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64 IF ED NO.1 엄마인 누나, 누나인 엄마 =========================
준은 상냥하고 좋은 아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다.
나는 이유 없이 그냥 미안하다고 했는데, 맛있었다고 말해버리면 맛없다는 걸 되려 네가 증명하는 셈이잖아. 나는 싱거운 파스타를 준이 그랬던 것처럼 눈물을 찍어내며 꾸역꾸역 다 먹는다.
“맛있지?”
준의 말에 나는 웃는다.
“나중에 더 맛있게 해줄게.”
“응.”
가슴이 뭉클해지는 느낌이라는 게 뭔지 절절하게 와닿는다. 단순히 나를 어려워하는 것도 있겠지만, 준은 정말 천성이 착한 아이다. 설거지를 하고, 준과 꼭 붙어 앉아 텔레비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다.
같이 살고 싶다.
정말로, 진심으로 행복해.
같이 살고 싶어. 매일 아침을 차려주고, 학교에 보내주고, 돌아오면 저녁을 같이 먹고.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고, 내일은 무슨 일을 할 거고, 이번 주말에는 어디로 놀러가자는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혼자 있는 집은 쓸쓸하지만, 다만 쓸쓸함 때문이 아니다.
네가 필요해.
내 곁에서 자라주면 안될까? 네 키가 오늘은 얼마만큼 자랐는지 벽에 눈금자를 만들어 놓고, 매일매일 키를 재는데 안 자란다며 투덜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
숙제 하는 게 힘들어서 우는소리를 내면 마지못해 내가 도와주고, 내 품에 꼭 안겨서 잠들었다가 같이 눈을 뜨고 일어나자마자 서로를 보고 웃는 그런 매일을 맞이하고 싶어.
그런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지만 할 수 없다. 나의 삶이 태원에 있듯 설준의 삶은 대전에 있고, 갑자기 누나와 산다고 하면 설명해야 할 것들이 많다. 무엇보다도 나는 겁쟁이라서 두렵다.
지금은 적당히 불행하면서도 이따금 행복하지만, 설준이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게 되면 이런 잠깐의 행복도 없게 되는 거잖아.
“누나는 집에 있으면 뭐 해?”
“그냥…. 있지 뭐.”
사진첩을 뒤져보며 설준을 보는 것 이외에 내가 집에서 즐기는 여가생활은 별로 없다. 텔레비전을 보거나 끝마치지 못한 일을 하고, 주말에는 준을 보러 가거나 피치못한 이유로 못 간 경우에는 잠을 잔다.
그야말로 무위도식 같으면서도 일만 하는 건조한 생활이다. 임신 중에 술은 끊어서 이제 입도 안 댄다. 만나는 친구라고 해 봐야 가끔 한정운을 만날 뿐이다. 녀석도 나름대로 바쁘고, 나도 어쩐지 너무 깊게 만나는 건 싫어서 자주 보려 하진 않는다.
….
완전히 직장 있는 히키코모리잖아.
준은 목을 뒤로 젖혀 나를 올려다본다.
“누나는 남자친구 없어?”
“응, 없어.”
“누난 예쁜데 왜 없어?”
“예쁘면 남자들이 자꾸 귀찮게 해서, 오히려 정나미가 다 떨어졌거든.”
내 말에 준이 웃는다.
“누나가 우리 학교에서 제일 예쁜 여자 선생님보다 더 예뻐.”
“얘가 왜 누날 비행기 태울까? 뭐 갖고 싶은 거라도 있어?”
내 말에 준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준은 그러면서 자기 친구들이 나를 볼때마다 너무 예쁘다고 말했다는 둥 그런 이야기를 했다. 오다가다 몇 번 마주치긴 했으니 준의 친구들도 나를 알거다.
“애들이 엄마는 하나도 안 닮았는데 누나랑 엄청 닮았다고, 누나가 내 엄마 아니냐고 하는 애들도 있어.”
“아…. 그래?”
그 말에 심장이 덜컹거리는 것 같다.
“엄마도 젊었을 땐 예뻤어?”
당연히 나를 말하는 게 아니라 내 엄마를 말하는 거다. 확실히 엄마는 이제 할머니인데다가, 나는 TS바이러스에 걸렸으니 유전적으로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엄마와 준은 손톱만큼도 닮지 않았다. 당연히 아버지와도 닮지 않았다.
“엄마도 예뻤어.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그래.”
예쁘다라….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엄마는 사실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지. 우리는 이야기도 하고, 텔레비전을 같이 보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밤이 되어 준이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자 나는 준을 안고 침대에 가 눕혔다.
옆에 누워 준의 머리를 쓸어준다. 준은 여전히 약간 거리를 두고 있다.
“준.”
“응.”
“조금 더 가까이 올래?”
“가까이?”
“꼭 안고 자고 싶어.”
내 말에 준은 조심스럽게, 하지만 조금 쭈뼜거리며 내게 다가온다. 준의 머리를 가슴으로 꼭 끌어안는다.
“숨막혀 누나.”
“아, 미안.”
준이 조금 떨어지고는 내 몸에 팔을 두르고 꼭 달라붙는다. 작은 숨이 명치께에 느껴진다. 꼭 달라붙어서, 이렇게 끌어안고 있자 마음이 편해진다. 무언가 비어버린 같은 공간에 들어찬 것처럼 행복해진다.
“있잖아 누나….”
“응, 준.”
“나 물어볼 거 있어.”
입술이 조금 떨린다. 준은 지금 내 가슴에 얼굴을 대고 있다. 내 심장박동 소리가 빨라진 걸 알고 있을까?
“음…. 뭔데?”
애써 태연을 가장하며 되묻는다.
“대답해 줄거야?”
“아….”
혹시, 혹시, 혹시….
이미 알고있는 게 아닐까? 준을 안은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꾹 들어간다. 준도 나를 꼭 끌어안는다. 하지만 물릴 수는 없다. 이미 알고 있는 거라면 받아들여야 한다. 사과하자. 뭘 묻든 대답해주자. 나는 주저하면서도 어떻게든 대답해낸다.
“으, 응…. 물어봐. 뭐든.”
준은 나를 바라보면서, 입을 오물거리다가 결국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누나는 누구야?”
이게 무슨 소리일까.
모든 걸 아는 것 같기도 하고, 전혀 아닌 것 같기도 한 말이다.
“준…. 그게…. 무슨 말이야?”
“형은 어디 있어?”
준은 아예 울먹거리고 있다.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 나는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데, 가장 먼저 느낀 건 당혹감이었다.
“형?”
이게 무슨 소리지?
“누나랑 나는 고아야?”
“어?”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걸까. 준은 결국 히끅거리며 울음을 터뜨린다.
“흐끅! 흑! 누, 누나…. 지, 집에서 가족 사진…. 허엉….. 봤는…. 는… 데….”
울먹거리는 통에 제대로 정리를 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나는 준의 등을 토닥이며 그 말을 들었다. 다 듣고 나자 나는 내 걱정이 기우였다는 것과, 준이 상당히 묘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준은 대전 집에서 오래된 가족 앨범을 찾아봤다. 거기에는 설훈과 엄마 아빠는 있는데, 나는 없고 웬 남자가 있었단다. 말할 필요도 없이 남자였을 시절의 나다. 준은 이상해서 앨범을 더 찾아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나는 없었다.
그리고 준과 나는 닮았다.
그래서 준은 막연히 우리 둘이 고아고, 자기는 입양되었으며 누나는 입양되었는데 이미 다 커서 나가 사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린아이 머리로 그 장대한 스토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이 나이 때에야 자기가 사실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 아닌가 하고 망상할 때니까…. 충분히 그럴 법했다.
“나, 흐, 느 으으은…. 고아야? 우리 진짜 엄마랑 아빠는 죽었어? 그 형은? 그 형은 죽었어?”
자신에게 죽은 형제가 있거나, 입양된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얼마나 밤잠을 설쳤을까. 가여운 내 새끼.
“아냐, 아냐 준. 오해야. 내가 다 말해줄게…. 응? 울지 말구, 응, 착하지?”
준, 너는 고아가 아니야. 고아는 나야. 내 친부모는 죽었지만, 네 엄마는 여기 있잖아. 오해지만, 그렇다 해서 진실도 아닌 상태다. 어찌되었던 준은 입양된 게 맞고, 친모는 누나라는 이름으로 여기 있다.
“네가 봤다는 그 형 있잖아…. 준.”
“으, 으응….”
준은 아직도 울먹거려서 나는 등을 몇 번 토닥여줬다.
“준, 누나 봐봐. 누나가 다 말해줄게. 옳지.”
준은 눈자위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나는 눈을 맞추며….
이래도 되는 걸까 싶지만, 거짓말을 또 하긴 싫어서 말해버린다. 말해줄 수 있는 것까지는 말하자. 다 말할 수는 없더라도, 말해줄 수 있는 것, 상처를 주지 않을 수 있는 것까지는 말해보자.
“네가 본 그 형이 나야.”
“응?”
“그게 나라구.”
잠시 심호흡을 하고, 다시 말한다.
“준, TS바이러스에 대해서는 들어봤어?”
상식이나 마찬가지인 만큼 준도 알고 있을 것이다. 준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는 눈을 크게 뜬다.
“누나는 있잖아…. 원래 남자였어.”
어쩐지,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마음 한켠이 아려온다. 치부가 아닌 거라 생각하면서도, 나는 내가 남자였다는 걸 준에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미는 것 같은 통증이 인다.
내가 남자였다는 걸 알면 충격받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이걸 안다 해서 미움받지는 않을거라 생각한다.
“그렇구나….”
준은 의심도 하지 않고 납득한 뒤 나를 끌어안는다. 그리고는 조용히 흐느낀다. 입을 벙긋거리며 울음을 삼키는 게 느껴진다.
슬퍼서가 아니라 안심해서 그러는 거겠지. 준의 머리를 조심스레 쓰다듬는다. 놀랄 줄 알았는데 아이여서 그런지 쉽게 받아들인다.
그런 거 아무래도 좋아. 준이 안심하고 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다. TS바이러스에 대해 준이 더 자세히 알고 있었다면, 가족 중에 나와 준만 서로 닮은 것을 의심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걸 준이 알리가 없다.
다행이다. 전부 아는 게 아니어서.
하지만 어쩐지 아쉬운 마음도 함께 든다. 나는 내심, 다 말해버릴 수 있는 순간을 고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무서우면서도 동시에 기대하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감정을 모두 갖고 있다.
준은 조금 울다가 곧 잠들었다. 나는 그런 준을 안고, 달빛이 고적하게 방을 비추는 방 안에서 가만히 준을 끌어안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숨죽여 운다.
미안해.
미안해.
이런 엄마라서 미안해.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사과를 몇 번이고 한다.
부모님은 준을 방학 내내 데리고 있으라고 했다. 아마, 부모님도 이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준이 나와 같이 사는 그런 걸. 하지만 준은 다음 날 일어나자마자 내게 말했다.
“나 집에 갈래.”
“응? 벌써? 며칠 더 있으면….”
“엄마 보고 싶어.”
준은 답지않게 내 말을 자르며 그렇게 말한다. 창밖을 문득 바라보는 준의 표정은 어쩐지 슬픈 것처럼 보인다. 맞다. 준은 집 밖에서 잔 적이 없다. 그러니 아무리 나와 있다 해도 엄마가 보고 싶은 건 당연하다. 진실은 진실이고, 준이 느끼는 진실은 따로다. 이런 준을 보고 서운해 할 자격 같은 건 없다.
자식이 부모가 보고싶다는데, 내가 말릴 재간은 없었다.
“응, 그럼 씻고 아침 먹고 가자.”
준은 내가 그리 말하자 환하게 웃는다. 조금 슬프네.
다음 주에 휴가라도 내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 일단 한 번 와서 잤으니까 나중에도 어제 같은 날이 또 있을거다. 아침을 차려주고, 이번에는 실수한 게 없나 간을 꼼곰히 봤다. 준은 밥을 먹고, 씻고 부리나케 옷을 입었다.
“너, 누나 서운하게 너무 좋아하는거 아냐?”
“헤헤.”
내가 그러건 말건 준은 배시시 웃는다.
차를 타고 대전으로 간다. 도중에 휴게소에 들르기도 하고, 나는 어쩐지 엑셀을 밟기가 꺼려진다. 준은 말없이 자거나,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다.
“엄마 많이 보고싶어?”
“응. 엄마 많이 보고싶어.”
준의 입에서 엄마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섬뜩하다. 죄의 한 구석을 자극당하듯 가슴께가 아려온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는걸까. 준과 하루를 지내보니 알겠다. 나는 준이 있으면 좋겠어. 정말 있으면 좋겠어. 정말 이기적이고 여전히 나쁘지만, 준의 입에서 엄마라는 말을 들었으면 해. 계속 고민한다. 어떻게 하지, 말하고 싶어, 말하고 싶어, 용서를 구하고, 정말 용서를 구하고…. 싶어.
아, 사고 나겠다.
일단 운전이나 잘 하자.
대전으로 돌아와 집에 도착하기 전에, 차를 세워놓고 걷는다.
손을 잡으려 했는데, 준은 손을 내밀지 않는다.
“준.”
“응?”
“있잖아….”
준은 나를 보지 않는다.
“혹시 화 난거야?”
아침부터 어쩐지 이상하다. 준은 나를 빤히 바라본다. 나는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마음이 아리는 느낌을 참고 말한다. 준은 고개를 젓는다.
“누나가 싫어?”
“안 싫어해.”
“누나가 어려워?”
“누나가 왜 어려워?”
아, 설마 어렵다는 말은 아이에게 조금 어려운가? 말이 이상하지만, 잘못 알아들었을지도 모른다.
“음…. 그럼, 그, 불편…해?”
준은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인다.
“응.”
갑자기 직설적으로 말해오는 통에 나는 혀가 굳어버린다.
“으, 응…. 그래. 누나가 자주 오는 거 싫어?”
“싫진 않아.”
하지만 좋지도 않다…. 준은 그렇게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 작품 후기 ============================
한 달 지나 쓰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당연하다는 듯 어제 썼던 것처럼 고통을 주고 있는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