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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설원입니다-166화 (166/224)

00166 IF ED NO.1 엄마인 누나, 누나인 엄마 =========================

준과 나는 아무 대화도 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운을 떼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그렇고, 준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피곤했는지 조용히 잠들어 있다. 무겁던 분위기가 붕 떠버린 것도 있고, 일단은 태원으로 돌아갔다. 많은 생각을 했다. 내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정말 말해도 되는걸까. 무엇이든 진실을 마주하는 게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부모님과 내가 진실을 거론하지 못했고, 아주 나중에야 조금이나마 간접적으로 그것에 대해 대화했던 것처럼.

준과도 어쩌면 모르는 척 지내는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해도 결국 그건 나만의 잘못이고, 나만의 상처다.

차에서 내려, 집에는 가기 싫었고 준과 나는 바깥의 공원 벤치에 앉았다. 파란 책가방을 메고 있는 준의 표정은 이제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것 같다는 표정이다.

“준. 있잖아.”

“응.”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까.

미안해?

사랑해?

잘못했어.

용서해 주면 안될까.

이런 말들만 떠오른다. 내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해주면 안되겠니. 입을 열고 싶은데 마음대로 말이 안 나온다.

“준....”

“응.”

준은 나를 바라보며 대답한다. 머뭇거리지 않고, 감정을 맞부딪혀도 괜찮다는 뜻일까. 이런 부분은 어쩌면 이선준을 닮았는지도 모른다. 나처럼 겁쟁이가 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감정을 내보이는 걸 무서워하고, 너무 많이 상처받고 살아서 더 상처받는 걸 두려워하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또 괴로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

“내가.... 있잖아.”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꾹 참고, 나는 준 앞에 쪼그려 앉아서 말한다.

“엄청, 엄청.... 거짓말쟁이라면.... 어떡할거야?”

결국 참지 못해서 눈물이 나온다.

“흐, 흑! 준.... 내, 내가.... 내가....”

내가 네 엄마야.

라고 말하려는데,

도저히 그 말이 안 나온다. 준도 알고, 나도 알지만, 도저히 그 말을 꺼낼 수가 없다. 자격이 없는 것 같고, 그래서는 안 되는 것 같고, 너무 이기적인 것 같아서 말하기 어렵다.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얼마든지 해버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못 하겠어. 가슴에서 뭔가 턱 막혀버린 것처럼 도저히 그 말이 안 나와.

내가 네 엄마야.

아주 쉬운 말인데, 그렇게 길게 말해야 하는 것도 아닌데. 이미 다 알고 있는데도 나는 용서를 비는 게 두렵다. 나는 계속 울고, 준은 눈이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준은 울지 않는다.

“괜찮아.”

준이 그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본다. 입을 앙다물고 울음을 참으려 하고 있다. 나는 참지 못해서 우는데, 준은 어떻게든 참아내고 있다. 준은 한참 나를 바라보다가.

“엄마.”

용서해주듯 그렇게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게 뭔지 진짜로 느낀다.

괜찮다는 듯, 울지 않아도 된다는 듯 그렇게 말하며 내 목에 와락 안겨온다. 가슴이 터질 것 같은 느낌이야. 나는 준을 끌어안고 터져나오는 울음을 내뱉는다.

“흑, 흐흐흑! 미, 미안해.... 미안해.... 잘못했어. 내가, 내가 잘못했어 준. 미안해.... 어, 어.... 어, 엄마.... 엄마가.... 잘못했어....”

“괜찮아 엄마.... 윽.... 흑!”

준도 울고,

나도 운다.

이렇게 쉬운 말인데.

이렇게나 마음을 울리는 말인데.

“엄마.... 엄마가 잘 할게. 으윽! 어, 엄마가.... 엄마가 열심히 할게. 흑! 준, 미안해. 아, 아니. 아들, 내 아들. 응? 내 아들.... 미안해.... 아들이라고 못 해서 미안해....”

“흐, 흑! 어, 엄마아!”

우리는 서로를 이렇게 부르고 싶어했을 것이다. 언제부터 알고 있었든, 안 순간부터 했던 모든 고민과 슬픔 같은 것에서 벗어나는 건 어렵겠지만. 내가 그랬던 것처럼 준도 그랬겠지.

엄마,

아들,

쉬운 건데.

아무 말도 아닌 것 같은데.

내게는 세상의 전부인 결핍이었다. 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우리 모자는 서로 끌어안고 바보처럼 울어댄다. 사과하는 엄마, 용서하는 아들.

어디서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겠지.

하지만 좋아. 기뻐.

머뭇거리는 건, 늦어버린 건 어쩔 수 없지만. 조금씩 고쳐가자. 조금씩 서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그 동안 하지 못했던 것, 그 동안 괴로웠던 것들을 잊을 만큼 서로를 끌어안고 행복하게 살자.

할 수 있을거야.

할 수 있을거야.

내가 정말로 꿈꿨던 날들, 준에게 밥을 해주고, 옷을 사주고, 입혀주고, 학교에 보내고, 배웅하고, 그런 날들을 맞을 수 있을거야.

너무 다행이야.

내 아들이 이렇게나 착한 아이라서.

한참을 울다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준과 나 전부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당연히, 눈도 팅팅 불어서 볼썽사나운 꼴이었다.

“누나 얼굴 이상해.... 앗!”

준은 씩씩하게 눈가를 훔치며 웃는다. 그러고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아는지 입을 막는다. 지금까지 누나라고 불러버릇했으니, 엄마라는 말이 입에 붙는건 어려울거다. 한 걸음 나아갔다. 지금껏 두려워서 내딛지 못했던 한 걸음이다.

하지만 그 걸음을 나아갔으니, 조금씩, 조금씩 익숙해지면 된다.

“괜찮아.... 괜찮아 준.”

내 괜찮다는 말에 준은 활짝 웃는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너무나 착한 내 아들. 나는 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누나가 맛있.... 아니, 엄마가 맛있는 거 해줄게!”

결국, 나도 엄마라는 말이 입에 안 붙는 건 마찬가지다.

이번에도 파스타, 소금간을 확실하게 해서 정말 맛있게 만들었다. 저번처럼 실수는 하지 않았다. 준은 가식 없이 정말 맛있게 먹어줬다.

“맛있어!”

준은 입가에 소스를 다 묻히고 말했다. 하지만, 조금 주저하는 것처럼 우물거리듯 말끝을 흐린다.

“엄마....”

“어색하면 굳이 안 그래도 돼.”

엄마라고 부르는 것, 아들이라고 부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서로를 그렇게 알고 있다는 게 중요한거다. 준과 나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익숙해지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결국 시간이 다 해결해 줄거다.

준과 나는 밥을 먹고, 소파에 앉았다. 준이 내 무릎에 누웠고, 나는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준은 기분이 좋은지 눈을 감고 있었다.

“미안해 준.”

“괜찮아.”

습관처럼 나오는 말에 준은 질리지도 않고 대답해준다.

“내가 밉지 않아?”

나는 또 바보처럼, 그런 걸 물어본다. 준은 가만히 있다가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본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나를 응시한다.

“엄마도 힘들었지?”

자신의 감정조차도 버거워야 할 어린아이가, 어째서 이렇게나 나를 생각해주는걸까. 그런 준의 마음 때문에 나는 눈물이 왈칵 치솟는다. 준은 그런 나를 보며 배시시 웃었다.

“엄마는 울보야.”

“흑.... 윽.... 엄마 놀리면 못써!”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소리치자 지원은 까르륵 웃음을 터뜨린다. 생각해보면 준은 정말 나를 많이 닮았다.

나도 어릴 때, 친척들의 험담에 투정을 부리기보다는 눈치를 봤다. 그리고 남들을 이해하려 애썼다. 그들의 감정을 이해해야만 내 삶을 긍정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그건 착하다기보다는, 그저 두려운 것이다.

버려질까봐.

준은 내 아들이다.

그러니, 나의 그 못난 점도 닮아버렸을 것이다. 버려지는 게 두려웠다. 준 또한, 내게서 버려질까 두렵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가엾게도, 내 아들이라서 나의 많은 부분을 닮아버린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서운해도 서운하지 않은 척, 슬퍼도 슬프지 않은 척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준.”

“응.”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도 돼.”

그리고 얼마 전, 준이 내게 해줬던 말을 그대로 돌려준다.

“엄만 아무데도 안 가.”

“정말?”

“응.”

“아무데도 안 가?”

“응, 계속 준이랑 같이 있을거야.”

“정말이지?”

“정말이지.”

그 때의 선문답이 되풀이되고, 준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거린다. 준은 백 마디 말을 하기보다. 벌떡 일어나선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서럽게 울었다. 아마, 준은 내 노트북 바탕화면을 보기 전, 아주 오래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잠깐의 울음으로 풀어버리기에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서러웠다. 준은 내 품에 얼굴을 파묻고 울다가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응.”

“엄마.”

“응. 준.”

“엄마.”

“왜 자꾸 불러, 여기 있어.”

“엄마아아아아.“

“응.”

준은 마치 속에 있던 응어리를 풀어내듯 그렇게 말한다.

준이 그렇게 말할수록 나는 준을 더욱 세게 끌어안는다. 아무데도 가지 않아, 나는 네 옆에 있어. 나는 계속 네 옆에 있을거야. 이렇게 너랑, 엄마와 아들로 만났으니까. 네가 나를 용서해 줬으니까. 네 옆에 계속 있을게.

“엄마 아무데도 안 가.”

어쩐지 눈물이 난다.

나는 여전히 눈물이 많고,

내 아들도 나를 닮아 눈물이 많다.

눈물 많은 사람 세상살이에 유리한 거 하나도 없는데, 나는 벌써부터 눈물 많은 내 아들이 걱정이다.

============================ 작품 후기 ============================

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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