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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설원입니다-20화 (20/224)

00020 나와 설원과 하얀 늑대. =========================

내 이름은 설원(薛願)이다. 어디 설씨인지는 나한테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이름의 원은 조금 자란 뒤에 알게 되었는데, 바랄 원(願)자다. 소원 할 때 그 원. 정말 간절하게 바라서 얻은 아이라는 뜻이다. 소중한 이름이다.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내 이름을 들으면 항상 설원(雪園)이 떠올랐다. 눈으로 뒤덮인 눈동산이 떠오른다. 너무 동그래서 춥다기보다는 뭔가 따스한 느낌을 주는 그런 동산이 떠오른다. 내 이름의 뜻을 완전히 착각한 것이다.

이름이 주는 어떤 명징한 이미지 때문인지, 나는 눈동산에 관련된 꿈을 자주 꿨다. 꿈을 꾸면 주변은 온통 새하얗다. 화이트아웃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나는 꿈 속에서 항상 하얀 어둠 속에 파묻혀 있었다. 눈앞에는 마치 봉긋한 가슴처럼 솟아있는 눈동산이 있다. 당연히 주변이 눈천지다. 눈동산에 올라본 일은 없다.

그 꿈은 정말 담백하다. 나는 그 눈동산을 바라본다. 아이스크림 같기도 하고, 밥공기 같기도 한 그걸 보면서 나는 한 입 베어물고 싶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눈동산이 있는 풍경에서 오랫동안 가만히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꿈은 끝나거나, 다른 꿈을 꿨다. 정말 묘한 꿈이다.

어릴 때는 꽤 자주 꿨던 것 같은데, 점점 자라게 되면서 그 눈동산의 꿈은 꾸지 않게 되었다. 내 이름의 정확한 뜻을 이해하고 나서, 나는 그 눈동산의 꿈은 꾸지 않게 되었다. 마치 어릴 적 진짜로 마주했던 것처럼, 나는 그 눈동산을 이따금 떠올린다.

그건 대체 왜 내 꿈에 항상 나타났는지, 나는 그 꿈에서 대체 뭘 바란건지 궁금했다. 대학에 들어오면서 나는 오랫동안 그 눈동산에 대해 잊고 있었다.

나는 꿈을 꾼다. 몽롱하고 나른한 꿈의 의식 세계에서 나는 주변이 모두 백화된 풍경을 본다. 그리고 다시 눈동산을 만났다.

그리고 유년에 마주했던 눈동산이 내 눈앞에 있었다. 이제 눈을 많이 봐서 그런지 눈동산은 유년시절의 그것보다 상당히 디테일했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아주 아름다운 반구형이었다.

설원, 내 이름. 내 이름이지만 내 이름이 아니다. 내 이름은 눈동산이 아니라, 바란다는 뜻이다. 고로 눈동산은 전혀 나와 관계가 없었다. 꿈 속에서 명징한 사고는 불가능하다. 나는 멍하니 눈동산을 바라본다.

유년 시절과 달라진 것은 하나 또 있었다. 눈동산의 정상에 뭔가가 올라온다. 하얀 늑대다. 나는 예전부터 늑대라는 짐승이 아주 멋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눈동산 위에 올라온 하얀 늑대는 내 시선을 등진 채 서있다. 그 늑대의 눈동자는 어떻게 생겼을까.

늑대가 멋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늑대의 자태는 볼만했다. 나는 문득, 저 늑대가 내 자신처럼 느껴졌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른다.

‘늑대는 집단 동물이야.’

맞아, 늑대는 집단을 이루는 동물이다. 집단 동물인 늑대다. 저 늑대는, 저 하얀 늑대는, 저 하얗고 듬직한 늑대는, 저 하얗고 듬직하고 큰 늑대는 혼자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하얀 늑대는 멋지다. 하얀 늑대는 따스해 보인다. 하얀 늑대는 나를 보지 않는다. 하얀 늑대는 어디도 보고있지 않다. 하얀 늑대는 그림자가 없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하얀 늑대는 외롭다.

그리고 그 하얀 늑대가 나처럼 느껴진다. 하얀 늑대는 정말 늑대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그냥 눈이 뭉쳐 돋워올려진 무언가처럼 보이기도 한다.

내 이름은 설원이다. 설 원(願), 바란다는 뜻이다. 부모님이 무엇을 바랐던 것인지 알게 된 이후부터 나는 꿈에서 눈동산을 만나지 않았다. 눈동산은 내가 아니니까. 나는 바라는 존재니까.

하지만 나는 다시 눈동산을 만난다. 이건 무슨 뜻일까? 나는 이제 다시 눈동산을 꿈꿔도 되는 존재라는 뜻일까? 아니면 나와 전혀 상관없었던 무언가가 되어버려서, 나는 이제 더 이상 설원이 아니라는 뜻일까? 나는 각인처럼 박힌 그 원(願)에서 벗어났다는 뜻일까?

그러면 나는 다시 눈동산을 꿈꾸고, 눈동산을 만난다. 그리고 이제 눈동산 위의 저 하얀 늑대도 만난다.

어쩌면 저 외로운 하얀 늑대는 나일지도 몰라. 정말로 나일지도 몰라.

나는 정박아처럼 자꾸만 하얀 늑대와 눈동산에 대해 생각한다. 내 이름과 눈동산과 하얀 늑대에 대해서 생각한다. 하얀 늑대의 외로움에 대해서 생각한다. 사유한다. 고찰한다. 천착한다. 탐미한다. 단상, 하얀 늑대에 대한 단상을 해본다. 나른하고 몽롱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게 된다.

나는 설원입니다. 이제 더 이상 설원이 아니지만, 그래도 설원이에요.

자기소개를 해보기도 한다. 아무도 소개를 듣지 않는다. 다시 소개를 해보자.

저는 설원이에요. 지금까지의 설원은 아니지만, 그래도 설원이에요.

그래도 답이 없다. 한 번 더, 마지막으로 해보자.

안녕, 설원이라고 해. 사실 설원은 아니지만, 설원일 수밖에 없지.

답이 있을리가. 문득.

외롭다고 생각한다. 늑대는 여전히 가만히 있다. 외롭구나, 늑대는 나다. 늑대가 자기소개를 한다.

-우우우우우

낮고 깊은 울음이 설원에 울려퍼진다. 늑대는 말을 못 하니까. 자기소개를 해도 나는 못 알아들어.

그래도 네가 외로운 건 알아. 나도 외로우니까 나는 너고, 너도 나야.

꿈에서 깬다.

눈가에 눈물자국이 있다. 뭐지, 꿈 꾸면서 울었나. 진짜 깨있을 때도 울고, 자면서도 울고 나 정말 가지가지 하는 것 같다.

버스는 곧 도착했다. 꿈꾼 기억은 증발한 것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눈동산에 관한 꿈을 다시 꿨다는 기억만큼은 남아 있었다. 하얀 늑대를 본 것도 기억난다. 정신분석학으로 분석해보면 무슨 결과가 나올까? 프로이트도 TS된 사람이 꾸는 꿈에 대해선 정말 상상조차 못 했겠지. 나는 피식 웃었다.

시각은 이제 밤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스포츠백을 꺼내 어깨에 맨다. 가볍다고 했지만 사실 무겁다. 이 몸으로는 뭘 들어도 무겁다. 빈약해, 연약한 여자라는건 정말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원래 연약한게 아니었다. 건장한 남성에서 이렇게 변하면 일단 불편하다. 터미널 앞에서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아…. 싫다. 버스사고가 나서 인생이 끝나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왈칵 든다.

아냐, 안 돼. 아저씨랑 약속했다. 죽는 것에 관한 생각은 하지 않기로.

단지 지금은 이 상황이 너무 싫을 뿐이다. 아들로 나갔던 자식이 딸이 되어 돌아온 상황을 부모님에게 알리는 것은 어렵다. 어려운 것을 넘어서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문자를 보냈다. 버스가 도착하고 나는 내렸다. 정류장에서 걸어서 십 분 정도 가면 집이 나온다. 우리 집은 이 층 주택이다. 별로 부자가 아니라고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융자가 아직 많이 남았다. 주택에서 개 키우면서 살고 싶다는 아버지의 강력한 희망에 조금 무리해서 산 집이었다. 뭐 물론 이 집에 나는 금전적 기여를 단 한 푼도 하지 않았으니 아버지의 선택을 뭐라고 할 이유는 없다.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심장이 미칠 것처럼 뛴다. 엄마는 전화를 느긋하게 받는다. 신호가 조금 길게 가고,

[어 원아.]

엄마 목소리를 들으니까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다. 훈련병 때 집으로 처음 전화 했을 때 같은 기분이었다.

“어, 어, 엄마….”

엄마는 당연히 바뀐 내 목소리를 모른다.

[어? 누구세요?]

“어, 엄마 나야…. 원이….”

[네? 무슨 소리에요? 응? 원이 번호 맞는데? 누구니?]

“나 원이 맞아 엄마….”

[울어? 너 원이야? 왜 울어?]

목소리가 심하게 떨린다.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서 서 있을 수가 없다.

“엄마. 엄마 으헝! 나 여자됐어!”

[뭐? 뭐라고?]

아…. 엄마란 자식을 이렇게 언제든 울 수 있게 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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