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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설원입니다-132화 (132/224)

00132 허구 =========================

나도 차를 멈추고, 사이드 미러에 비치는 내 얼굴을 본다.

이게, 내가 생각했던. 나도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내 이상형의 모습인 건가? 과거의 내가 생각했던 이상형이 이 모습인가?

“그런데 얄궃죠.”

“왜?”

“TS바이러스 발병자 중에, 동성애자가 없는 거 아세요?”

“어….”

“남자가 되면 여자를, 여자가 되면 남자를 좋아하게 돼요.”

“어…. 그런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맞는 말이다.

정말로 이상하다.

나는 여자가 되기가 무섭게, 여자에게는 관심이 없어졌다. 이상할 정도로 빠르고 기괴했다. 여성을 보면서 성욕을 느꼈던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이상하게 빨랐다.

“이성애자로 살던 사람이, 정신적 동성애자가 돼요. 다들, 그래서 결혼한 사람은 가정이 파탄나요. 연인이 있었던 사람은 헤어져요.”

“이 바이러스가…. 몸 뿐만 아니라 정신에도 영향을 미친다는거야?”

“네.”

“하, 하하…. 말도 안 돼.”

“그 게이였다는 사람 있잖아요.”

“어, 어….”

“여자가 좋아졌다고 하더라고요.”

“…….”

“그래서, TS바이러스가 정신에도 작용한다는 게 증명되지 않았나…. 이런 말들이 많아요. 그냥 가설일 뿐이었거든요 그 동안은, 그냥 개인의 문제다. 여자가 되어서, 남자가 되어서, 육체적 성 역할에 마음이 지배받는다. 이 정도였는데…. 이걸로 확실해진 거겠죠.”

내가 느꼈던 그 감정들이, 결국에는 바이러스가 유발한 그 무언가였다는 소리야?

내가 진심이라고 여겼던 그 모든 감정들이…. 사실은 그냥 병이 내 정신을 남자를 좋아하도록 만들었다는거야?

그 감정 때문에 느낀 고통이 결국은 나만의 것이 아니라….

그냥 병 하나 때문에 일어난 감정이라는거야? 내가 진심이라고, 마음이라고 믿었던 건 사실 전부 허구였던 거야?

이선준을 사랑했던 마음도, 박헌영에게 두근거렸던 것도 전부. 나는 원래 여자를 좋아했는데 아무런 관심이 없어진 그 모든 게….

사람의 정신마저 개조해버리는 그 병 때문이었던 거라고?

“그래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다…. 거짓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이런 게 어디있어? 정신까지 지배해버리는 그런 병이 대체 세상에 어디 있어?

생각해보니 없는 건 아니다. 남자가 여자로, 여자가 남자로, 사람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형의 모습으로 바뀌는데, 그 이상형은 더 이상 변한 사람의 이상형이 아니다. 마음까지 건드려 버린다.

“이건 병이 아니라…. 저주잖아. 대체, 대체 세상에 왜 이딴 게 있어?”

“모르죠.”

한정운은 그렇게 말한 뒤 한숨을 쉰다.

“위대한 누군가가, 동성애자들을 역겨워해서 이게 자연의 섭리라고 알려주는 걸지도…. 모르죠. 일부 개신교 단체에서는 이게 신의 섭리라고 벌써부터 들고 일어나고 있어요. 심판의 날이라나 뭐라나….”

“사람을 정신적 동성애자로 만들어 버리고, 육체적 궁합만 맞으면 된다는거야? 그게 무슨 궤변인데 대체!”

뭐야, 대체 뭐야. 왜 이딴 일이 벌어진거야? 애초에 이런 일을 왜 당해야 하고, 그 피해자는 왜 나여야 하는데? 그러면 내가 이선준을 좋아한 것도, 결국에는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만 했다는 거잖아. 여자를 좋아하게 될 가능성 같은 건 하나도 없었던 거잖아.

여자와 하는 것도, 안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왔어. 레즈비언이든 게이든, 나쁜 건 아니라고 계속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상상해본 적은 없었고, 그러고픈 마음도 없었다. 그러한 욕망이 생겨난 적 자체가 없었다. 그저 머리로만 이해하고, 가슴으로는 원하지 않았다.

맥이 풀린다.

모든 게 허상이었어.

“사람은 기계가 아니잖아…. 그런데…. 그런 질병의 화학 작용인지 뭔지 때문에 어째서 마음이, 정신이 바뀌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는 차에 앉아서, 서로 풀 곳 없는 분노를 안에서 조용히 끓게 하고 있다. 한정운이 여자로 돌아가고 싶은 이유는 그거였다. 자신의 조작된 마음이 만들어내는 모든 감정이 가짜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괴로운 것이다.

마음이란 뭐지?

왜 누군가는 이성애자고, 왜 누군가는 동성애자가 되는거지? LGBT라는 건 대체 어떤 기준으로, 어떤 방식으로 정해지는거야? 태어날 때부터? 아니면 어떤 계기를 통해서? 학습? 가능성이 발견되는 순간부터 그렇게 되는거야?

애초에, 젠더라는 건 뭐야?

결국 우리는 해가 다 넘어가버리고 밤이 올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 패닉 상태에서 빠져나오는 데에 많은 시간이 걸렸다.

“술이나 먹죠.”

한정운이 그렇게 말했고

“그래.”

나는 그리 답했다.

집 근처로 돌아와, 우리는 근처의 술집으로 갔다. 한정운은 무표정하게, 나는 얼이 빠진 채 가만히 있다. 메뉴를 시키고 술이 나온다. 나는 문득 정신을 차리고 한정운을 보며 말한다.

“야, 너 혹시…. 나랑 잘 생각은 아니지?”

“…그렇다고 하면요?”

“안 돼.”

“그럴 줄 알았어요. 아무 생각 없어요. 그런 거 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고….”

우리는 서로 술을 따라 안주가 나오기 전부터 마신다.

“이렇게 술 먹는거 처음인 것 같은데.”

내가 말하자. 한정운은 피식 웃는다.

“두 번째죠.”

“두 번째…? 아, 맞다.”

내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날, 마지막으로 함께 있었던 사람이 한정운이고, 제일 먼저 본 사람도 한정운이다.

“너 내 최악의 순간에는 항상 같이 있는 것 같은데.”

“운명인가봐요.”

“끔찍한 운명이네.”

내가 자살을 마음먹고 마지막으로 만났던 것도 한정운이다. 얄궃은 인연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너무나 얄궃어서, 아무런 생각도 안 든다.

“서운하네요.”

“사실인걸 어떡해.”

“누나가 제 인생의 유일한 위안인데요.”

“야…. 너 깜빡이 켜고 들어와라. 놀랐잖아!”

갑작스러운 소리에 나는 당황해서 몸을 살짝 뒤로 뺀다. 한정운은 내가 당황하자 웃는다. 술을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한다.

이상형이라, 이 얼굴은 과거 남자였던 나의 이상형의 모습이다. 하지만 나는 예쁘다는 생각 이외에 다른 생각은 별로 들지 않았다. 진짜로 성욕이 생긴다거나, 나르시즘에 빠지지는 않았다.

사실 세상의 모든 TS바이러스 발병자들은 나르시스트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형으로 모습이 바뀌었음에도. 그것도 정말 이상하다.

이건 세간에 밝혀진 만큼 그냥 담백한 성별 전환 질병이 아니다.

사람을 근본부터 송두리째, 마음마저 뒤바꿔 버리는 끔찍한 저주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무력하다. 내 마음이 조작된 것이라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마음의 문제는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이렇게 되어버렸다 해서, 이제부터는 여자를 좋아하겠다고 제멋대로 선언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의 실체를 지금에야 깨달았을 뿐이다. 내가 선택하고 고민하고 고뇌해왔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의도된 거였다니.

모든 고민은 무가치해졌다.

체념하게 되어버렸다. 말도 안 된다. 마음을 바꾼다니 말도 안 돼.

하지만 말 되는 일이 언제 세상에 있던가.

하루아침에 육체가 바뀌는데, 마음이라고 못 바뀔 건 뭐야.

납득할 수 없는 일 투성이인 이 세상에서, 말도 안 되는 수많은 일들 중에서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이다.

안주가 나오고 술을 마신다. 그저 그렇다.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여기는데

그래도.

“씨바알.... 열받잖아 진짜….”

“화 났어요?”

“그럼 화가 안나냐…. 염병…. 말도 안 돼 진짜…. 뭐야. 뭐야 이게….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내가 내 마음이 그렇게 가버리는 걸 참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데. 참고 또 참아서….”

두려워하면서, 끌리는 걸 알면서도 그저 착각이라고만 생각했다.

“흐응, 하긴 뭐. 씨팔. 이제 다 끝났는데 뭐.”

개박살이 나버렸으니까. 이제는 나랑 아무 상관도 없다. 불행이 너무 켜켜이 쌓여서, 이제 이런 건 불행 축에도 끼지 못한다.

“산에 바위 하나 얹혀진다고 해도, 그냥 무거울 뿐이야. 똑같아…….”

“불행한가봐요.”

“응….”

“행복해지고 싶어요?”

“응….”

행복해지고 싶어. 남부럽지 않은 행복 같은 건 필요없어. 그냥 평범하게, 더 이상 아프지나 않았으면 좋겠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봐요.”

“싫어….”

말해서 좋을 게 없다. 박헌영에게는 말해야만 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한정운은 아니다. 괜히 내 못나고 더러운 지점을 광고하며, 동정을 구걸하기는 싫다.

“그럼 저부터 말할까요?”

“응?”

“저도 힘든 일 말할테니까. 누나도 말해줘요.”

“뭐야…. 불행자랑 하자고?”

내가 제일 싫어하지만, 속으로는 허구헌날 하는 불행자랑. 그런 걸 갑자기 한정운이 요구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한정운은 술을 한 잔, 두 잔, 세 잔 마신다.

“야, 야…. 너 갑자기 왜 달려?”

“맨정신으로는…. 하기 힘들어서요.”

하지만 술은 마신다고 바로 취하는 게 아니다. 한정운은 잠시 가만히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연다. 눈가가 조금 젖어 있다고 느낀다.

“성폭행…. 당했어요.”

그 말에,

나는 그저 멍청하게 입을 벌릴 뿐, 아무 말도 이어갈 수 없게 된다.

============================ 작품 후기 ============================

디테일에 관한 이상한 질문은 대답 안할거임.... 깜짝놀랐네 진짜

템플스테이 출발하기 전에 올리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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