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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설원입니다-163화 (163/224)

00163 IF ED NO.1 엄마인 누나, 누나인 엄마 =========================

“우와 엄청 높다!”

창문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준이 호들갑스럽게 말한다. 대전의 본가는 주택인 탓에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와본 기억이 없었을 것이다.

“창문 열어봐도 돼?”

“응, 그런데 위험하니까 조금 떨어져 있자.”

바로 다음 날 준을 데리고 태원으로 왔다.  누나 집에 놀러가자는 말에 준은 좋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차를 타고 오는 내내 준은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정신없이 쳐다봤다. 준은 창문 아래로 지나가는 차와 사람들을 보며 손가락질한다.

“누나! 차가 콩알만해!”

크기라도 가늠하려는지 준은 실눈을 뜨고 엄지와 검지를 아주 작게 좁힌 뒤 나를 바라본다.

“차가 이만해 누나.”

귀여워….

이렇게 귀여워도 돼?

“높은 데는 처음 와봐?”

“친구네 집 가보긴 했는데 걔네 집은 사층이라 별로 안높아.”

준은 학원도 안 다니는데다가 놀리는 아이들에게 험하게 대해서 그런지 친구가 적었다. 하긴, 지금에나 이 모양이지 어렸을 적에는 조금만 수틀려도 주먹이 먼저 나가는 다혈질이었다.

여러모로 날 많이 닮았어.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충동적으로 그런 생각이 든다. 나를 이렇게나 닮은 설준이다.

대체 어디의 어떤 지점에서 이선준을 닮았을까. 그리고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마자 나는 가슴에 납덩어리가 들어간 것처럼 우울해진다.

“누나, 왜 그래?”

“아, 응, 아니….”

“아파?”

“아냐 괜찮아. 배고파서 그래, 우리 뭐 먹을까? 먹고싶은 거 있어?”

“누나는? 누나가 배고프니까 누나 먹고 싶은 거 먹자!”

준이 환하게 웃으며 되묻는다. 만약 평상시였다면 준이 역시 착한 아이라면서 기뻐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제 부모님께 그런 말을 들은 이후라서 준의 대답을 받고 전혀 다른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먹고픈 걸 말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뭘 먹고 싶은지 물어본다. 나를 배려하는 이 태도는 나를 어려워해서 그런 것이었다.

준은 나를 어려워한다. 나를 보면 항상 밝은 모습을 보여준다. 우울한 모습은 잘 안 보이고, 항상 웃는다. 너무 사랑스러운데, 그게 사실 나를 어려워해서 그런 거라 생각하자 마음이 아프다.

“준 스파게티 좋아하지?”

“응!”

“엄…. 누, 누나가 해줄게!”

나도 모르게 ‘엄마가’라고 말할 뻔했다. 다행히 준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 스스로 엄마라고 하는 건 어쩐지 거북해서 못 말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나오려고 했다.

둘만 있어서 긴장이 풀린걸까?

“텔레비전 보고 있으면 누나가 바로 해줄게.”

“응.”

준은 소파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본다. 주방에 가 손을 씻고, 파스타 면을 꺼내 놓았다.

스파게티 소스가 있긴 한데….

어쩐지 진짜 토마토로 해주고 싶다. 못 하는 것도 아닌데,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기성품을 먹이고 싶진 않아. 나가서 사올까? 걸어가도 금방인데…. 그래도 아들인데, 자꾸 생각하다가 멍하니 있게 된다.

아무리 나 같은 애라도 엄마는 엄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자식이라고 좋은 걸 먹이고 싶어하는 내 마음이 신기하고,

또 낯설다.

준은 시끄럽게 떠들지도 않고 방을 뛰어다니지도 않는다.

엄마를 어려워하는 아들….

사실 나도 같다.

나도…. 문득 생각해보니 그래.

나도 준이 어려워.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서 무조건 상냥하게, 얘기를 잘 들어주려 하고 안아주고, 나를 미워하지 않도록, 나를 싫어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말하고 있어. 찾아갈 때마다 먹을 거든 선물이든 갖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하고, 사주려고 한다.

엄마와 아들이란 대체 뭘까, 나도 다른 엄마들처럼 아들이 부리는 투정에 짜증을 내고, 그러면서 또 화해하고….

그러고 싶다. 아니면 다른 남매들이 그런 것처럼이라도 좋아. 누나한테 떼를 쓰고 투정 부리는 동생도 없는 건 아니잖아. 누가 들으면 복에 겨운 소리라고 하겠지만…. 내게는 그런 풍경을 겪고 싶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서, 준이 나를 조금이라도 더 좋아해줬으면 해서 어떻게든 착한 누나를 흉내내고 있었다.

준이 나를 어려워하듯, 나도 준을 어려워하고 있었다. 문득 그 사실을 깨닫자 서러워진다.

아들에게 잘 보이려 하는 엄마.

누나에게 잘 보이려 하는 동생.

아무것도 잘못되지 않았지만, 무언가 비어버린 공간을 보는 것처럼 나는 문득 망연하다.

“누나 도와줄까?”

“아, 아니 괜찮아. 누나 잠깐 나갔다 올게. 기다려, 알았지?”

“응.”

준을 두고 오피스텔을 나가다가 문득 말한다.

“누가 문 두드려도 열어주면 안돼?“

“나 어린애 아니야. 모르는 사람 문 안 열어줘.”

준이 그렇게 말하고 나는 피식 웃으며 바깥으로 나간다. 인근 슈퍼에 가서 토마토를 사서 돌아오는 데에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자 소파에 앉아있던 준이 없었다.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준? 어디있어? 준!”

어디갔지? 어디 나갔나? 아닌데? 그럴 리가 없는….

“나 여깄어!”

목소리는 안방에서 들려온다. 열려있는 문으로 준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주 잠깐이다. 일 초도 안 되는 시간이었는데 나는 오만가지 생각을 했다. 사람이란 이렇게 짧은 순간동안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구나.

“없어진 줄 알고 놀랐어….”

“나 아무데도 안 가.”

그건 그냥 하는 말이다. 아이가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냥 밖에 안 나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내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어쩐지 가슴을 울리는 단어다. 아무데도 안 가.

마치 나를 안심시키려고 따뜻한 말을 한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어쩐지 이상한 부분에서 감동해 버려서, 나는 테이블에 봉투를 올려놓으며 말한다.

“정말 아무데도 안 가?”

그러면서, 괜히 그런 말을 한다.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닌 걸 알면서도, 준이 답해줬으면 해서 묻는다. 준은 정말…. 예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예쁘게 웃으며 말한다.

“응, 아무데도 안 가.”

“정말이지?”

“정말인데.”

“진짜로?”

“진짜야.”

…….

갑자기 숨이 턱 막힌다.

“누나 울어?”

“아, 아니…. 아니야.”

준은 마치 장난처럼 내가 듣고 싶은 말을 다 해준다. 그냥 장난치듯 한 말에 내가 눈물을 글썽이자 준의 안색이 나빠진다.

“미안해 누나….”

“아니야, 아무것도 잘못 안 했어. 사과 안 해도 돼.”

“그런데 왜 울어?”

“안 울었는데?”

“내가 뭘 잘못해서 우는 거 아니야?”

“아니야…. 준, 아침에 하품 하면 눈물 나오지?”

“응.”

나는 눈가를 훔치며 씨익 웃는다.

“그런거야.”

“그런거야?”

“그럼!”

우리는 선문답처럼 서로의 말을 따라하듯 대화한다.

준은 다시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나는 스파게티를 한다. 아들이랑 둘이 있다고 주책맞게 자꾸 감상에 빠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토마토 소스를 만들고, 파스타 면을 삶는 것으로 요리는 끝났다. 꽤 양껏 만들어서 조금 남을 정도로 했다. 준은 많이 먹진 않지만 그래도 부족한 것보다는 많은 게 좋으니까. 거실이 조용해서 바라보니, 준은 잠들어 있었다. 소파에 엎드려있는 준은 정말이지 귀엽게도 잔다. 나는 잠시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잠든 아이의 모습을 본다.

정말이지 이건….

뽀뽀해주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쪽

하고 뽀뽀를 해주자 준이 눈을 뜬다.

“우웅….”

“요리 다 됐어. 먹자.”

“응.”

준은 허겁지겁 먹지는 않았지만 먹으며 맛있다고 계속 말했다. 나는 준이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고, 입가에 묻히면 티슈로 닦아줬다.

“누나는 안 먹어?”

“나는 준이 먹는 걸 보는 게 더 좋아.”

“이상해.”

“누나 원래 이상하잖아.”

“응, 그건 나도 알아.”

“너 이녀석이?”

준이 웃음을 터뜨리고, 식기를 정리한 뒤 싱크대에 가져다놓는 모습을 보면서도 나는 조금 마음이 무겁다. 내가 어려워서….

아니, 이건 너무 신경증적이다. 집에서도 자기가 먹은 건 자기가 치우도록 가르치고 있다. 준은 그냥 배운 대로 한거다. 나는 이상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것까지 그렇게 생각해버려.

그리고 나도 스파게티를 한 입 먹는다. 그리고 내 눈앞에서 이번에는 내가 먹는 걸 바라보는 준과 눈이 마주친다. 그제야 나는 내가 얼마나 정신 빠진 녀석인지 새삼 깨닫는다.

소금간을 안 했다. 페이스트를 만들면서 완전히 까먹고 있었다.

못 먹을 맛은 아니었지만, 도저히 맛있다고 해줄 수 있는 그런 맛은 전혀 아니었다. 준은 맛없는 기색도 없이 웃으면서 한 그릇을 다 비웠다. 그런 거였니.

너는 맛없는 것도 맛없다 하지 못할 정도로 내가 어려운거니? 내가 한 입 먹고 바로 표정이 굳어버리는 그럼 음식을 네게 줬는데. 너는 웃으면서 다 먹어야 할 정도로 내가 어려운거야?

“흑….”

도저히 참지 못해서,

나는 눈물이 나버린다.

“준…. 미안해.”

“왜?”

“그, 그냥…. 그냥 내가 미안해.”

“맛있었어. 진짜야!”

“흐윽…. 흑….”

나는 여전히 바보 병신 머저리고,

아들의 배려와 상냥함에 감동하고 서러운 나머지 울어버리는 멍청한 엄마다.

============================ 작품 후기 ============================

갑자기 쓰다보니 만오천자 써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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