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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설원입니다-190화 (190/224)

190회

IF - 그래도 선준이래요

“괜찮아?”

“어.... 좀....”

토악질을 한참이나 해댄 설원은 이제야 좀 정신이 든다는 듯 입을 닦으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내가 딱 저 꼴이었기에 무슨 기분인지 알 것 같다.

시체를 두 번 봤다.

한 번은 보자마자 기절했지만 이번엔 아니었다. 차마 보고 견딜 수 없는 광경이었고,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화장실에 가서 먹은 걸 게워냈다.

그만큼이나 섬뜩하고 끔찍한 광경이었다.

응급실로 들어가서, 다른 응급환자들을 제치고 나와 설원은 차가운 이동형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을 본다.

“이건 말도 안 돼.”

거기에는 한 여자가 침대에 누워 고른 숨을 쉬며 잠들어 있었다.

설원도 나도 알고 있지만, 차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나는 내가 겪은 일임에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설원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이 여자가.

이게 박헌영이다.

알고 있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들이 몇 번 오가며 심박수와 혈압을 체크하고, 채혈을 하는 등 부지런하게 움직이고 있다.

모든 게 비현실적이다.

나에 이어서 박헌영까지.

그 사람이 TS바이러스 발병자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왜 죽었는지, 왜 그토록 사람이 많은 곳에서 그래야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로 인해 박헌영이 여자가 되었다.

“술에 너무 취해서, 꿈을 꾸는 거였으면 좋겠어.”

설원이 멍하니 중얼거렸고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 모든 것이.

유사준 상병의 발작으로부터 시작되었던 이 모든 상황들이.

그저 길고 긴 악몽이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현실이야말로 최악의 악몽이고, 그 악몽의 가장 끔찍한 점은 죽음 이외의 방법으로는 깨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설원도 나도.

깨어나지 못한 채 언제까지나 이 현실에 내팽개쳐져 있을 뿐일거다.

박헌영은 정확히 나흘 뒤에 깨어났다.

수업에 가면서도 우린 출퇴근이라도 하는 것처럼 박헌영을 찾아갔다.

녀석은 이미 깨어나 있었다.

그리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곤 나와 설원이 온 걸 보며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 왔어?”

박헌영의 목소리가 아니고, 박헌영의 모습도 아니다. 유사준이 변한 걸 봤을 때처럼 낯선 감각이다.

이런 건 절대로 익숙해질 수 없을거다.

“어 왔어라고 말할만한 상황이 아니잖아 이 새끼야.”

설원이 침대맡으로 다가가더니 박헌영의 이마에 손을 댔다.

“너 괜찮아? 아프진 않아?”

“온몸이 막.... 칼로 난도질하는 것처럼 쑤시긴 하는데 뭐.... 진통제 맞아서 괜찮아.”

“이런 미친, 그렇게 아프다고?”

“진통제 맞았다니까?”

“형, 형도 그랬어?”

설원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못 견딜 정도는 아니긴 했는데 난. 개인차가 있는 편인가...?”

나도 이게 뭔지 모르니 제대로 말해주긴 어려웠다. 박헌영은 힘없이 웃으며 설원을 빤히 쳐다봤다.

“벌써부터 스킨십이냐. 너 진도 존나 빠르네.”

“...뭐라는거야 미친놈이.”

“나는 언제든지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다고.”

박헌영이 새삼 과장된 눈빛으로 설원을 바라봤다. 되도않는 유혹이라도 하는 것처럼.

“꼴리냐?”

“미친소리 할래?”

“난 안 꼴리더라.”

그리고, 박헌영은 절망적인 표정이 되었다.

“씨발.”

“.......”

“미소녀가 됐는데, 안 꼴린다고 씨발.”

박헌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에 눈물이 섞인다.

“존나, 존나. 이게, 이게 뭐야. 존나.... 이상해! 흐흐흐흐 씨발, 원래라면 당연히 꼴려야 하는 거 아냐?”

박헌영이 자신의 가슴을 만지며 소리친다.

“그런데, 그런데 아무 생각도 안 든다고 씨발!”

박헌영이 오열한다.

분명히 박헌영은 슬퍼하고 있다. 박헌영이 이렇게나 격앙된 모습을 보이는 걸 나는 처음 본다. 그건 설원도 마찬가지일거다.

“왜 안 꼴리는데에에에!”

하지만.

역시 박헌영은 박헌영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한심한 오열이었다.

“음.... 자꾸 만져보니까 묘한 기분이 들긴 하는데. 꼴리진 않지만 역시 몸은 솔직한건가?”

“제발, 제발 그만 좀 해 미친새끼야.”

설원이 제 몸을 주물주물거리는 박헌영에게 거의 애원하듯 말했고, 나는 처참한 기분이 되었다.

괜찮은 척을 하는건지 진짜 괜찮은건지 알 수가 없다. 박헌영에 대해서 지금까지 내려왔던 모든 평가를 수정해야 하는건가 싶을 정도로.

박헌영은 우리가 사온 김밥을 우걱우걱 먹으면서 거울을 보고 있었다.

“근데 진짜 미소녀네. 내 취향이야.”

머리칼이 어깨를 조금 넘을 정도로 내려와있고, 부드러운 웨이브가 솔직히 인정하긴 싫지만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내려와 있었다.

하지만 설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런데 왜 금발인거냐.”

“내 취향이라 그런가보지 뭐.”

심지어 박헌영은 금발에 푸른 눈을 갖고 있었다. 뭐라고 할 말이 없어지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그렇다고 해서 외모 자체가 서구적이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미려한 턱선에 휘어진 콧날은 영락없이 동양적 미인상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양인이라기보다는 혼혈이라고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 모습이다.

“생각해보니까 그런 소문도 있긴 해. TS바이러스에 걸리면 자기 이상형에 가까운 외모로 변한다고.”

“그래?”

“정말 그런거라면 나의 심미안이 아주 만족스러운걸.”

박헌영은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이 아주 마음에 든다는 듯 희미한 미소마저 머금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설원과 박헌영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나는 작다.

키도,

그리고 가슴도.

설원이 짧게 중얼거렸다.

“...아닌 척 하더니만....”

“그렇게나 날 비난하더니. 어? 아주 대단한 그, 뭐? 페도새끼 나셨어?”

“무, 무슨 개소리야 미친새끼들아! 그, 그런 거 아니야!”

이것들이 대체 지금 무슨 소릴 하는거지?

“그, 그리고 키는 네가 더 작아보인다고 이 새끼야!”

내가 발작하듯 소리치자 박헌영은 그러면 어디 한번 대 보자며 오만상을 쓰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박헌영이 다가오자 나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왜 이래.

무섭게.

“무슨 애들도 아니고 키 가지고 지랄들인지....”

설원이 나와 박헌영의 어깨를 잡아 서로 딱 등을 대고 붙게 했다.

“...이 쪽이 조금 더 크네.”

“역시! 내가 더 크잖아! 어?”

다행히 내가 키가 더욱 크다는 말에 나는 승리감을 만끽했다.

그리고, 설원이 나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그렇게 압도적으로 큰 것도 아니야. 요만큼이라고.”

검지와 엄지 사이를 아주 살짝 벌려놓고 말하는 설원은 뭔가 진심으로 나한테 실망했다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도, 가슴은 내가 더 크네.”

-쿡!

“이 미친! 어딜 만져!”

박헌영이 실실 웃으며 내 가슴을 손끝으로 쿡 찔렀다. 내 말에 박헌영은 어깨를 으쓱였다.

“이젠 만져도 되잖아?”

“그게 무슨 개같은 소리야!”

내가 펄펄 뛰건 말건 박헌영은 느긋했다.

왜 이렇게 여유로운건지 이해가 안 된다. 울었던 것도 아주 잠깐뿐이었다. 설원도 나보단 박헌영을 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무슨 말을 하고픈지 안다는 듯 박헌영은 웃었다.

“체념은 이를수록 좋고, 적응도 빠를수록 좋지.”

박헌영은 손으로 브이자를 만들며 씨익 웃었다.

“이제 미소녀가 되었으니까 뭘 해도 용서가 될거야! 좋은 게 좋은거 아니겠어?”

즐기는 수밖에 없잖아! 박헌영이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나와 설원은 그런 박헌영(금발, 벽안)을 보다가. 서로 눈이 마주쳤다.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요물이 지금 막 눈을 뜬건지도 모른다.

“저런 변태새끼가 저런 모습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세상 여성들에게 재앙일거야.”

설원의 말에 나는 십분 동의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성뿐이겠냐.”

남자들이 오히려 더 걱정이다.

“뭐야, 그런데 진짜 이상형으로 바뀌는거면 나는 사실.... 흠, 하긴, 2D캐릭터가 될 수는 없겠지. 그런 게 현실에 나타난다면 그거대로 존나 끔찍하겠어.”

무슨소릴 하는지 모르겠어서 더욱 무서워진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하나는 확실하다.

박헌영은 아무래도.

나보다는 훨씬 잘 지낼 것 같다.

[작품후기]박헌영의 TS로 인해서

지하로 처박히던 전개가 조금이나마 밝아지길

떨어지려면 일단은 올라가야 하니까....

ps.댓글 많이 다세요

막, 어? 댓글 안다는척 하더니 박헌영 TS되니까 70개 넘어가는거보고 실-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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