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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설원입니다-143화 (143/224)

00143 밤은 지나갑니까? =========================

그 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무엇을 선택하게 될까. 박헌영? 이선준? 아니면 또 다시 도망치게 될까? 그 때의 이선준은 상냥했고, 나를 배려했고, 존중했다. 나쁜 지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올곧은 사람이었다.

그 때의 이선준에게 사랑한다고 말하고, 남들의 시선을 견뎌내 가면서 그저 평범하게 연애를 했으면 아무 일도 없었을까?

박헌영을 선택해서, 그 녀석의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였다면 이선준은 상처받지 않고 우리의 관계를 인정했을까?

아무리 노력해도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만약이라는 건 그저 만약에 불과하다. 그런 건 결국 허망한 바람일 뿐이다.

그저 현재가 있다. 이선준이 도망가고, 박헌영은 내가 밀어내 버렸다. 되돌리는 건 힘들다. 그저 나는 이렇게, 함께 있었던 장소에 돌아와 영화를 볼 수 있을 뿐이다. 그저 추억을 떠올리며, 그 때 선택하지 않았던 결과가 이렇게 돌아와 버린 것만을 느낄 수 있다.

영화관은 한적하다. 나는 가장 가까운 시간대에 있는 영화표를 구입하고, 시간에 맞춰 들어간다. 혼자 온 사람도, 커플도 있다. 척 봐도 인기 없어 보이는 영화다. 아마 조금만 있으면 스크린이 내려가고, 적자 난 상태로 끝날 것 같은 그런 영화다.

좌석에 앉아서 입구를 멍하니 쳐다본다. 그 때에는 스위트 박스에 앉아서 영화를 봤다. 그 때의 박헌영에게 나는 미안함과 고마움과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박헌영은 정말 난데없이 나타났다. 다시 만난 그 순간에는 정말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을 한다.

갑자기 박헌영이, 그 때처럼 나타나지는 않을까?

옆에 태연하게 앉아서 내 손을 그 때처럼 잡으려고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웃긴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어한다. 역겨운 인간성이다. 그저 바람일 뿐이다. 그런 바람이 헛된 희망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 영화나 보자.

내 스스로를 혐오하게 될 다른 망상과 기대 같은 건 하지 말자. 구원 같은 건 없다.

그리고 나는,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가 끔찍할 정도로 재미가 없었다.

나는 영화관을 나오며 질린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태교에 안 좋아….”

그런 말을 하는 나 자신이 재미있다. 어쩐지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태교라. 클래식 음악 같은 걸 듣고, 오페라를 보면 태교에 좋은거야?

잘 모르겠다. 나는 뱃속에 있는 아이가 무슨 예술관이니 하는 것들이 있어서, 그런 걸 들으면 좋다고 하는 걸 상식적으로 잘 이해를 못 하겠다. 그런 건 미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결국 신경을 쓰게 된다.

조금은 미래를 준비하며 사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든다.

나쁘지만은 않다. 자기최면이라도 걸어야 조금이나마 견디고 살지. 쇼핑을 하러 돌아다니다가, 별로 눈에 들어오는 게 없었다. 그러다가 유아용품을 파는 층에서 문득 발길이 멈춘다.

나도 이게 감상적이라는 건 알고 있어. 그런데, 음, 흠….

구경이나 한 번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긴다. 사람들은 내가 다른 걸 사러 왔다고 생각하는지 눈길도 주지 않는다. 임산부 혼자서, 이렇게 어려 보이는 사람이 유아용품을 살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죽 훑어보듯 돌아다니다가 드는 생각은 결국 하나뿐이다.

더럽게 비싸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만삭이 되면 혼자 이렇게 돌아다니는 것도 힘들 테니까. 미리 사둬야 한다. 낳게 된다면 역시나 그렇고, 유아용품이라는 건 미리미리 준비해 두는 게 좋을거다. 살거면 나왔을 때 사는게 좋긴 한데.

필요한 게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감도 안 온다. 젖병, 배내옷, 기저귀, 분유, 유모차, 포대기를 비롯해서 정말 셀 수도 없이 많다.

문득 실감이 난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정말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무엇보다 돈이 엄청 들어갈 게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가격대가 엄청 비싸고, 하나 두개로 끝나는 게 아니다.

아이는 빨리 크니까, 옷도 계속 바꿔 입혀야 할거다. 정신이 아찔해진다.

“고객님, 혹시 찾으시는 물건이라도 있나요?”

“네? 아…. 아뇨…. 그냥, 그, 좀 보고 있어요.”

나는 화들짝 놀라서 불에 덴 듯 다른 곳으로 걸어간다.

눈앞에 닥치자 불안감이 엄습한다.

정말 키울 수 있을까? 혼자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물론, 언젠가는 주변 사람들에게 말해야 한다. 엄마는 등신 같은 년이라고 나를 때릴거고, 아버지는 담배만 피우거나 술을 먹겠지. 암담하다, 암울하다.

누구도 나와 너를 인정해 주지 않을거야.

너는 엄마 발목 잡는 애로 낙인찍힐거고, 나는 몸 함부로 굴린 주제에 모질지도 못한 멍청이 취급이나 받겠지.

너와 나는 누구에게도 축복받지도 못하겠지. 나는 프리랜서 계약이다. 곧 비정규직이다. 육아 휴직도 안 될텐데. 그런 거 물어봤다간 이상한 의심이나 받을텐데.

현실이 눈앞으로 확 끼쳐온 것처럼 나는 우두커니 서서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현실은 더욱 냉엄하다.

나, 정말 어떻게 해야 돼?

머릿속이 꽃밭이었다. 그저 마음 먹으면 되는 일이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낳아 키우기로 마음먹는다고 해서 아이가 알아서 잘 자라고 크지 않는다. 돈이 있어야 하고, 시간이 있어야 하고, 벌이가 있어야 한다.

애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대전에 내려가 있는다 쳐도, 그 다음에는? 평생 얹혀 살 수는 없으니 나도 일을 해야 하는데, 그 때에도 잡지사에서 계약하고 일을 할 수 있을까? 당연히 내 후임자가 그 자리에 들어가 있을거다.

안 봐도 뻔하다. 그 때에는 내 자리가 없다. 나는 일을 해야 한다.

나는 대학교 중퇴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뭐지? 나는 자격증도 없고, 그 흔한 토익 점수도 없다.

정말 몸이라도 팔아야 돼?

현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냉엄하고, 겪지 않았음에도 어두운 것이 느겨진다. 내가 겪어야 할 불행은 그 정도다. 그리고 내 생각은 약과에 불과하다. 매일 밤 뜻모를 이유로 울어대는 아이를 안아 달래고, 재우고, 병원에 데려가는 그런 삶이다.

매일 피곤과 스트레스에 절어서 살 것이 눈에 선하다. 불현듯 충동이 생긴다. 그렇게 사는 게 힘들 거라면, 두렵다면 내가 해야 하는 행동은 하나밖에 없다.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안돼.

싫어.

나는 자꾸만 드는 나쁜 생각을 억누른다.

싫어 그런 건 싫어.

아무리 그래도 지울 수는 없어. 그런 생각 하지 않기로 했는데, 그럴 수는 없어. 이를 악문다. 뭔가, 뭔가 사버려야지. 나는 아무데나 걸어가서 유아용품점의 아무거나 집어든다. 아기용 신발이다.

“이거 주세요.”

가격표도 보지 않은 채 말한다. 직원은 내 눈이 새빨간 것을 보고 당황하지만, 곧 포장을 해서 내게 건네준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안다는 그 표정을 보고 수치심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하얀색 신발이다. 대체 왜 이렇게 비싼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사버린 채 나는 봉투를 끌어안는다. 나는 도망치듯 백화점을 걸어 주차장으로 간다. 계속 같은 문장을 떠올린다.

절대로 지우지 않아. 절대로 그런 짓 안 해.

너에게 꼭 이 신발을 신겨줄거야.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물건을 하나씩 살거야.

오늘은 신발, 내일 마음이 약해지면 젖병, 모레 또 그러면 배내옷, 글피에 또 그러면 유모차를 살거야.

조수석에 쇼핑 봉투를 올려놓고 그걸 쳐다본다.

더 이상 약해지지 않을래.

어떻게든 살자. 어떻게든 살아가자. 살려고 마음만 먹으면 죽지 않을 수 있어. 행복하지 않다고 해서 죽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

시동을 걸고,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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