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34 허구 =========================
이선준과 내 눈이 마주친다.
집에 와 있었다고 해서 특별히 놀란 건 아니다. 내 집 비밀번호를 알려줬다. 계속 쾅쾅대며 두드리는 것도 귀찮았고, 안다고 해서 집에서 뭘 훔쳐갈 위인도 아니었기에 그랬다.
주차장에 이선준 차가 있었던가…. 못 본 모양이다. 만약 한정운을 집에 데려왔다면 아주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때렸을지도 모르지. 나는 나를 빤히 쳐다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선준을 보며 말한다.
“왜, 내가 한정운이랑 숨가쁜 입맞춤이라도 하면서 들어오길 기다리기라도 했어?”
“어? 어 뭐…. 흠. 그랬지.”
반응이 좀 이상하다. 이선준은 약간 멍한 표정이다. 진짜로 내가 한정운을 데려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당황한 건가? 나는 침실로 들어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손발을 씻는다. 이선준은 틀어놓은 TV를 보고 있다. 하지만 눈동자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
“야.”
“어, 어…. 왜.”
내가 부르자 이선준은 잠에서 깨는 것처럼 살짝 놀라며 나를 쳐다본다. 결국 이선준의 목적이 감시였든 뭐였든, 한정운을 데리고 오지 않았으니 해야 될 건 하나밖에 없다.
“할거면 해. 나 이제 잘거야. 졸려.”
“…….”
이선준은 나를 쳐다보다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는 그대로 현관으로 간다. 뭐 하는 거지?
“오늘은 별로. 나중에 연락한다.”
“그러던지.”
이선준은 문을 닫고 나가버린다. 나는 그 닫힌 문을 멍하니 쳐다본다. 뭘까. 화가 난 것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냥 뜬금없이 넋이 나가버린 것 같은 표정이다.
하긴, 안 한다면야 나는 좋다. 나는 씻고 바로 잠자리에 든다. 진짜로 피곤한 하루였다.
이상한 일은 그 날로 끝이 아니었다.
이선준은 바로 그 날부터, 나를 전혀 건드리지 않았다. 물론 대화는 적고, 손을 잡거나 데이트를 하는 일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찾아오는 횟수는 늘었다. 와서 아무것도 안 한다. 그냥 TV를 보고, 시답잖은 얘기를 하고 돌아간다. 심지어는 거실에 노트북을 꽂아놓고 소설을 쓰기까지 한다.
내가 기사를 쓰건 뭘 하건 하나도 신경을 안 쓴다. 그래서 그런 아무것도 아닌 방문이 연이어 계속되자. 나는 결국 폭발했다.
“야, 너 뭐 해?”
“왜?”
“너 아무것도 안 할거면서 여기는 왜 와?”
“…했으면 좋겠어?”
“아니, 아니 그게 아니잖아! 너 나 감시해? 여기가 네 작업실이야? 왜 남의 집에서 소설을 쓰고 자빠졌어? 원하는 게 뭐야?”
이선준이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중압감을 느낀다. 뭘 해도 편하게 할 수가 없고, 눈치를 보게 된다. 예전에는 하고 가버렸다면, 지금은 눌러앉아 있으니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이선준은 나를 그저 쳐다보기만 하다가, 조용히 입을 연다.
“딱히 원하는 건 없는데, 그냥 하기 싫어서 안 하는거야.”
“야, 너 설마…. 설마….”
이선준의 그 말에 나는 기분이 확 나빠진다.
“너…. 이제 와서 없던 일로 하고…. 막 다시 시작하고 싶다느니…. 그런 거 아니지?”
이선준은 말이 없다. 나는 인상을 쓰며 말한다.
“역겨우니까 그만둬. 소름끼치니까.”
설마 그런 거라면 이선준은 지금보다 더한 쓰레기다. 이미 없는 일로 할 수는 없게 되었다. 불안한 예감이 든다.
일부러 나를 뭉개버리고, 내가 집착할 틈도 없이 나를 짓이겨버린 다음에 천천히 마음을 나누는 과정을 만들기 위해서 그런 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역겹고 혐오스럽다.
진짜로 그런 거라면, 나는 이선준을 죽여버릴지도 모른다. 칼이든 뭐든 휘둘러서 죽여버릴거다. 진짜로 죽일거다.
거짓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이선준이 그렇게 멍청할리가 없다.
“……너 무슨 착각 하는 것 같은데.”
이선준은 고개를 젓는다.
“진짜로 그냥 하기 싫은거야. 요즘 너무 많이 해서 나도 좀 아프고.”
“개가 똥을 참지.”
“개도 가끔은 참아 등신아.”
이선준은 피식 웃는다. 하긴, 그렇겠지. 이선준은 그냥 미친거다.
“그래, 그렇다 치고…. 꺼져줘, 귀찮다고. 신경 쓰여. 원래 그것만이잖아.”
“무슨 소리야. 애초에 너랑 나랑 한 얘기는 섹스뿐만 아니라 내 옆에서 떠나지 않겠다는 거잖아? 지금 나는 너한테 굳이 찾아와주고 있는 거라고, 배려가 안 느껴지냐?”
“…아, 진짜 짜증나.”
그 말에 나는 할 말이 없어진다. 딴에는 맞는 말이고, 애초에 떠나지 말라고 했다. 그러니까 사실 안 할 거면 꺼지라는 말 같은 건 내 쪽에서 제멋대로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선준은 나름 내 분노에 어울려 주고 있었던 셈이다.
퍽이나 고맙겠다 이 자식아.
이선준이 나갈 생각을 안 해서, 내가 나갈 셈이다.
“어디 가냐?”
“밥 먹으러 간다.”
“같이 가.”
“아…. 싫어. 혼자 먹을거야.”
혼자 먹는 밥이 낫다. 나는 애초에 혼자 먹는다고 찌질해 보일 거 걱정하는 그런 사람 아니다. 혼자 먹고 싶으면 혼자 먹는거다. 부끄러운 게 아니다. 이선준은 나를 보며 말한다.
“내가 산다면?”
“한우 먹어도 돼?”
아무리 짜증난다고 해도 A++급 한우면 용서해 줄 의향이 있다. 이선준은 내 탐욕에 젖은 눈빛을 보고는 시선을 피하며 한숨을 쉰다.
“……하아.”
“싫음 말고.”
“그래, 가자.”
“운전은 네가 해.”
“너 진짜 미친년같아.”
이선준의 비아냥에 나는 피식 웃는다.
“하루이틀이냐?”
우리는 함께 집을 나선다. 그 때 먹었던 초밥을 제외한다면, 같이 나가서 먹는 건 그 이후로 처음이다.
사실, 굳이 이선준이 저렇게까지 나오는 저의가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순순히 따라나온 것이다. 지금까지 밥을 같이 먹거나, 혼자 먹거나 아무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굳이 왜 나와 밥을 먹고 싶다는 건지 도무지 감이 안 온다.
갑자기 스킨십이 없어진 것도 그렇다.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러는 걸까. 엿 같은 이유라도 있다면 침을 뱉어줄 생각이다. 굳이 밥을 먹자는 건, 무슨 말인가 하고 싶어서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탐욕스럽게 한우를 먹어치운다. 등심, 안심, 채끝살 치맛살 종류별로 시켜서 밀어넣는다. 이선준은 내가 그렇게 먹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선준은 묵묵히 고기와 밥을 먹는다. 아무 대화도 없다.
무슨 말이든 해봐.
사과하고 떠날 거라면 그렇게 하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말이 하고 싶다면 그냥 해버려.
무슨 말을 해도, 제발 이제 눈앞에 나타나지 말아달라고 말할 거니까.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고기를 먹었다. 계산을 했고 밖으로 나왔다.
아무것도 없이 그냥 배만 부르다. 이선준은 잘 먹었냐고 묻지도 않는다. 주차장 쪽으로 가면서 나는 어쩐지 허탈해져서 말한다.
“……너 여러가지 의미로 점점 기분나쁜데.”
“잘 처먹어놓고 왜 지랄이야.”
그 독설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미친놈이 미친 짓을 하는 데에 무슨 이유가 있겠어? 진짜로 그냥 잠깐 쉬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괜히 내가 혼자 망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비싼 밥 너무 쉽게 얻어먹은 탓에 마음에도 포만감이 든다. 그래, 이용할 건 이용해야지. 이선준은 다이아몬드 수저라고 불러야 할 녀석이다. 뽑아먹을 수 있으면 뽑아먹는다.
이선준의 차를 타고 돌아가면서 묻는다.
“너 그런데…. 통합신인상 당선됐는데 아무 일도 없어? 소설 발표 안 해?”
애초에 별로 궁금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알아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선준이 요란하게 등장한 이후로 이렇다할 움직임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가장 스케일 큰 신인상을 받아놓고, 딱히 뭔가 바빠 보이고 그렇지 않다.
“신비주의.”
이선준은 그렇게 답한 뒤 뒤이어 말한다.
“계약 같은 건 메일로 전부 해결하고 있어.”
“……무슨 컨셉인데?”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작가가 어마어마한 금수저라고 하면, 내 생각에는 일단 세간의 열등감이 나를 공격할 것 같은데.”
물론, 주목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선준이 학생운동을 한 경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기만자 타이틀이 거대하게 박힐 것이다. 밝혀서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으면, 아예 신비주의 컨셉으로 밀고 가겠다는 셈이다.
나름의 방어책 치고는 꽤 안전해 보인다.
생각해 보면 학과생활 때에도 이선준의 정체에 대해서 아는 건 나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도 생각해 보면 그저 추측일 뿐이지만. 나는 묻는다.
“애초에 너 진짜 재벌 2세 맞아?”
“재벌 정도는 아니야. 그냥 돈이 좀 많아.”
“그럼 나 아파트 한 동만 해주라.”
내 개소리에 가까운 요구에 이선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는다.
“내가 왜?”
“싫음 말아.”
“……진짜 해줘?”
그 진지하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나는 갑자기 소름이 쭉 돋았다가 몸에 기운이 빠져버린다. 뭐야 이게 대체, 성층권 쯤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 같은 기분이다.
“장난이었으니까 그렇게 진지한 척 장난치지 마. 상대적 박탈감 엿같이 크거든?”
“먼저 장난을 쳐놓고 나는 치면 안된다는 건 무슨 논리냐.”
“나 원래 무논리야. 이제 알았냐?”
우리는 티격태격 하며 오피스텔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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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동안 서울 가있어서 연재를 못했음 데스크탑에 설원파일이 있었는데 메일을 안보내놔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