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29 고독 =========================
박헌영의 소설은 온전한 게 아니다. 없는 내용도 많고, 그저 내 생각을 억측했을 뿐인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노력을 했다는 것 자체가 어쩐지 바보같다. 바보 같은 동시에 안쓰럽고 측은하다.
다시는 만날 수 없을거다. 박헌영은 내게 완전한 이별을 고했고, 나도 그것을 원했다.
더 이상 상처를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선준에게 매여서, 둘 중 하나가 완전히 미쳐버리거나 죽을 때까지 이 지루하고 폭력적인 시간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박헌영에게서 연락이 오는 일은 없었다.
박헌영을 만나고 며칠 뒤, 이선준을 만났다.
내가 이선준에게 찾아가는 경우는 없다. 이선준은 아무 때나, 제멋대로 불쑥 찾아왔다.
마치 내가 어떤 다른 남자라도 만나지 않을까 의심하는 것 같다. 하지만 아프다. 너무 거칠고 힘들게 해서 약도 먹고 있다.
더 하면 진짜로 몸에 이상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선준은 소파에 털썩 앉아서 조심스럽게 옆에 앉는 나를 흘끗 보며 묻는다.
"씻었냐?"
"어, 아 방금…."
"어, 그럼 나만 씻으면 되겠네."
이선준이 소파에서 일어나 옷을 벗는다.
"저, 저기 잠깐…."
"왜?"
"나…. 아파. 산부인과 갔다너 질염이래…. 그거 하면 안 된단고…."
무섭다. 억지로 하려고 하면 어떡하지? 아픈 것도 아픈 건데, 불임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걸 걱정하는 내 자신이 우습다. 불임이건 뭐건 대체 무슨 상관인걸까.
낳을 생각도 없는데. 아이 같은 걸 가져봐야 더 불행해질 뿐이다.
하지만, 내 안의 어떤 가능성이 사라져버리는 건 두렵다.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는 모든 사람들이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그냥 막연하게 두려울 뿐이다/
이선준은 잠시 나를 처댜본더니 툭 던지듯 말한다.
"그럼 입으로 하면 되잖아/"
"아…."
이선준은 씻으로 들어간다. 그래, 네가 내게 원하는 건 그냥 그것 뿐이었지.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만 된다면 좋다는 거네. 물을 틀고, 씻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소파에 비스듬하게 누워서 이선준이 나오기를 기다린다. 그냥 하는 건 가만히 있으면 되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이를 악물고 참으면 끝나버렸다.
하지만 내가 이제 해야 하는 건 능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대체 뭘 위해서, 행복해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이 순간에 대체 뭘 위해서 그래야 하는 걸까.
그냥 밑으로 계속 가라앉을 분이다.
"해 봐."
침대맡에 걸터앉아서 이선준이 말한다.
"불 끄면…. 안돼?"
"마음대로 해."
불을 끄고 커튼을 친다. 아무것도 안 보인다. 그나마 다행이다. 나는 실루엣을 따라 이선준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굵게 팽창한 물건이 눈앞에 있다. 침대에 앉은 이선준과, 바닥에 무릎을 꿇은채 나는 이선준을 올려다 본다.
주인과 노예 같은 이 구도가…. 이제는 익숙하다. 조심스럽게 뜨겁게 달아오른 그 성기를 쥔다.
서준영과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오른다. 혐오감과 역겨움 때문에 그 때는 하지 못했다.
그 때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이제 나는 숱하게 섹스를 했다. 한 사람과 한 거지만, 그 행위 자체에 대한 거부감은 없다.
하지만 입으로 하는 건 두렵다. 이선준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왜, 물어뜯고 싶어?"
"……."
차라리 그러기를 바라는 것처럼 말한다. 그 멸시하는 것 같은 말 때문에 나는 천천히 입술을 가져간다.
입술에 닿는 감촉이 뜨겁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역겹다.
하지만 그런 생각과는별개로, 그 단단해진 물건을 입 안에 넣는다.
"어, 이 안 닿게, 응. 그래…."
이선준은 마치 동물을 길들이듯 나를 리드한다. 뜨겁고, 동시에 역동적이다. 방금 씻었기 때문인지 냄새는 별로 안 난다.
벗겨진 포피 위로 드러난 귀두에 혀를 살짝 댄다.
"야, 맛 보냐, 제대로 좀 해봐."
머뭇거릴 바에야, 차라리 빨리 해버리고 끝내자. 이건 그냥 피부야, 피부의 일부분일 뿐이야.
그렇게 생각하니까 덜 역겨웠다. 그리고 웃긴다. 나는 그냥 내가 핥고, 물고 있을 뿐인데.
이선준은 내게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있는데.
젖어버렸어.
나도 안다. 나는 소위 그 물이 많은 스타일이다. 그래서 이선준이 별다른 애무 같은걸 하지 않아도 쉽게 젖었다.
비린맛이 느껴질 정도로 빨고, 물고 핥는다. 손도 움직여 가면서 정성스럽게 한다. 나도 내가 이렇게 할 수 있는줄 몰랐다.
"야 너 꽤 재능…. 있는 것 같은데…."
나는 무시하고 내 할 일만 한다. 조금씩 이선준의 몸이 경직되는 게 느껴진다.
정말로 열과 성을 다해서 물고 빨고 핥는다. 이선준이 다 된 것 같은 때, 나는 입을 떼려고 고개를 든다.
"욱!"
하지만 기다렸다는 듯 이선준이 내 머리를 찍어누른다.
순식간에 입 안에 성기가 가득 들어찬다. 그리고 두근 하면서
사정한다.
"욱! 우우! 으으! 으!"
입 안에 뭔가 울컥 하며 계속 들어온다. 몸을 틀지만 이선준은 내 머리를 놓아주지 않는다.
애 입 안에 가득 사정해버리고 난 다음에야 이선준은 내 머리를 놓아준다.
그리고는 내 입을 막은 채 나를 쳐댜본다. 내 눈을 쳐다본다.
"삼켜."
대체
대체 왜
나를 이렇게 짓밟아야만 해? 나는 고개를 젓는다. 절대로 싫어, 이런 거 싫어, 하지만 이선준은 웃으면서 내 귀에 속삭인다.
"삼켜줘, 부탁이야."
"으으! 으!"
대체 왜 그래야만 하는건지 알지도 못한 채, 나는 그 비리고, 역한 그것을 삼킨다.
끔찍한 걸 넘어서 속위 뒤집어질 것 같다. 그리고 이선준은 그걸 느꼈는지 입에서 손을 뗀다.
"착하네."
이선준이 내 머리를 쓰다음으며 웃는다. 미친 정신병자 새끼.
역겹고 구차하다. 그래, 내가 정신을 놓고 미친년이 되길 바라는 거지?
나는 벌떡 일어나서 문을 열고 화장실로 향한다.
"우엑! 우웨에엑!"
토한다. 위액이 역류하며 방금 삼킨 것은 물론, 아까 먹었던 것까지 전부 토해낸다.
전부 게워내 버릴 것처럼, 그래. 그래 이미 늦어버린 거 나도 알아.
이제 행복해질 수는 없어.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이미 늦었어, 내가 아무리 상냥하게 하려고 노력해도 이미 뒤틀릴 대로 뒤틀려 버렸어.
나를 그나마 사랑하던, 정말 사랑하던 박헌영은 이제 없어. 다 떠나가 버렸어. 아무런 희망도 없어.
아무것도 기대 할 필요가 없어. 이미 막장의 끝에서 더 이상 오지도 않을 구원 같은거 안 바랄거야.
그러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그래
더 이상 병신처럼 살기 싫어.
토를 하고, 이를 네번 다섯 번이나 닦고 나서야 나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이선준은 어느 새 옷을 입고 몰골이 된 나를 보며 웃는다.
"뭐야 서운하게…. 그렇게 싫었냐?"
"미친새끼...."
나는 이선준을 노려본다. 내가 욕을 하자 이선준의 표정도 굳는다.
"좋네. 설원. 욕도 하고."
"너는 미쳤어."
"사실이라서 별로 화가 안 나."
이선준이 느물거리듯 말한다. 생각이 바뀌었다. 나를 완전히 짓밟고 뭉개고 사람 따위로 취급하지도 않는 사람을 상대로 더 이상 죄인처럼 살고 싶지 않다.
학헌영도 없다. 더 가만히 있다간 터지는 상념들 때문에 완전히 돌아버릴지도 모른다.
화가 나면 화를 낸다. 그게 사람이야.
"그래,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를 강간하고 싶으면 하고, 잎으로 하고 싶으면 하고, 안에 싸고 싶으면 싸고 제못대로 해.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네 섹스 인형이니까. 나는 인간 이하잖아 네가 보기에,
안 그래? 네가 원한 건 그거지? 내가 했던 잘못에 대해서, 내가 그 정도의 책임만 지면 되는거지?"
애가 거칠게 말하자 이선준의 웃음이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웃는다.
"어, 뭐 그렇지. 그거면 충분해."
"네 옆에 계속 있을거고, 네가 하자면 할거야. 다른 사람이랑 하지도 않을거야. 도망치지도 않아. 그러면 내가 할 일은 끝이지?"
" 어, 따로 더 해야 되는 건 없어. 하고 싶을 때 해주면 돼. 질척하게 달라붙지 말고."
이선준은 내가 화를 내는 게 재미있는 모양이다. 방금 이선준이 한 일 때문에, 오히려 죄책감이 날아가버렸다.
나를 묶어두고 있던 죄책감과 부채감이 사라졌다.
그저 분노가 끓어오를 뿐이다. 내 분노의 정당성? 이유? 죄책감? 그런 거 몰라.
이제 생각하지 않을거야. 나는 내가 이런 취급 받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이런 취급 받아도 할 말 없다고 생각해. 내가 잘못한 대로, 나는 지금 그저 발이 묶여 있을 뿐이야.
그래도 사람이라는 건, 이런 대벚 받으면 화가 나게 되어 있어.
"그래, 그런데 너도 명심해."
나는 이선준을 노려보며 말한다.
"네가 나를 사람 취급 안 하면, 나도 너를 똑같이 대할거야 이 쓰레기 새끼야."
네가 원한 거 전부 해줄거야. 달라지는 건 없어. 그저 나도 화가 나면 화를 낼거야.
아프게 하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를거야. 나도 사람이고,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더 이상 내 죄책감에 먹힌 채 울면서 용서를 빌지 않을거다. 내가 지금까지 했던 모든 생각을 뒤집는다.
하지만ㅡ 이게 이선준이 바라던 일일 것이다. 내가 결국 말도 안 되는 분노를 쏟아내며 화를 내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치는 게 바라던 일일 거다.
그래, 얼마든지 미쳐줄게. 나는 이선준을 노려보며 말한다.
"볼일 끝났으면 꺼져. 더 하고 싶은 거 아니면 가. 피곤해."
"야, 설원."
"왜."
이선준이 소파에서 나를 보며 정말 즐겁다는 듯 웃는다.
"너, 지금이 제일 매력적이야."
"……또라이 새끼."
"그럼, 나중에 연락할게."
이선준은 짐을 챙기고 집을 나간다. 이선준은 전혀 화가 나 있지 않다.
화를 내게 하려고 한건데, 하나도 먹히질 않았다. 진짜로 이선준은 내가 이렇게 망가져버리길 원한 것 같다.