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12 세상에 안 어려운 게 어디있냐? =========================
이선준은 TV를 틀어놓고 보고 있었다. 이 인간은 술 마시고 숙취가 완전히 깨기 전까지는 글을 쓰거나 책을 보지 않는다. 진짜 여러가지 의미로 진지한 인간이었다. 케이블 TV채널에서는 보험 광고가 한창이었다.
“전화 잘 했어?”
“어, 어….”
“별 말 안해? 강제로 프로그램 집어넣을수도 있다거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지원금과 보조금, 그 아저씨가 보조금을 통해 학자금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말을 듣자 그 이선준도 크게 놀랐다. ‘국정원이라….’ 정부기관 불신이 뿌리깊게 박혀있는 이선준도 조금은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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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저거?”
나는 TV에서 흘러나오는 광고소리를 보자마자 역겨운 느낌이 들었다. 그냥 보험 광고인줄 알았는데 그 보험에서 보장하는 것은 다름아닌 TS바이러스 전용 보험이었다.
TS바이러스는 누가 언제, 어디서 감염될지 모른다는 공포심을 조성하고 있었다. 발병 사실 확인 즉시 자그마치 10억원을 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광고 내용이 혐오스러웠다. 특약은 뭔지, 환급률은 얼마인지 알고싶지도 않았다. 일단 보험료가 싸기는 했다. 가입해도 그만, 가입 안 해도 그만인 그런 금액이었다.
보험이라는 것이 원래 그랬다. 사람은 돈을 주고 안정감을 산다. 보험은 정확히 말하면 상품을 파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불안감에 빠뜨리고, 안정감을 미끼로 파는 것이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최후의 괴물이지.’
이선준은 보험을 그렇게 평가했다. 내가 피해자인 입장에서 할 말은 아니었지만 TS발병률은 그야말로 길 가다 벼락맞을 확률보다 낮았다. 재수없게 그걸 처맞은 내가 등신이다. 하지만 이 세상 모든 것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보는 저런 보험 상품은 정말 역겨웠다.
“다른거 보자.”
내가 토할 것 같다는 듯 입을 가리며 말하자 이선준은 채널을 돌렸다. 사람들이 정말 저걸 가입할까?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금액이니 어쩌면 로또 긁는 심정으로 할지도 모른다. 만약 걸린다면 슬프지만, 10억이라는 돈은 행복을 살 수도 있는 큰 돈이었다.
그래 돈, 항상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지만, 행복하게도 만드는 것이 돈이다. 나는 방금 돈 때문에 행복했다.
항상 돈은 수단이며, 그 수단에 목 매지 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도 다 안다. 세상 누구나 안다. 이 세상에서 돈은 그 자체로 목적이다. 돈 이외의 목적이 오히려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을 택했다. 내 인생의 목적은 돈이 아니다. 이선준도 그렇다. 정말 싫어하지만 한정운도 그랬다. 소설을 팔아서 돈을 벌고 있는 박헌영은 조금 다르겠지만, 그 녀석도 편한 길 놔두고 소설을 쓰고 있다. 아, 편하다는 말 취소, 돈 벌기 쉬운 세상 아니다. 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건.
돈 이외의 뭔가를 추구한다는 그 순수성, 나는 그게 좋다.
꿈을 향해 달리면 돈이라는 수단은 따라온다고들 한다. 꿈을 정말 열심히 추구하면 성공하게 되고, 성공하면 돈은 굴러온다는 논리였다.
웃기고 있네. 나는 그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꿈이라는 것이 ‘성공’을 전제한다는 시점에서 이미 글러먹었다. 그 ‘성공’이라는 단어 안에는 이미 ‘돈 많이 버는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그냥 소설을 쓰는 것 자체가 목적이면 사람들은 말한다. ‘그건 꿈이 아니야. 취미지.’ 꿈이라는 건 어떠한 직업이라는 것으로 항상 매치가 되어야 한다. 과학자, 대통령, 선생님, 우주비행사 이런 것들은 전부 직업이라는 말로 치환할 수 있다.
‘세계일주를 하는 것’ 이게 꿈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묻는다. 그럼 그거 한 다음엔 뭐 할건데?
그딴 건 그쪽에서 신경 쓸 사항이 아니다. 그딴 걸 꿈이라고 말하는 사고방식 자체를 부숴버리고 싶다. 그냥 간단하게 ‘무슨짓을 해서 밥 빌어먹고 살고싶니?’ 라고 묻는 쪽이 더 담백하다. 사실 남들에게 장래희망, 꿈을 묻는 사람들은 사실 그 말이 너무 길어서 간편하게 줄인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가장 처음에 했던 말을 다시 해본다. 세상은 우리에게 ‘꿈’을 강요한다.
낭만적이다. 그 꿈이라는 단어를 그냥 직업이라고 바꾸면 정말 한심한 말이 된다.
세상은 우리에게 직업을 강요한다.
그리고 이것은 사실이다. 누구도 우리에게 행위적 꿈을 바라지 않는다. 무슨 직업을 가지고 싶은지에 대해서 묻는다. 그게 꿈이다. 이 사회는 우리가 사회의 부품으로 기능하기를 바란다. 그것을 그럴싸하게 포장한 것이 꿈이다. 나는 거기에 대놓고 가운뎃손가락을 날린다. 엿 먹어, 너희들이 맞춰놓은 프레임에 나는 들어가고 싶지 않아.
그래, 돈이 최고인 자본주의 사회에서 감히 순수문학을 하겠다고 뛰어든 나는 이 세상의 이단아나 마찬가지다. 나도 그렇고, 이선준도, 박헌영도, 한정운도, 우리과에 있는 순문학에 대한 열정을, 아니, 장르문학도 쳐주지, 글을 쓴다는 것들은 전부 그렇다. 우리는 모두 별을 쫓는 아이들이다.
그리고 그 별에 닿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별이니까. 생각하니까 또 우울해지네.
절망적이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나는 내가 꿈을 향해 달린다고 생각한다. 남들과는 달라지고 싶은 중이병적인 생각이라고 욕해도 좋아. 나는 이런 내 삶을 긍정하고, 어찌되었든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
패배자 예약한 멍청이의 푸념은 이쯤하도록 하자. 이제 뭔가 해야 한다.
학교는 오늘까지는 제껴야겠다. 글러먹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일단 입을 옷도 없다. 입고다닐 옷도 사고, 학교에 출석인정 서류도 내고, 무엇보다 집에 전화도 해야 했다.
가족들을 생각하니 우울해졌다. 기껏 키워놓은 아들이 여자가 되었다고 하면 대체 어떤 표정을 하실지 생각만 해도 우울하다. 애초에 믿기나 할지 모르겠다.
일단은 옷부터 사자, 속옷도 한 벌 뿐이었다. 이걸 입고 일주일 내내 돌아다닐 수는 없다. 여벌의 속옷도 충분히 챙겨두자. 돈이 입금된다고 했으니 계좌를 확인해보면 알 거다.
어제 널어놨지만 덜 마른 츄리닝과 저지를 입었다. 맞지도 않는 큰 옷을 입고 나가는 것보단 이게 나았다. 이선준은 내가 준비하자 자기도 옷을 챙겨입었다.
“형, 집에는 안가려고?”
“어? 쉬엄쉬엄 가지 뭐.”
“불효자네.”
“마, 부모와 자식은 떨어져 있을때가 좋은거야.”
“그런 말은 부모가 되보고 나서 하는거야. 자식인 적밖에 없으면서.”
“니 말이 맞다.”
이선준은 웃었다. 이런 시시한 농담을 할 수 있는 상대가 있어서 다행이다. 주위에 아무도 없었으면 정말로 미쳐버렸을 것 같다. 이선준이 내게 특별한 위로의 말을 해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옆에 있었을 뿐이었다. 테디베어 효과라고 했나, 사람은 때로 그냥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고 했다.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아무 말도 안 해도 된다. 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마음의 안정을 얻는다. 그래, 곁에 있는 사람이 중요한거다. 그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되니까 더 절절하게 느꼈다.
고향 친구 만나고 싶다. 문학적인 이야기는 안 하지만 충분히 믿고 의지가 가는 녀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