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래도 설원입니다-191화 (191/224)

191회

IF - 그래도 선준이래요

박헌영의 경우에는 부모님이 찾아올거라 말했다. 알아서 할테니 돌아가라는 말과 함께, 설원과 나는 태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부모님은 무슨 심정이려나....”

설원이 그렇게 말했고,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 나를 쳐다봤다.

“...난 아직 말 안 했어.”

“아직도?”

“말 할 필요성을 못 느껴서. 애초에 연락 안 하고 산지도 꽤 됐고.”

부모님이 알면 놀라겠지. 애초에 믿기나 할지 어떨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설득의 과정이나 다른 부분들에 대해서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막연한 회피가 아니라, 나는 지금 당장을 사는 것도 벅찬데 내게 관심이 없는 부모를 생각하는 건 더 피곤한 일이다.

설원은 내게 뭘 더 캐묻지는 않았다. 민감한 이야기라서 건드려주지 않기를 원하고, 설원은 그렇게 했다.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 자식, 진짜 괜찮은건가?”

“네가 괜찮은지 아닌지를 생각해보면 되는 문제잖아.”

설원의 말에 생각을 해본다. 나는 괜찮지 않다.

그러니, 같은 상황을 겪고 있는 박헌영도 괜찮지는 않을거다.

“겉보기엔 정도 이상으로 괜찮아 보이니까. 알 수가 있어야지.”

내가 한숨을 푹 쉬자 설원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 새낀 원래 그래.”

“.......”

“진짜 심각할 땐, 과장된 개소리를 한다고. 남이 그런 자기를 아는 게 싫어서.”

나도 알고 있긴 하다.

박헌영은 그럼 지금 과장된 말들을 하면서 괜찮은 척을 한거다. 사실 박헌영이 그 누구보다 단단한 껍질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안다.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자꾸 해서 진짜 괜찮은가 긴가민가하고 있었지만, 설원은 영 아닌 모양이었다.

결국 설원은 자기가 제 말에 설득당해버렸는지 안절부절하다가 몸을 돌렸다.

“안되겠어.”

“안되겠다니?”

“...다시 가봐야겠어.”

“부모님 오신다잖아?”

“그런 게 뭐가 중요해?”

그 말에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럼 같이 가.”

“아냐. 혼자 갈게.”

“......왜?”

내 말에 설원은 잠시 주저하는 것 같더니, 입술을 살짝 깨물곤 그리 말했다.

“그냥 혼자 갈게. 미안해.”

“......아. 그래.... 알았어.”

“진짜로.... 미안.”

“어, 어 괜찮아. 진짜 괜찮아. 정말이야.”

나는 설원에게 웃어보인다. 내 불안한 웃음을 보면서 설원은 몸을 돌렸다.

설원은 터미널을 빠져나가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했고, 나는 남겨져선 멍하니 서있었다.

설원이 혼자 가려는 이유를 알고 있다.

나는 알게 모르게 박헌영을 무시해왔다. 좋은 녀석이란 건 알지만 그 녀석의 문학관을 매도하고, 경멸해왔다.

그에서 비롯한 내 편견 때문에, 우리 셋의 중심은 사실 설원이다.

나 – 설원 – 박헌영

삼각이 아니라 사실 일자형의 관계라는 걸 나도 알고, 박헌영도 알고, 설원도 안다.

내가 있으면 박헌영은 본심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또 우스개 농담이나 하면서 억지로 괜찮은 척을 할거다.

나도 안다.

알고 있어.

박헌영이 내게 진심으로 의지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내가 박헌영을 그렇게 의지하지 않으니까.

박헌영은 설원에게 힘든 일과 고민을 이따금 말하겠지만 내게는 말하지 않는다.

나는 설원에게 힘든 일과 고민을 이따금 말하지만 박헌영에게는 말하지 않는다. 친구관계라는 것이 모든 친구에게 공평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잘 안다.

그렇기에 설원은 혼자 가야한다고 말한 것이고, 함께 가자는 내게 오지 말라는 말을 힘겹게 꺼낸 것이다.

예전에도 알고 있던 사실이고, 구태여 서로 얘길 나눴던 사실은 아니지만 암묵적으로 알고 있었던거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이상한 기분은 뭐지. 말로 제대로 정의할 수는 없지만, 몸 어딘가의 한구석이 아린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분명히 안다.

박헌영이 내 앞에서 슬픔을 보이지 않아서 내가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아니다. 나도 박헌영에게 그래왔으니까.

제대로 정의하지 말자, 고민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자. 박헌영이 얼마나 힘든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건 설원이 들어줄 수 있는 일이다. 버스가 곧 온다.

버스를 타고 태원으로 돌아가자.

아.

그러네.

태원에 돌아가면, 설원하고 우동이라도 한 그릇 같이 먹으려고 했다. 참 오랜만에.

그걸 못 먹게 되었으니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걸거다.

그냥 배가 고파서, 혼자 먹긴 조금 그러니까 이런 기분이 드는거다. 분명해. 다른 이유는 아무것도 없어.

그렇게 생각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나를 알면서 외면한다.

버스가 곧 도착하고, 나는 플랫폼으로 향한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왜 이토록 썰렁해보이는걸까.

생각하면서.

병실 문을 열었을 때, 박헌영은 창가를 보고 있었다. 처음 나와 이선준이 왔을 때와 같은 모습으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던 것처럼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조금 있다가 와주세요.”

문을 연 사람이 간호사 아니면 의사라고 생각했는지 박헌영은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그렇게 말했다.

그 목소리에 울음기가 묻어있다.

“나야.”

“!”

박헌영이 황급하게 고개를 돌리다 말고, 황급하게 이불을 뒤집어쓴다.

“뭐야, 왜 왔어?”

“밥 안 먹었을까봐 김밥 사왔다.”

“......두고 가.”

박헌영은 얼굴을 보이지 않겠다는 듯 가만히 있었고, 나는 침대맡에 김밥을 올려놓은 뒤 이불을 걷어내버렸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박헌영이 얼굴이 눈물자국 범벅이 되어 있었다.

아마 나와 이선준이 나간 이후로 계속, 계속 울고 있었을거다.

“가라니까.... 새끼가....”

박헌영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금발에 푸른 눈, 확실히 인상적인 외모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이선준이 그렇게 변한 것처럼 박헌영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건가.

아름다워졌다 해서, 기뻐해야 하는건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기뻐할지도 모르지, 하지만 기뻐할 수 없는 사람도 분명히 많다.

이선준이 그런 사람 중 하나고.

그렇지 않게 보일지 몰라도 박헌영도 마찬가지일 수 있는거다.

“쪽팔려....”

박헌영은 쪼그려앉은 채 양팔로 제 얼굴을 가리고, 몸을 둥글게 말아버렸다.

“너는 쪽팔려해야될 건 쪽팔려하지 않으면서 이상한 건 엄청 쪽팔려한단 말이지. 이해가 안 돼.”

“뭐가.”

“구속감인 소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한테 보여주는 건 떳떳해하고,  우는 건 보여주기 싫냐?”

“오자마자 왜 지랄인데, 나 우울한 거 알았으면 그냥 꺼져주라....”

“가족들은?”

박헌영은 대답하지 않는다.

가족들과 사이가 그리 좋지만은 않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는 모른다.

아마 뭔가, 잘 안 되었거나 미묘한 모양이지.

원래는 이런 걸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알아야겠다.

밖으로 드러내서 고통을 나누는 걸 병적으로 싫어하기에, 안에서부터 썩어들어가버리는 녀석을 가만히 놔두는 건 이제 할 수 없다. 이 녀석이 감당해야 할 일은 이제, 내버려둘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말해봐.”

“싫어.”

“듣고싶어.”

들어줄게가 아니다.

듣고싶다고 말한다. 들어준다고 말을 하는 순간 감정적 우위에 서는거고, 박헌영에게 내가 호의를 ‘베푼’게 된다.

내가 네 고통을 들어‘주는’게 아니야.

네가 너 자신의 고통을 내게 말해‘주는’거야.

내가 듣고 싶으니까. 내가 그걸 알아야겠으니까.

알아야 위로할 수 있으니까. 박헌영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듣고싶으니까. 말해줘.”

“야.”

“말해.”

“나, 돈 존나 많아.”

갑자기 맥락없는 이야기가 튀어나왔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헌영은 고개를 들지 않았기에 내가 고개를 끄덕인 걸 보지 못했을거다.

무슨 맥락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알고 지내던 긴 시간 동안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이제 박헌영은 내게 하려는거다.

잘 들어줘야만 한다.

“내가 돈이 존나 많은 건 이제 얼마 안 됐지만, 우리 집은 아주 예전부터 돈이 존나게 없었어.”

“그래서?”

“당연히, 돈 없는 집의 첫째아들이란 새끼가 글을 쓰겠답시고 문예창작학과에 간다고 하면, 부모가 뭔 소릴 하겠냐?”

빤한 일이다.

누구나 각자의 드라마가 있다. 다만 그것이 남들에겐 그리 절박하게 들리지 않을 뿐이다. 글을 쓰고프다는 사람치고 사연 없는 사람 본 적 없다. 글을 쓰겠다는 사람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사람에겐 사연이 있다.

그것이 타인에게 호소력을 가지기엔 모두가 자신의 비극을 음미하는 데에 열심일 뿐이어서, 제대로 된 호소력을 갖지 못하는 것뿐이다.

하지만 반대로,

각자의 드라마는 결국 각각의 안에서 절박하다.

“애초에 대학 가지 말고 취업해서 키워준 값이나 하라고 윽박지르는 게 우리 부모였어.”

그런 사람 흔치 않지만, 없지도 않은 게 세상이다.

“우리 부모 직업 새삼 얘기해서 뭐하겠냐. 남들한테 자랑할만한 직장도 아니고, 못 배우고 못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 그런 거 해.”

박헌영은 그것만큼은 설명해주기 싫은지 말하지 않았다.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을 땐 개처럼 맞았어. 그래, 대학 가도 된단 얘길 듣고 나선 내가 문예창작과를 가고 싶다고 말했지. 그게 뭐냐고 묻더라. 그래서, 소설 쓰려고요. 라고 말했어.”

어떻게 됐을 것 같냐? 박헌영이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 푸른 눈은 내가 알던 박헌영의 것은 아니지만, 박헌영의 눈빛이라고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우울함을 드러낼 때에만 나타나는 그 눈빛을, 잊을 수 있을리가 없다.

대학을 가는 것에 대한 허락을 맡기 위해 개처럼 맞았다.

소설을 쓴다고 했을 때에는?

“그 땐 진짜, 개처럼 죽는구나 싶었지.”

흐흐흐. 그렇게 웃으며 박헌영은 몸을 떨었다.

“그럴거면 나가라고 하더라. 꼴도보기 싫다고. 그래서 나왔어. 심플하지?”

“.......”

“태원으로 와서 생활비 대출받고 빚 내서 학교 다녔지. 고시원 살면서. 생활비 벌고. 아르바이트 하고, 나 일학년 때 너랑 선준이 형이랑 안 친했잖아.”

“그렇지.”

“그거 다 알바하느라 그런거였어. 그 이후에는 뭐, 알다시피 웹소설 연재로 돈 좀 만지고, 원룸으로 이사가고, 학자금이랑 생활비 대출받은 거 갚고.... 뭐, 그거야. 부모한테 연락? 그딴 거 안 와. 왜냐하면 집 나오면서 아버지를 내가 두들겨 팼거든. 아주, 개처럼 자근자근 밟아버렸단 말이야.”

아주, 좆같으면서도 통쾌한 기분이었지라며 박헌영은 낄낄 웃었다.

“어쨌든 그래서, 나 지금은 돈 존나 많아.”

“...그래.”

“꽤 전부터 연락이 오더라. 내가 돈 좀 번다는 걸 어디서 들었던 모양이더라고, 전화하자마자 울며불며, 아버지가 죽을병에 걸렸는데 수술비가 필요해서 어쩌구저쩌구. 엄마가 아주 세상이 떠나가라 울더라고. 다 용서할테니 집으로 돌아와라. 연락이라도 하고 살아라.”

박헌영은 웃으며 천천히 중얼거린다.

“천만원이 필요하대. 부쳐줬지.”

“다음엔 입원비로 이천만원이 더 필요하대. 부쳐줬지.”

“수술을 한 번 더 해야 해서 삼천오백이 더 필요하대. 부쳐줬어.”

그렇게 말한 뒤 박헌영은 나를 빤히 바라본다.

“설원.”

“듣고 있어.”

“그렇게 병원에 오래 입원해있다는데, 병문안 오라는 말이 한 번 없더라.”

박헌영은 자조적인 웃음을 짓는다.

“그게 구라라는 건 애초에 알고 있었어.”

알고 있지만 박헌영은 부모에게 돈을 보내줬다.

“나한테 일억을 달라고 했을 때. 돈이 없다고 했지. 그러니까, 대출을 받으래. 아버지가 죽으면 좋겠냐고. 죽으면 어떡하냐고.”

그래서 뭐라고 했게? 라고 묻는 표정이었다.

“죽었건 살았건 평생 볼 일도 없는 사람인데 뭐 어떻습니까. 이만하면 살면서 처먹은 밥값은 다 드린 것 같으니 앞으로는 연락하지 마세요. 라고 했어. 아주 그냥, 호로새끼니 뭐니 꼴값을 하더라고. 내가 보낸 돈 같은 건 중요하지 않은거야. 나는 제 자식이니까 달라고 하면 내놔야 하는거라던데. 그게 자식된 도리라고.”

“.......”

“애미애비가 되어선 자식 학비도 못 부쳐준 주제에 무슨 자식의 도리를 논하냐고. 자식한테 죽을병 걸렸다고 구라나 치고 돈이나 뜯어간 주제에 무슨 도리고 인륜이고 천륜같은 소릴 하냐고 했어.”

“.......”

“아버지가 죽을병이 걸렸다는 말이 사실이길 바랐다고 했어. 그게 사실이었으면 나는 당신들한테 돈 안 보냈을거라고도 했지.”

거짓말인 걸 알았기에 돈을 보냈다.

“원아.”

“어.”

“나는 그 인간들의 밑바닥을 시험해보고 싶었던거야 그냥. 내 부모라는 인간의 바닥은 얼마짜리일까.”

그까짓 돈.

벌면 되는거거든, 나한테는.

박헌영은 자신만만하게 웃는다.

“내 부모의 밑바닥은 딱, 육천오백만원짜리였던거야. 일억은 그냥 한 번 질러본거지. 육천오백쯤 받아냈으니, 일억쯤 질러보고. 아니다 싶으면 거짓말이 들통나기 전에 다시 예전처럼 연 끊고 살자 이런거지. 일억이 진짜 필요했으면 내가 막말을 했을 때 개처럼 기었어야 해.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잖아?”

그러니까 내 부모는 딱, 그만큼의 바닥을 가진 무지렁이인거다.

박헌영은 냉정하게 그렇게 말했다. 나는 박헌영이 이토록 섬뜩하게 중얼거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돈, 그걸 가지고 있는 척 잰 척 하는 녀석도 아니었다. 하지만 부모에게 먹이를 던져주듯 돈을 던져주며 시험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원아.”

“말해.”

“그래도 이 꼴이 되니까. 생각나더라.”

박헌영은 우울하게 중얼거렸다.

“전화를 해봤어. 내가 이렇게 되었으니 어쩌구저쩌구. 이러이러합니다. 처음에는 못 믿더라고, 그런데 뭐 어떻게든 납득이 가게 하니까 뭐라는줄 아냐.”

“뭐라는데?”

“이번엔 엄마가 죽을병에 걸렸대. 하하하!”

박헌영은 미친 사람처럼 웃어제꼈다. 한참이나 박장대소를 하는 박헌영의 앞에서, 나는 조금도 웃을 수 없었다.

“내 얘긴 아무래도 좋은거야. 돈 많은 아들놈이 여자가 되건 어쨌건, 돈 내놓으면 나는 착한 아들인거겠지. 그런 게 부모냐?”

친부모지만 친부모같지 않은 사람들과 사는 것도 행복은 아닐 것이다.

내가 양부모와 살지만 그들에게 감사하는 것처럼.

“하긴, 내가 제대로 된 아들이 아닌 것도 있으니까. 쌤쌤으로 치지 뭐.”

박헌영은 말하면서도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

인생의 벼랑은 아니라 해도 거대한 변화를 겪고 나서, 간신히 결심해서 떨리는 마음으로 부모에게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악의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결국 부모와 다시 잘 지내고픈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부모는 박헌영을 그저 지갑으로 여겼다.

박헌영은 부모와 다시 잘 지내고파서 돈을 보냈을 것이고, 오늘 전화를 걸었을 것이다.

하지만 두 번 모두 부모 쪽에서 거부한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박헌영은 나는 사실 부모를 증오하노라고, 위악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눈가에 물기가 차오르는 것만 봐도, 박헌영의 모든 말이 거짓이란 걸 알 수 있다. 누구나 외롭겠지만, 누구나 부모가 있다.

인간이 마지막으로 기댈 곳은 항상 부모다.

하지만 박헌영은 그런 인생의 마지막 기댈 곳이 없는 상태에서, 어릴 적부터 살아왔다. 그리고 부모와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는 시도조차 모두 불발되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조차, 마지막으로 뻗은 손조차 제대로 잡아주지 않았다.

“그런 부모라도 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게 나쁜거냐.”

“아니지.”

“부모가 그딴 식이라서....”

박헌영이 어딘가를 가리킨다.

내던져버렸는지, 박살난 핸드폰이 바닥에 애처롭게 놓여있었다.

부모의 그 말을 듣기 무섭게 핸드폰을 집어던져버렸을 것이다.

“저렇게 해버리고, 병신처럼 울고있었어....”

박헌영의 어깨가 들썩인다. 동정하고 사랑할 가치조차 없는 사람들은 분명히 세상에 있다. 박헌영의 부모는 아마 그런 사람일거다.

“나 어떡하냐.”

“어떡하긴,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잘 할 수 있을거야.”

“나 사실, 너희들한텐 말 안 했는데.”

“뭐가?”

“여자친구, 있거든.”

박헌영이 실실 웃는다. 해머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선준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유사준 상병이란 사람과 있었던 일.

“나, 걔 엄청 좋아하거든.”

“.......”

“어떡하냐.”

“.......”

“나, 나 어떡해?”

박헌영이 주체할 줄 모르는 울음을 쏟아낸다. 이불을 쥐어뜯으면서, 이를 악문 채, 박헌영이 몸을 덜덜 떨며 소리지른다.

“아아아아아아악!”

“진정해. 진정해.... 임마.”

“악! 악! 아악! 내가! 내가 뭘! 내가 뭘 그렇게! 내가 왜! 대체! 왜! 왜 이런 일이! 나한테! 응! 왜! 왜 나한테!”

박헌영이 머리를 쥐어뜯으려 하는 걸 억지로 말리고, 미친 사람처럼 발악하는 녀석을 억지로 붙잡는다.

“흐흐흐흐흐흐! 흐흑! 흑! 왜 나한테.... 왜 나한테....”

아름다움은 항상 축복이 될 수는 없다.

그걸 원하지 않아도 만족하고 살아가던 사람에게, 그것이 주어진다 해서 과연 기쁘겠는가.

박헌영은 결국, 망가진 자신을 다른 망가짐을 가장하며 숨겨온 사람일 뿐이다.

처절할 정도로 오열하는 박헌영의 모습은, 몸서리쳐질 정도로 슬퍼보였다.

“흐흐흐흐흑!”

박헌영은 입술을 깨문 채, 한참동안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울부짖었다.

이선준이 괜찮지 않았던 것처럼.

박헌영도 마찬가지로, 전혀 괜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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