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5 IF ED NO.1 엄마인 누나, 누나인 엄마 =========================
준은 내 손을 잡지 않았고, 집에 도착했다.
“엄마아!”
준이 마중 나온 엄마의 품에 폭 안긴다. 엄마는 준을 안아올리면서 나를 보며 눈으로 묻는다. 왜 이렇게 빨리 왔냐는 뜻일 것이다. 나는 약간 얼이 빠져서 힘없이 웃었다.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해서….”
그 말에 엄마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기껏 다시 왔는데 자고 가라.”
“아, 아냐…. 나 내일 출근 해야 돼.”
“아…. 그래, 그럼….”
준은 나를 보며 손을 흔들고, 나는 집 안에도 들어가지 않은 채 다시 차에 탄다. 준은 엄마를 보고 싶었던 걸까? 대체 갑자기 왜 그러는 걸까? 모르겠다. 도저히 모르겠다.
내가 남자였다는 사실 때문에 혐오하는 걸까? 어제는 괜찮아 보였는데…. 그래 보였는데…. 어린아이니까 TS바이러스라는 말을 듣자마자 덜컥 겁이 났을까? 준은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을 뿐, 아무것도 따로 묻지 않았다.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그저, 멍해졌다.
준이 나를 불편해해. 싫진 않다고 했지만 좋아하지도 않아. 어제까지만 해도…. 좋아했는데, 좋다고 해줬는데.
마음이 아파.
잠깐, 잠깐 쉬자. 지금 운전하면 사고가 날지도 몰라. 핸들에 머리를 박고, 나는 잠시동안 심호흡을 한다.
한참 뒤에야 출발할 수 있었고, 몇 번이나 가드레일에 차를 들이박아 죽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내 전부인 아이인데, 준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해? 더 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어. 나는 고속도로에서 미친 사람처럼 달렸다.
빠르게가 아니라 천천히.
빠르게 달리면 진짜로 죽을 것 같아서, 일부러 속도를 늦춰 달렸다.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몸을 씻었다. 핸드폰에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기일 얼마 안 남았는데, 어떻게 하실래요?] – 한정운
[안 갈래.]
[매년 가셨잖아요.] – 한정운
[그냥, 이제 가고 싶지 않아.]
나는 달력을 보고 날짜를 가늠한다. 다음 주다. 기일은 다른 누구의 기일이 아니다.
이선준의 기일.
그걸 알게된 건 사 년 정도 전이다.
이선준은 죽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살했다. 부모에 의해 남해 어딘가의 별장에 감금되어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한정운은 이미 알고 있었는데, 내가 조금 괜찮아진 것 같았을 때 넌지시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화가 나거나 슬프지는 않았다.
이선준의 배신에 의한 상처가 다른 상처와 부담들로 마모되어버려서 그렇게 큰 감상을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이미 모든 마음을 접어버렸을 때 그 진실을 안다 해서 다시 불타오를 정도로 나는 감정을 마음에 각인해놓고 사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그 날 서럽게 울고 내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냈을 뿐이다. 어딘가에서 나 같은 건 잊고 행복하게 잘 살 줄 알았던 그 녀석이, 사실은 나를 보지 못하는 감금된 상태였고…. 부모는 결국 아들을 죽게 만들었다.
못난 사람들이 못난 방식으로 사람을 움직이려다가 실패했고, 그 결과물이 이선준의 죽음인 동시에 미혼모인 나다.
조금은 떳떳할 수 있었다.
준이 그래도 내 기만과 배신, 그리고 어리석음의 결과물이 아니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했다. 준은 우리 사랑의 결과물이라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선준을 용서하고 연민했다.
기일에는 늦은 시간에 장지에 찾아갔다. 수많은 꽃들 사이에 나도 헌화하고, 돌아온다.
이선준은 내 첫 남자였고, 마지막 남자다. 누군가를 만날까 했고, 박헌영에게 한 때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죄책감 때문에 또 한 번 기만의 역사를 쌓기는 싫었다.
박헌영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잘 나가는 작가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연락은 당연히 안 한다.
[네.] – 한정운
한정운의 답장을 끝으로 연락은 끝났다. 지금은 어딜 갈 기분이 아니다. 혹시 모르는 일이지, 나는 워낙 변덕이 심해서 그 날이 되면 홀린 것처럼 찾아갈지. 찾아가서 왜 죽었냐고 울부짖으며 따져댈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피곤해.
운전을 너무 오래 했고, 또 아들이 날 싫어하는 것 같아서 괴로워. 그래도 일을 안 할 수는 없기에 나는 안방에 들어가 노트북 앞에 앉는다.
“어….”
장식물은 집에 별로 없다.
안방의 책상에는 준의 사진이 몇 개 놓여있다. 나는 약간 겁에 질려서 손을 떤다. 설마, 설마…. 설마. 아닐거야. 아닐거야, 착각일거야.
준의 사진은 네 개 놓여있고, 갓난아기 때와 돌사진, 네 살 때, 그리고 요즘 사진이 있다. 이건 그냥 있을 수 있다. 그냥 동생 좋아하는 누나가…. 쓸법한 사진이다.
나는 버릇이 하나 있다.
노트북을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항상 접어놓는다. 전력소비의 문제가 아니라 펼쳐놓으면 모니터에 먼지가 앉아 보기 싫기 때문이다.
노트북이 펼쳐져 있다.
준은 어제, 내가 돌아왔을 때 안방에 있었다. 뭘 하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아주 잠깐이었으니까. 당연히 내 노트북이니까 내가 안다.
절전 상태였던 노트북이 켜지고, 바탕화면은 내가 준을 안고 있는 사진이다. 갓난아기인 준을 내가 병원에서 힘없이 웃고 있는 모습이다.
언제나 힘들 때에는 이 사진을 보면서 힘을 얻는다. 아이를 낳고 그 힘든 일도 견뎌냈는데 뭘 못 하겠냐면서…. 매일 화면을 보며 다짐하잔 의미에서 설정해 놓았다. 하지만 그건 그냥 그 때의 다짐에 불과하고, 이제는 그냥저냥 바탕화면으로 쓰고 있을 뿐이다.
너무 일상적인 건, 오히려 눈치채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준이 이 화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할지에 대해서는 아무 생각도 하지 못했다.
엄마가 어린아이를 안고 있다. 아이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진 속의 나는 아이를 낳았고, 힘들어 하면서도 힘겹게 웃고 있다.
안겨있는 아이….
나는 아이가 없다. 결혼하지도 않았다.
준은 나와 닮았다. 엄마와는 전혀 닮지 않은 탓에 준의 친구들은 내가 엄마가 아니냐는 소리를 한다. 그런 준이, 이 바탕화면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게 되었을지는 그리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아…. 아….”
‘누나는 누구야?’
‘누나랑 나는 고아야?’
그건 전혀 착각한 게 아니었다. 준은 전부 알아버렸다. 그걸 알면서도, 내게 해명할 기회를 준거였다. 전부 말하고, 용서를 빌 기회를 준 것이었다.
나는 그런 준의 호소에 거짓말을 해버렸다.
“으, 으…. 으….”
나는 쏟아지는 눈물을 하염없이 흘린다. 나는 그제야 당연하다는 듯 잊어버렸던 과거를 떠올린다.
내 부모가 친부 친모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것도 아주 어렸을 적이다. 나는 그걸 모르는 척 했다. 그저 착한 아이인 척 했다. 나도 어렸을 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준이 알지도 모른다는 건 생각하지 않았다.
내 경우는 아예 잊어버리고 있었다. 준은 내가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니면 더 오래 전부터 알았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 얼마나 괴로웠을까.
다 내 잘못이다.
내가 똑바로 행동하지 않았던 탓이다.
솔직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들은, 꼭 솔직해진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지만은 않다. 문제라는 것들은 대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문제 나름대로 계속 변화하기 때문이다. 결국 타이밍이라는 게 있고, 말해야만 할 순간이라는 게 있다.
말해야만 할 순간을 놓쳐버렸다. 준의 표정이 왜 그랬는지, 왜 그런 태도였는지, 왜 집에 가고 싶다고 했는지도 전부 알아버렸다.
내가 거짓말쟁이라서, 솔직해질 기회를 걷어차버려서 환멸하게 된걸까?
내가 가진 문제는 이미 변화해버렸고, 솔직해지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렸다. 나는 방 안에 가만히 앉아서 고민에 빠진다. 미움받는 건 싫어, 누구에게도 미움받아도 이젠 상관없지만. 적어도 준에게만큼은 미움받고 싶지 않아.
악착같았던 건 아니지만, 언젠가 함께 살 날을 위해서 돈도 모아놨는데. 더 큰 집을 구하지는 못하더라도, 마당에서 작은 강아지라도 키우며 함께 살 수 있으면 어떨까 하고 항상 생각했는데.
하긴,
나는 원래 그랬어.
아무것도 결심하지 못하고, 밝은 미래만 그려가면서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지.
언젠가 이선준이 말했던 것처럼....
나는 스스로를 연민하는 자신이 좋은 걸지도 몰라. 바보라는 말도 아까운 멍청이가 나였고, 여전히 그렇고, 언젠가는, 언젠가는, 그런 말만 해대며 그 시간들을 준비해가는게 나야. 결국 솔직해야 할 때 솔직하지 못했으면서.
아무것도 행동하지 못했으면서.
언젠가 후회하게 될 이런 순간만 기다렸다가 결국 울음이나 울어대는 머저리.
내가 준을 사랑하는 만큼 준이 나를 사랑해주지 않으면 슬픈걸까?
남남이 서로 사랑을 하든, 부모자식 간의 애정이든, 남매간의 애정이든.
어찌되었든 노력해야 하는 게 아닐까. 결핍에 대해서 자꾸만 생각하고, 왜 이러지 않나에 대해 괴로워하는 것보다도 더, 어쩌면 남녀의 사랑보다 더 노력해야 하는 건 아닐까.
솔직하지 못했으면서,
준이 나를 온전히 사랑해주길 바란 건 나쁜 짓이겠지.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몇 번 신호가 가지 않아서 엄마가 전화를 받는다.
[어, 왜 원아. 준이 자.]
말하지 않아도 내가 준 때문에 전화를 걸었다는 걸 안다. 엄마라는 건 참 묘해. 나도 이런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사실 별 것 아니지만, 이 별 것 아닌 것까지 생각하게 될 만큼 내가 준에게 잘 할 수 있을까?
너무나 당연한 엄마라는 말처럼, 그 당연한 엄마로 생각될 수 있을까? 이미 늦어버렸는지도 모르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은 거지만.
더 늦어버린 탓에 진실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서로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잘 하는 건 아닐지라도 더 큰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서.
말해도 되는걸까.
“엄마.... 나 말할래.”
[.......]
“말해야겠어.... 나 못 견디겠어.”
나, 아들을 무서워하면서 살고 싶진 않아. 죄인이지만, 계속 죄인이겠지만 사과조차 하지 않는 몰염치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아.
[내가 말해주랴?]
“아, 아니. 내가.... 내가 말할게. 수요일에 갈게....”
[울지 말구.]
“으, 응....”
[그래....]
엄마는 해라, 하지 마라와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는 우두커니 앉아서 멍하니 앞을 바라본다.
수요일.
회사에는 휴가계를 냈고, 준은 방학이라 특별하게 일정이 있지는 않았다. 수요일 단 하루 휴가를 낸다는 말에 부장은 조금 의아해했지만, 평소에 성실했던 탓에 별 문제 없이 휴가를 승낙해줬다.
대전으로 내려갔을 때, 준은 나를 보며 대놓고 인상을 쓰진 않았지만, 조금 꺼려하는 기색이 보였다.
마음이 아파.
하지만 마음이 아프다고 해서 그만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엄마는 물론, 아버지와 준도 나와있다. 내가 무슨 결심을 했는지 알기에, 그들의 시선에는 걱정하는 낯빛이다.
“준, 누나랑 갈 데가 있어.”
“어디?”
“그냥.... 조금 먼 곳.”
준은 잠시 고민한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집으로 뛰쳐들어갔다. 그 뒷모습을 보는데, 나는 예전에 느꼈던 감각을 다시 한 번 맛본 강렬한 기시감이 들었다. 심장이 쿡쿡 찔리다가 마치 뭔가에 얻어맞아 부서져버린 것 같은 감각이다.
마음이 부서질 것 같아.
내가 그 정도로 싫은거야?
“얘, 얘가 왜 이래...?”
엄마가 당황하고, 아버지가 소리친다.
“설준! 이리 오지 못해!”
“아, 아냐! 아냐! 아, 아부지 소리치지 마. 애 놀라....”
“내 이 놈이....”
아버지가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 걸 한사코 말린다. 나는 바닥만 쳐다보고, 설훈이 준을 달래 데려오려고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닫힌 문이 열린다.
설준이 씩씩하게 걸어나온다.
등에는 파란색 책가방을 메고 있다. 우리는 모두 벙쪄있고, 준은 천천히 걸어와서 내 앞에 선다.
“가자.”
“어, 어... 준.... 가방 가지러 간 거였어?”
“응.”
대체 뭘 챙겼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모습에 엄마와 아빠는 물론, 설훈도 새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한다. 준의 표정은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군이라도 된 것처럼 비장하다. 귀여운 책가방을 매고 있으면서.
정말,
이 상황에 할 생각은 아니지만....
너무 귀엽잖아 내 아들.
“으, 응.... 가자!”
내가 과하게 활짝 웃자 준도 미소지으며 나를 따라온다.
“나, 갈게.”
내 말에 가족 모두 손을 흔든다. 잠깐의 외출이지만, 아주 잠깐 가는 거지만. 가족들은 내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다. 준도 혹시 알고 있을지도 몰라. 가족들의 배웅을 받고 차를 탄다. 생각해보면 이게 뭐하는 짓이야?
바보같다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