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44 밤은 지나갑니까? =========================
산부인과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그러는 와중에 12월이 되었다. 임신 팔주째. 아직은 초기라서 조심해야 한다지만, 조심하고 말고 할 게 없다.
애초에 아무것도 안 하는데. 조심할 게 뭐가 있어? 끼니 안 거르면 그만이다. 다만 요즘 들어 몸이 쉽게 붓는다.
엄마가 하도 집에 좀 오라고 채근한 통에, 지금은 대전에 와 있다. 내가 몸이 아프고 일이 많다는 핑계를 댔는데, 곧바로 대답이 쏟아졌다.
‘너는 그 때 쌩하니 가버리고 어째 연락 한 통이 없냐? 어? 얼마나 걱정하는지 알기나 해! 빨랑 내려와!’
저번에 갔을 때 잠도 안 자고 부랴부랴 가버렸으니 부모님도 서운했을 것이다. 엄마가 혹시 눈치챌까 불안했지만 솔직히 내가 티를 안 내면 알 수가 없다.
먹는 것도 조심해서, 향이 강한 건 안 먹었다.
“너는 뭘 그렇게 깨작깨작 먹냐?”
“아, 속 안 좋아….”
전전긍긍하면서 밥을 먹는다. 설훈은 군대에 있는 탓에 집에는 없다. 적당히 먹고, 거실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의외로…. 괜찮은 척 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너 일 하는 거 힘들지.”
엄마가 물어오지만 나는 고개를 젓는다.
“집에만 있는데 힘들 게 뭐가 있어.”
“연애도 좀 하고 그래라. 시간이 처 남아돈다고 집에만 있어서 좋을 거 없어.”
“에엑.”
엄마는 지나가듯 말했지만, 그 말이 묘하게 비수가 되어서 가슴에 꽂힌다. 엄마, 나 연애 실패했어. 아주 처참하게….
말을 꺼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심드렁하게 말한다.
“알아서 잘 하겠지.”
알아서 잘 못 했어. 태연한 척을 한 통에 엄마와 아버지는 눈치채지 못했다. 나는 바닥에 앉아있는 엄마의 어깨에 기댄다. 나는 이제 딸인건가. 엄마는 내가 새삼 그러자 웃는다.
“안 하던 짓도 하네 이제, 딸래미가 다 됐어.”
“엄마는 내가 남자랑 연애했으면 좋겠어서 말한거야?”
그 말에 엄마는 툭 내뱉듯 말한다.
“여자랑 하든 남자랑 하든 내가 무슨 상관이야?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거지.”
“내가 만약에 여자랑 연애한다고 하면 어떡할거야?”
그 말에 엄마는 미간을 살짝 좁힌 뒤에, 투덜거리듯 중얼거린다.
“너 만큼 속 편한 애가 어디 있겠어? 원래 남자였으니까 여자를 만나도 좋고, 나 같았으면 눈 먼 사내새끼들 엮어가지고 꽁무니에 열댓명은 달고 다녔겠다. 그 뭐야…. 그, 그 뭔데, 양식장 한다고 하잖어 요즘.”
“어장관리 말하는거야?”
“그래그래 그거, 너 그거나 좀 해라. 엄마는 니 아빠 너무 일찍 만나서 남자도 통 못 만나봤다.”
“이사람이 그걸 말이라고….”
“남자는 자고로 많이 만나봐야 쭉정이 거르는 안목도 생기는거야 인석아. 엄마를 봐라. 어휴….”
아버지는 기가 차는지 헛웃음을 뱉지만 화가 난 것 같지는 않다. 나는 티격태격하는 그 모습이 어쩐지 재미있어서 웃는다. 솔직히 어장관리를 하면 내가 아무 짓도 안 해도 오십 명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엇보다도, 내가 누굴 만나건 신경 안 쓴다는 엄마의 말이 고맙다. 더 이상 여자는 좋아하지 않지만, 남자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애초에 나는 대체 어떻게 변해버린 걸까.
엄마와 아버지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이선준이 도망치지 않았다면, 우리도 함께 늙어서 언젠가 이런 모습이 되지 않았을까? 아이도 평범하게 태어나서, 양친의 사랑을 받고 자랐을지도 모른다. 평범하게….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뿐인데. 단지 평범하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서, 많은 것들을 양보하고 참고 용서했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너 우니?”
“어, 어?”
“여보, 얘 울어.”
“아, 아냐….”
“왜 그러냐?”
“아, 아니 그냥…. 고마워서.”
나는 대충 다른 소리를 한다.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해버려서 울컥 눈물이 솟았다. 혹시나 이상한 생각을 할까봐, 나는 눈물을 훔치며 말한다.
“그, 그냥…. 엄마랑 아부지한테 고마워서…. 키워줘서 고맙다고.”
“얘가 약을 먹었나. 안 하던 소리를 하네.”
“흐음….”
엄마는 웃고 넘어가지만, 아버지는 갑자기 표정을 굳히고 나를 쳐다본다.
“설원.”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 아버지는 항상 내 이름을 부른다. 설원, 하고 딱딱하게 부른다. 심장이 미친 것처럼 뛴다. 뭔가 알아챈건가? 내가 갑자기 울어버려서 뭔가 알아버린 건가?
안 돼, 말할 수 없어. 나는 입술을 꾹 깨문 채 고개를 끄덕인다.
“어, 응….”
“후우….”
“여보.”
엄마가 굳은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본다. 뭔가, 그 표정의 의미는 미묘하다.
어쩐지 말리는 것 같은 표정이다. 엄마랑 아빠는 설마 다 알고 있었던 건가? 잘 모르겠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다.
“친부모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냐.”
그 말에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그, 그게…. 무슨 말이야?”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나왔다. 엄마는 올 게 왔다는 표정이고, 아버지는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가 무겁게 입을 연다.
“연락이 왔다.”
아버지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화도 난 것 같고, 안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측은한 것 같기도 한 기묘한 표정을 하고 있다.
이 말을 내게 꺼내기까지 두 분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대화를 나눴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나는 그런 엄마와 아버지를 보며 딱 잘라 말한다.
“싫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아버지는 예상한 대답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만날 이유가 없다.
울컥하긴 했다. 울컥하고 뭔가 안에서부터 끓어올랐다.
분노와 역겨움이다.
혐오스럽다.
무슨 사정이 있었다 해도, 나를 버렸으면 거기서 미련을 끊어야 하는 거 아냐? 나는 이런 지점만큼은 못돼 처먹은게 아니라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 와서 무슨 용서와 사죄를 구한다고 나를 찾으려고 하는거지?
“어떻게 물어 물어 찾았나봐. 에휴….”
엄마는 동조도, 비난도 하지 않은 채 한숨을 쉴 뿐이다.
“그래도…. 한 번 찾아가 봐라.”
아버지가 내게 건네준 것은 명함이었다. 기껏 부모님도 결국 생각을 해서 말을 한거고, 이걸 준거다. 나는 그걸 받고 멍하니 쳐다본다. 내 부모가 뭘 하는 사람인지는 모르지만 이걸로 확실해졌다. 그 사람들이 뭘 하는 사람이었든, 어떻게 살았든, 왜 나를 버렸던지간에….
이제 세상에 없다.
[예지 추모공원]
“어, 어….”
분노, 증오, 혐오감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나는 얼이 빠져서 아버지를 쳐다본다.
“이, 이게…. 뭐야?”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도 무슨 일인지 당연히 알고 있다. 내 친부모는 죽었다.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인지도 모르지만 그것만큼은 확실하다.
“누가…. 준거야?”
“그…. 얼마 전에 누가 찾아왔다.”
“그 원이 너…. 친형제.”
그런가.
“그, 어머니 쪽은 오래 전에….. 안 좋게 된 모양이고, 이번에 돌아가신 건 아버지인 모양이더라. 혹시 네 형제들한테 연락하고 싶으면 그 뒤에 연락처 있으니까 전화 해보고.”
“그… 돌아가시기 전에 찾으려고 했는데…. 그게 너무 늦은 모양이더라.”
엄마는 휴지로 눈물을 찍어낸다. 아버지도 눈시울이 붉게 충혈되어 있다. 여기서 현실감이 가장 떨어지는 것은 나 하나뿐이다. 그저, 그저 멍하게 있을 뿐이다. 슬프거나 그런 감정이 아니다. 내 부모라 해도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일 뿐이다.
그냥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그저 얼이 빠진 채 멍하니 있을 뿐이다.
천천히 정리를 해보자.
내 친모는 이미 오래 전에 세상을 떴다. 내 친부는 죽음을 앞두고, 나를 다시 찾고 싶어했다. 하지만 너무 늦어버려서, 이미 세상을 떠났다. 나는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다.
“하하…. 뭐야 이게….”
어렴풋이 죽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사람이란 언제든 죽을 수 있으니까 당연한 일이다. 슬프지도 않고 화가 나지도 않은 채, 나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있다. 엄마가 내 머리를 끌어안는다.
나는 울지도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있을 뿐이다.
엄마와 아버지는 더 이상 내게 가타부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한 번 가보는 것도 좋겠다고 말했을 뿐이다.
자식을 버린 부모라 해도, 결국 죽음은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연민을 불러일으키게 만든다. 살아서는 더 이상 볼 수 없으니, 그리고 생전의 부탁이 유언이 되어버린 만큼 한 번 찾아가 보라는 소리다. 부모님의 말은 이해가 간다.
밤이 되었고, 나는 침대에 누워서 잠들지 못한 채 멍하니 있는다. 살아있다고 생각했을 때에는 명백하게 일어났던 적개심이 지금은 한 줌도 생기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건, 그들의 삶은 죄책감이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다. 죽기 직전에 용서를 구하고, 편하게 눈을 감고 싶은 하찮은 감정이었을 수 있다. 아마도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런 감정에는 전혀 응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하지만 내 친부모의 삶은 이제 끝났다. 그들은 용서를 구하고 싶어도 끝내 그런 상황을 맞이하지 못했다. 나는 그게 분하다.
내가 화를 내건, 용서를 하건, 매도를 하건 그들은 내 목소리를 이제 들을 수 없다. 없어졌고 사라져 버렸다.
예전에는 그런 날들을 상상해왔다. 나를 버린 부모를 만나면 제일 먼저 무슨 말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따금 생각했다.
버릴거면 왜 낳았지? 책임도 못 질 거면서 왜 낳았냐고 소리치고, 얼굴에 침을 뱉어버리고 싶다고 계속 생각해왔다. 대학에 가면서는 그저 점차 잊어버렸다. 기억 속에 묻어버렸다. 막연했을 뿐이다. 나는 이제 복수도 용서도 외면도 기만도 더 이상 할 수 없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모든 것을 그저 허망하게 없애버린다. 텅 비어버린 장롱 속을 보는 것처럼,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한 채 그저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내 서러움과 증오와 분노와 슬픔은 이제 어떤 방식으로든 해결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살아있다면 찾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나를 찾는 것을 비웃어주며, 거절하는 것으로 나만의 작은 복수를 했을 것이다. 이제 그런 건 의미가 아예 없어져 버렸다.
내 용서를 받지 못한 채 죄인으로 죽었으니, 그들의 삶은 응당한 죗값을 받았다 해야겠지.
죽은 사람을 심판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적의 계절에 고속도로를 달린다.
주말을 집에서 보내고, 돌아가는 길에 나는 예지 추모공원이라는 장소로 향하고 있다. 아버지는 데려다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혼자 가겠다고 말했다. 부모님은 그러라고 했다.
차는 드물고, 사방은 탁 트여있다. 창백한 하늘 아래에서 나는 엑셀을 밟고 조용히, 그대로 굳어버린 듯 운전을 한다.
운전을 하고 있으면 대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백미러를 확인하고, 계기판을 보고, 네비게이션을 보면서 기계적으로 운전을 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순간에도 생각과 충동은 이따금 찾아온다.
가리키는 대로 운전을 하고, 휴게소에 들러 굳은 팔다리를 푼다. 다시 출발하고 엑셀을 밟는다. 몇몇의 차가 지나쳐 가고, 추월해 가고, 추월할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모든 사람에게 가야 할 곳이 있다. 그게 비현실적이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있고, 그들 모두 어떠한 목적지가 있다. 고속도로 위의 차 중에서 목적 없이 움직이는 차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나 많은데 다들 가야 할 곳이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이대로 쭉 달려서 세상 바깥으로 이탈해버리고 싶다. 곧은 길을 보면, 이 길은 어디로도 향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든 길은 이어져 있다. 외따로 떨어진 길 같은 건 없다. 우리는 결국 달리면서, 어디로든 이어져 있는 길을 밟고 어디로든 간다.
결국 길을 벗어날 수는 없다.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걸까. 죽은 친부모의 유골함을 보고 나는 무슨 생각을 하게 될지 전혀 알 수 없다. 이건 그저 의무감일 뿐이다. 그저 한 번 정도는 만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 다음에는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다음, 다음의 다음, 다음의 다음의 다음에는 또 무슨 일이 있는걸까.
굳이 그 다음 날들을 기약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일까? 내 친부모는 아마도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도 사람인 이상, 버린 자식을 생각하며 이따금 고통받고, 이따금 불행했으며, 이따금 죄스러워했겠지.
멍에처럼 죄책감을 짊어지고 살았을 것이다.
그저 지금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다.
왜 나를 버려야만 했을까. 이런 나도 아이를 키우려고 생각하고 있다. 절대로 버리지 않겠다 생각하고 있다. 찾아왔다던 내 형제는 남자였고,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고 했다.
죽은 사람에게 답을 얻을 수는 없다.
나는 그저 고요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 작품 후기 ============================
설원은 곧 완결이 난다.
계속 쓰고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