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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설원입니다-149화 (149/224)

00149 악마의 축제 =========================

설원이 계단을 오르는구나.

오, 그래. 우리의, 우리의 설원이 탑을 오르듯 힘겨운 걸음걸음을 옮기는구나. 설원이 끝도 모르고 올라가는구나.

내려가기 위해 올라가듯

떨어지기 위해 오르는구나.

조각조각이 나서, 이 모진 세상을 이제야 등지기 위해 오르는구나. 젠더를 도둑질하고, 삶을 기만하던 우리의 모순 덩어리가 드디어 지루하고 질척한 삶의 고독에서 드디어 벗어나려 하는구나.

아 여기, 명민하게 살지 못하며 친우를 기만하던 배반자가 드디어 운명의 죽창에 꿰뚫렸구나.

그래, 패배한 자의 방식으로 살던 얼간이가 패배주의의 방식으로 삶의 종말을 맞이하는구나. 조금 더 꿋꿋하게 걸으렴.

왜 그랬니?

왜 그래야만 했니?

왜 그래야만, 그랬어야만, 그렇게 얼간이처럼등신병신호구또라이정신병자처럼살았니?

아무도 그렇게 살라 말하지 않았는데 왜 너는 그렇게 살았니?

그래도 싸다.

당해도 싸다.

그 따위로 살았으니 그렇게 되는 거 아니겠니?

왜, 왜, 왜, 왜왜왜왜왜?

너는 네가 당할 일을 오롯이 네가 행함으로써 받는것이란다.

왜 똑똑하게 살지 못하고,

왜 능률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왜 관계라는 허망한 것에 기대며,

왜 너의 무능과무지와어리석음을믿고사는것이냐! 불행해 마땅하구나!

네 탓이다.

착하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니?

착함은 열등하고

상냥함은 나약하다.

현실적으로, 네 잘못이구나.

무척이나 현실적으로, 역시나 네 잘못이구나.

너는 주체적이지 않고,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데다가 비현실적인 이이이이상하고아름다운아이구나.

주체적으로, 남한테 기대지 말아야지!

상식적으로, 남자를 만날 때는 몸가짐을 조심해야지!

이성적으로, 그런 개소리에는 어울리지 말아야지!

합리적으로, 착한 남자를 만나야지!

현실적으로, 너는 아이를 지우고 이선준을 경찰에 신고하고 박헌영을 등쳐먹고 모두의 영혼까지 착취하며 강자가 되었야지!

네 잘못이지 않더냐!

누굴 탓하니? 당해 싼 일을 당한 자가 어디 권리를 논하는 게냐! 무우우우엄한지고! 끼히히히! 하하!

설원이 계단을 다 올랐구나. 그 녹슨 문을 열고, 이제 황량한 옥상에서 네 가련한 삶을 마감하거라.

내 허락하마.

아니, 여기 옥상은 왜 열려있는거야?

어째서라고 생각하니?

에헤헤헤!

-벌컥!

바람이 차구나, 사는 길도 매서웠는데, 너는 죽으러 가는 길마저 칼바람이 마중하는구나. 끝까지 불행한 우리의 설원.

왜 아무런 표정도 짓지 않는거니?

체념.

삶에 더 이상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표정이구나.

그렇단다.

너는 기대하고 살았단다. 사랑, 애정, 우정, 모정, 인내, 이해를 기대하며 살았단다.

기대는 실망을 낳고, 실망은 분노를, 분노는 폭력을 폭력은 복수를! 그렇게 낳고 낳고 낳고 낳고를 반복하다가 결국은 체념으로 돌아오는 것이란다. 그래, 종착지구나, 모순의 종착지에서 파멸을 택한 네 방식대로. 그리고 돌고 돌고 돌아서 결국에는 종점인 체념의 표류지에서 이제 갈 곳 없는 죽음의 외길로 영원히 떠내려가야겠구나.

잘못 살았던 우리의 설원.

선행은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는단다.

오로지 악행만이 네 살을 찌우고, 영혼을 살찌우며 삶을 윤택하게 하고 관계를 키우며 네 아가리에 행복이라는 기만을 처넣어준단다!

강간당할 바에는 강간해라!

죽임당할 바에는 죽여라!

도둑질당할 바에는 훔쳐라!

맞을 바에는 때려라!

죄책감은 떠넘기고

죄의식은 무시하고,

책임지지 말고

잘못을 인정하지 말고,

배반자에게 복수의 칼날을 꽂아라!

이 위대하고도 지고지순한 삶의 대원칙을 배반하며 살아온 대가가 이거란다.

우리 사랑스러운 설원. 너는 이 해묵은 금언을 무시하고 살았단다.

그러니,

그러니그러니,

너는 당해도 싼 일을 당한거란다.

오, 모두 닥쳐요.

조용히 하란 말이야!

저 가엾은 어린양이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습니다!

저렇게나 가여운 설원이 겨울의 칼바람을 뚫고 난간을 향해 걸어갑니다. 이 허름한 국립병원은 옥상의 자물쇠가 망가졌고,

자살자를 막기 위한 펜스도 없으며,

아래는 차가운 시멘트입니다.

설원은 이제 산산조각납니다.

설원은

그 고운 몸뚱아리가 조각이 나버릴 겁니다. 아름다운 설원은 아름답지 못한 꼴로 죽어버립니다. 아이는 죽었고, 무채색이 된 마음에 이제 어떤 결심과 의지가 깃들 수 있겠습니까.

죽음을 향해 가면서도 설원은 환자복 자락을 여미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우습습니까! 목숨을 포기한 마당에 설원은 추위에서 자신을 보호합니다! 오, 모순, 모순의 설원아.

이 얼마나 인간적입니까!

아아, 우리 모두 기도합시다.

저 가엾은 희생양을 위하여

아름다운 피안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으라 기도합시다.

우리 설원이 내세에는 행복하길 빕시다!

아아아아아아아메에에에엔

AMEN

아니 이 친구가! 아멘이라니!

인샬라!

나무아미타불!

에라이 이것 참…. 뭐 좋다.

묻겠습니다.

어째서 인간을 낳으셨습니까.

어째서 불행을 낳으십니까.

누군가는 한아름으로도 못 잴 행복을 쥐고 태어나는데,

어찌하야 이 아이는 쥐고 태어나지 못한 것이 이리도 많은데,

이렇게나 불행해야 합니까.

그러니,

편히 이 구차한 세상과 작별하시길. 모두 다 신께서 계획한 일이십니다! 그러니까 외칩시다!

알라후 아크바르!

삿된 거짓 선지자들이 세상을 호도하는구나! 조용하시오!

모두, 다툼을 멈추고 이 위대한 영화를 보시오!

스케일은 크지만, 결국 졸렬하게 맺음하는 이 광경을 보시오! 저 아이가 난간에 올라서지 않습니까! 자기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저 가녀린 아이가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지 않소!

아니!

이게 무슨 영화요!

이건 소설연극희곡뮤지컬오페라판소리만화소설웹툰단막극드라마노래가 아니고!

그냥,

사람 사는 얘기요.

그리고 무엇보다!

죽음으로 아무것도 구할 수 없는 자가 죽음으로 모든 것을 회피하려 하지 않습니까아!

저런 비열하고 못되처먹은 이기적인 자가 세상에 있다니! 퉷! 뭘 하든 살아서 끝장을 봐야 할 것 아닌가!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 단 말이냐!

설원에게 죽음 말고 대체 어떤 다른 길이 있다는 말이냐!

음,

글쎄요.

저도 모르겠네요.

설원아

너무 오래 살았구나.

오래 살아서, 괴로움만 남게 되었구나.

그래도, 살아보지 않으련?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살아서….

우리를 조금만 더 즐겁게 해주려무나!

오, 오 뛴다! 뛴다!

뭐라고? 그래! 풍악을 울려라!

땡그랑땅땅 아이고야 설원이 죽는구나 죽고 죽고 일백번 고쳐 죽어도 불행한 우리 설원이가 죽는구나 삼도천 다리 건너 불행불행 노래를 부르다가 그렇게 가는구나아(얼쑤!) 개똥밭에 구르느니 죽는 것이 낫다더니 이이제야 가는구우나 뺨 맞고 만짐 당하고 추행 당하고 욕 먹고 왕따 당하고 강간 당하고 홀로홀로 살다가 임신하고 통수맞고 절교하고 자식새끼 호로새끼 부모새끼 시발새끼 욕사발만 퍼먹다가 인생씹창 난리굿판 살다 살다 이런 개판 안 볼 꼴 다 보고 이제서야 느지막이 슬금슬금 뒤뚱뒤뚱 가는구나야(지화자!) 이이렇게 가는구우나 부모형제 친구애인 배신하고 혼자 그리 가는구우나야(쿵떡!)

헤헤, 거짓말인데.

뭐어라고? 이런 쌍놈의 새끼가! 풍악을 멈춰라!

설원이 우리를 본다! 우리를 보고 침을 뱉으려 한다! 설원이 인상을 쓰고 욕을 하려고 한다!

“씨발….”

설원이 또 욕을 한다! 에에이 저 인성이 글러 처먹은 년 같으니라고! 내가 너 알아봤어 이년아!

“이게 재미있어?“

어?

“나를 그만 괴롭혀….”

아니,

그건 아닌데…. 아니야. 우리는 괴롭히려던 게 아니야.

우리는 그저

“이제 전부 그만두고 싶어….”

너를 사랑할 뿐인데….

음, 그냥 하던대로 구경이나 합시다.

좋소! 불똥 튀기 전에 물러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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