번 할 시간 정도면 충분하지만, 좁혀져버린 거리는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은 채. 제로가 된 상태만을 원할거다.
지금도 가깝지만, 더 가까워진다면 이 거리감은 영원히 사라진다. 인간관계란 좁혀지는 것만이 허락된다. 멀어지면 그 순간 단절된다. 설원과의 거리를 좁혀버리면, 다시 이 거리감을 회복할 수는 없다. 거리를 벌리려 한다면 설원과 영원히 단절된다.
이 거리감.
좁히기 쉽기 때문에 좁히면 안된다. 그렇게 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떨어지지 못하게 되어버리고, 지금과 같은 거리감으로 되돌아오려 한다면 설원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된다.
“좀 춥다.”
“그러네.”
불어오는 해풍이 점차 몸을 식혀간다. 외투도 입고 있지 않았기에 바람이 점점 차갑게 느껴진다.
그 거리.
“좀 가까이 와봐.”
갑자기 설원이 그 조금의 거리를 확 좁혀버린다. 내 옆에 딱 붙어버린다. 나는 놀랐지만 물러나지 않은 채, 그 설원의 난데없는 접근에 놀라버린다. 설원이 나를 바라본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이 거리감을 의식하고 있었다고 말해야하나. 왜 이렇게 가까이 다가왔냐고 물어야하나, 부담스럽다고 말해야하나. 아니, 그런 말을 하는 게 더 이상하게 느껴지진 않으려나. 그저 추우니까 조금 붙어있자고 한 것 같은데. 내가 오버하는건가.
설원의 얼굴이 가깝다. 뭘 고민하냐는 듯 설원이 말한다.
“뭘 그렇게 겁내.”
“어...?”
“추우면 이럴수도 있는거지 뭘.”
설원이 달라붙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말없는 내가 하는 고민이 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나를 알아서 이런 행동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를 알아서 설원이 다가온 게 맞는 것 같다. 거리를 좁힐 수도 있다. 붙어있을 수도 있다.
추우니까. 춥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래도 된다. 잠깐 좁혔다가 다시 거리를 둘 수 있다. 완전히 좁히는 게 아니라 추워서 그런거니까.
추워지지 않으면 다시 거리를 벌려도 되는거고, 추우면 이렇게 붙어있어도 된다고 말하는거다.
단순한 의미부여일지도 모른다. 설원은 그냥 한 말일지도 모른다. 이 길고 긴 의미부여가 사실은 그냥 내 착각일지도 몰라.
하지만, 설원은 생각이 많은 녀석이다. 설원을 알기에, 설원이 나를 알기에, 내 생각이 맞을거다.
설원을 바라본다. 설원도 나를 바라본다. 말하고 싶다. 말해야만 할 것 같다.
“그.... 있잖아.... 기억하지.”
내 목소리가 떨린다.
“뭘?”
“그, 죽은 후임.... 여자친구.”
“어, 기억하지. 그 사람이 왜?”
“자살......했대.”
나는 그 말을 한 뒤 차마 견딜 수 없어서 고갤 숙여버렸다. 설원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언제 들었어?”
“오늘.... 아침에.”
나 때문에 사람이 둘 죽었고, 그 두 죽음으로 인해 파생될 불행은 얼마나 많은가. 그걸 견디기 힘들어서 나는 뭘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설원은 많은 생각을 할거다. 내가 이렇게 된 것과 오늘 아침에 들은 이야기를 결부시켜 내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도 추측할 수 있을거다.
설원은 내 책임이 아니라고 말했다. 내 책임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건 아니다. 결국 그 때문에 고통받는다는 사실이 있을 뿐이다.
“나 봐봐.”
“.......싫어.”
“이쪽 봐줘.”
설원의 부드러운 요구에 나는 힘겹게 고갤 든다. 울고 있진 않다. 이걸 말하면서 우는 것 자체가 비겁한 것 같아서, 울 수는 없었다. 내 표정에서 무엇을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미안해.”
라고 말하면서.
설원이 날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이래도 되는건지 아닌지 모르는 채, 추우니까 그럴 수 있다고 했던 방금의 말처럼.
설원은 거리를 좁히는 걸 넘어 나를 끌어안았다. 조심스럽게 내 머리에 얹은 손으로, 가만히 내 머리를 쓸어내린다. 나는 밀어내지 않은 채, 그렇다고 완전히 몸을 맡기지도 않은 채 가만히 있을 뿐이다.
심장이 뛰진 않는다. 이 끌어안음에서 애정을 느끼지만 그건 성애가 아니고, 나도 설원도 그걸 느끼진 않는다.
나는 끌어안음 그 자체가 필요했다.
“내 잘못이겠지...?”
아니라는 대답을 원하듯 이렇게 묻는 건 환멸받아 마땅할 일이란 걸 알면서도 나는 그렇게 말한다. 그렇게 말하지 않고선 견딜 수 없었다.
“나비의 날갯짓 때문에 태풍이 일어났어.”
설원은 난데없이 나비효과를 말한다.
“그 태풍에 나비의 책임이 있나?”
“.......”
설원의 말은 비약이다. 나비는 살기 위해 난다. 살기 위해서 날갯짓은 필요하다. 살기 위해서 날았던 나비가 일으킨 태풍이 어째서 나비의 책임인가.
나는 살기 위해 잘못한 건 아니다. 잘못은 그저 잘못이고 그 잘못은 의도적이었다. 더 좋은 결과를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는 건 아무런 의미도 없다. 나쁜 짓이 나쁜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설원이 비유하고픈 게 그거라면, 그 비유는 잘못되었지만 그 비유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
“책임이야. 책임일 수밖에....”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설원이 조금 더, 나를 세게 자신 쪽으로 당겨 안는다. 숨이 막힐 것 같지만, 그 숨막힘이 기껍다. 조금 더, 조금 더 끌여당겨주길 바란다.
“나는, 아니라고 생각해.”
내 생각이 어떨지 몰라도, 설원은 자기 자신은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하며 나를 오랫동안 끌어안고 있었다.
설원이 내 머릴 쓰다듬는다.
춥다는 생각이 사라질 때까지. 계속.
“.......”
설원에게 안긴 이선준, 이선준을 안은 설원.
그 모습을 박헌영은 멀리서 바라보고 있었다. 원고작업을 막 끝내고, 함께 산책이나 하자고 하려던 박헌영은 그 모습을 멀리서 발견하곤 해변가 끄트머리의 나무에 살짝 몸을 숨겼다.
나무에 기댄 채, 박헌영은 굳은 표정으로 그저 땅을 내려다본다.
“치사하네....”
그리고 그 말을 꺼내기 무섭게 박헌영은 제 말에 저가 놀란 것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박헌영은 그 말을 한 스스로를 견딜 수 없어진 것처럼,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아픈 친구에게 그런 말을 한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밑바닥에서부터 치솟는 것처럼.
“...씨발.”
그 말을 남긴 채, 박헌영은 내려온 계단을 다시 되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