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8 IF - 그래도 선준이래요 =========================
나는 그 집에서 기거하며 유상병의 상태를 관찰하는 동시에 이야기를 계속 나눴다.
그건 현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과거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으며.
결과적으로는 대부분 쓸데없는 변죽일 뿐 별 의미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유상병은 수시로 내게 고맙다고 말했다.
유상병은 병가 사흘째에 이윤희를 만났다.
나는 그 만남을 정면에서 보지는 않았다. 저번처럼, 줄담배를 태우며 그 언저리에서 기다릴 뿐이었다.
과연 유상병과 그 여자친구, 이윤희의 관계가 동성애인가 아닌가에 대해서 확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만 확답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판단을 내리고 살아간다.
그것이 옳은 답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어도 판단을 내리는 것이 사람이기 마련이고, 이윤희는 그러한 관점하에 판단을 내렸다.
그 둘은 서로 많이 울었고, 오열했고, 슬퍼했고, 절규했을 것이다.
또한 기도했을 것이며.
또한 호소했을 것이다.
무신앙인 내겐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그들에겐 그것이 삶의 방식이라는 걸 구태여 부정하진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교리에 위배되지 않는 선에서 해결되었다.
이윤희는 슬픔을 가누기 어려워했지만, 이제 결혼을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후에 유상병이 내게 말했다.
유상병은 그 대답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온전히 거부하지도 못했다. 그는 매달리고 애원했으나.
신앙 앞에서 사람은 얼마나 작은가.
신앙 속에서 사는 사람에게 신앙이란 얼마나 절대적인가.
그러한 사실을 되새겼을 뿐이었다.
그 날, 유상병과 나는 진탕 마셨다.
그에겐 마시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날이었고, 나 또한 마시지 않고선 견딜 수 없는 날이었다.
유상병이 처한 현실에 분노하지만, 그 분노를 향해야 할 대상이 없었다.
세상의 부조리는 반드시 그것을 만든 사람이 있기에, 분노를 향해야 할 대상은 언제나 명확했다.
하지만 이 경우에만큼은 무엇이 잘못된 것이고, 무엇에 의해 유상병이 희생당한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렇기에 나 또한 마시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다.
비어가는 술병들이 헤아리기 어려워졌을 때 즈음.
‘이병장님.’
여성이 된 몸, 여성이 된 목소리, 작아진 키, 가늘어진 팔다리.
그 모습으로 내게 이병장이라고 말하는 유상병의 모습은 낯설었다. 그렇게 변한 이후 한 번도 낯설지 않은 적이 없었다.
‘편하게 말해요. 형.’
나는 그래서 그렇게 말했다. 유상병도 거절하진 않았다.
‘선준아.’
‘네. 듣고 있어요.’
‘나, 어떻게 해야되는거냐.’
‘.......’
‘이게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럼 나는 어떻게 되는거냐.’
유상병은 술잔을 깨버릴 듯 움켜쥐었지만 손가락만 창백해질 뿐이었다.
‘나는 그럼, 남자를 만나고, 남자와 결혼해야 된다는거냐?’
‘형도 알다시피 저는....’
‘이런 개 씨발 좆같은 게 세상에 어디 있냐고!’
그가 욕하는 모습을 나는 처음 보았다.
몸이 달라졌다 해서 마음이 달라질까. 그는 하루아침에 자신의 모든 것이라 당당하게 말하던 미래의 배우자를 잃었다. 어떤 사람에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여길 수 있겠지만, 누군가에겐 전부일 수도 있는 그런 것이다.
그가 평생을 지켜온 신앙 또한, 증오하지 않을 수 없었을 터였다. 유상병은 오열했고, 진노했고, 몸부림쳤고, 경기를 일으켰다. 만취한 유상병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 또한 취기 덕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고, 그를 집에 데려가려 했다. 유상병은 제정신이 아닌 채, 몸을 흐느적거렸다.
‘야.’
‘듣고 있어요.’
‘섹스, 해보고싶어.’
그 말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세요.’
‘너도 알거아냐.’
‘무슨 말을....’
‘나, 한 번도 안 해봤어. 알잖아.’
뭐가 그리 우스운지 그는 그 말을 하며 낄낄 웃었다. 그는 독실한 신자였고, 그렇기에 혼전순결을 지키고 있었다. 그것이 옳은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앙이 자신을 무너뜨린 한 축이 되어버리자 그 신앙이 흔들린다.
그렇기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고, 나는 그렇게 여겼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맙시다.’
‘왜, 남자일 때도 한 번 못해봤는데, 여자일 때라도 한 번 해봐야지.’
‘이상한 소리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 마음에 안 들어? 내 여자친구 닮은 얼굴이라.... 악!’
나는 유상병의 뺨을 쳤다.
‘나중에 후회할 말은, 술 취했다고 해도 하면 안 되는 겁니다.’
정신이 번쩍 들기를 바라고 친 뺨이었건만.
그는 주저앉은 채 미친 사람처럼 웃음을 실실 흘리고 있었다. 미쳐버린 사람처럼.
‘흐흐.... 흐흐흐.... 흐흐흐흐..... 흐.... 흑.... 흐흑! 흐흐흑!’
그리고 그 웃음은 곧 오열로 바뀌었다. 나는 그의 어깨를 붙잡아 일으키고, 천천히 그의 집을 향해 걸었다. 한참 뒤에 울음을 그친 그는, 무너질 것처럼 서러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그렇게 되어버리게 되는거면, 내가 정말 사랑하는 걸 가질 수 없게 되어버린거면, 이제 남자로 살 수 없으니까 여자로 살아야 하고, 결국 남자를 만나야 하는거면! 결국 내가 다 망가져버리고 무너져버리고 그런 걸 천천히 느끼면서 체념하고 받아들여야 되는거면!’
눈이 새빨갛게 달아오른 채 유상병은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냥 차라리 빠르게 포기하고 싶다고!’
그 눈에는 취기가 아닌 진심이 들어있었다. 그가 섹스를 하고 싶다고 폭력적으로 발언한 것은, 취기에 빌린 만용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차라리, 차라리 일찍 포기하고, 일찍 무너지고, 나한테 이제 다른 가능성 같은 건 없는 쪽이 좋잖아.’
‘그런 걸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많아요.’
퀴어를 혐오하는 이들만큼이나, 혐오해선 안된다 말하는 이들이 있다.
‘그래, 너는 그걸 받아들일 수 있겠지.’
그는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떨구고 중얼거렸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걸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거야.’
그리고 하필이면 그걸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 제게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다.
‘누구라도 좋으니까.’
‘.......’
‘지금 나를 안아줬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는 나를 노려봤다.
‘너, 오는 여자는 안 막는다며.’
그런 말을 했던가.
굳이 자랑하지 않지만, 물어오면 숨기지도 않았다. 그러니 나는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남자였던 유상병에게.
‘.......’
‘그런 걸, 혐오하지도 않는다며.’
‘.......’
‘그럼 해줘.’
그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달라지지 않았다. 오는 여자는 막지 않고, 가도 막지 않는다. 또한, 퀴어를 혐오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건 다른 문제다.
누군가를 부수느냐, 아니냐에 대한 문제다.
‘싫어.’
나는 존대를 버렸다.
‘왜, 거짓말이었냐? 내가 더러워? 역겹지? 역겹겠지. 그래, 나도 그래, 내가 역겨워. 흐흑! 나도 내가 역겨워서 미칠 것 같아!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됐다고 군대 선임한테 섹스나 한 번 하자고 졸라대는 내 꼴이 얼마나 비참하고 역겨운지 알아!’
‘제발, 제발 이러지 말자.’
‘그냥 한 번 짓밟혀봐야 조금이라도 내 처지가 실감이 날 것 같아서 이런다 왜!’
아마, 술에 취해서가 아니라 이윤희에게 더 만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유상병은 망가져 있었다. 세상 전부를 잃었는데, 어찌 제정신일 수 있을까.
이미 잃어버린 가능성에 대한 회한은, 그것을 납득할 수 있다 해서 받아들일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리고 그 처절할 정도의 애원을 나는 도저히 닥치라는 식의 말로 뭉개버릴 수 없었다.
‘그래. 나 오는 여자 안 막고, 가는 여자 안 잡아.’
‘그래, 그럼....’
‘그런데, 뒷맛 더러울 게 뻔한 년이랑 섹스같은 거 하지 않아.’
내 폭력적인 말에 유상병은 잠시 말을 잊었다. 여동생의 옷을 입고나온 유상병은, 작고 여렸다. 본래도 그리 큰 체구가 아니었지만 더더욱 작았다.
맞기를 원하는 상대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걸 자제한 적은 없다.
맞을 짓을 하는 놈은 때렸다.
오랜 고통을 천천히 맛보며 서서히 죽어가는 게 옳은건지.
아니면 지금 유상병이 미쳐서 발악하는 것처럼 잠깐, 아주 잠깐의 방종으로 자신의 상황과 처지를 인식하고, 체념해버리는 게 옳은건지.
나도 인간이기에 알 수 없다.
하지만, 정말로 그렇다면, 더러운 뒷맛 한 번 참아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면.
짓밟히고, 무너진 다음 다시 일어나길 원하는 거라면.
애초에 순결하지도 않은 내 몸 따위야 아무래도 좋다.
‘정말로, 정말로 그런 걸 원하는거면. 최소한 술은 깨고 얘기하자.’
나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나로서도 미친짓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그 선택을 최소한 제정신으로 마주하고 싶었다.
다음 날,
‘할거야.’
‘...미쳤군.’
‘그럴 수밖에 없잖아.’
맑은 정신상태에서, 유상병은 그렇게 말했다.
그 뒤로,
내 삶은,
쭉.
모든 순간이 그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간단하다.
유상병과 나는 그 날 밤, 술기운을 빌지 않고는 도저히 뭔갈 할 수 없어 다시 술을 마셨다.
판단은 맨정신에 내렸으니, 행동하며 취해있는 건 상관없을거라 생각했다.
그 뒤론 취기에 정신을 날려버리고 짐승처럼 몸을 섞었으며. 유상병은 몇 번이나 숨이 넘어갈 것처럼 울어댔다.
짓밟아주길 원한다고 계속 주문처럼 중얼거렸기에, 나는 짓밟아버렸다. 그건 내 삶에 있어 최악의 경험이었다. 역겹고, 끔찍했고, 기분나빴다.
그런 의도로 다른 사람과 애정 없는 섹스를 한 건, 난생 처음이었다. 내 생각보다 나는 더 더러운 놈이라는 걸, 새삼 재확인했다.
그 뒤, 병가에서 복귀한 유상병은 현역적부심 심사 때문에 수도병원에 잔류했고, 이르면 나보다 빠르게, 혹은 나보다 늦게 의병제대를 하게 될 예정이었다. 그에 따라 부대로 돌아온 나는, 내 스스로를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 밤을 보낸 후 유상병은 나를 원망하지 않았다. 고맙다고, 짧게 그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그 한 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러기로 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힘들었다.
가족과는 연락하고 지내지 않았고, 군내의 그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설원에게 연락했다.
면회를 와 줄 수 있겠느냐고.
‘개말년이 무슨 면회야?’
그렇게 말하고서도, 설원은 바로 다음 날 나를 찾아왔다. 평일이었음에도 설원은 찾아왔다.
사람 없는 면회실에서, 나는 설원에게 내가 겪은 일에 대해서 토로했다.
내가 택한 것이 정말 옳은건지 어떤건지에 대해 물었다.
‘별일이네, 형이 나한테 그런 걸 다 물어보고.’
‘...모르겠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맨정신으로 한 선택이었다 생각했지만, 맨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
‘쉽게 생각할 수는 없겠지.’
설원은 진지하게 내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나, 우리는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나쁜 일이었을거야.’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서로에게 신랄했다.
‘조금 나쁜 일이었다면, 그래도 자기위로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많이 나쁜 일이었다면?’
설원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하지만 눈은 내 안을 뚫어버리듯 응시하며 말했다.
‘무엇이건, 책임져야 할 순간이 오지 않을까 싶은데.’
내 행동에 대해서.
잘못에 대해서.
무엇을 책임져야 할지는 알 수 없지만 무언가 책임져야만 하게 되는 순간이 올거다.
그 순간을 맞이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선하게 살아야만 한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가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진정한 선이 무엇인지 모르기에, 사람은 괴롭다. 설원은 나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런데 있잖아.’
‘어.’
‘그 사람,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도 결국에는 나쁜 짓이었을걸.’
설원은 타인의 이야기를 할 때, 거리를 둔다. 그것은 그들에게 공감하지 않는 태도라 보기는 어렵다. 녀석은 오히려 공감하기에, 이렇듯 남의 이야기를 하듯 편하게 말한다.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할 줄 아는 녀석이고, 항상 그에 대해 생각하는 녀석이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런 말에 헛웃음을 짓는다.
‘그딴 양비론 따위를 나는 아주 혐오해.’
‘그렇겠지. 이런 허접한 양비론은 저열한거니까. 그런데말야.’
설원은 씨익 웃는다.
‘충분히 위로는 되었을 것 같은데?’
얄미운 놈.
그런, 생각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오랜만이네요.
IF엔딩이 아니라 아예 본편수준의 IF루트
설원이 아니라 이선준이 TS가 되었다면입니다.
정기연재는 어렵겠지만, 시간날때마다 써보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