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9 IF - 그래도 선준이래요 =========================
설원과 충분한 대화를 나눈 것으로, 자괴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었다. 전역하면 술이나 한 잔 거하게 살 것이라 생각하는 동시에, 유상병과는 계속 통화를 했다.
잘 지내는거냐, 어떻게 되어가냐. 지내기 불편하지는 않으냐.
그런 전화들을 분대장으로서의 책무가 아니라, 어쩐지 의무처럼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내 전역이 한 달 남았을 무렵, 유상병의 적부심 결과가 나왔고 그는 전역하게 되었다.
부대에 돌아올 일도 없었고, 짐은 택배로 보내주면 될 일이었다.
그렇기에 그가 부대에 돌아온 것은, 상당히 기이한 일이었다. 돌아오지 않았으면 하는 수많은 간부 및 지휘관의 바람과, 유상병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하는 병사들의 기대감 아닌 기대감 속에서.
유상병은 단 하루동안, 부대에서 자고 가고 싶다 말했다. 이해하지 못할 건 없었다. 유상병은 군생활을 잘 하는 편이었고 병사들과 관계도 원만했다.
제대로 된 전역축하를 받고 싶은 마음일거라 짐작했다.
잠이야 여간부숙소에서 해결하면 될 일이기에, 그렇게 불가능하달것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형식뿐이지만 전역신고를 하고 돌아가면 될 일이었다.
이미 분대장 견장은 넘겨줬지만, 나는 녀석에게 제대로 된 전역축하를 해주기 위해 분대원들을 불러모으고, 조촐한 파티를 했다.
다들 변해버린 유상병을 낯설어했지만, 유상병은 그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편하게 대했다.
‘이병장, 내가 먼저가서 어떡해?’
먼저 가는 놈이 선임이라고 깔깔거리며 웃는 모습에 다른 사람들도 웃음을 터뜨렸다.
내게 웃으며 말을 걸어오는 그를 보며, 그 날 밤이 각인처럼 뇌리에 박혀 떠오르는 것이 나는 괴로웠다.
‘뭐 그까짓 것 얼마나 남았다고.’
그저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간부 및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그런 모습을 보며 나는 유상병이 괜찮아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래, 나가서 잘 살아라.
너와 내가 연락하며 살 수 있는 사이인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안부전화 정도는 해주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녀석이 생활관에서 자겠다 부득부득 우겨대다가 당직사관에게 한 소리 거하게 듣고 여간부숙소로 터덜터덜 걸어가는 걸 보면서 나는 조금쯤 근심이 덜어지는 것 같았다.
그건 착각이었다.
왜인지는 알 수 없다.
왜 이곳에서 그런 선택을 한건지는 모르겠다.
나는 말년이었고, 그 조촐한 파티를 유상병의 군 마지막 기억으로 안겨주고 싶지 않았다. 당직사관에게 미리 언질을 해 사정을 말했고, 분대원들과 함께 야간의 일탈을 감행할 생각이었다.
그래봐야, 과자 조금, 라면. 그런 것 따위를 야식으로 먹으며 이야기나 나누자는 그런 것이었다.
당직사관의 허가도 있었기에 나는 여간부숙소의 문을 두드렸다. 이 깜짝파티가 녀석의 삶을 일으킬 힘이 될 수는 없다 해도, 조금쯤의 온기 정도는 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아니면 내가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의 발로였을지도 모른다.
여간부숙소의 잠긴 문은 내가 오분여를 두들겨도 열리지 않았다.
십분쯤 되었을 때.
문을 부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현듯 든 불길한 예감에 나는 허가보다는 행동을 택했고, 여간부숙소의 문을 걷어차 부숴버리고 들어갔다.
그리고 봤다.
바닥에 웅크려있는 유상병과.
그의 목에 감겨있는 두꺼운 케이블타이.
그게 모든 걸 말해줬다.
왜?
어째서?
지금?
이렇게?
여기서?
수많은 의문들이 머릿속을 헤집어댔고, 나는 그 무엇에도 확실한 답을 얻어낼 수 없었다.
나 때문인가?
아니,
나 때문이다.
그런 확신이 들고, 자기혐오와 자학에 빠질 새도 없이.
몸이 뜨거워졌다.
그리고 지금.
한 때, 유상병과 함께왔던 그 병원.
국군수도병원에서. 나는 눈을 떴다.
“정신이 드나?”
“......아.”
이런 기분이었나.
이런 기분이었던건가.
뭔지 모르겠는데 뭔지 알 것 같은, 온몸이 저릿저릿하고 쑤시는 것 같은 격통이 느껴졌다. 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
몸이 뜨거워졌던 것.
그리고 기절한 것.
“정신이 드나?”
나는 내게 물어보는 군의관을 멍하니 바라본다. 많은 것들이 궁금하지만.
그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게 있었다.
“유사준.... 으, 유사준 상병은....”
말하면서도 내 목소리가 낯설어 나는 잠깐 말하는 걸 잊었다. 그만큼 기묘하고 낯선 감각이었다. 내가 그런 걸 물어올거라 생각하진 못했는지 잠깐 당황한 눈치였다.
“....”
그 침묵이 모든 대답이다.
“.......”
나는 멍하니 앞을 바라본다.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의문들보다 더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내 손이었다.
이렇게 흰 손을 가진 적은 없었는데.
이렇게 작지도 않았고,
침대에 앉으면, 이렇게 시야가 낮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작아진 내 몸이 실감이 난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아도 안다.
불가항력적인 무언가가, 유사준 상병이 죽어야만 했던 그 무언가가.
내게 전해졌다.
“거울.... 필요한가?”
“......예.”
무언가 사라졌다는 것에 대한 실감.
그리고 막연한 공포.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 문득 두려워졌다. 군의관이 가져온 거울을 보며, 생각한다. 어느 정도는 확신한다. 이 바이러스는 그 사람이 생각하는 이상형으로 그 사람을 바꾼다. 유사준 상병의 경우만 생각하고 판단하는 거지만 틀리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거울을 본 나는, 가만히 거울 속의 나를 들여다본다.
나도 모르던 내 이상형은, 이런 느낌이었나.
키는 큰 편이고, 스타일 좋고, 가슴이 큰 여성들과 교제했었다. 대개 그래왔다.
하지만 내 눈앞에 있는 건, 그런 것과는 조금 거리가 멀어보였다. 작고, 연약해 보이고,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나약해보이기까지 한 외모였다. 머리칼은 나도 모르는 새 길어졌다.
연갈빛이 도는 머리칼에, 작은 체구.
가슴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이런 여자를 살면서 만나본 기억은 없다. 만나고 싶다 생각한 적도 없다.
내 취향과 완전히 정반대라 말해 마땅한 이런 작은 모습이 내 이상형이라는 게, 나는 잠시 믿기 힘들어졌다.
문득, 설원의 말이 떠올랐다.
‘형은 페미니스트인 척 하는 꼴통마초야.’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사실, 여자도 작고 여리여리한 걸 좋아한다고. 형은 남자가 여자를 지켜주고 챙겨줘야한다는 썩어빠진 마초이즘에 쩔어있는데 여자 취향이 그렇지 않으면 말이 안 돼. 봐봐, 실제로 연애는 글래머러스한 애들이랑 하는 주제에 정작 엄청 챙겨주는 후배들은 그런 애들이거든? 내면의 욕망에 충실하라고.’
‘닥쳐, 후배를 챙겨주려는 선배의 마음을 그딴 식으로 폄훼해?’
‘이런 면에선 차라리 박헌영이 낫지. 그 또라이 매드싸이언티스트는 적어도 제 욕망엔 솔직하거든.’
‘뒈져봐야 정신을 차리겠구만.’
‘아, 아! 때리고 지랄이야! 잘 생각해 봐, 번뇌를 숨기는 것보단 번뇌를 드러내는 편이 인간적이지 않냐? 아! 아 때리지 말라니까?’
그런 대화를 나눈 적 있었다.
일고의 가치도 없다 여겼던 설원의 말이 맞았거나, 아니면 TS바이러스가 이상형으로 바꿔주는 것이 아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후자였으면 좋겠군.
그런 생각을 하는 나는, 아직 역시나 상황이 실감나지 않았다.
“수도병원에서 해 줄 수 있는 일은....”
“알고 있습니다.”
그 군의관은 이 모습의 나와는 안면이 없겠지만 유상병과 왔을 때의 나는 본 적이 있었다. 내가 자초지종을 대강 설명하자 그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정양하게. 무슨 일이 있으면 부르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고, 군의관은 갔다. 군의(軍醫)들이란 대개 이런 식이지. 열의도 없고 열정도 없으며, 병사들보다 조금 더 긴 군생활을 할 뿐인 병사. 기대하지 않았기에 실망하지도 않는다.
거울을 내려놓았다.
변한 나를 제대로 마주하기엔, 지금 겪고 있는 혼란이 너무 컸다.
아니다.
아직은 아니야.
버겁다.
누군가 죽었고, 그 죽음은 나 때문이었을 확률이 농후하며, 나는 이렇게 되어버렸다.
그런 걸, 쉬이 받아들일 수 있을리가 없다. 나는 어디도 바라보지 않았고,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기로 다짐하는 것처럼 무슨 생각이건 나를 찾아온다.
가족에겐 연락이 닿았을까.
그럴리가, 내가 먼저 연락하기 전까진 연을 끊겠다 했고, 나 또한 군에 부모와는 절연했으니 연락하지 말라고 말을 해뒀다. 그 말이 지켜질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더 곤란해지는 건 사양이다.
문득 나 자신이 실감난다.
분명히 괴로운 상황일텐데. 그리고 아직 실감나지 않을 뿐 더 괴로울 것이 뻔한데.
이 괴로움을 나와 나눌 사람이 그리 많지 않구나.
내 인간관계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변한 건 몸뿐인데.
나는 내 변화를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꽤, 외로운 인간이라는 걸 자각한다.
설원과 나눴던 대화가 떠오른다.
무엇이건, 책임져야 할 순간이 오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말했지.
“하하....”
나는 너무나 달라져버린 목소리로 열없게 웃는다.
책임이라니.
원아.
이건, 책임이 아니야.
이건 대가잖아.
죄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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