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50 영원한 여명 =========================
숨이 찬다. 몸이 떨린다. 춥다. 발밑에서 올라오는 바람이 환자복을 거칠게 들추고 사라진다. 무겁고 날카로운 밤, 병원 아래에는 창백한 가로등만 몇 개 켜져있다.
“흐흐….”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 걸까. 나는 왜 이렇게 괴롭힘을 당해야만 할까. 이 불행의 나날들을 지새면서, 앞으로도 뒤로도 불행밖에 쓸 수 없는 삶을 살기는 싫다.
두 걸음만,
두 걸음만 걸어가면 된다. 그리고 이제는 머뭇거릴 생각이 없다. 아무런 미련도 기회도 바람도 없다. 아찔한 바람이 불고, 한 발을 든다.
이제 내려갑니다.
내려가니까.
올라가겠지. 어딘가 먼 곳으로, 의식과 자각이 없는 세상에서 무한한 시간을 자각하지 못한 채 한 조각도 없이 흩어져 버린다. 미련이라는 것이 이제 남지 않은 세상에서.
나는 미련한 삶을 마감하기 위해 걸음을 내딛는다. 그리고, 아래쪽의 가로등 불빛 아래에 있는 뭔가를 본다. 어떤 작은 형체가 고개를 쳐들고 나를 보고 있다.
누군지는 모른다.
누군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내 아래에 있습니다.
내가 죽으면, 그는 내 저주를 가져갈겁니다. 또, 또 얼마나 길지 모를 삶을 살아내며. 나와 같거나 혹은 더한 불행을 살게 될겁니다.
만취한 내가 누군가의 자살에 의해 불행을 전달받았던 것처럼.
희뿌옇게 보이는 저 사람이 내 불행을 가져가겠지.
내 눈에 보이는 그 누가 아니더라도.
내 몸에 깃든 저주는 어딘가로 전해져. 또 다른 불행의 역사를 쓰겠지. 아, 죽어도 끝이 아니구나. 죽는다 해서 마무리 되는 게 아니구나.
나는 죽지만, 나는 죽음으로 또 다른 이의 불행을 빚는구나. 내 죽음은 또 다른 질척하고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겠지.
나는 나라서 불행했지만,
누군가는 누군가라서 불행할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이 무거운 짐은 축복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내게 이것이 축복이 아니었듯, 저 아래에서 멍하니 나를 바라보고 있는 저 사람도.
저 사람이기에 불행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겠지.
나는 사실 변하지 않았다. 내 근본적인 인간성은 죽을 때마저 버릴래야 버릴 수가 없다.
나는,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싫고,
배려하지 않는 것이 싫고,
의무와 윤리를 다하지 않는 것이 싫고,
누군가에게 의도치 않은 피해를 입히는 것이 싫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
누구세요?
사실 나를 보고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행복할 수 없다는 건 안다.
하지만 내 죽음이 누군가에게 또 이 지긋지긋한 불행의 역사를 부과하게 된다면, 나는 역시나.
나는 역시.
그런 짓은 하고 싶지 않다. 내가 너무 불행하다는 걸 알기에 다른 사람 또한 그렇게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가 싫어하는 건 남에게도 강요하기 싫다. 아,
나는.
너무 착해.
너무 등신같고.
너무 병신같아.
나는 나라서 불행했다. 나이기 때문에 불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죽지 못하는 것도, 역시나 나 때문이다. 나는 내 앞에서 자살했다는 그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기억이 없다. 그저 재수가 없기 때문에 이 바이러스에 휘말렸을 뿐이다. 그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의 불행이 궁금할 뿐이다.
그 사람은 왜 죽어야만 했을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불행은 짐작할 수 없다. 다만, 내가 원망하지 않는다 해서 내 눈앞에 있는 그 사람이 불행해야 하는 건 아니다.
모자와 마스크를 쓴 그 사람은 손을 든다. 말없이 나를 보며, 양팔을 교차해 X자를 만든다. 소리치면 닿을 거리이기는 하지만, 그 사람은 말없이 교차할 뿐이다.
기호
단순한 기호로
나를 말리고,
나를 위로한다.
죽지 말라는 단순한 메시지일 뿐이다. 그 남자가 누구인지 나는 모르고, 내가 누구인지 저 남자는 모를 것이다.
하지만 그래. 대개 그래.
사람을 죽이는 건 이유가 필요하지만,
사람을 살리는 건 이유가 필요하지 않아.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죽지 말아야 할 이유를 찾는 건 쉬워.
내가 죽으면 다른 누군가가 불행해져.
아버지, 엄마, 설훈. 이유를 찾을 것도 없다. 슬퍼하겠지.
군대에서 힘들어하고 있을 한정운, 사회성 떨어지는 그 녀석에게 대화 상대라면 역시 나밖에 없을텐데.
이선준, 아직 아무것도 끝내지 못했어. 만약 감금이라도 당한 거라면, 괴로워하고 있겠지. 우리는 이야기를 해야만 해.
박헌영,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소설을 완성해서 보내줘야 해. 그리고, 너와 한 마지막 약속이 그거였지. 죽지 않기로 한 거. 그래.
나를 이해하고, 나를 걱정하고, 나를 온전히 사랑해준 박헌영.
너와 한 유일한 약속이
죽지 않기로 한 거였지.
헌영아….
살아야 할 이유는 찾기 힘들지만,
내가 없어짐으로 인해 끝맺지 못하게 되는 이야기들이 있다. 그 남자는 그저 이 추운 칼바람 속에서, 말없이 양팔을 교차하고 있을 뿐이다.
당신이 누군지는 몰라요.
하지만, 고마워요.
살아갈 힘은 생기지 않았어요.
하지만, 스스로 포기하지 않을 정도의 의지는 생겼어.
나는 난간에서 내려온다. 바람이 매섭다. 무력감 속의 삶이라도, 아무런 목표가 없고, 바라는 것이 없더라도.
일단 내게 주어져 있는 일들을 마무리하자. 삶에 대한 의지가 없더라도, 죽음에 대한 열망이 없다면 살아갈 수 있다. 내 죽음이 누군가의 불행이고, 내 죽음이 나를 말리는 그 남자의 불행이 된다면….
아무래도 지금은 죽을 수 없다.
입원은 그리 오래 하지 않았다. 며칠 뒤에 나는 퇴원 수속을 밟았다. 다행히 휴대폰 케이스에 카드가 있어서 병원비를 결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지출이 크네. 하지만, 그런 건 이제 별로 현실적인 감각으로 닿아오지 않는다.
몸 상태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슬프다. 발작적으로 울음을 터뜨리고, 그치는 순간동안 나는 몸보다 마음이 망가지는 것 같았다. 입고 나갈 옷이 없어서 간호사의 옷을 빌리고, 세탁한 다음 택배로 부쳐주기로 했다. 고마운 사람이다.
택시를 타고, 나는 집으로 간다.
핸드폰을 꺼낸다. 구조될 때 누군가 고마운 사람이 챙겨줬는지 병실에는 휴대폰이 놓여 있었다. 내가 쓰러진 바로 그 날에 메시지가 왔다.
[미안하다….]
[정말, 너무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어, 모든 게 내 잘못이야.]
[용서해달라고 말하지 않을 테니까…. 제발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변명할 기회를 줘.]
이선준이 보낸 메시지다. 전화도 몇 번이나 왔다. 나는 단 한 마디 답장을 보냈을 뿐이다. 당장 그런 일들을 해결하기에 나는 너무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상태였다.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다.
[나중에 연락할테니까 기다려. 찾아오지도 말고.] – 나
이선준은 그러겠다고 대답한 뒤, 어떤 전화도 문자도 하지 않았다. 일단 나는 마음을 추스르기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은 그 누구도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다. 오피스텔에 도착해서, 나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집에 들어가기가 싫다.
우울한 생각만 했던 공간이기에, 거기서 마주하게 될 건 우울밖에 없다. 번호를 누르자. 내가 나갔을 때와 똑 같은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는 집 안 풍경이 보인다.
집에 오기 싫었던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있다면….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아기 신발 때문이다.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같은 부피로 자리하고 있다.
내가 할애했던 공간이 이제는 무의미해진 채 그대로 있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서, 조심스럽게 그 포장을 벗겨낸다. 작고 작은 아기 신발. 내 아기는 이것보다 더 작았을까? 내 안에서 이미 죽어버린 채, 나를 견디지 못했던 아이.
나쁜 엄마를 만난 탓에 결국 첫 숨을 터뜨리지도 못했던 아이.
그 아이가 신었어야 할 신발이 눈앞에 있다.
“으…. 으흐흑!”
나는 이걸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다시 살고자 하면, 이 결핍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병원이라는 붕 뜬 공간에서 느낄 수 없었던 실감이 이제야 뒤늦게 찾아온다.
네가 찾아온 건 전혀 실감나지 않았어. 나는 그저 엄마라는 것을 흉내내며 강박적으로 생각하고 고민했어. 나는 네가 내 안에서 자라가는 과정 같은 건 몰라. 그저 있다고 하니까 있다고 생각했을 뿐이야.
하지만, 하지만 없어지니까 느껴져.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아프게 다가와. 나는 그 ‘없음’을 지금 감각하고 있어.
아이의 성장은 자각하지 못했지만, 없다는 것은 뼈아프게 느껴졌다. 그것은 정말 감각적으로 느껴졌다.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없었던 임신은, 유산이 되자 실감이 났다.
상실한 다음에서야 나는 뼈저린 실존을 느낀다. 나는 신발을 끌어안고 도무지 어찌해야 할 줄을 몰라서 울음만 울어낸다.
“흐윽! 흑! 으으! 으, 미안, 미안해…. 미안해…. 잘못했어…. 흐흐. 으으윽!”
돌아와 주지 않을래?
나쁜 생각 하지 않을 테니까. 제발. 나는 이미 다 결심해버렸잖아. 너를 키우고, 어느 학교에 가고, 네가 사춘기가 오면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도 전부 생각해 놨단 말이야.
다른 아이가 아니라, 너를 위해서였어. 내가 언젠가 낳을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 때 내 안에 있던 너를 위한 말들이었어.
제발,
이렇게 바라니까 돌아와줘.
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항상, 네 존재가 부담스럽고 괴로워서 울다 지쳐 잠드는 그 나날에도.
나는 네게 무슨 옷을 입히고, 무슨 말을 가르칠지 생각했어.
기저귀 가는 법도, 젖병을 물리는 법도, 분유를 타는 법도 전부 알고 있어. 우는 아이가 왜 우는지,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도 전부 알아봤어.
내 삶의 어느 순간에 다가올 어떤 다른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잠깐 내 안에 살았던 너를 위해서였단 말이야. 내가 미안해.
전부 잘못했어.
“으, 으윽! 자, 잘못했으니까…. 흐흐, 흐흑! 으으으으! 으으! 아윽! 아….”
좋은 엄마가 될 자신은 없었지만,
착한 엄마가 될 자신은 있었어.
노력하는 엄마가 될 자신은 있었어.
너를 이해하고, 안아주고, 사랑해주는 엄마가 될 자신은 있었어.
내가 미안해. 내가 너를 죽였어. 내 괴로움이 너의 괴로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나는 도저히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었어.
왜 떠나야만 했던거야? 제발, 제발, 그럴 리가 없다는 건 알지만. 그럴 수가 없다는 건 알지만.
내 안에 비어버린 공허감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지만.
다시 내게 와줘. 이렇게 빌 테니까. 이렇게 원하니까. 이제는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날들만 있도록 노력할 테니까.
돌아와줘.
“흐흑! 으으윽! 으으! 으으으으으! 아, 아아, 아아아!”
너를 위해 준비한 시간들이었는데.
내 삶의 남은 모든 부분은 오롯이 너를 위한 시간들이었는데. 내 삶과 너의 삶이 얽혀서 떼어낼 수 없게 되는 그 아름답고 멋진 시간을 내심 기대해왔어.
내가 생각한 불행만큼이나
내가 생각한 행복의 시간들도 많았는데.
너 때문에 불행하다 해도,
너 때문에 행복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울며 울며 울다가도 나는 언젠가 웃게 될 날들을 그렸는데.
나는 모순적인 사람이고,
너에게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볼 수 있었어. 원래 삶이 그렇듯, 불행의 밀도만큼은 아니더라도 조각난 행복 정도는 주울 수 있을거라 여겼으니까.
원치 않게 가진 생명이지만, 네 탄생마저 원하지 않은 건 아니야. 내가 너무 과한 사랑을 줘서 네가 엄마 품에서 떠나지 않으려 하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날들을 걱정했어. 너무 이르지 않니. 너무 빠르지 않니.
내가 준비했던 다른 시간을 단 한 순간도 함께 겪지 못한 채 떠나버리는 건 너무 이르지 않니. 왜 내게 영원한 결핍을 남겨두고 가버린거야.
아이가 필요한 게 아니야.
어떤 아이를 낳아도 너와는 다르겠지. 나는 영원히 너와 만나지 못하는 나쁜 엄마야. 영원히. 세상이 뒤집어지고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너를 절대로 만날 수 없게 되어버렸어.
“으으으윽! 흐흑! 흐흐흑! 아, 아…. 아아아! 미안해에! 어, 엄마…. 엄마가 잘못했어! 흐흑!”
엄마라는 말을 처음으로 입 밖으로 내본다.
“엄마가 미안해…. 미안해에…. 제발, 제바알…. 으윽!”
엄마가 될지도 모른다는 건
어떤 저주인 동시에, 어느 정도는 축복처럼 들렸다. 나라는 사람을 의미화시키는 아주 아름다운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내게 없었던 친모라는 존재를, 나는 누군가의 친모가 되어서 내가 받지 못했던 것을 온전히 주고 싶었다. 나는 내가 했던 모든 절망과 불행의 시간들을 저주한다.
마치 공식처럼, 나는 항상 어제보다 불행하다. 네게 감사했어야 하는데, 고마워했어야 하는데, 매일 배를 쓰다듬으면서 너를 위해 좋은 시간을 보냈어야 하는데.
모든 후회는 늦는다.
아무리 울어도
아무리 울부짖어도,
아무리 몸을 비틀고 구르고 소리를 질러도,
비어버린 것은 비어버린 채로,
상실한 것은 상실한 채로,
내가 아이를 위해 할애하기로 마음먹었던 인생의 모든 공간들은 다시 여백이 되어버렸고,
나는 영원히 새것으로 남게 된 아이 신발을 안고 울부짖는다.
“아아아아아!”
============================ 작품 후기 ============================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