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래도 설원입니다-210화 (210/224)

210회

IF - 그래도 선준이래요

수업시간.

비평론에 관한 수업은 사실 재미가 없다. 물론 수업이 재미있는 것에도 이유가 많은 것처럼 재미없는 수업에도 이유는 많다.

이 수업이 재미없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 아는 내용이다.

아는 걸 재확인하는 과정은 누군가에겐 즐거운 일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나는 기억력이 꽤 좋은 편이고, 한 번 공부할 때 철저하게 해 두는 편이라 잘 잊어버릴 수도 없다. 좋은 저술들은 다시 읽어보기도 하지만 개론서에 가까운 교재는 이미 심화이해를 끝낸 개념들이 단편적으로 다뤄질 뿐이다.

앞에서 떠드는 교수 잘못이 아니다. 당연히 눈앞에 있는 교수는 나보다 많은 걸 알고 나보다 많은 걸 제대로 설명할 수 있다. 다만, 학생들이 이해할만한 수준의 수업을 할 뿐이기에 내가 들을 게 없을 뿐이다.

옛날에는 이런 수업에서 아는 개념들이 나올 때 열심히 주워섬기며 지성을 과시하는 짓거리도 했지만, 이젠 그것마저 질릴 때가 되어버린 사학년이다.

입은 다무는 편이 좋고, 말은 많아서 좋을 게 없다. 내가 굳이 이 상황이 아니었다 해도 나는 별 말을 보태지 않았을 것이다. 입 아프게 떠드는 건 그 말을 제대로 들어줄 사람이 있을 때에나 하는거다. 교수는 내가 아무리 열심히 지껄여봐야 오 기특하군. 이 정도 생각만 할테고 설원에겐 나중에 따로 얘기해주면 될 뿐이니까.

이 불특정다수에게 굳이 내 앎을 피력한다한들 저들이 갖는 감상은 ‘상당히 잘 까부는군.’이라는 평가를 듣게 될 뿐이다.

사학년 전공수업, 누군가는 열심히 듣고 누군가는 열심히 듣지 않는다.

그리고, 내 옆에 앉은 설원 또한 열심히 듣지 않는 녀석들 중 하나다.

분명히 앞을 보고는 있는데, 초점이 흐려져있는 걸 보니 딴생각이나 하는 중이다.

아니, 미친놈아. 너는 그러면 안될텐데?

-쿡!

‘놀 때냐?’

내가 설원의 어깨를 찌르며 눈을 부라렸다. 설원은 인상을 찌푸린다. 너 이거 모르잖아. 공부해야 할 거 아냐!

‘남이사.’

설원의 쿨한 대답에 기가 찬다. 그건 쿨한 게 아니라 무지의 무비판적 수용이라고 부르는건데?

‘그래, 네 일이니까 하라고 이 또라이야.’

‘졸려.... 숙취.... 개쩔어....’

‘공부하기로 했잖아. 너 나랑 하는 공부로 모든 걸 해결하려는 생각은 아니겠지? 수업시간에 다룬 내용도 활용할거니까 열심히 좀 들어!’

‘살려줘....’

아무리 지랄을 해도 설원의 죽은 눈은 돌아오지 않는다. 졸리다거나 숙취도 솔직히 그냥 엄살이다. 이 자식은 그냥 공부가 싫은 것 같다. 너무 오래 속닥거렸는지 교수가 나를 빤히 쳐다본다.

“할 말이라도 있나 이선준 학생?”

비평교수의 눈빛이 무섭게 내게 쏘아진다.

“아, 아닙니다....”

괜히 튀었다가 욕이나 한 사발 먹을뻔했다. 조금이라도 더 떠들면 내게 강의를 대신 하라고라도 말할 것 같아서 나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남자친구랑 앉는 건 좋은 데 말이야. 조금 더 집중해주게.”

“아....”

그 말에 표정관리가 안 되어서, 나는 돌처럼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강의실 분위기가 급격하게 싸해진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러고보니 저 비평교수, 올해부터 출강 시작했다고 들었다. 그러니 애초에 내 사정에 굳이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고 필요도 없다. 아니, 알고있나? 알면서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건가?

“그런 사이 아닌데요.”

내 대신 말을 한 건 설원이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냉정하고 단호한 어조였다.

“아, 그래? 그럼 미안하네. 솔직히 매일 같이 앉으니까 그런 줄 알았지. 실례했어.”

그 말에 강의실에서 잠깐의 웃음이 터져나왔다. 분위기가 풀린 게 다행이라 생각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도저히 다행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내게 몰리는 시선과 웃음.

그건 비웃음인가? 그래, 대개 웃음이란 비웃음의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지. 아니, 그런 거창한 정의 같은 건 상관없어. 지금 내게 행해지는 웃음은 비웃음이다.

마치 설원의 부속품처럼 전락해버린 내 모습에 대한 비웃음. 내 스스로 나를 변호하지도 못한 채 돌처럼 굳어버려선, 설원이 내가 해야 할 말을 대신 해버리는 이런 나에 대한 비웃음이다.

아니, 비웃음이 아닐지도 몰라. 그냥 이 경색된 분위기를 풀기 위한 웃음일거다. 여기 있는 녀석들이 대체 왜 날 비웃어야만 하지? 그래야만 할 이유 같은 건 없어.

하지만 강박처럼 틀어박히기 시작한 생각은 멈출 수 없다. 머리가 아니라 심장이 생각을 뽑아내기라도 하는 것처럼, 나는 내게 가해지는 시선들이 비웃음이 아닐거라 생각하려 하지만, 비웃음이라고 강박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우습나?

그리고 깨닫는다.

이 강박, 타인의 시선을 내 멋대로 의미화하고 해석해내는 근원은 결코 타인의 시선에 있지 않다.

대답은 내 자신에게 있다.

나는 내 자신이 우습다. 그렇기에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 또한 비웃음일거라 여긴다.

나는 나 자신이 혐오스럽다. 그렇기에 타인이 날 혐오할거라 생각한다.

나는 나 자신이 증오스럽다. 그렇기에 타인도 마찬가지로 날 증오할거라 생각한다. 모든 대답은 이미 내 안에 있고, 타인이 내게 보내는 모든 시선은 그저 내가 원하는대로 치환되어버린다.

강박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발생한다.

유사준 상병의 변화에서부터 시작된 자기혐오의 싹은 이미 자라고 자라 이윤희의 죽음에 이르러 열매까지 맺어버렸다.

난, 그 모든 시선을 재해석하지만 그 시선을 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나는 내 안에서부터 이미 납득하고 있었다.

누가 날 공격할까봐 두려운 게 아니다. 나는 나 스스로 나를 공격하고 싶어한다.

나는 죄지었다.

그러니 타인이 나를 그렇게 바라보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니 그 어떤 시선조차 견딜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래선 안 되었던 일을 해버린 탓에 나는 이 꼴이 되었다.

부정적 사고가 부정적 감정을 낳고, 부정적 결과로 나타난다.

손이 저려.

쥐라도 난 것처럼 손끝이 저려온다. 얼굴이 뻣뻣해지고, 마치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따끔거린다. 뭐지? 견딜 수 없는 위화감과 동시에 위기감이 다시 날 찾아온다. 정신의 문제가 육체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갑자기 사람이 이렇게 될 수 있다고?

그뿐만이 아니다.

뭐야.

나, 죽을 것 같아.

“흐, 후....”

-덜컹!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강의실 문을 열고 나가버린다. 비틀거리며 걷는다.

“흐, 흐으으윽.... 흐윽....”

숨이 잘 안 쉬어져. 아니, 숨을 쉬고는 있는데, 숨을 쉬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 숨을 쉬는데 숨을 쉬지 않는 것 같아.

뭐지? 이상한 충동과 강박이 날 찾아온다.

죽을 것 같다. 그건 어떤 개연의 문제가 아니라 확신이 되어 다가온다. 아파서 죽을 것 같은 게 아니다. 숨이 막혀서 죽을 것 같은 것도 아니다. 이건 그런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당장 숨이 끊어져버릴 것 같다는 강한 확신이 내 머리를 때린다. 이런 생각이 들었던 적은 살면서 단 한 번도 없어.

어떤 논리도 이유도 없이, 근거조차 없는데 확신하는 건 불가능해. 만약 내가 죽는다면 차에 치인다거나, 질식해서라거나 그래서 죽는다는 생각이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 이유 없이, 그냥 내가 죽는다는 확신히 머릿속에 콱 틀어박혀서 계속 맴돈다.

“흐으으윽! 흐윽! 흑!”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복도를 비틀거리며 걷는다. 간신히 빈 동아리방에 들어가기 무섭게, 설원이 내 뒤를 따라들어온다.

“뭐야! 왜 그래!”

설원이 날 붙잡고 말한다.

“수, 숨이.... 숨이 잘.... 잘 안 쉬어져.... 흐으으으윽! 흐윽! 흑!”

호흡을 거칠게 들이킨다. 처음 겪어보지만 뭔지 알 것 같다.

과호흡이다.

“구, 구급차를 지금....”

“아.... 아니.... 아니.... 봉투, 비닐이건 뭐건.... 흐윽! 하, 하나.... 빨리....”

“어, 어! 알았어!”

과호흡에 대한 긴급요법 정도는 알고 있다.

설원은 나를 방에 남겨두고 황급하게 어디론가 달려갔다. 팔과 얼굴이 쥐라도 난 것처럼 저려온다. 죽는건가? 나는 이렇게 죽는건가? 왜 죽어야만 하는거지? 죽는다면 어떻게 죽는거지? 그런데 나는 죽는다.

머리가 망가져버린 것처럼 강박적인 죽음에 대한 확신이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동아리방에 쪼그려앉은 채 머리를 양팔로 끌어안고 숨을 고르려 한다.

하지만 잘 안 돼.

누가 내 심장을 쥐어짜고 있는 것 같아.

“흐, 흐으으으..... 흐으으으윽....”

“여기, 여기 가져왔어.”

나는 설원이 가져온 비닐봉투에 입과 코를 박고 숨을 들이쉬었다 내쉬길 반복한다.

나는 죽어, 죽을거야. 지금 죽는거야.

죽고싶지 않은데, 죽고싶지 않은데.

나는 벌벌 떨면서, 비닐봉투에 코를 박은 채 숨을 계속, 계속 고른다. 몸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치솟는다.

“구급차, 구급차 부를게.”

아니야. 구급차 따위가 날 살릴 수는 없어. 나는 죽을테니까. 나는 전화를 걸려는 설원의 팔을 붙잡는다.

“됐.... 됐어.... 등이나 좀, 좀. 쓸어내려 줘. 계속.”

이상하다.

죽을거란 생각이 계속 드는데 그것이 감정에서 쏘아내는 말이라면, 머리에서는 이깟 걸로 사람이 죽진 않는다고 계속 말한다.

한 사람이 상반된 두 가지 충동을 동시에 느낄 수 있나? 그 미친 경험을 하면서 나는 계속 숨을 고르고, 설원은 내 등을 쓸어내린다.

죽지는 않을거다. 죽지는 않을거야. 죽진 않아. 죽을 것 같지만 절대 죽지 않아. 이런걸로 사람은 죽지 않아.

그냥, 망가졌을 뿐이잖아.

처참한 비교로 나를 위로한다.

“흐으으.... 흐으으....”

설원은 그런 나를 이를 악문 채, 뭐라 말하기 힘든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설원의 손이 내 몸에 닿아있다.

“아.... 으윽.... 흐윽....”

비닐봉투를 얼굴에 댄 채, 미친 사람처럼 흐느낀다.

설원은 계속 내 등을 쓸어내린다.

그건 아무 의미도 없는 행동일 뿐이다. 그 쓸어내림으로 내가 나아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손이 멀어지면 분명히 죽게 될 거라고, 근거없는 확신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강의실로 돌아가지 못했다. 한참동안이나 그러고 있던 다음에야 과호흡도, 공포감도, 저림도 사라졌다. 공황발작이라부르는 게 이건가.

정신적 스트레스 따위가 사람의 몸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건가? 이게 공황장애라는건가.

설원은 내가 비닐봉투를 테이블에 아무렇게나 던지는 모습을 본다.

“이제, 이제 괜찮아졌어.”

근거없이 내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도 사라졌고, 육체적 고통도 사라졌다. 하지만 불안감은 갑자기 증폭되어버린다.

발작이 또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온몸이 오싹해진다.

“병원에 가보자.”

“싫어.”

“싫어? 이게 싫다고 해도 되는 문제야?”

설원이 내 말이 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 나를 억지로라도 끌고 갈 기세다.

“미안, 미안해. 미안한데. 나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마.”

“뭐?”

입술이 살짝 떨린다. 설원의 굳은 표정, 나를 억지로라도 끌고갈 것 같은 그 태도를 보니 덜컥 불안감이 든다.

그리고 불안감은 그것이 내게 찾아오는 순간 미친 것처럼 증폭되면서 다시 한 번 나를 발작에 빠뜨릴거란 사실을, 나는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무서워.”

인정하지 않으면 또 발작이 찾아올 것 같았다. 무섭다는 소리를 하는 내 자신이 처참하다.

“아.... 알았어. 그래도 병원은 가야지.”

설원의 어조가 자못 누그러진다. 숨기려고 했는데 겨우 하루도 버티지 못했다.

“일단은 좀 쉬자. 일단은.... 계속 그럴거란 보장도 없잖아. 지금은 병원 가는 게 더 무서워. 부탁...할게. 이해해줬으면.... 좋겠어.”

내 말이 웃긴다.

부탁이야라니, 병원을 가고 말고는 내가 정한다. 그걸 설원이 강제해선 안되고 그럴수도 없다. 하지만 나는 설원에게 부탁한다고,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그래야만 할 이유가 없는데 나는 그렇게 말한다.

“어디 몸에 큰 문제라도 있는거 아냐?”

설원이 걱정스럽게 말한다. 나는 이걸 뭐라 불러야하는지 알지만, 박헌영의 입을 막아버렸듯 설원에게도 말해주지 않을 셈이다.

“아니야. 괜찮아. 잠깐 이러는거야.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 원래 이럴 수도 있다고.... 들었어.”

“스트레스 때문에 이렇게 된다고?”

설원은 내가 방금 구체적으로 뭘 겪었는지 당연히 모른다. 표면적으로 보인 건 과호흡뿐이다. 죽는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던 것, 심장이 조여들었던 것, 저릿저릿한 마비감을 느꼈던 것도 모른다.

말할 생각도 없다.

“응, 과호흡뿐인거니까.... 스트레스만 안 받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설원은 한참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작게 말한다.

“...좀 걸을 수 있겠어? 산책이나 좀 할래?”

“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

손끝이 살짝 떨린다. 기분전환을 하자는 설원의 말은 고맙지만, 바깥에 나가고 싶지 않다. 사람들이 날 쳐다볼 시선을 또 제멋대로 해석하고 발작이 일어날 것 같다.

“남들이 다 날 쳐다보는 것 같아서....”

그 말만으로도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는 듯, 설원은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사람들이 편견 섞인 시선으로 보는 게 무섭다 이거지?”

“그게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그렇게 자꾸 생각하게 돼....”

“...그건 여기에 누날 아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거지?”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 시선의 의미화가 그저 어떤 논리도 없이 그렇게 받아들여지는 피해망상이 있다.

“그럼 아무도 누날 모르는 곳은 어때.”

“어?”

내가 고개를 들자, 설원은 올곧은 눈으로 나를 뚫어지듯 바라보고 있었다.

“잠깐이라도 좋으니까 조금 먼 곳에 갔다오자. 아무도 누날 모르니까 걱정도 없을거아냐. 거기에서 잠깐 머리 좀 식히자.”

아침에, 나는 박헌영에게 괜찮아질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오후를 갓 넘긴 지금, 나는 내가 전혀 괜찮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이렇게나 나약했나? 나는 이렇게나 피폐했나? 육체가 무너진 게 아니라 정신마저 이렇게 무너져버리나? 이렇게 쉽게?

내가 쌓아오던 것은 결국 그게 무엇이건 간에 전부 모래성이었다.

아무도 이선준을 모르는 전혀 다른 곳이라면, 비웃음에 대한 걱정도 없을까? 남들이 날 무시하고 비웃고, 경멸하고 혐오한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까?

하지만 남들이 날 비웃지 않는데 비웃는다 생각하게 되는 지금, 설원의 말대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 간다해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잘 모르겠다. 나는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걸 넘어, 내가 어떻게 생각하게 될지조차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나를 믿을 수 없지만, 나를 보는 설원의 눈빛을 믿는다.

“정말 괜찮을까...?”

나를 믿을 수 없으니.

“괜찮을거야.”

그 말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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