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7 IF - 그래도 선준이래요 =========================
전역하기 한 달 전,
나는 여자가 되어버렸다.
세상에 TS바이러스라는 원인불명의 질병이 존재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바꾸는 그런 바이러스.
바이러스라기보다는 저주에 가까운 그런 게 있다는 건 들어 알았다. 이해하기 어려운 건 아니지만, 불가해하다 말해 마땅한 그런 질병이라고 들었다.
치료하는 건 불가능하고, 신체에 어떤 이상도 보이지 않는 그저 변화만을 일으키는 질병.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발병자가 그리 많지도 않은 질병이기에, 그것은 내게 특수 유전병이나 희귀병 수준의 느낌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나와는 관계가 없는, 세상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하나 더 생겨났을 뿐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후임 하나가 부대 내에서 TS바이러스 발작을 일으키기 전까지는.
전역 두 달 전의 일이다.
TS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이론 중 가장 설득력이 높은 사망감염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듯, 녀석은 갑작스레 여자가 되었다. 주변에서 죽은 사람도 없었으며, 그 촌구석에 TS바이러스 발병자 같은 건 없었다.
그저 현상으로, 그 녀석은 모두가 보는 점호시간에 몸에서 흰 연기를 내며 쓰러졌다.
녀석은 수도병원으로 실려갔고, 나는 분대장이었기에 그 병원행에 따라갔다.
말년휴가를 나가면서 분대장 견장을 반납할 예정이었기에 나는 여전히 분대장이었고, 그렇기에 병원에 가야만 했다.
TS바이러스 발작에 걸린 유사준 상병은 내 맞후임으로, 나를 잘 따르고 군생활도 열심히 하는 분대원으로, 내 군생활에서 많은 부분 서로 도움을 주던 관계였다.
나는 그가 맞후임이었고, 또 내 분대원이었기에 그에 대해 꽤 많은 걸 알고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이미 교원시험에 합격했기에 전역 후 생계가 보장되어 있다.
오 년간 연애한 여자친구가 있으며, 전역 후에는 양가의 합의 하에 결혼이 예정되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여자친구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이에 맞지 않게 들뜨고, 또 행복해하는 걸 봐왔다. 몇 번인가, 함께 휴가를 나가 배웅을 온 그의 여자친구를 본 일도 있었다. 꽤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좋은 연인이었다.
나는 국군수도병원으로 급히 향하는 EMB에 탑승해서, 평온한 표정으로 잠들어있는 그를 본다.
이젠 그녀라고 불러야 할.
심박수, 혈압, 체온.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유사준 상병이 흰 연기에서 빠져나왔을 때, 이미 모든 건 끝나있었다. EMB는 빠르게 달리지만 응급조치를 위해 탑승한 군의관도, 처부 간부도, 나도.
상황이 전혀 긴급하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유사준 상병은 여자가 되어 있었고, 그 무엇도 그걸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이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깨어난 유사준 상병은 일어나자마자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듯한 눈치였다.
거울을 보곤, 약 삼십분가량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TS바이러스에 걸리는 사람은 선남선녀가 된다고 들었다.
얄궂게도,
아, 아니.
끔찍하게도.
유사준 상병은, 오 년간 만났다던 자신의 여자친구와 아주 비슷한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나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세상의 헛소문에 의지한다면, TS바이러스에 걸린 이는 자신의 이상형에 가까운 사람으로 변한다고 들었다.
그건 유상병에겐 비참한 농담이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무참해져선 그 앞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환자복은 컸고, 얼이 빠져버린 유사준 상병의 곁을 지켰다.
국군수도병원은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세상 어딜 가도 아무것도 해주지 못할거다라고, 수도병원장이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역겨웠지만, 그런 말을 듣고 울지조차 못하는 유사준 상병에게 더 마음이 쓰였다.
그는 병원에서 받은 명령으로 병가를 나가게 되었고, 삼성동에 소재한 TS바이러스 전문 병동에서 정신과 검진을 받도록 명받았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지휘관은 내게 그의 병가기간동안 청원휴가를 부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갑작스런 불안증세로 인해 유상병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네가 곁에 붙어있어라. 그리고 세 시간 단위로 상황을 보고할 것이라는 전제도 붙였다. 충분한 휴가비와 더불어 그의 사비를 털어낸 ‘비밀스러운’지원금도 받았다. 여비나 숙박비가 필요한 상황이 있을지도 모르기에.
그런 점에서 내 지휘관은 자신의 안위를 신경쓴다는 점에선 상당히 잔꾀가 돌아가는 족속이었다.
유상병은 병가를, 나는 청원휴가를 나왔으며 그에 대해 유상병은 군의 걱정을 믿는다기보다는 나를 믿었기에, 동행을 거부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정신과 검진을 받았고, 거기에선 우울증과 불안증세, 공황장애 따위의 말들을 주워섬겼지만 사실 그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말과 다름없었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위로하는 방법은 모른다.
나는 그 사실이 그토록 뼈아프게 다가왔던 적이 없었다.
섵부른 위로는 기만이고, 나는 기만을 싫어하기에.
제대로 이해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힘들었다.
유상병의 집에 도착했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경악스러웠다.
그를 환영했다.
‘어머! 윤희야! 연락은 하고 오지 그랬어? 그런데 이 분은...?’
가족 모두가, 유상병을 그의 여자친구라 생각했다.
잠깐의 해프닝 뒤, 모든 사정을 설명하고 나서 유상병의 집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나는 자택 바깥에서 줄담배만 태웠다.
담배를 반 갑쯤 태웠을 때, 유상병은 내게 들어와서 자고가라 했고 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 불편한 자리를 견뎌내야 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었고, 나는 그 필요가 충분하다 생각했다. 유상병은 확실히, 많이 불안해보였으니까.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분대장인 나보다 제 여자친구에게 가장 먼저 알리는 그가, 이 상황이 된 이후 여자친구에게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내가 알기로 그녀는 독실한 크리스찬이고, 그건 교회에서 그녀를 만난 유상병 또한 마찬가지였으며.
크리스찬은 동성애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아주 간단하고 비루한 사실이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