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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설원입니다-158화 (158/224)

00158 후기 =========================

안녕하세요

중딩때 지은 닉네임이 상당히 엿 같지만 귀찮아서 안 바꾸고 있는 (死神)pluto입니다.

완결도 났으니까 이제 정중하게 존댓말로 말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작년 8월부터 연재를 했고, 5월에 연재를 마무리했으니 1년이 조금 안 되어서 연재가 마무리 되었습니다. 중간에 대뜸 연중도 했고, 지금은 소설 팔아서 어째서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돈도 벌게 되었네요.

첫 완결작입니다. 글을 쓴 게 10년이 넘었는데, 첫 완결작이라니 저도 좀 어이가 없네요. 이런저런 사정과 멘탈 관리에 실패한 수많은 나날들이 기억납니다.

감개가 무량하고,

따라온 여러분께 또 감사합니다. 어떻게든 이번만큼은 완결을 내겠다고 이 악물고 썼습니다. 후련하고 또 허망합니다. 완결이라는 건 어떤 세계를 결국 닫아버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실 완결을 두려워하기도 했습니다.

애초에 말했듯, 이것은 결국 사람 사는 얘기입니다.

TS물이든, 순수문학이든 갑질물 회귀물 전생 레이드 포스트 아포칼립스 판타지 SF 뭐 다 할 거 없이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건 저만의 생각입니다.

소설이란 결국 길고 긴 설득의 과정입니다. 인물과 서사와 플롯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입니다. 이 6.5권의 분량 속에서 저는 계속 여러분을 설득한 셈이죠.

무엇을 설득하려고 했는지, 저도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충분히 설득되었다 생각하십니까?

납득하시는 분도, 아닌 분들도 있을겁니다. 그 감상은 결국 각자의 안에서 온전합니다.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는 이상 감상은 감상 그 자체로 온전하고 유의미합니다.

쓰고 업로드하는 순간 제 역할은 끝났습니다. 제 글이 여러분의 마음에서 어떤 파문을 일으켰을지 저는 모릅니다.

하지만, 어떠한 것이라도 그런 파문이 최소한 하나쯤 일었다면 저는 그 정도로 만족합니다. 저는 계몽사상가가 아니고, 여러분이 어떠한 방향성으로 인도되지 않아서 화가 나는 건 아닙니다.

글이란 결국 던져지는 것입니다. 그 던짐을 받을지, 살펴볼지, 받아들일지, 걷어찰지, 비난할지는 모두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 행동을 제가 서운해 하거나 비난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한 번 스쳤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가장 큰 의문은 역시나, ‘행복이란 무엇인가’였습니다. 사실, 행복이라는 건 상대적입니다.

설원은 소설 내내 불행하고, 고통받고, 괴로워했습니다. 필요 이상으로 과잉된 상황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괴했습니다.

1부의 설원도, 2부의 설원도 계속 불행했습니다.

하지만, 2부의 설원이 1부의 설원을 본다면 아마 그 때는 행복했다고 기억할 겁니다. 불행으로 기억되어도, 지금의 나 자신이 미래와 과거를 판단하는 기준점이 되는 것이니까요.

이건 단순히 제 생각입니다.

행복이란 시퀀스와 장면, 씬과 구도에서 찾아오지 않습니다. 말했듯 행복은 상대적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겠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상황’은 상대적입니다.

2부의 설원은 1부의 자신, 그 상황을 행복으로 기억하겠죠. 하지만 결국 그 행복을 판단하는 건 나 자신입니다. 결국 행복을 행복이라 판단하거나 추억하는 것은 나의 상태입니다.

결국, 행복한 상황이라는 건 없습니다.

그것을 행복으로 여기는 태도가 있겠죠.

설원은 근본적인 문제를 깨달았습니다. 의존적 태도로 인해 상황이 망가졌고, 일단 홀로 서야만 누군가와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태도가 바뀌었죠. 설원은 그래도 꽤 의연해졌습니다.

쉽지만, 너무 어렵습니다.

설원은 수많은 과정 끝에 결국 행복한 상황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 행복을 직시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독자적으로 살아가려 노력합니다. 그리고 엔딩에서는 또 한 걸음,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이 내 독자성을 해치는 게 아니라는 것까지 깨닫게 됩니다. 설원은 앞으로 행복할지 불행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 태도를 유지한다면 전처럼 크게 상처받는 일은 없겠죠.

이선준은 고전적 로맨스 캐릭터입니다. 과보호, 과애정, 과집착이 갖춰져 있는 인물이죠. 물론 그 기저에는 어느 정도의 남성적 폭력성 또한 내포하고 있었습니다. 연결된 상태에서의 애정을 원합니다. 그래서 설원이 사라지자 분노하고, 집착하고, 다시 용서를 빕니다. 애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인물로 점차 변해갑니다.

박헌영은 조금 다릅니다. 박헌영은 일견 나약하고, 변태 오타쿠입니다. 심지어 끔찍한 판갤러이기도 합니다. 로맨스와는 한 조각도 어울리지 않는 인물입니다.

하지만 박헌영은 이선준에게 없는 걸 가지고 있습니다.

박헌영은 설원이 추구하던 독자성을 이미 획득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박헌영은 설원을 애정하고 사랑하지만, 일단 존중하고 배려하며 이해하려고 합니다. 말하는 건 쉽지만 실천하기는 힘들죠. 박헌영은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은 채 자신의 가치관대로 살아갑니다. 설원이 없다 해서 이선준처럼 망가지지도 않았죠.

결국 박헌영은 존중, 이해, 배려를 할 수 있는 사람이었죠.

원래 그런 건 쉽지 않습니다. 박헌영 같은 사람은 아마 드물 겁니다.

존중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글중 한정운이 말했듯, 존중이 말살된 시대입니다.

잣대는 항상 타인에게 가해지고, 또 엄격해집니다. 잣대의 화살을 자신에게 돌리는 사람은 몇 없습니다. 설원과 박헌영은 그런 가치의 의미를 알고 당연하다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그들은 물론, 이선준과 한정운 또한 자신에게 더욱 엄정한 잣대를 들이미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저는 또 인간을 계속 모순적이고 이율배반적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잣대대로 살 수 없겠죠. 실수도 하고, 배신하고, 상처입힙니다. 그리고 괴로워합니다.

결국 모두 노력하는 사람들입니다. 잘못 살지 않기 위해서 말이죠.

저는 이성이 인간의 특징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원래 거짓말 잘 하고, 신념인 척 지껄이는 걸 좋아하며, 했던 말 뒤집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이성으로 포장한 감성 논리를 팩트로 치환하는 걸 좋아하는데다가. 이율배반적이고 모순적인데다가 자신에게 관대하고 타인에게 엄격합니다.

네, 제가 그렇습니다.

안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제가 그렇기 때문에 남들도 그럴 거라고 막연히 추측합니다.

결국 이건 논문이 아니니까요.

물론, 글중 계속 나온 것처럼 저는 그게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고쳐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하지만, 잘 안 고쳐집니다.

결국 그런 얘깁니다.

고쳐야 하는 고질적 문제를 안고 있는 인간들이, 스스로의 모순에 부딪혀가며 조금씩 깎여나가고, 그러면서 변해가는 얘깁니다.

하지만 결국, 완전히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없겠죠.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그겁니다.

우리는 모두 모순적입니다. 이율배반적이고, 이중잣대를 가지고 삽니다. 그게 나쁘다는 걸 인지하고, 인식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완전히 고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인정하고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내 의견이 무조건 옳다 주장하지 않고, 상대의 의견에 ‘그래, 그러냐.’ 라고 한 마디 하면 됩니다.

그렇게 믿습니다.

설원같은 아이도, 이렇게 불행하고 슬픈 아이도 아득바득 살아가려 합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살아가세요.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닙니다. 불행은 개별적입니다. 각자의 불행과 슬픔과 고생도 개개인 안에서 절박합니다.

설원이 이렇게 불행하니, 그런데도 살아가잖니? 너는 그 만큼도 아닌 주제에 무슨 불행 불행 노래를 부르냐? 열심히 살아라. 힘을 내라.

이런 거, 저는 싫어합니다.

힘 내지 마세요

슬프면 우세요

힘들면 쉬고

지치면 멈춰서도 됩니다

뭐라고 하는 사람이 이상한 겁니다.

이건 그저 작은 위로입니다.

이런 아이가 있습니다.

사람처럼 안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썼습니다. 설원은 히어로가 아닙니다. 맞으면 울고, 소문에 시달리는 그저 평범한 사람들 중 하나입니다.

이겨내지 못해 도망치고, 대면하지 못해 굴복하고, 의존하는 그저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그 중 하나입니다.

그저 하나의 사례를 소개하듯 여러분께 이 소설을 보여드렸습니다.

누차 말합니다.

이렇게 살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살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설원은 이렇게 살아냈습니다. 설원은 그 숱한 불행의 파도 속에서도 결국 삶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의 방법을 보여드렸습니다.

설원을 보면서 여러분의 삶의 태도나, 관계에 대한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보신 적은 있습니까? 한 번쯤은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여깁니다.

설원을 쓰면서 저도 많이 변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방식으로든 고민하거나 변하는 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합니다. 글쟁이한테 그것만큼 큰 영광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후기가 길었습니다.

에필로그와 IF엔딩은 제가 쓰고 싶은 때에 연재해서 올릴 예정입니다.

그 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여러분 말고 저요. 제가 수고가 많았네요.

다들 어디선가 행복하시길.

카페베네 창가 테이블에서 매연을 맡으며

(死神)Pluto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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